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권 제 2장 바벨론 태생 유대인 자마리스와 안티파데르가 자신의 아버지를 해치려고 꾸민 음모에 대하여, 그리고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제 2 장




바벨론 태생 유대인 자마리스와 안티파데르가 자신의 아버지를 해치려고 꾸민 음모에 대하여, 그리고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1. 헤롯이 바벨론 유대인을 밧단 지역에 거주하게 하다




  [㈜ 고대, 17권.2:1-3(23-31)은 유대전쟁사와의 어떤 병행구절도 없다]




 헤롯은 이때 드라고닛(Trachonitis) 지역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제법 큰 규모의 도시로 건설하여 드라고닛 주민과 유대인들을 살게 하고 자긴 분봉국으로 만들어외부인들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였으며, 또한 출격구를 만들어 적들이 갑자기 침범하여 습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때 헤롯은 바벨론 출신의 한 유대인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는바벨론에서 활을 잘 쏘는 기마병 500명 및 친척 100여명과 함께 유브라데(Euphrates) 강을 건너 수리아(Syria)의 다프네(Dap-hne) 근처 안디옥(Antioch)에 잠시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는 수리아의 총독인 사투르니누스가 그에게 울라다(Ulatha)라는[㈜ 홀랏 안디윽(Holath Antioch)은 종종 탈무드에서 언급된다. eling, JBL\’51(1932), 133-135홀레 호수의 북동쪽 지역인 울라다(Ulatha)와 혼동해서는 안됨<참). 고대. 15권, 10 : 3(360)>] 지역에 거주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헤롯은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과 그의 부하들에게 밧단(Batanaea)지역에 거주하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밧단 지역은 드라고닛 지역과 인접한 곳으로 그들이 이곳에 거주하게 되면 그 지역의 수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헤롯은 바벨론 출신 유대인에게 그곳에 거주한다면 세금을 일체 면제해 줄 것이며 아무런 의무없이 이 지역에 살도록 허가되었으므로 그 지역 주민의 풍습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해 주었다.[㈜ 갈릴리 바다 동쪽 고지(高地)에서의 이러한 정착에 관해서는 자서. 11(55-61), 특히 각주 20을 참고하라. 무명의 유대인은 자마리스<Zamaris 고대. 17권. 2 : 3(29)였다 ; Laqueur, pp. 43-45.]




 2. [자마리스가 바디라를 요새화하다]




 이에 바벨론 출신 유대인은 헤롯의 제의를 수락하고 땅을 차지해 요새와 마을을 짓고 그 땅의 이름을 바디라(Bathyra)라고명하였다.[㈜ 제시된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가말라(Gamala)의 남쪽 야르뭇(Yamouth)의 강변인 현재의 베이트 에아이(Beit Eai)가 아니라 사나메인(Sanamein)동쪽 부근의 바시스9Basis)일 것이다. klein, \’BJPES\’ 4(1936), 33이하를 참조하라. Ginzburg, \’알려지지 않은 유대 종파,\’ (Eine unbekannte judische Sekte) p. 99이하 ; Klausner, iv : 218이하.] 그들은 바디라에 살면서 그 지역 주민들을 드라고닛 주민들로부터 보호해 주었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제사드리러 오는 유대인들도 드라고닛의 강도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각지로부터 조상 전래의 풍습을 지키려는 유대인들이 그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 지역은 세금이 면제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되었다. 이러한상태는 헤롯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헤롯이죽고 그의 아들 빌립(Philip)이 왕권을 계승한 후에는 약간의세금을 잠시동안[㈜ 주전 4년-주후34년.] 물렸고, 아그립바대왕과 그의 아들 아그립바시대에는[㈜ 각각 주후 37-44년과 50년-약100년.] 좀더 심하게 과세를 하기는 했으나 세금감면 혜택을 완전히 박탈하지는 않았다. 그 후 로마가 이곳을 직접 통치할 때에는 그들을 자유인으로 인정은 해주었으나 세금감면의 혜택은 전혀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상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3. 자마리스와 그의 아들들




 헤롯에게서 바디라 지역을 받은 바벨론 출신 유대인 자마리스(Zamaris)는 덕망스러운 삶을 살다가 훌륭한 자녀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식 중에는 야키무스(Jacimus)라는[㈜ 그는 아그립바 Ⅱ세 통치시 고위직에 있었다. 자서. 11(46)에서 !evparco\”로 불려짐 ; 참). 전쟁. 2권. 17 : 4(421) 각주 231 각주89를 보라.]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용감무쌍하였으며 바벨론 사람들을 모아 기마병을 조직하여 훈련시켰다. 이 기마부대는 왕들의 경호부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야키무스가 나이가 들어 죽고 그의 아들 빌립이 뒤를 이었는데 그는 손 힘이 아주 세고[㈜ 혹은 \”전투에서 탁월한.\”] 어찌나 덕망이좋은 사람이었는지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이러한 성품 때문에 그는 아그립바왕과 진실한 우정 및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빌립은 아그립바왕만큼이나 많은 수의 병사를 거느리고 훈련시켰으며 필요시 언제든지 기마부대를 손수 지휘하며 출정하였다.[㈜ 빌립(Philip)에 관해서는 참). 자서. 11(46-61), 35, 36,(177-180), 74(407-409) ; 전쟁. 2권. 17 ; 4(421). 여기서는 아그립바 Ⅱ세를 의미한다.]




