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장
바리새파의 호감을 얻어 알렉산드라가 나라를 9년간 다스리며 빛나는 공적을 많이 남기고 죽은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더 얀네우스의 영광스런 장례
그러므로 알렉산드라(alexandra)는 그 요새를[㈜ 라가바(Ragaba)의 요새, 참). 고대. 13권. 15 : 5(398). ] 점령한 후 남편이 일러주었던 대로 바리새인들과 의논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시신과 왕권에 관한 모든 것을 그들의 손에 맡김으로써,알렉산더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푸는 한편 그들을 자신의 후원자이자 친구로 삼았다. 그러자 그들은 백성들에게 가서는 그들앞에서 알렉산더의 업적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연설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한 의로운 왕을 잃게 된 것이라고 말하였다.그들은 이같은 그들의 칭송들로 백성들피 마음을 움직여 그의 죽움을 대단히 슬퍼하며 애통해 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알렉산더의 장례를 그 이전의 어떤 왕들보다도 더욱 영광스럽게 치루었다.
[알렉산드라 여왕과 그녀의 아들들인 힐카누스 Ⅱ세(Hyr-canus ll )와 아리스토블루스 H세(Aristobulus ll)]
[㈜ 고대 13권. 16 : 1, 2(407-411)은 전쟁 1권. 5. 1-3(109-114)와 부분적으로 병행구를 이룬다. ]
그때 알렉산더에게논 두 아들, 힐카누스와 아리스토불루스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그 왕권을 알렉산드라에 게 물려주었다. 그 두 아들 중에서 힐카누스는 통치하기에 부적당하고 무능력한 인물이었다. 거기다가 조용한 생활을 너무 좋아하였다. 반면에 그의 동생인 아리스토불루스는 활동적인[㈜ to; drathrion과 to; a[traghon과의 대조는 투키디데스 문체 (Thuc. ii. 63. 2)이다. 이는 고대 14권. 1 : 3(13)에서 다시 나온다 ; 전쟁. 1권. 14 : 4(283)과 그밖의 다른 곳에는 to; drasrvhrion 만으로 나온다. ] 사람이었으며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왕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일반 대중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녀가 자기 남편이 저지른 범죄들을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 알렉산드라 치하의 바리새인들의 권력
알렉산드라는 그 당시에 힐카누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에게는 활동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바리새인들에게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그들이 좋을 대로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또한 백성들에게는 그들에게 복종하도록 명령하였다. 바리새인들이 그들 선조들의 전통에 따라 만든 모든 규정들은 그녀의 시아버지(father-in-law)였던 힐카누스에 의해 폐기되었던 적이 있었다. [㈜ 데렌보그(Derenbourg) pp. 102-113을 보라. 전쟁. 1권. 5 : 2(111)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이 \”그녀의 단순함을 이용하였다. 참), 고대. 13권. 14 ; 2(380). ] 그런데 이 규정들을 그녀가 다시 원상복귀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통치자(sovereign)라는 칭호를 얻은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권력을 얻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추방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였으며 갇힌자들을 풀어주었다. 그것도 절대 군주들과도 똑같은 방법으로 즉 말 한마디로 가능케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왕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서 여러모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용병들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또한 자기 나라의 군대를 2배로 늘렸다. 그 결과 그녀는 자기 주위의 지역 통치자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들어 그들로부터 볼모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오직 바리새인들만을 제외하고는 나라 전체가 조용하였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여왕을 충동하여 전에 알렉산더에게 800명을 죽일 것을 촉구하였었던 그 사람들을 죽이도록 그녀를 설득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 문자적으로는\’\”살육하였다. \’]
[지도급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의 잔인함에 항의하다]
나중에 바리새인들이 직접 배후\’인물들 가운데서 디오게네스(Diogenes)라는 사람을 죽였다. 557) 그리고 그가 죽은 다음 배후인물들을 한사람씩 차례로 처형하자 지도급 인사들이 왕궁으로몰려갔다. 그런데 그 지도급 시민들 가운데 아리스토불루스도 끼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단히 분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만일 자신이 기회를 잡게만 된다면 어머니에게는 어떠한 권력도 남겨놓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하였다-지도급인사들은 여왕에게 그녀가 위험에 직면하였을때에 자기들이 도와주었던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과거에 자신들의 주인에게[㈜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 . ] 흔들리지 아니하는[㈜ 문자적으로 \’~의 견고함\’은 역시 투키디데스의 어구(Thuc. ii. 89. 4), 요세푸스의 책 고대 15. (193)과 전쟁. 7권. (139)에서 기록됨. ] 충성을 보였던 것과, 그리하여 그(알렉산더)가 자신들을 가장큰 영예를 얻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는 것도 깨닫게 하였다.