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헤롯이 알렉산더를 체포하여 구금한 것과 갑바도기아의 왕 아르켈라우스가 알렉산더와 그의 아버지 헤롯간을 다시 화해시킨 것에 대하여
1. 알렉산더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내시가 헤롯에게 고소함
[㈜ 고대. 16권. 8 : 1-6(229-261) 참). 전쟁. 1권. 24 : 7, 8(488-497), 25 : 1(498, 499).]
시간이 갈수록 헤롯 가문의 분쟁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이번에 일어난 망신스러운 사건 때문에 헤롯은 한층 더 마음이 괴로웠다. 헤롯은 그 당시 수려한 용모를 갖춘 내시들 중 몇명을 무철제하게 총애하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은 술 따르는 자로 두고 또 한 명은 식사를 담당하게 하고 다른 한 명은 헤롯의 침상을 보살피는 중요한 일을 맡겨놓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헤롯에게 알렉산더가 거액의 돈으로 내시들을 매수했다고 전해 주었다. 이에 헤롯은 내시들을 불러들여 알렉산더와 성적인 관계(in-timate relations)를 가졌는지 추궁하였다. 내시들은 그렇다고고백하고 그러나 알렉산더가 부친에 대해 어떤 음모를 갖고 있는 지는 전혀 모르는 바라고 말했다. 또한 고문자가 안티파테르(Arltipater)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들의 사지를 더욱 세게 비틀고 조여대는 등 극심한 고문을 가하자 견디다 못한 내시들은 알렉산더가 부친에게 적대감과 중오심을 갖고 있으며, 헤롯은 이제 살 만큼 오래 살았으므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고 설제로 자기 자신의 나이를 속이기 위해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그들이 알렉산더를 후원해 준다면 자기가 왕권을 차지했을 때 요직에 임명해 주겠다고 했고, 왕권은 혈통으로 보나 지금까지의 준비된 상황으로 보나 헤롯왕의 친구들과 나라의 지배자들이 자기를 후원하고 있으므로 자기의 것이라고 알렉산더가 말했다고 실토해 버렸다.
2. 헤롯이 의심스러운 자에게 첩자를 보내다
[㈜ 고대. 16권. 8 : 2-6(235-253) 참). 전쟁. 1권 14 ; 8 (492-497)]
이 말을 들은 헤롯은 분노가 치솟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신이 이렇게 모욕당한 것에 대한 분노와 자기의 의혹을 불러 일으킨 이번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되어 헤롯은 더욱 괴로워했다. 그리고 헤롯은 지금 자기가방어할 수 없는 수준의 더 큰 음모가 어디서 진행되고 있는지 두려워한 나머지 비공개적으로 비밀리에 의심스러운 자들에게 첩자를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다. 헤롯은 모든 사람들을 불신하고 증오하였고 자기의 신변안전을 위해 계속적인 의심을 품었으므로 심지어 무고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당하게 되었다. 헤롯의 이런 의심은 끝도 없어서 마침내 주위의 친한 사람들일수록 자기에게 음모를 꾸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헤롯은 이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을 죽여 없애 버리는 것이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여러 사본들에서는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고\”로 표기.]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마침내 헤롯의 측근들은 이 상황에서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자기가 고소당하기 전에 남을 먼저 고소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서로 상대방을 마구 비난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을 고소하여 제거하고 나면 이번에는 고소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소의 대상이 되어 무고하게 사람을 죽였으니 다른 사람을[㈜ 다른 사본에는 \”서로\”로 표기.] 죽인 자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식의 보복의 악순환이거듭되었다. 어떤 이들은 자기의 사적인 적을 제거하려고 설치한 덫에 제 발이 걸려 똑같은 처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한편 헤롯은 죄에 대한 분명한 증거도 없이 사람을 처형해 버리고는 이내 후회하였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같은 일을 다시는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가 무섭게 앞서 행한 것처럼 무고한 자를똑같은 방법으로 처형해 버리는 것이었다.
