제 12 장
알렉산더가 정권을 잡고 돌레마이스로 출정하였다가톨레미 라디루스를 두려워하여 포위를 푼 것에 대하여, 그리고 알렉산더가 클레오파트라를 설득하여 톨레미를 치도록 했다는 이유로 톨레미가 알렉산더를 공격하러 왔으면서도 힐카누스와 우정을 가지고 있는 체한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가 왕이 되다
아리스토불루스가 죽고나서, 헬라인들에 의해 알렉산드라(A- lexandra)라고 불리우는 그의 아내 살리나(Salina)는[㈜ 이본(異本)에는 \’살로메(Salome)\’라고 되어 있음(그녀의 이름은 전쟁. 1 : 85 병행구절에는 없음). 그녀의 히브리식 이름은 아마 셀람시온(Selamsiyon)일 것이다<참). 살람프시오(salamyiwv). 고대. 18권. 6 : 5(170)>, 살로메는 이것의 지소사(指小詞)일 수 있다 참). 데렌부르크(Derenbourg), p. 102. 각주 2. 살리나(Salina)는 그녀의 히브리식 이름의 헬라형일 수 있으며 혹은 그녀의 동시대 인물인 셀레네(Selene)의 이름에 영향받았을 수도 있다. 참). 고대. 13권. 16 : 4(420). ] 그의 형제들을 풀어주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아리스토불루스가 그들을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고대. 13권. 11 : 1(302)에 있음. ] 그리고 알렉산더(Alexander)라고도 불리우는 얀네우스(Jan-naeus)를[㈜ 헬라어 이안나이오스(Iannaios)는 히브리어 \’얀나이\'(Yannai)의 헬라화한 형태이다. 참). 고대, 13권. 9 : 5)288). ] 왕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나이로 보나 그의 침착한성품으로 보나 왕직에 가장 잘 어울리 는 사람이었다. [㈜ 아마 여기서 metriovth\”는 가끔씩 비잔틴(Byzantine)헬라어에서처럼 \’자기 분수를 알다\’라는 의미이다. 즉 이것은 알렉산드라(Alexandra)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을 지배하기를 바라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녀는 차후 일련의 사건들이 보여주듯이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고대. 13권. 13 : 3(365)까지 이르는 단락들은 \’전쟁사\’에 언급이 없음<고대. 13권. 12 : 1(323)과 12 : 4(337)의 간단한 구(句)들을 제외>. ] 그러나그는 그가 태어날 때부티 아버지의 미움을 받아왔었다 그래서아버지가 살아있는 한은 결코 그의 눈에 들 수 없는 형편이었다.아버지가 왜 그를 미워했는가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힐카누스는 아들들 가운데서 손위 두 아들인 안티고누스와아리스토불루스를 가장 사랑했다. 한번은 하느님께서 힐카누스의 꿈 속에 나타나셨을 때, 그는 자기 아들들 가운데서 누가 자신의 후계자로 정해졌는가를 하느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에게 알렉산더의 모습을[㈜ Chamonard는 Carakth\’ra\”를 \’이름의 문자들\’이라고 번역하며 라이나흐(Reinach)는 그 헬라어의 의미가 매우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 보여주셨고, 그는 알렉산더가 자신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게 될 것이라는 말에 몹시시 슬퍼하였다. 그래서 그는 알렉산더를 태어날 때부티 갈릴리에서 자라게 하였던 것이다. [㈜ 이것은 항상 갈릴리(Golilee)가 힐카누스(Hyrcanus)시대에 전체적으로 유대화가 되었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참). 쉬러(Schurer), I : 276 각주 10. ]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힐카누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아리스토불루스가 죽은 이후에바로 알렉산더가 그 왕권을 차지하였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더는집권에 뜻을 두고 있었던 그의 형제둘 중 한 명을 처형한 반면, 공적인 일에 참여하며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 다른 동생은[㈜ 압삽롬(Absalom)으로 불리움. 후에 아리스토불루스 Ⅱ세(Aristobulus Ⅱ )의 장인이 됨. 참). 14권. 4 : 4(71). ] 영예롭게 만들었다.