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희망이 완전히 깨어지지[㈜ 직역하면 \’그들의 회망을 완전히 포기했다. \’\”] 않도록 그녀에게 요청하였다.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고 난 후에 자신들은 적들에 의해 마치 짐승처럼 집에서 살육을 당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만일 자신들의 적들이 이전에 죽였던 사람들로 만족하기만한다면 자신들도 자신들의 주인들에 대한 충성스런 헌신 예문에 이미 일어났던 일들을 참착하게 참고 견딜 것이라고 말하였다. [㈜ 고대. 13권. 16 : 2, 3(412-418)까지는 \’전쟁사\’에 병행구절이 없음.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만일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들 을 죽이기를 고집한다면 그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들 마음대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여왕이지켜주지 않는다면 스스로는 어떤 안전 조치도 강구할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은 양심적으로 불충이 되지 않는다고만 하면 그녀의 왕궁에서 죽음을 감수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 본문이 다소 불명확함. ] 그것은 그들을 위해서나 또 여왕으로서 통치하는 그녀를 위해서나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면서 만일 그녀가 그 사람들을 버린다면 그들은 그녀 남편의 적들에게서 피난처를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말을 덧붙였다. 왜냐하면, 아랍인 아레타스(Aretas)와 그외 다른 군주들은 그같은 사람들을 용병으로 뽑는 것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군주들은(큰소리로) 자기들의이름만 들어도 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녀가 바리새인들에게 다른 누구에게보다도 호의를 베풀기로 결심 했다면, 그녀로 하여금 차선책으로 그 사람들을 각각 여러 요새에 배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왜냐하면, 만일 어떤 악신이 알렉산더의 집을 괴롭힌다면 그들은 비록 변변치 못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적어도 스스로를(충성을)[㈜ 본문은 분명히 결점이 있으나 당시 상황으로 보아서는 \’충성스러운\’ (loyal)이나 그와 비슷한 단어의 보충이 타당함. ]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3. 아리스토불루스 Ⅱ세가 자기 어머니와 지도급 인사들을 비난하다
지도급 인사들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길게 하면서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과 위험한 지경에 처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죽은 알렉산더의 영혼을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 나서 그들모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아리스토불루스는 자기어머니를 심하게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분명히나타냈다. 그러나 지도급 인사들도 이 불행한 사태에 대해 비난을 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모친에게서 부당하게 권력을 얻기를 원하였으며, 또 그녀의 아들들이 한창 나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여자에게 통치하도록 허락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그 여왕은 자신의 위엄에 맞게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힐카니아(Hyrcania)와[㈜ 오늘날의 키르델 미르드(Khirbet Mird), Abel \’GP\’ii. 350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약8마일 떨어진 곳. ] 알렉산드레온(Alexandreion),[㈜ 탈무드의 사타바(Sar\’aba). 오늘날의 칸 사타베(Qarn Sar\’abeh), 얍복과 요단강 합류지점에서 남서쪽으로 약 3마일 떨어진 곳. 참) Abel, \’GP\’ii. 241 이하와 \’BASOR\’62(1936 봄). 14이하. ] 그리고마카이루스(Machaerus)를[㈜ 오늘날의 키르벧 무카버(Kirbet Muk\’wer), 벧술(Bethsur) 지방의 사해 동쪽 약 5마일 지점. 참). Abel \’GP\’ii. 371 이하와 Glueck의 \’BASOR\’65(1937 2월 ), 25. ] 제외한 나머지 요새들을 지키는임무를 맡겼던 것이었다. 그 세 요새를 제시킨 이유는 그 안에그녀의 가장 값비싼 보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대. 13권. 16 : 3, 4(418-421)은 전쟁. 1권. 5 : 3(115, 116)과 부분적으로 병행구가 있다. ], 얼마 후에 그녀는 아들인 아리스토불루스에 게 군대를 주어 멘나이우스(Mennaeus)의 아들인[㈜ 참). 고대. 13권. 15 : 2(392). ] 톨레미에 대항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보냈다. 톨레미는 그들의 도시에 골치거리였다. 그러나그는[㈜ 어면 사본에는 \’그들은\’. ] 괄목할 만한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4. 알렉산드라가 유대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티그라네스에게 뇌물을 쓰다