3. 헤롯이 친구들을 내쫓다
이상이 왕궁에서 일어났던 소란스러운 문제들이었다. 헤롯은 자기의 많은 친구들에게 앞으로는 왕궁을 들어오지도 말고 자기에게 얼굴도 내밀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헤롯이 이러한 명령을 한 이유는 그들이 왕궁에 있으면 자신의 행동이 어색하고 제약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롯은 심지어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헤롯왕가의 일에 조언과 특사의 일을 해왔고 헤롯의 아들까지 가르쳤던 안드로마쿠스(Andromachus)와 게멜루스(Gemellus)까지도[㈜ 이 두사람과 안드로마쿠스(Andromachus)의 아들인 데메트리우 스(Demetrius)가 요세푸스의 기록에서만 지명하여 언급하고 있 다<고대. 16권. 8 ; 3(243)>.] 쫓아내어 버렸다. 헤롯은 이들과지금까지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어 왔으면서도 그들을 무참히 내쫓아 버린 것이다. 헤롯은 안드로마쿠스의 아들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알렉산더의 친구라는 이유로 안드로마쿠스를 쫓아냈고 게멜루스는 어렸을 때부터 로마에서 알렉산더와 같이 교육받고 자라온 친한 친구라는 이유로 그를 내쫓아 버렸다. 헤롯은 이들을 왕궁에서 쫓아낸 후 더 가혹한 형벌을 줄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 같이 유명한 사람을 너무 심하게 다루는 것은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들의 지위와 권력만을 빼앗았다.
4. 안티파테르가 헤롯의 병적인 공포를 이용하다
[㈜ 고대. 16권.8 : 4(244-253) 참). 전쟁, 1권. 14 : 8(495-497).]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안티파테르였다. 안티파테르는 부친 헤롯이 몹시 자제력이 없음을 알고 오랫동안 그의 자문역할을 해오면서 누구든지 헤롯을 반대하는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리도록 그를 부추기었다. 그래서 그 당시 안드로마쿠스와 그의 친구들은 언행에 매우 조심을 하고 있었는데헤롯은 먼저 알렉산더에게 충성스러웠던 사람들부터 잡아다가 자기에 대한 알렉산더의 음모에 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솔직히 고백하라고 하면서 고문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않고 죽어갔다. 이렇게 혹독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음모에 대한 아무런 증거를 잡지 못하게 되자 헤롯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이에 간교한 안티파테르는 이들이 입을 안 열고 죽어가는 것은 알렉산더에 대한 충성심과 정조 때문이라고 중상해 대며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있을 테니 잡아들이라고 헤롯을 더욱 부추기었다. 고문을 당한 많은 사람 중 한 명이 알렉산더가 가끔 이와같은 말을 한적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체격이 좋고 활을잘 쏘며 다른 면에 있어서도 모든 사람 중에 뛰어난 사람이오.그러나 나의 이러한 천성적인 특징을 부친 헤롯왕이 질투하여 성화를 부릴 때면 나의 이 조건이 좋기보다는 오히려 괴롭게 느껴질 때도 있소. 나는 길을 걸을 때면 부친이 작아 보이지 않도록 키를 낮추어 걷고 부친과 함께 사냥을 할 때는 부친이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월해 보이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과녁에서 약간 빗나가게 활을 쏘곤 했소.\”
헤롯은 이러한 진술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지시하고 고문을 잠시 중단시켰다. 이에 고문당하던 자는 알렉산더가 동생 아리스토불루스의 도움을 받아 헤롯이 사냥을 하는 동안 몰래 잠복해 있다가 그를 쏴 죽여버리고 로마에 가서 왕국을 넘겨달라고 청원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덧붙였다. 한편 알렉산더가 아리스토불루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년 세입이 200달란트나[㈜ 다소 과장된 표현인 것 같다. 안티파테르(Antipater)의 연간 수입을 50달란트로 언급한 고대. 17권. 5 : 3(96)을 참조하라.] 되는 땅을 헤롯이 안티파테르에게 넘겨준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부친을 비난한 내용이 적힌 편지가 발각되자, 헤롯은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알렉산더를 잡아들여 감옥에 투옥시켜 버렸다. 그러나 헤롯은 이 후에도 음모의 증거를 찾느라고 조금도 안정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들은 이야기들이 진실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고 과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가 그런 음모를 꾸몄다고 보기에는 그럴듯한 충분한 이유가 없었고그들이 단지 젊은 혈기에 불평을 터뜨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더군다나 그들이 자기를 죽이고 방자하게 공개적으로 로마에 가서 왕권을 넘겨달라고 청원하다는 것은 도저히불가능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롯은 이들의 소행에 대해 좀더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고 애썼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성급하게 아들을 잡아 가두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헤롯은 관직에 있는 알렉산더의 친구들을 잡아들여 고문을 하였다. 그런데도 헤롯이 기대한 성과없이 많은 사람들만 고문에 죽어갔다. 이렇게 헤롯이 음모의 증거를 캐기 위해 고문에만 한층 열을 올리니 궁안은 온통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한편 헤롯의 이러한 혹독스런 고문에 못이긴 어떤 젊은이는알렉산더가 로마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 가이사에게 보고드릴 중요한 일이 있으니 자기를 긴급히 불러 달라고 부탁한 적이있다고 말하며 알렉산더는 부친 헤롯이 파프티아 왕 미드리다테스(Mithridates)와 함께 로마의 가이사 황제를 살해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보고할 참이었으며 실제로 알렉산더는 아스글론(Ascalon)에 독약을 준비해 두었다고 덧붙였다.