2. 알렉산더 얀네우스가 수리아의 해안에 있는 도시들을 공격하다
[㈜ 여기서 요세푸스는 셀류키드(Seleucids)왕조로부터 팔레스타인(Palestine)지역을 강탈하기 위한 하스모네안(Hasmenaean)왕가의 투쟁이야기를 요약한다. 참). 고대. 13권. 10 : 1(274). ]
알렉산더는 스스로를 야심적이라고 생각하고는 자기의 왕국 을 떠나 톨레마이스를 향하여 진군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그들을 패퇴시킨 후에, 그들을 그 도시 안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그 시를 포위하여 그들을 공격하였다.그 해안에 있는 도시들 중에는 오직 톨레마이스와 그에 의해 정복된 가사(Gaza), 그리고 또한 조일루스(Zoilus)가 지키고있는 스트라톤 망대와[㈜ 후기 가이사랴(the later Caesarea), 참). 고대. 13권. 11 : 2(313). ] 도라(Dora)[㈜ 참). 고대. 5권. 1 : 22(83), 13권. 7 : 2(223). ]만이 남아 있었다. 조일루스는 그 지역의 통치자였다. [㈜ tuvranno\”의 의미에 대하여는 고대. 13권. 8 : 1(235)를 볼 것. 조일루스(Zoilus)는 원래 가사(Gaza)의 지배자였던 것처럼 보인다. 참). 고대. 13권. 12 : 4(334). ] 그때 안티오쿠스 필로메토르와[㈜ 안티오쿠스 Ⅷ세 그리푸스(Antiochus Ⅷ Grypus)의 공식적인 성(姓). ] 키지케누스라 불리는 그의 형제 안티오쿠스는 서로 싸우며 서로의 군대를 파괴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톨레마이스 백성들은 그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톨레마이스 사람들이 적의 공격으로 심하게 압박받고 있는 동안, 스트라톤 망대를 지키던 조일루스는 그가 데리고 있던 군사들과 함께나타났다. [㈜ ( )구절은 스트라보(Strabo)가 고대. 14권. 7 : 2(116)을 인용한데서도 발견된다. ] 그 두 왕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겼기 때문에, 이기회에 스스로 절대 군주가 되려는 야망을 가졌던 그가 톨레마이스 백성들에게 약간의 도움이나마 주었던 것이다 또한 백성들이 그 두 왕들로부터 어떤 원조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그 왕들 은 그들에게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힘이다 고갈되었으나 부끄러워 포기하지 못하는 그런 경주자와도 같은 처지에 있었다. 그리하여 싸움이 멈추게 될때까지 오랫동안계속해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톨레마이스 백성들에게 알렉산더의 군사들을 떠나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애굽의 군주들과 구브로의 통치자인 톨레미 라디루스이었다. 톨레미 라디루스는 그의 어머니에 의해 그의 왕국에서 쫓겨났다가 구브로에 왔던 인물이었다. 톨레마이스 백성들이 톨레미 라디루스에게 알렉산더 얀네우스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 도록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므로 톨레마이스 백성들은 톨레미 라디루스에게 특사들을 보내어, 와서 자신들을 도와 줄 것과 자신들을 곤궁에 빠뜨리고 있는 알렉산더의 손아귀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줄 것을 그에 게 요청하였다. 그 특사들은 그에 게 만일 그 가 수리아로 건너온다면 그는 조일루스뿐만 아니라 톨레마이스백성들의 편인 가사 백성들까지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더 나아가 그 특사들은 그에게 시돈 사람들(the Sidonians)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가세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므로 톨레미 라디루스는 희망에 부풀어서 서둘러 출범하였다.