거의 이때 쯤에 300,000명의[㈜ 다른 본문에는 \’50만명 \’] 군사로 수리아를 침범하였었던아르메니아(Armenia)의 왕인[㈜ 다른 본문에는 \’아르메니아 왕\’이 생략됨. ] 티그라네스가 유대로 오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 티그라네스(Tigranes)가 주전 83년에 최초로 수리아에 침입하여 주전 69년 로마인들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나라의 광할한 지역을 지배함. ] 이 소식은 자연적으로 여왕과 백성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가 아직 톨레마이스를 포위 공격하고 있을 때, 값비싼 많은 선물과 특사들을 그에게 보냈다. 그가 수리아를 침범한 이유는 클레오파트라라고도[㈜ 톨레미 피스콘(Ptolemy Physcon)과 클레오파트라 Ⅲ세 사이에서 난 딸. 그녀는 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 안티오쿠스 그리푸스(AntiochusGrypus), 안티오쿠스 키지케누스( Antiochus Cyzlcenus ), 안티오쿠스 유세베스(Antlochus Eusebes)와 연속적으로 결혼함. 참). 스트라보(Strabo)xvi : 749, 아피안(Appian), \’Syr. \’ 69와 베반(Bevan), \’H Sel. \’ii. 304. ] 불리는 셀레네 여왕(Queen Selene)이 그 당시 수리아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 주민들에게 티그라네스에 대하여 성문을 굳게 닫아놓으라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티그라네스를 찾아간 특사들은 그와 만나 그가 여왕과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을요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자기에게 신하의 예를 다하기 위하여그렇게 먼 거리를 찾아온 것에 대해 그들을 칭찬하였다. 그리고그들에게 호의적인 답변을 하였다. 그러나 톨레마이스를 점령하자마자 티그라네스는 미드리다테스가[㈜ 미드리다테스 Vl세 유파토르(Mithridates Ⅵ Eupator), 주전 115년부터 63년까지 로마의 강력한 대적중의 하나인 본도(Pontus)의 왕. ] 이베리아인들(the Ib-erians)에게로 피하는 바람에 그를 뒤쫓고 있던 루쿨루스(Luc-ullus)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Luclus Liclnlus Lucullus), 주전 74년에 로마의 집정관이었으며 이듬해부터 5년간 동부지역 사령관. ] 그를 붙잡는데 실패하였으며,[㈜ 카우카수스(Caucasus)내에 있었음, 아피안(Appian), \’Mithr. \’ 83과 다른 자료들에 따르인 미드리다테스(Mithridates)가 티그라네스(Tigranes)를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축출한 후 주전 72년에 루쿨루스(Lucullus)가 카베이라(Cabeira)에서 패배했다. ] 그리하여 루쿨루스아르메니아를 파괴하며(그 성채를) 포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 헬라어에는 \’포위당했다\’동사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없으나 앞에 나온 \’아르메니아\’가 지배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포위에 관해서는 오메로드 ( H. A. Ormerod ), \’CAH\’ Ix. ,365-367을 보라. ] 이런 소식을 들은 티그라네스는 자기 나라로 철수하였다.
5. 알렉산드라와 바리새인들이 권력을 차지하려는 아리스토볼루스 Ⅱ세의 준비에 경각심을 갖다
[㈜ 13권. 의 끝에 이르는 다음의 단락은 전쟁. 1권. 5 : 4(117-119)와 부분적 으로 병행구를 이룬다. ]
이 일이 있고난 후 얼마 있다가 알렉산드라 여왕이 중병에 걸렸다. 그러자 아리스토불루스는 이 기회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시도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신하들 중에서 한명만 데리고 야밤에 살짝 빠져나가 자기 아버지의 친구들이 주둔하고 있던 요새들로 찾아갔다. 그는 자기 어머니가 하고 있는일들에 대해 못마땅해 온 반면에, 그 당시에는 특히 자기 어머니가 죽게 된다면 자신들의 전가족이 바리새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왕권을 이어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그의 형인 힐카누스의 무능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아리스토불루스의 기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아내뿐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을 그 도시에 남겨두고 떠났던 것이었다. [㈜ 두 아들과 두 딸. 참). 고대. 14권. 4 : 5(79). ] 그는 먼저 아가바(Agaba)로[㈜ 라틴어로 \’가바다(Gabatha)\’, 라이나흐(Reinach)는 갈멜(Carmel)근처 에 있는 \’가바(Gaba)\’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나 알렉산더와 알렉산드라에 의하여 요단강 건너편에 세워진 요새 \’라가바(Ragaba)\’인듯 함. 참). 고대. 13권. (398, 405). 이 지역은 아리스토블루스가 여리고에서 최후전투의 첫 근거지로 마련한 것이다. 고대. 14권. 4(=전쟁. 1권. 120). ] 갔다.기기서 그는 팔라에스데스(Palaestes)를[㈜초판과 라틴어 사본에서는 \’갈레스테스(Galestes)\’. 참). 오토(W. Otto), \’ ABAW\’, N. F. 17(1938), 36-39. ]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 가운데서 지도급 인사들 중 하나였는데,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다. 그 다음날 여왕은 아리스토불루스가 도주한 사실을 알았으나 한동안은 그가 반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떠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전령들이잇따라 들어왔는데, 그가 첫번째 요새를 점령하였으며 그후에두번째 요새를, 그리고 그 후에는 모든 요새를 점령하였다는 보고를 하자-왜냐하면 첫번째 요새가 점령당하자 나머지 요새들은 서둘러 그에게 굴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드디어 여왕과 백성들은 심히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리스토불루스가 혼자의 힘으로는 왕권을 차지할 수 있으리 라고는 생각하지도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자기들이 그의 집에 행했던 월권에 대해 보복하지나 않을까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성전이 내려다 보이는 요새안에다 데려다놓기로 하였다. [㈜ 바리스(the Baris), 요세푸스가 전쟁. 1권. 5 : 4(118)에서 설명한 것처럼 후에 안토니아(Antonia)로 불림. 참). 고대. 13권. 11 : 2(307) 각주. ] 그때 아리스토불루스는 많은후원자들로부터,[㈜ 본문이 다소 불명확함. ] 대단히 많은 지원금을 제공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그를 진정한 왕으로 생각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다.