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아레타스와 힐리카누스가 아리스토불루스를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한 것과 로마장군 스카우루스가 그 포위를 풀게 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오니아스의 죽음에 대하여
1. 아레타스와 힐카누스의 군대들이 유월절 기간에 성전에 있는 아리스토불루스를 포위공격하다
그에게 주어진 이러한 약속들로 인하여 아레타스는 50,000명의 기마병과 보병들로 구성된 군대를[㈜ 유대 전쟁. 1권. (126)에는 보병과 기병이 공히 50,000명씩이라고 나와 있다.] 이끌고 아리스토불루스를 향해 진군하여 아리스토불루스의 군대를 무찔렀다. 힐카누스편이 승리하자 많은 병사들은 힐카누스에게로 달아났고 혼자 남게된 아리스토불루스는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람 왕은 그의 전군대를 이끌고 성전을 공격해 들어가 아리스토불루스를 포위공격하였으며, 시민들은 힐카누스의 편에 가담하여 포위공격하는데 그를 도왔다. 반면 아리스토불루스에게는 제사장들만이 오직 충성스럽게 남아 었었다. 아레타스는 아람인들과 유대인들의[㈜ 다른 사본에는 \’이두매인\’이 라고 나와 있다.] 진영을 나란히 배치하고 더욱 격렬하게포위공격망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전투가 우리가유월절(Phaska)이라고[㈜ 다른 사본에는\’\”Pascha\’라고 되어 있다. 참), 고대. 9권. 13 : 2(263) 각주. 이 유월절은 주전 약 65년경 4월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의 고대. 4권. 2 : 2(25)틀 참조하라] 부르는 무교절 기간에 벌어졌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명성을 가진 유대인들은 그 나라를 떠나 애굽으로 피신하였다. 그런데 오니아스(Onias)라고 하는 어떤 사람이있었는데,[㈜ 다음에 나오는 \’오니아스\'(Oiuas)의 이야기에 대한 랍비의 병행본문에 관하여는 데렌부루크(Derenbourg) 112-113쪽을 참조하라.] 그는 의인이었고 하느님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한번은 비가 내리지 않는 한발이 오랫동안 계속되자 그가 하느님께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하느님께서는 그의 기도를들으셔서 비를 내려주셨다. 이런 사람이 내전이 발발하게 되는것을 보고는 자신의 몸을 숨겼으나 유대인의 진영으로 잡혀 오게 되었다. 그는 기도로 한발을 멈추게 하였던 것과 같이 아리스토불루스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을 것을 요청받았다그러나 거절과 변명에도 불구하고 비류들에 의하여 강제로 말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그들 한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오 하느님, 우주의 왕이시여, 제 옆에 서 있는 이 사람들은 당신의 백성들이며 포위된 사람들은 당신의 제사장들입니다. 간구하옵기는 이 사람들을 반대하여 저들에게 귀기울이지 마시며 또한 이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해달라고 당신께 요청하는 일들도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그가 이런 식으로 기도하고 있을때 그를 에워싸고 있던 유대인들 중에서 악한들이 그를 돌로 쳐죽였다.
2. 오니아스를 죽인 일로 인해 하느님께서 유대인들을 벌하시다
그러나 하느님은 즉시 야만스런 만행에 대해 그들을 벌하셨고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오니아스의 살인에 대한 희생을 그 댓가로 요구하셨다. 제사장들과 아리스토불루스가 포위공격을 받고있을 때, 유월절이라고 불리는 절기가 돌아왔는데, 이 절기 때에는 하느님께 많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다.[㈜ 유월절에 대한 이 두번째 언급과 고대. 14권.(25, 28)에 나오는 거룩한 방문에 대한 두가지 다른 이유는 요세푸스가 그의 자료를 결합하는데 있어서 부 주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불루스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희생제물이부족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동족에게 희생제물을 제공해 줄것을 요청하면서 그 희생제물의 댓가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돈을지불하겠다고 제의하였다. 이 제의를 받은 그들의 동족들은 그들에게 각자 가지고 싶어하는 동물들에 대하여 1,000드라크마씩을 지불해 달라고 요구하였고, 아리스토불루스와 제사장들은 기꺼이 이러한 가격을 수락하여 그들에게 그 돈을 지불하기 위해돈을 줄로 매달아 성벽아래로 내려 보냈다. 그런데 그들의 동족들은 그 돈을 받은 후에도 희생제물을 넘겨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악한들과 한패가 되어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희생제물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희생제물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께 대하여 불경건한 행동을 하게 하였다.[㈜ 랍비의 전승에 의하면 포위군들은 돼지를 제물로 보내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배신을 겪게 된 제사장들은 약속을 어긴 그들의동족들을 징벌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징벌을 지체하지 않고 강하고 사나운 바람을 보내 전국토의 농작물을 파괴하셨다.[㈜ Derenbourg, p.114주 3에서 Graetz는 이와 관련하여 주전 64년 아시아에서의 지진이 있었던 사실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는 Dio Cassius37 : 11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이 일로 인하여 그때 사람들은 밀 한 모디우스를 사기 위하여 11드라크마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모디우스(modius)는 약4분의 1부셀에 해당한다. 이 당시 밀의 가격에 관하여는 고대. 12권. (140)의 각주 163을 참조하라. 자세하게 보려면 프랑케(T. Frank)의 \’An Economic Survey of Ancient Rome, 4권. 1938에 나오는 하이델하임 (F. Heichelheim)의 논문 \’Syria\’를 보라.]