3. 톨레미 라디루스가 수리아를 향해 항해하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데마이네투스(Demaenetus)가 톨레마이 스 백성들에 게 그들의 계획을 바꿀 것을 설득해 왔었다. 그는 그당시 백성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으며,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스스로를 한 절대군주에게 넘겨줌으로써 공연히 노예상태임을 인정하는 것 보다는, 비록 그 결과는 불확실하긴 해도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과 싸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서 현재의 전쟁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애굽에서부티 올라오는 사람들이 더욱더 심각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왜냐하면 클레오파트라는 톨레미가 이웃 도시들로부터 군대를 모으는 것을 허락하지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녀는 자기 아들을 구브로 밖으로 쫓아내기 위하여 큰 군대를 이끌고 자신들에게로 올라오게 될 것이 뻔하다고 설명하였다. 더우기, 만일 톨레미가 자신의 기대가 좌절된다면 다시금 구브로를 피신처로 삼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가신들 스스로는 가장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되리라고 설득하였다. 그때 톨레미는 톨레마이스 백성들의 마음이 변하였음을 도중에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해를 계속하여 시카미나(Sycamina)라고[㈜ 갈멜(Carmel) 갑(岬)의 정남향의 한 항구, 탈무트에는 \’iqm\’na(쉬크모나)로 지금의 텔 에스 세막(Tell os-Semak). ] 불리는 곳에 배를 대고는 거기에다자신의 군대를 상륙시켰다. 그와 함께 한 군대는 보병과 기마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수는 모두 3,000명 정도였다. 그는 톨레마이스와 이웃하고 있는 곳까지 가서 그곳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보낸 특사들을 받아주지도 않았고 또한 그의 제안들을 들어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대단히 분노하였다.
4. 알렉산더 얀네우스가 톨레미 라디루스를 속이려하다
그러나 조일루스와 가사 백성들은 톨레미 라디루스에게 가서 그에게 원조를 요청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토가 알렉산더휘하의 유대인들에 게 약탈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알 렉산더는 톨레미가 공격을 감행하는 린을 두려워하여 군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 그는 교묘하게 일을 꾸몄다. 그는 톨레미를 공격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클레오파트라에게사람을 보내는 한편, 공개적으로는 톨레미 에 게 우호동맹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알렉산더는 또한 톨레미에게 은400달란트를 주겠노라고 약속하면서, 반대로 그에게는 그 지역 통치차인 조일루스를 내쫓아줄 것과 조일루스의 영토를\’유대인들에게 할양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톨레미는 기꺼이 알렉산더와 우호동맹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조일루스를 불잡았다.[㈜ 톨레미(Ptolemy)가 조일루스(Boilus)를 살해했는지 혹은 단지 그를 감금시켰는지 대해서 델라 사본으로부터 확실하게 알 수 없다. ] 그러나 나중에 톨레미는 알렉산더가 자기 어머니 인 클레오파트라에 게 은밀하게 특사를 보냈었다는[㈜ 이본(異本)에는 \”은밀하게 보내고 있었다\”라고 되어 있음. ]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알렉산더와 맺었던 맹약을 깨뜨리고 톨레마이스를 공격하였다. 톨레마이스에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곳을 공격한 것이었다. 톨레미는자신의 군대의 일부를 군대장관들에게 맡겨 공격을 계속하라고 남겨두고 자신은 나머지 군대를 이 끌고 유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출병하였다. 알렉산더는 톨레미의 의도를 알고 그도 역시 군대를 소집하였다. 그 군대는 약 50,000명, 또는 몇몇 저자들이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80,000명 의 본토인들로 구성되었다. 알렉산더는 이렇게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톨레미와 맞서 싸우기 위하여 나섰다. 그러나 톨레미는 안식일에 갈릴리의 한 도시인 아소키스(Asochis)를[㈜ 탈무드에 \’i\’in(쉬힌)으로 지금의 세포리스(Sepphoris)북서쪽 약 5마일 떨어져 있는 키르벳 엘 론(Khirbet el-L\’n)ob. 참). Avi Yonah. p. 32. 그 도시와 아소키스(Asochis) 평원은 \’자서전\’에(예, 207, 233, 304)에서 몇 번 언급되어 있음. 톨레미(Ptolemy)의 아소키스에 대한 공격은 세부묘사없이 전쟁. 1권. 4 : 2(86)에 언급되어 있음.] 급습하였다. 그곳을 급습하여 점령한 후약 10,000만명을 포로로 붙잡았고 그외에 수많은 전리품을 획득했다.