불과 15일만에 그는 22개의 요새를 점령하였으며, 더우기 이 점령한 요새들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은 그는 레바논(Leban-on), 드라고닛(Trachonitis), 그리고 그 지역 군주들로부터 군사들을 모아들였다. 이 사람들은 그에게 쉽게 굴복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강한 쪽으로 가담하려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그들은 만일 자기들이 아리스토불루스를\’도와준다면 자신들도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그의 왕국을 이용할수 있으리라[㈜ 흑은 \’그들이 그 땅을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다. \’ 참). 고대. 13권. 11 : 3(319). 본문이 다소 수정됨 ; 대부분의 사본은 \’기대 밖으로\’라는 별 의미 없다는 것이다. ] 믿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정복을 도왔던 것이었다. 반면에 유대인들의 장로들과 힐카누스는 여왕에게 가서 그녀에게 현재의 상황에 대해약간의 조언을 구하였다. 그들이 말하기를 아리스토불루스는 이미 수많은 요새들을 점령하여 이제 거의 전국의 지배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들이 찾아갈 곳이 못되었다. 그녀의 병세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녀 가 아직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그러나 그 위험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이 마지막 절은 투키디데스의 표현이다 참). 투키디데스(Thuc. ) iv. 34 : 3과 vi. 91 : 3. 이 것은 고대. 17권. 1 : 1(5)와 병행구를 이룬다. ] 그리하여 그녀는 그들에게, 그들 가운데에는 많은 재원들 즉, 안전한상태에 있는 백성들, 군대, 그리고 여러 보물창고에 들어있는 돈이 남아있다고 말하면서 그것들을 가지고 그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더이상 국가의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육체의 힘이 거의 탈진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6. 알렉산드라 여왕의 죽음과 성격
그녀는 이같은 말들을 하고난 뒤 얼마 있다가 죽었다. 그녀는 9년을[㈜ 주전 76년부터 67년까지. ] 통치하였으며, 73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녀는 자신이여자라고 하여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여인이었다. [㈜ 고대. 13권. 16 : 2(408)이하와 비교하라. ] 왜냐하면통치권을 간절히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그녀는자신의 계획들을 성취하는 능력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통치권을 유지하는데 계속해서 실패하는남자들의[㈜ 이것은 명백히 \’그들을 장악하기에 충분할 힘은 가지지 못한 자\’라는 뜻. ] 우둔함을 폭로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래보다도 현재에 더 큰 가치를 두었으므로 그녀에게 다른 모든 것들은 절대적 통치를[㈜ eigkratw\’\” a[rcein도 역시 투키디데스식 표현이다. 참). 투키디데스(Thuc. ) i : 76 : 1. ] 위한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고상함이나 정의로움 따위는 전혀 마음에 두질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가 죽은 지 얼마 안되어 그녀의 집을 위해서는 매우 불행한 문제들이 밖으로 드러났다. 즉 그녀가 살아있을 당시 에도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순간을 맞이했던 통치권이 그녀에게서 이어져 내려간 이후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여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에 대한 열정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 가족에 적의를 두고 있는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견해를 나타내었기 때문이었다. [㈜ 포스트(Post) 교수는 \’그녀의 권위의 비증을 그들에게 양도하였다\’ 등으로 추측한다. ] 그리고 또한 그녀가 자신들의 이익을 마음에 두고 있는[㈜ 본문이 다소 수정됨 ; 몇몇 사본에는 \’그것 즉, (왕국)을 이을 어떤 사람도 없이.\’] 어떤 사람을 후계자로 정해놓지도 못한 채 왕국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죽은 이후에, 심지어는 왕궁 안에까지그녀의 생전에 취해진 공적인 조처들로부터 발생한 혼란과 불행으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통치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나라를 평화롭게 유지시켰다. 그리고 알렉산드라는 종말을 이와같이 맞이했다. [㈜ 어느 사본에는 \’다음 핀에서 나는 그녀가 죽은 후 그녀의 아들들인 아리스토불루스와 힐카누스에게 닥친 일과 연관지어 살펴볼 것이다\’라는 말이 추가되 어 있다. ]

제 16 장
바리새파의 호감을 얻어 알렉산드라가 나라를 9년간 다스리며 빛나는 공적을 많이 남기고 죽은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더 얀네우스의 영광스런 장례
그러므로 알렉산드라(alexandra)는 그 요새를[㈜ 라가바(Ragaba)의 요새, 참). 고대. 13권. 15 : 5(398). ] 점령한 후 남편이 일러주었던 대로 바리새인들과 의논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시신과 왕권에 관한 모든 것을 그들의 손에 맡김으로써,알렉산더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푸는 한편 그들을 자신의 후원자이자 친구로 삼았다. 그러자 그들은 백성들에게 가서는 그들앞에서 알렉산더의 업적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연설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한 의로운 왕을 잃게 된 것이라고 말하였다.그들은 이같은 그들의 칭송들로 백성들피 마음을 움직여 그의 죽움을 대단히 슬퍼하며 애통해 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알렉산더의 장례를 그 이전의 어떤 왕들보다도 더욱 영광스럽게 치루었다.
