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권 제 9장 드라고닛인들의 반란에 대하여, 실라이우스가 가이사앞에 헤롯을 고소했는지, 그리고 가이사가 헤롯에게 노했을 때 어떻게 헤롯이 니콜라스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심했는지에 대하여

 


 제 9 장




드라고닛인들의 반란에 대하여, 실라이우스가 가이사앞에 헤롯을 고소했는지, 그리고 가이사가 헤롯에게 노했을 때 어떻게 헤롯이 니콜라스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심했는지에 대하여




1. 헤롯이 아랍과 전쟁을 일으키다




  [㈜ 주전 10-9년에 발생. 헤롯이 아랍과 벌인 전쟁은 다메섹 (Damascus)의 니콜라스(Nicolas)에 의해 상세하게 서술되었 다. 참). Jacoby, \’FGH\’, 인용문 중에 헤롯과 나바타이아인에 관해서는 Abel, i : 386-390을 참조.]




 헤롯이 로마에서 돌아오자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유대와 아라비아 사이에 분쟁이 일고 있었다. 가이사(Caesar)가 제노도루스(Zenodorus)로[㈜ 제노도루스(Zenodorus)에 관해서는 고대. 15권. 10 : 1-3(344-359) ; 17권. 11 : 4(319) ; 전쟁. 1권. 20 : 4(398-400)을 보라.] 부터 빼앗아 헤롯 영토에 합병시킨 드라고닛(Trachonitis)의[㈜ 요세푸스가 지적한 것과 같이 군단<다메섹과 다메섹 남부 보스 라(Bosra)사이에 있는>과 관련성이 있지만 요세푸스는 여기서 마을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 참). 고대. 16권. 9 : 3(292)(드라고 닛).] 주민들은 전에 하던 강도 행위를 더 이상 못하고 땅을 일구면서 조용히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농사짓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한 노력한 것에 비해 소출도 별로 좋게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그들은 헤롯이 이웃에게 하는 강도행위를 강력히 금했기 때문에 자제하고 살았다. 그리고 헤롯은 그들의 강탈 행위를 저지시킨 업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헤롯이 그의 아들 알렉산더를 고소하고 안티파테르를 맡기기 위하여 가이사를 만나러 로마로 간 사이 드라고닛 주민들은 헤롯이 죽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반란을 일으켜 이웃 주민들에게 전에 하던 강도행위를 다시 시작하였다.

 이에 헤롯왕의 사령관들은 이들을 진압하도록 명령하였으며 체포된 자기 동료들이 처참히 당하는 것을 보고 겁이난 강도두목 40명은 그곳을 탈출해 아라비아로 피신하였다. 이에 살로메와 결혼하려다 실패한 실라이우스(Syllaeus)는 헤롯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차에 이들 강도 두목들을 받아들인 후 그들이 거처할 요새를 제공해 주었다. 이렇게 실라이우스가 그들에게 안전한 은신처와 강도의 진지를 제공해 주는 바람에 유대는 물론 코엘레 수리아(Coele Syria)일대는[㈜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임.] 이들의 강탈에 시달리게 되었다.

 한편 로마에서 돌아온 헤롯은 자기의 재산이 많이 약탈당한 것을 알게 되었으나 강도들이 아라비아의 막강한 지원과 보호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이들을 소탕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소행에화가난 헤롯은 드라고닛을 포위하고 그들의 친족을 모조리 몰살시켜버렸다. 헤롯의 처사에 머리끝까지 화가난 그들은 헤롯의모든 영토에 쳐들어가 주민들을 마구 강탈하고 괴롭혔다. 그들법에 의하면 자기 친족을 살해한 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복수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헤롯은 가이사의 사령관인 사투르니누스(Saturninus)와 볼룸니우스(Volumnius)에게[㈜ 수리아의 총독. 각주 145를 참조.] 이 사실을 알려 이들의 처벌권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하였다.