5. 톨레미 라디루스가 요단 근처에서 알렉산더 얀네우스를 패퇴시키다
톨레미는 또, 점령했었던 그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세포리스(Sepphoris)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는 많은 군사들만 잃고는 알렉산더와 싸우기 위하여 올라갔다. 알렉산더는요단강 가까이에서 즉, 요단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소폰(Asophon)이라[㈜ 이본(異本)에는 \”아사본(Asaphon)\”으로 되어 있음. 이는 성경의 사본(Saphon)으로 요단강의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지금의 델 사이디이예(TellSa\’idiye)인데 와디 (Wadi) 카프린지(kafrinji)가 이 곳에서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감. 참). Asbright, Abel ii : 448. ] 불리는 곳에서 톨레미와 마주쳤다. 그리고그는 적 가까운 곳에 진을 치고 더 나아가 8,000명의 최전방 전투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100명의 전투병\’이라 불리웠는데, 청동으로 덮혀있는 긴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 톨레미도역시 청동으로 덮힌 둥근 방패를 가진 최선봉 전투병들을 가지고 있었다. 톨레미의 군사들은 다른 면에 있어서는 적들보다 더나았으나, 그들은 공격을 감행하는데 있어 더 과감하지 못하는것이 한가지 단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사(謀士, the tac-tician)인 필로스테파누스(Philostephants)에 의해 적지 않게용기를 얻었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진지와 적들의 진지 사이에 있는[㈜ 헬라어 구문은 어색하다. 그러나 그 의미는 명백하다. ou metaxuv는 명백하게 o[nto\”와 함께 절대 속격의 역할을 한다. ] 요단강을 건너자고 말했다. 한편 알렉산더는 만일 적들이 강을 건너와 강이 그들 뒤에 놓이게 되면 그들은 도망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에 더 쉽게 적을 붙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들이 건너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처음에는 양 편 모두 용감하고 대담하게 맞서 싸웠다. 그래서 양 편 군사들은 모두 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군사들이 보다 우세해지자,필로스테파누스는 군대를 분산시켜 교묘하게 물러서고 있는 군사들을 도우러 갔다. 반면 유대 군사들은 어느 누구도 뒤로 물러서고 있는 자기 편 군사들을 도우러 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도망쳐야만 했다. 심지어 그들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함께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러나 톨레미의 군사들은 이 와는 정반대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 인들을끝까지 뒤쫓으며 그들을 살육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완전히 참패하여 도망칠 때, 그들은 그들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칼이 무뎌지고 팔이 몹시 피곤해 질 때까지 유대인들을 살육하였다.사실 그들 중 3,000명 가량이 살육을 당했다고 전해졌다-티마게네스(Timagenes)는[㈜ 참). 고대. 13권. 11 : 3(319). ] 5,000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그 나머지 중에서 및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갔고 다른 사람들은그들의 본국으로 도망쳤다고 전해졌다
6. 톨레미 라디루스가 유대를 침범하다
톨레미는 이같은 승리를 거둔 후에 다른 영토로 쳐들어 갔다. [㈜ 이본(異本)에 는 \”강탈했다\”(seiaed)라고 나옴. ] 그러다 저녁이 되어 유대의 어떤 마을에서 군대를 머무르게 하였다. 그때 그는 그곳에 여인들과 아이들만 가득 차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군사들에게 그들의 목을 자르고,마구 베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 잘린 시체 조각들을 끓는 가마솥에 던져넣고 그것을 맛보게 하였다. [㈜ 네이버 (Naber)처럼 ajpavrceqai를 \’사라지다, 가다\’를 의미하는 ajpevrcesqai로 수정할 필요는 없다. 리차드(Richards)와 슈트(Shutt)의 지적대로 전자는 희생적 의미에서는 옳다. 여기에 관련된 사건은 독재자 파네스(Pha-nes)의 아들들을 살해했던 애굽에 있는 헬라 용병들에 대해 해롯(Herod. )iii 11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와 부분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사람(아톨)이 죽었을 때 물과 포도주는 대접에 부어졌고 모든 군사들은 그 피의 맛을 보았고 그렇게 하여 전쟁을 시작했다. \’] 이같은 그의 명령으로 인하여, 그 전투에서 도망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던 그사람들은 적들이 사람고기를 먹는 식인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더욱더 두려워하였다.스트라보와 니콜라스도 내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유대인들을 다루었다고 말하고 있다. 톨레미의 군사들은 또, 우리가다른 곳에서 살펴본 것처럼 톨레마이스도 강습하여 빼앗았다. [㈜ 요세푸스가 고대. 13권. 12 : 4(336)에 언급한 공격 이외에 이와 유사한 문단은 요세푸스애서 발견되지 않는다. 이 구문은 아마 그의 자료로부터 가져왔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