[알렉산드라 여왕과 그녀의 아들들인 힐카누스 Ⅱ세(Hyr-canus ll )와 아리스토블루스 H세(Aristobulus ll)]
[㈜ 고대 13권. 16 : 1, 2(407-411)은 전쟁 1권. 5. 1-3(109-114)와 부분적으로 병행구를 이룬다. ]
그때 알렉산더에게논 두 아들, 힐카누스와 아리스토불루스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그 왕권을 알렉산드라에 게 물려주었다. 그 두 아들 중에서 힐카누스는 통치하기에 부적당하고 무능력한 인물이었다. 거기다가 조용한 생활을 너무 좋아하였다. 반면에 그의 동생인 아리스토불루스는 활동적인[㈜ to; drathrion과 to; a[traghon과의 대조는 투키디데스 문체 (Thuc. ii. 63. 2)이다. 이는 고대 14권. 1 : 3(13)에서 다시 나온다 ; 전쟁. 1권. 14 : 4(283)과 그밖의 다른 곳에는 to; drasrvhrion 만으로 나온다. ] 사람이었으며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왕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일반 대중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녀가 자기 남편이 저지른 범죄들을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 알렉산드라 치하의 바리새인들의 권력
알렉산드라는 그 당시에 힐카누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에게는 활동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바리새인들에게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그들이 좋을 대로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또한 백성들에게는 그들에게 복종하도록 명령하였다. 바리새인들이 그들 선조들의 전통에 따라 만든 모든 규정들은 그녀의 시아버지(father-in-law)였던 힐카누스에 의해 폐기되었던 적이 있었다. [㈜ 데렌보그(Derenbourg) pp. 102-113을 보라. 전쟁. 1권. 5 : 2(111)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이 “그녀의 단순함을 이용하였다. 참), 고대. 13권. 14 ; 2(380). ] 그런데 이 규정들을 그녀가 다시 원상복귀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통치자(sovereign)라는 칭호를 얻은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권력을 얻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추방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였으며 갇힌자들을 풀어주었다. 그것도 절대 군주들과도 똑같은 방법으로 즉 말 한마디로 가능케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왕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서 여러모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용병들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또한 자기 나라의 군대를 2배로 늘렸다. 그 결과 그녀는 자기 주위의 지역 통치자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들어 그들로부터 볼모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오직 바리새인들만을 제외하고는 나라 전체가 조용하였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여왕을 충동하여 전에 알렉산더에게 800명을 죽일 것을 촉구하였었던 그 사람들을 죽이도록 그녀를 설득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 문자적으로는'”살육하였다. ‘]
[지도급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의 잔인함에 항의하다]
나중에 바리새인들이 직접 배후’인물들 가운데서 디오게네스(Diogenes)라는 사람을 죽였다. 557) 그리고 그가 죽은 다음 배후인물들을 한사람씩 차례로 처형하자 지도급 인사들이 왕궁으로몰려갔다. 그런데 그 지도급 시민들 가운데 아리스토불루스도 끼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단히 분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만일 자신이 기회를 잡게만 된다면 어머니에게는 어떠한 권력도 남겨놓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하였다-지도급인사들은 여왕에게 그녀가 위험에 직면하였을때에 자기들이 도와주었던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과거에 자신들의 주인에게[㈜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 . ] 흔들리지 아니하는[㈜ 문자적으로 ‘~의 견고함’은 역시 투키디데스의 어구(Thuc. ii. 89. 4), 요세푸스의 책 고대 15. (193)과 전쟁. 7권. (139)에서 기록됨. ] 충성을 보였던 것과, 그리하여 그(알렉산더)가 자신들을 가장큰 영예를 얻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는 것도 깨닫게 하였다.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희망이 완전히 깨어지지[㈜ 직역하면 ‘그들의 회망을 완전히 포기했다. ‘”] 않도록 그녀에게 요청하였다.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고 난 후에 자신들은 적들에 의해 마치 짐승처럼 집에서 살육을 당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만일 자신들의 적들이 이전에 죽였던 사람들로 만족하기만한다면 자신들도 자신들의 주인들에 대한 충성스런 헌신 예문에 이미 일어났던 일들을 참착하게 참고 견딜 것이라고 말하였다. [㈜ 고대. 13권. 16 : 2, 3(412-418)까지는 ‘전쟁사’에 병행구절이 없음.