3. 로마의 장군 스카우루스가 아리스토불루스의 편을들어 아레타스로 하여금 성전의 포위공격을 풀도록하다
[㈜ 고대. 14권.(29-34)의 내용은 전쟁. 1권.(127-131)의 부분적인 병행구를 싣고 있다.]
한편 폼페이는 스카우루스를 또한[㈜ 즉,\’\’가비우스와 더불어\’. 어떤 사본에는 \’…도 또한\’이란 말은 생략되어 있다.] 수리아에 보냈는데, 그때자신은 아직 아르메니아에서 티그라네스와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티그라네스는 주전 66년 가을에 폼페이에계 항복하였다. 스카우루스는 그이듬해 봄에 다메섹으로 보내어졌다. 캐리(M. Cary)는 \’CAH\’ix. 381 주 1에서 말하기를 \’요세푸스가 기록한 \’\’대고대사\'(29-33에 반대되는34-36)에 나오는 수리아에 대한 로마정복 연대는 유감스럽게도 뒤섞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분명히 하지는 않고 혼돈을 준다.] 그리고 스카우루스가 다메섹에 왔을 때, 그는 롤리우스와 메텔루스가 막 그 도시를 점령한 것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유대로 나아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사절들이 아리스토불루스와힐카누스 양자로부터 그에게 도달하였는데, 양편 모두 그에게와서 자기 편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아리스토불루스는그에게 400달란트를[㈜ 전쟁. 1권. (128)에 는 300달란트로 나와 있다.] 주겠노라고 제안하였다. 그런데 힐카누스도 그에게 이와 맞먹는 금액을 약속했지만 스카우루스는 아리스토불루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왜냐하면 아리스토불루스는 부자였고 또 관대한 사람이었으며, 보다 더 온건한 조건들을 요구한 반면 힐카누스는 가난하였고 인색하였으며,더 큰 이권을 위하여 신뢰할 수 없는 약속들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전쟁 1권. (128)에 는 \’아리스토불루스가 제공했던 300달란트는 정의의 중요성보다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나와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도시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 보다는 전쟁에 잘 적응되지 않은 나바타이아인들의 군대와 함께 있는 탈주병들을 몰아내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앞에서 언급된 이유들로 인하여 스카우루스는 아리스토불루스의 편을 들어 돈을 받은 다음 아레타스로 하여금 철수하도록 명령하고 만일 불응하면 로마인들의 적이 될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포위 공격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나서 스카우루스는 다시 다메섹으로 철수하였지만, 아리스토불루스는 큰 군대를거느리고 아레타스와 힐카누스를 향하여 전진하다가 파피론이라는[㈜ 쉴라터(Schlatter), 393쪽 각주 1을 보면 이 지역은 여리고 근처의 어떤 곳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곳에서 그들과 교전하여 물리치고 약 6,000명의 적을 죽였는데, 죽은 자들 가운데는 안티파테르의 형제인 팔리온도[㈜ 다른 사본에는 \’케팔리온\'(Cephalion)이라고 되어 있다. \’팔리온\'(Phallion)이라고 나와 있는 \’유대전쟁사\’ 이외에는 다른 곳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된 것이 없다.]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