5. 알렉산더의 고집이 헤롯을 더욱 격노시킴
[㈜ 고대. 16권. 9 : 5(254-250) 참). 전쟁. 1권 15 : 1(498).]
헤롯은 이 말을 믿고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자기가 아들을 투옥시키고 사람들을 고문하여 죽게 했던 것이 결코 경솔한 행동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위 하였다. 즉 그는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일이 심각했던 것을 알고 상대적으로 자책감이 줄어든 것에 대해 만족스러웠다. 그는 또한 독약을 찾아내려고 갖은 애를 다 썼으나 허사였다.
한편 알렉산더는 이제 고집이 생겨 일부러 음모를 꾸민 사실에 대해서 부인하지도 않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부친의 경솔한 행동-즉 진상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중상모략에 귀를기울여 자신을 투옥시킨 일-에 대하여 헤롯이 수치스럽게 느끼도록 해주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4통의 편지를 헤롯에게 써 보냈다. \”이제 아버님은 그 누구도 더고문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제가 아버님을 살해할 음모를 꾸몄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일은 페로라스와 아버님의 가장 가까운 충신들의 협조하에 이루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또 한가지 알려드릴 말씀은 살로메가 어느날 제 방을 찾아와 저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동침을 강요해 오는 바람에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한 빨리 아버님을 제거해서 그들의 불안스러운 생활을 청산하고자 하는 같은 마음들을 가지고있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이밖에도 알렉산더가 누명을 씌운 인물 중에는 헤롯의 가장 충성스러운 친구 톨레미(Ptolemy)와 사피티우스(Sapinnius)도[㈜ 둘다는 고대. 14권. 14 : 3(377)(=전쟁. 1권. 14 : 3(280)에서 헤 롯의 친구로 함께 언급되었다. Sapinnius는 다른 사본에 Sapenios로 나온다. 고대. 14권. 14 : 3(377)을 참조하라. \’유대 전쟁사\’에서는 \”Saphinius\”로 나온다.] 포함되어 있었다.
이 편지를 받은 헤롯은 터질 듯한 분노로 미쳐 날뛰었다. 이에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전에 아주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도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짐승같이 변해 서로 헐뜯었다. 그들은 자기를 변호할 기회도 찾지 못하고 모함에 대해 논박할 겨를도 없이 죽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투옥된 것에 대하여 애통해 하고,어떤 이들은 죽게 된 것을 비통해 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그들과같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을 슬퍼했다. 이리하여 전에는 화기애애 하던 궁안의 분위기가 침묵과 슬픔의 어두움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헤롯의 삶 또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버렸다. 그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불안에 떨며 어찌할바를 몰랐다. 헤롯은 자기 아들들이 자기를 공격해 오거나 시퍼런 칼을 들고 자기 옆에 서 있는 것 같은 상상이 밤낮으로 자꾸만 떠올라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같은 어리석은 환상으로 반미치광이가 된 헤롯의 몰골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6. 아르켈라우스가 헤롯과 알렉산더를 화해시킴
[㈜ 고대. 16권. 8 : 6(261-270). 참).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한 전쟁. 1 권 15 ;1-6(499-512)를 보라.]