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만일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들 을 죽이기를 고집한다면 그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들 마음대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여왕이지켜주지 않는다면 스스로는 어떤 안전 조치도 강구할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은 양심적으로 불충이 되지 않는다고만 하면 그녀의 왕궁에서 죽음을 감수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 본문이 다소 불명확함. ] 그것은 그들을 위해서나 또 여왕으로서 통치하는 그녀를 위해서나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면서 만일 그녀가 그 사람들을 버린다면 그들은 그녀 남편의 적들에게서 피난처를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말을 덧붙였다. 왜냐하면, 아랍인 아레타스(Aretas)와 그외 다른 군주들은 그같은 사람들을 용병으로 뽑는 것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군주들은(큰소리로) 자기들의이름만 들어도 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녀가 바리새인들에게 다른 누구에게보다도 호의를 베풀기로 결심 했다면, 그녀로 하여금 차선책으로 그 사람들을 각각 여러 요새에 배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왜냐하면, 만일 어떤 악신이 알렉산더의 집을 괴롭힌다면 그들은 비록 변변치 못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적어도 스스로를(충성을)[㈜ 본문은 분명히 결점이 있으나 당시 상황으로 보아서는 ‘충성스러운’ (loyal)이나 그와 비슷한 단어의 보충이 타당함. ]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3. 아리스토불루스 Ⅱ세가 자기 어머니와 지도급 인사들을 비난하다
지도급 인사들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길게 하면서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과 위험한 지경에 처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죽은 알렉산더의 영혼을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 나서 그들모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아리스토불루스는 자기어머니를 심하게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분명히나타냈다. 그러나 지도급 인사들도 이 불행한 사태에 대해 비난을 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모친에게서 부당하게 권력을 얻기를 원하였으며, 또 그녀의 아들들이 한창 나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여자에게 통치하도록 허락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그 여왕은 자신의 위엄에 맞게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힐카니아(Hyrcania)와[㈜ 오늘날의 키르델 미르드(Khirbet Mird), Abel ‘GP’ii. 350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약8마일 떨어진 곳. ] 알렉산드레온(Alexandreion),[㈜ 탈무드의 사타바(Sar’aba). 오늘날의 칸 사타베(Qarn Sar’abeh), 얍복과 요단강 합류지점에서 남서쪽으로 약 3마일 떨어진 곳. 참) Abel, ‘GP’ii. 241 이하와 ‘BASOR’62(1936 봄). 14이하. ] 그리고마카이루스(Machaerus)를[㈜ 오늘날의 키르벧 무카버(Kirbet Muk’wer), 벧술(Bethsur) 지방의 사해 동쪽 약 5마일 지점. 참). Abel ‘GP’ii. 371 이하와 Glueck의 ‘BASOR’65(1937 2월 ), 25. ] 제외한 나머지 요새들을 지키는임무를 맡겼던 것이었다. 그 세 요새를 제시킨 이유는 그 안에그녀의 가장 값비싼 보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대. 13권. 16 : 3, 4(418-421)은 전쟁. 1권. 5 : 3(115, 116)과 부분적으로 병행구가 있다. ], 얼마 후에 그녀는 아들인 아리스토불루스에 게 군대를 주어 멘나이우스(Mennaeus)의 아들인[㈜ 참). 고대. 13권. 15 : 2(392). ] 톨레미에 대항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보냈다. 톨레미는 그들의 도시에 골치거리였다. 그러나그는[㈜ 어면 사본에는 ‘그들은’. ] 괄목할 만한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4. 알렉산드라가 유대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티그라네스에게 뇌물을 쓰다