 한편 강도떼들은 나날이 숫자가 많아지고 힘이 세어져 헤롯왕국을 무너뜨리려고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마을 주민들을 약탈하고 닥치는 대로 누구든지 쳐죽였다. 그래서 이 광경은 마치 전투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이 강도떼들의수가 1,000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만행에 분개한 헤롯은 그들에게 바로 항복할 것과 실라이우스를 통해 오바다스(Obadas)에게 빌려준 돈 60달란트를 이미 기한이 지났으므로 갚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바디스를 제쳐두고 아라비아의 실권을 쥐고 있던 실라이우스는 강도들이 아라비아에 없다고 딱잡아 떼고 빚을 갚는 것도 지체하였다. 이 문제로 수리아 총독 사투르니누스와[㈜ 주전 12년의 집정관인 L. Volusius Saturnius ; 아프리카의 총 독이었으며 그후 수리아의 총독이었음 ; 주후 20년에 죽었음. Volumnius에 관해서는 고대. 16권. 10 : 7(332), 11 ; 3(369), 전 쟁 1권. 27 ; 1, 2(535, 538)과 각주 231, 233을 참조. 마지막 두사람은 그를 군단 사령관과 행정장관으로 각각 불렀다. 신원 은 확실치 않다. Frey, \’CIJ\’ I ; 72이하는 로마의 회당 boloumnhsivwn을 입증하는 4개의 비문을 전한다.] 볼룸니우스가 참석하여 토의를 한 끝에 마침내 로마의 중재로 실라이우스는 30일 이내에 헤롯의 돈을 갚는데 동의했고 실라이우스와 헤롯 모두 자기 나라에[㈜ 헬라어로 된 불완전한 문장의 결부(結部)는 라틴어 사본에서 판 독된다.] 있는 범인들을 서로 돌려주는데 동의했다. 헤롯 영토 내에는 돌려줄 범인이 한 명도 없었으나 아라비아에는 돌려주어야 할 강도들이 상당히 많았다.




 2. 헤롯이 아랍군과 싸워 승리하다




 돈을 갚기로 약속한 날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실라이우스는 아무런 약속도 지키지 않고 로마로 떠나 버렸다. 이에 헤롯은 빚을 즉시 갚을 것과 돌려주기로 약속한 아라비아에 있는 강도들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사투르니누스와 볼룸니우스가 헤롯이 이 강도들을 직접 처벌하는 것에 수락하자 헤롯은 군대를 이끌고 아라비아로 쳐들어가 7일동안 행군할 거리를 단 3일만에 도착하여 요새에 있는 강도들을 덮쳐 단번에 그들을 사로잡고 라엡타(Rhaepta)라고[㈜ 이곳과 고대. 16권. 9 : 3(288)에서만 언급됨 ; 위치는 언급되지 않음. \”Erremte\”는 비잔틴시대 펠라(Pella)의 동북동쪽 25마일에 위치하였다.] 불리우는 요새를 쳐부수었다.그러나 헤롯 군대는 그곳에서 강도 외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한편 이때 아라비아 대장 나케보스(Nakebos)가[㈜ 고대. 16권. 9 : 3(288)에 따르면 실라이우스(Syllaeus)의 친척 ; 참). 고대. 16권. 10 : 8(350).] 강도들을 돕기 위해 원정 중인 헤롯 부대와 한바탕 전투를 벌였는데 헤롯의 부하는 단지 몇몇 밖에 전사하지 않은 반면 그쪽은 나케보스를 비롯한 그의 부하 25명이 숨지고 나머지는 모두 달아나 버렸다.

 이렇게 헤롯은 아라비아군을 진압하고 이곳 드라고닛에 이두매인 3,000명을 이주시켜 살도록 하고 다시는 약탈행위를 못하도록 금하였다.[㈜ 참). Dittenberger, \’OGIS\’, No. 15.] 또한 헤롯은 베니게(Phenicia)의 총독들에게 이번 일에 대하여 서신을 써 보내어 자기가 반역한 아랍인들을 진압한 것은 매우 정당한 행위였고 로마인들이[㈜ \”로마인들\”(이방인들).] 이번일의 진상을 자세히 조사했을 때에도 자기의 잘못이 조금도 없음이 증명되었다고 설명하였다.