갑바도기아(Cappadochia)의 왕 아르켈라우스(Archelaus)는 헤롯 왕궁에서 일어난 일들을 듣고 자기 딸과 사위 알렉산더가 몹시 걱정스럽고 친구인 헤롯이 고통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동정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문제로 보고 유대를 방문하였다.[㈜ 이 일은 주전 10/9년에 일어났다.] 그는 헤롯의 상태를 보고 만일 자기가 지금 헤롯의 행동을 문책하거나 그의 경솔한 행위에 대해 비난한다면 헤롯이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려 할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더 큰 논쟁이 일어날것 같아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로 마음먹고 오히려 알렉산더를 야단치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고 헤롯왕처럼 자비로우신 분이 어떻게 경솔한 행동을 하실 수 있겠느냐며 만일 자기 딸이 음모사실을 알고도 헤롯왕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당장에 얄렉산더와의 결혼을 파혼시키고 딸을 그냥 살려두지 않겠다고[㈜ 다른 사본에서는 \”정당하게 용서하지 않겠다고\”로 나온다.] 장담하였다. 헤롯은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아르켈라우스가이런 식으로 나오자 분노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고[㈜ 추정된 형태인 lwfw\’n이 가능하며(\”그리고 그는 생각하기를 중 단하였고…\”)이 문장은 요세푸스의 생각인 것이 분명하다. 그 단어는 그 밖의 다른 곳에서는 11번 사용되었다 ; 특히 고대. 16권. 8 : 6(268) ; 괘. 7권. 8 : 4(181) ; 전쟁. 6권. 4 : 5(251)을 보라.] 자기가한 일들은 정당한 동기에서 행해진 일임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헤롯의 태도는 점차로 아버지로서의 수용적 태도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이때 어떤이들이 와서 알렉산더를 고소시킨 것에 대해 논박하자[㈜ 참). 투키디데스(Thucydides) ⅷ : 87 : 1.] 헤롯은 몹시 분노하였다. 그러나 아르켈라우스가 나서서 알렉산더를 비난하자 이에 헤롯은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한 행동을 애통해 하였다.
아르켈라우스는 헤롯에게 아들이 저지른 비행에 너무 분노하지 말고 또한 그들의 결혼을 파혼시키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였다.
그후 아르켈라우스는 헤롯의 감정이 다소 완화된 것을 보고 비난의 대상을 알렉산더에서 왕의 측근들로 돌렸다. 아르켈라우스는 어리고 순진한 알렉산더가 왕의 측근의 꾐에 빠져 그 음모에 말려들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헤롯의 동생 페로라스를 의심스러운 어조로 언급하였다. 헤롯 또한 페로라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서 페로라스와 헤롯을 화해하도록 조정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페로라스는 현재 아르켈라우스가 헤롯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고 검은 상복을 입고 아르켈라우스 앞에 나아가 이 절박한 상황에서 구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것을 본 아르켈라우스는 페로라스의 간청을 들어주기는 하겠으나 자기가 보기에 왕의 마음을 곧바로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하며 페로라스 자신이 직접 헤롯왕 앞에 나아가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고백하면 헤롯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충고해 주며 자기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페로라스는 아르켈라우스의 충고대로 하였으며 그 결과 알렉산더의 누명도 벗게 되었고 헤롯과 페로라스가 화해하게 되어 두가지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었다.
아르켈라우스는 그 누구도 해결하기 어려운 이러한 위기를 잘해결하고 갑바도기아로 돌아갔다. 헤롯은 사의를 표하기 위해가장 고귀한 선물을 보내고 가장 소중한 친구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후한 접대를 하였다. 그리고 헤롯은 이번 일로 어떤이가로마의 가이사에게 서신을 보냈으므로 아르켈라우스에게 로마에 함께 다녀오자고 요청했다. 그래서 그들은 안디옥(Antioch)까지 같이 여행하였으며 헤롯은 당시 수리아 총독인 티투스(Titus)와[㈜ 폼페이(Pompey) 치하의 검찰관인 마르쿠스 티티우스(Marcus Titius) 주전 31년에 집정관이었으며, 주전 20-12년 사이의 총 독이었음. 참). \’PW\’ ⅵ A.1159-1162. No. 18 ; \’CAH\’ x : 62, 77 ; Corbishley, \’JRS\’24(1934), 43-49. 요세푸스가 기록한 분 쟁은 주전 14-12년으로 기술한다.] 논쟁 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르켈라우스와 서로 화해하도록 조정해 주었다. 그리고 난 후 헤롯은 유대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