거의 이때 쯤에 300,000명의[㈜ 다른 본문에는 ’50만명 ‘] 군사로 수리아를 침범하였었던아르메니아(Armenia)의 왕인[㈜ 다른 본문에는 ‘아르메니아 왕’이 생략됨. ] 티그라네스가 유대로 오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 티그라네스(Tigranes)가 주전 83년에 최초로 수리아에 침입하여 주전 69년 로마인들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나라의 광할한 지역을 지배함. ] 이 소식은 자연적으로 여왕과 백성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가 아직 톨레마이스를 포위 공격하고 있을 때, 값비싼 많은 선물과 특사들을 그에게 보냈다. 그가 수리아를 침범한 이유는 클레오파트라라고도[㈜ 톨레미 피스콘(Ptolemy Physcon)과 클레오파트라 Ⅲ세 사이에서 난 딸. 그녀는 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 안티오쿠스 그리푸스(AntiochusGrypus), 안티오쿠스 키지케누스( Antiochus Cyzlcenus ), 안티오쿠스 유세베스(Antlochus Eusebes)와 연속적으로 결혼함. 참). 스트라보(Strabo)xvi : 749, 아피안(Appian), ‘Syr. ‘ 69와 베반(Bevan), ‘H Sel. ‘ii. 304. ] 불리는 셀레네 여왕(Queen Selene)이 그 당시 수리아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 주민들에게 티그라네스에 대하여 성문을 굳게 닫아놓으라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티그라네스를 찾아간 특사들은 그와 만나 그가 여왕과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을요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자기에게 신하의 예를 다하기 위하여그렇게 먼 거리를 찾아온 것에 대해 그들을 칭찬하였다. 그리고그들에게 호의적인 답변을 하였다. 그러나 톨레마이스를 점령하자마자 티그라네스는 미드리다테스가[㈜ 미드리다테스 Vl세 유파토르(Mithridates Ⅵ Eupator), 주전 115년부터 63년까지 로마의 강력한 대적중의 하나인 본도(Pontus)의 왕. ] 이베리아인들(the Ib-erians)에게로 피하는 바람에 그를 뒤쫓고 있던 루쿨루스(Luc-ullus)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Luclus Liclnlus Lucullus), 주전 74년에 로마의 집정관이었으며 이듬해부터 5년간 동부지역 사령관. ] 그를 붙잡는데 실패하였으며,[㈜ 카우카수스(Caucasus)내에 있었음, 아피안(Appian), ‘Mithr. ‘ 83과 다른 자료들에 따르인 미드리다테스(Mithridates)가 티그라네스(Tigranes)를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축출한 후 주전 72년에 루쿨루스(Lucullus)가 카베이라(Cabeira)에서 패배했다. ] 그리하여 루쿨루스아르메니아를 파괴하며(그 성채를) 포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 헬라어에는 ‘포위당했다’동사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없으나 앞에 나온 ‘아르메니아’가 지배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포위에 관해서는 오메로드 ( H. A. Ormerod ), ‘CAH’ Ix. ,365-367을 보라. ] 이런 소식을 들은 티그라네스는 자기 나라로 철수하였다.
5. 알렉산드라와 바리새인들이 권력을 차지하려는 아리스토볼루스 Ⅱ세의 준비에 경각심을 갖다
[㈜ 13권. 의 끝에 이르는 다음의 단락은 전쟁. 1권. 5 : 4(117-119)와 부분적 으로 병행구를 이룬다. ]
이 일이 있고난 후 얼마 있다가 알렉산드라 여왕이 중병에 걸렸다. 그러자 아리스토불루스는 이 기회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시도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신하들 중에서 한명만 데리고 야밤에 살짝 빠져나가 자기 아버지의 친구들이 주둔하고 있던 요새들로 찾아갔다. 그는 자기 어머니가 하고 있는일들에 대해 못마땅해 온 반면에, 그 당시에는 특히 자기 어머니가 죽게 된다면 자신들의 전가족이 바리새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왕권을 이어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그의 형인 힐카누스의 무능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아리스토불루스의 기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아내뿐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을 그 도시에 남겨두고 떠났던 것이었다. [㈜ 두 아들과 두 딸. 참). 고대. 14권. 4 : 5(79). ] 그는 먼저 아가바(Agaba)로[㈜ 라틴어로 ‘가바다(Gabatha)’, 라이나흐(Reinach)는 갈멜(Carmel)근처 에 있는 ‘가바(Gaba)’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나 알렉산더와 알렉산드라에 의하여 요단강 건너편에 세워진 요새 ‘라가바(Ragaba)’인듯 함. 참). 고대. 13권. (398, 405). 이 지역은 아리스토블루스가 여리고에서 최후전투의 첫 근거지로 마련한 것이다. 고대. 14권. 4(=전쟁. 1권. 120). ] 갔다.기기서 그는 팔라에스데스(Palaestes)를[㈜초판과 라틴어 사본에서는 ‘갈레스테스(Galestes)’. 참). 오토(W. Otto), ‘ ABAW’, N. F. 17(1938), 36-39. ]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 가운데서 지도급 인사들 중 하나였는데,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다. 그 다음날 여왕은 아리스토불루스가 도주한 사실을 알았으나 한동안은 그가 반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떠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전령들이잇따라 들어왔는데, 그가 첫번째 요새를 점령하였으며 그후에두번째 요새를, 그리고 그 후에는 모든 요새를 점령하였다는 보고를 하자-왜냐하면 첫번째 요새가 점령당하자 나머지 요새들은 서둘러 그에게 굴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드디어 여왕과 백성들은 심히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리스토불루스가 혼자의 힘으로는 왕권을 차지할 수 있으리 라고는 생각하지도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자기들이 그의 집에 행했던 월권에 대해 보복하지나 않을까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성전이 내려다 보이는 요새안에다 데려다놓기로 하였다. [㈜ 바리스(the Baris), 요세푸스가 전쟁. 1권. 5 : 4(118)에서 설명한 것처럼 후에 안토니아(Antonia)로 불림. 