 3. 로마에 간 실라이우스가 가이사에게 아랍인을 대표하여 보고하다




 한편 아라비아에서는 로마에 있는 실라이우스에게 사신을 보내 정황을 과장해서 알렸다. 이에 실라이우스는 자신의 존재를 가이사에게 은근히 노출하여 왕궁에 들어갈 특별한 계기를 엿보고 있던 차에[㈜ 이런 상황은 요세푸스가 기록하지 않았음.] 사신들에게서 소식을 전해 듣고 곧장 검은 상복으로 갈아 입고 가이사에게 나아가 아라비아가 전쟁으로 참상을입었고 헤롯이 군대를 이끌고 침공해 오는 바람에 온 나라가 황폐화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실라이우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번 참사로 나케보스 대장을 비롯한 2500명이나 되는 아라비아인들이 죽었고 자기의 친한 친구들과 친족들도 살해되었다고 말하며 헤롯이 라엡타에 숨겨둔 보물들도 다 빼앗아갔고 아라비아의 왕 오바다스는 몸이 연약하여 전투를 이끌 만한 처지가 아니고 실라이우스 자신도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아라비아군인들이일방적으로 당한격 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말한 후 실라이우스는 간사하게도[㈜ ejpifqovnw\” 참). 투키디데스 I. 75 : 2 ; iii. 82 : 8.]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전 가이사 황제님께서유대와 저희 나라의 평화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때문에 이렇게 나라를 비워두고 로마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만약 그곳에 있었더라면 헤롯의 군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이사는 이말을 듣고 몹시 흥분하여 함께 있던 헤롯의 친구들과 수리아에서 온 사람들에게 정말 헤롯이 군대를 이끌고 아라비아에 갔느냐고 단 한마디의 질문만 던졌다. 이들은 오직 이물음에만 대답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가이사는어떤 상황에서 헤롯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 당장에 심하게 문책하는 내용의 서신을 헤롯에게 써 보냈다. 서신의 요지는 전에 친구처럼 지내던 실라이우스를 이제는 왜 그렇게 심하게 대하느냐는 것이었다.

 실라이우스 또한 로마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아라비아에 써 보내었는데 이 소식을 받은 그들은 기고만장 해져서 헤롯에게 범인들도 돌려줄 생각을 않고 빚도 갚으려 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헤롯에게 빌린 목초지를 임대료도 내지 않고 사용하는 등 헤롯이 가이사의 눈 밖에 난 것을 알고 기세가 당당해졌다. 드라고닛 주민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비대를 공격하고 이두매인들의 영토를 탈취한 아라비아인들과 함께 마을을 마구 강탈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원한을 풀기 위해 온갖 야만적인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주민들은 심한 피해를 당했다.




4. 헤롯이 아라비아에 한 행동에 가이사가 분개하다.




 한편 헤롯은 가이사의 신임을 잃고 행동의 자유마저 잃는 등온갖 수모를 다 참아 내야만 했다. 헤롯은 가이사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청원서를 써서 사신들을 통해 보냈으나 이것도 별다른 성과없이 돌아가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ajprajktou\” ajpevpemyen 참). 투키디데스 i. 24 : 7.] 또한 헤롯은 실라이우스가 로마에 가 있으면서 가이사의 신임을 얻어 총애를 받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바로 그때 실라이우스는 큰 계략에 빠져 들었는데 아랍에서 오바다스가 죽은 후에 이름을 아레타스(Aretas)로 바꾼 아이네아스(Aeneas)가 정권을 잡아버린 것이다.[㈜ 주전 9년부터 주후 40년까지 통치함. 하레타트(Haretat)왕과 그 의 아내 훌다(Hulda)의 생에 관한 주전 7년의 비문에 대해서는 Glueck, \’Other Side of Jordan\’ p.197을 참조.] 이에 실라이우스는 중상모략을 써 아레타스를 몰아내고 자기가 왕권을 차지하려고 궁안의 사람들에게 거액의 돈을 뿌리고 가이사에게도 더 많은 돈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가이사는 자기가 아직 왕권계승을 위한 승낙서도 내주지 않았는데 아레타스가 왕좌에 앉았다고 분개했다.




 그러나 아레타스는 자기가 직접 오지는 못했지만 많은 선물과 값비싼 금관을 서신과 함께 가이사에게 보냈다. 서신의 내용인즉 실라이우스는 악한 종으로 오바다스를 독살했고 오바다스 왕이 생존해 있을 때에도 자기 맘대로 왕권을 행사했으며, 아라비아의 많은 부인들을 타락시켰을 뿐 아니라 왕이 되기 위해 많은돈을 빌려썼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이사는 이런 비난에 여전히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레타스가 보낸 선물을 하나도받지 않은 채 사신들도 그냥 돌려보내 버렸다.

 한편 유대와 아라비아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는데 이는 양국이 매우 혼란 하였을 뿐 아니라 이렇게 악화된 상태를 수습할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라비아에서는 실라이우스와 아레타스 중 누구도 왕권을 확고히 장악하지 못해 무법자들을 통제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유대의 헤롯은 가이사의 신임을 잃고 눈밖에 나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이렇게 있다가는 문제가 풀릴 것 같지 않아 로마에 사신들을 다시 보내 로마의 친구들을 통해 가이사의 분을 가라않히고 그와의 호의적인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때 다메섹의 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도 사신으로서 로마에 갔다.[㈜ 니콜라스(Nicolas)의 사명과 헤롯과 아구스두의 화해의 결과가 자세하게 기록된 고대. 16권. 10 : 8,0(335-355)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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