참). 고대. 13권. 11 : 2(307) 각주. ] 그때 아리스토불루스는 많은후원자들로부터,[㈜ 본문이 다소 불명확함. ] 대단히 많은 지원금을 제공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그를 진정한 왕으로 생각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다.불과 15일만에 그는 22개의 요새를 점령하였으며, 더우기 이 점령한 요새들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은 그는 레바논(Leban-on), 드라고닛(Trachonitis), 그리고 그 지역 군주들로부터 군사들을 모아들였다. 이 사람들은 그에게 쉽게 굴복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강한 쪽으로 가담하려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그들은 만일 자기들이 아리스토불루스를’도와준다면 자신들도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그의 왕국을 이용할수 있으리라[㈜ 흑은 ‘그들이 그 땅을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다. ‘ 참). 고대. 13권. 11 : 3(319). 본문이 다소 수정됨 ; 대부분의 사본은 ‘기대 밖으로’라는 별 의미 없다는 것이다. ] 믿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정복을 도왔던 것이었다. 반면에 유대인들의 장로들과 힐카누스는 여왕에게 가서 그녀에게 현재의 상황에 대해약간의 조언을 구하였다. 그들이 말하기를 아리스토불루스는 이미 수많은 요새들을 점령하여 이제 거의 전국의 지배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들이 찾아갈 곳이 못되었다. 그녀의 병세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녀 가 아직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그러나 그 위험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이 마지막 절은 투키디데스의 표현이다 참). 투키디데스(Thuc. ) iv. 34 : 3과 vi. 91 : 3. 이 것은 고대. 17권. 1 : 1(5)와 병행구를 이룬다. ] 그리하여 그녀는 그들에게, 그들 가운데에는 많은 재원들 즉, 안전한상태에 있는 백성들, 군대, 그리고 여러 보물창고에 들어있는 돈이 남아있다고 말하면서 그것들을 가지고 그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더이상 국가의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육체의 힘이 거의 탈진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6. 알렉산드라 여왕의 죽음과 성격
그녀는 이같은 말들을 하고난 뒤 얼마 있다가 죽었다. 그녀는 9년을[㈜ 주전 76년부터 67년까지. ] 통치하였으며, 73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녀는 자신이여자라고 하여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여인이었다. [㈜ 고대. 13권. 16 : 2(408)이하와 비교하라. ] 왜냐하면통치권을 간절히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그녀는자신의 계획들을 성취하는 능력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통치권을 유지하는데 계속해서 실패하는남자들의[㈜ 이것은 명백히 ‘그들을 장악하기에 충분할 힘은 가지지 못한 자’라는 뜻. ] 우둔함을 폭로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래보다도 현재에 더 큰 가치를 두었으므로 그녀에게 다른 모든 것들은 절대적 통치를[㈜ eigkratw'” a[rcein도 역시 투키디데스식 표현이다. 참). 투키디데스(Thuc. ) i : 76 : 1. ] 위한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고상함이나 정의로움 따위는 전혀 마음에 두질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가 죽은 지 얼마 안되어 그녀의 집을 위해서는 매우 불행한 문제들이 밖으로 드러났다. 즉 그녀가 살아있을 당시 에도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순간을 맞이했던 통치권이 그녀에게서 이어져 내려간 이후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여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에 대한 열정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 가족에 적의를 두고 있는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견해를 나타내었기 때문이었다. [㈜ 포스트(Post) 교수는 ‘그녀의 권위의 비증을 그들에게 양도하였다’ 등으로 추측한다. ] 그리고 또한 그녀가 자신들의 이익을 마음에 두고 있는[㈜ 본문이 다소 수정됨 ; 몇몇 사본에는 ‘그것 즉, (왕국)을 이을 어떤 사람도 없이.’] 어떤 사람을 후계자로 정해놓지도 못한 채 왕국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죽은 이후에, 심지어는 왕궁 안에까지그녀의 생전에 취해진 공적인 조처들로부터 발생한 혼란과 불행으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통치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나라를 평화롭게 유지시켰다. 그리고 알렉산드라는 종말을 이와같이 맞이했다. [㈜ 어느 사본에는 ‘다음 핀에서 나는 그녀가 죽은 후 그녀의 아들들인 아리스토불루스와 힐카누스에게 닥친 일과 연관지어 살펴볼 것이다’라는 말이 추가되 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