 4. 안티파테르가 페로라스를 자기 편으로 포섭하다




  [㈜ 고대. 17권. 2 : 4(32-45)=전쟁. 1권. 29 : 1,2(567-571).]




 한편 헤롯이 처한 상태는 여전했으며 국가 정무는 안티파테르가 도맡다시피 하였다. 안티파테르는 헤롯에게 신임과 총애를 받으면서 누리게 된 많은 권력을 그가 원하는 곳에 마음껏 사용 했다. 그런데도 그는 남들보다 더 큰 권력을 차지하려고 여전히 무진 애를 썼는데 이는 자기를 모든 면에서 신임하고 있는 헤롯을 없애려는 계획을 감추고 권위를 더욱 확고히 해두려는 속셈에서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안티파테르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가진 권력 때문이 아니라 계략을 꾸미는 그의 교활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로라스(Pheroras)는 특이하게도 안티파테르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고 안티파테르도 그를 잘대해 주었다. 그러나 안티파테르는 영악하게도 페로라스 주위에있는 여자들을 이용하여 그를 감시하도록 하였다. 페로라스는                                                                                                        미혼인 자기 딸을 오만불손하게 대하는 자기 아내와 장모와 처제가 몹시도 미웠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노예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참). 고대. 16권. 3 : 1(46)이하와 전쟁. 1권. 19 : 1, 2(568, 571)은 페로라스 (Pheroras)의 아내가 헤롯의 두 딸인 살로메와 록사나를 모욕했다는 것과 이러 한 이유로 그녀(혹은 그들)를 미워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본문은 틀린 곳 이 많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이제 그들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되었다. 그들은 이 가련한 페로라스를 자기들 마음대로 조정하며 자기들끼리 모든 일에 단합된 행동을 하자고 하며 서로의 의리를 다짐했다. 이리하여 안티파테르는 자신의 노격과 모친의도움으로 페로라스를 완전히 배후조정하게 되었다. 이는 또한네 명의 여인들이[㈜ 참). 전쟁. 1권. 19 : 1(568)이하. 그 여인들의 이름은 모름.] 일심하여 자기의 일을 도와주었기 때문에가능하였다. 그리고 페로라스와 안티파테르 간에 의견 충돌은하찮은 문제에서나 조금 있었을 뿐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협동작전을 오랫동안 유심히 관찰해온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헤롯의 여동생 살로메였다. 살로메는 이들이 공모하여 헤롯을 없애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사실을 곧장 헤롯에게 알렸다. 한편 그들은 헤롯이 자기들의 이런 계략을 알고 난 후 그들의 관계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후부터는 둘이 만나는 것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비밀리에 하기로 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특히 헤롯이 있는 자리에서는 서로를 극렬히 비난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자주 비밀리에 만나 친분을 나누며 그들의공동 목적 달성을 위해 서로의 이해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살로메는 그들이 처음 만나 계략을 꾸며 일을 시작한 것과 이제 그계략을 그들이 실행에 옮길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다 알고 있었다.[㈜ 본문과 의미는 확실치 않음.] 그래서 이 모든 사실을 헤롯에게 알리면서 다음과같이 말했다. \”페로라스와 안티파테르는 둘이 몰래 만나 함께술을 마시면서 왕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왕을 해치지 못해 안달이 나 있고 겉으로는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듯 비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둘만 있게되면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되어 의기양양하게 자기들의 적을 힘을 합해 무찌르자고 야단입니다.\” 이 같은 살로메의 말을 듣고헤롯은 그들을 의심해 보기도 했으나 살로메의 고소가 중상모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들에 대해 곧바로 어떤 행동 조치를내리지는 않았다.[㈜ 여러사본들에는 \”그는 (그 문제에 대한)확신이 없었다\”로 나온다.] 한편 그 당시 유대인 중에 조상 전래 풍습을 엄격히 보존하고유대 율법을 신성히 지키는 바리새파(Pharisees)라 불리우는무리가 있었는데 궁중의 사람들도 그들 무리에 혹하여 모임에참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바리새인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려줌으로써[㈜ 혹은 \”예언함으로써\” ; 참). 고대. 15권. 1 : 1(3)이하. 바리새파와 에세네파는 여기서 혼동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가 바리새인이었던 요세푸스에게는 낮설었 을 것이며 그러한 설명은 그의 자료원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니콜라스는 바리 새인들에 대해 적대적이다). 에세네파와 헤롯에 관해서는 고대. 15권. 10 : 4(371)이하를 보라.] 왕의 일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헤롯을 노골적으로 증오하며 없애버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유대 백성들은 모두 가이사와 헤롯왕의정권에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를 하였으나 6,000명의 바리새인들 마음은 이를 결단코 거부하였다. 이에 화가 난 헤롯은 이들에게 벌금을 물렸는데 페로라스의 부인이 그들의 예언에 대한 보답의 표시로 그들을 위해 대신 벌금을 물어 주었다.[㈜ 참). 고대. 15권. 10 : 4(370)이하에서는 바리새파와 에세네파가 그러한 선언으 로부터 면제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신의 임재로 자기들이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페로라스 부인에게 예언해 주기를하느님께서 유대 왕권을 헤롯과 헤롯 자손들에게서 빼앗아 페로라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이 갖게 될 자식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살로메는 이러한 예언을 듣자마자 곧바로 헤롯에게 알려 바리새인들이 궁내의 사람들을 타락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헤롯은 바리새인 중 유력한 용의자들과 내시 바고아스(Bagoas)와 그 시대에 가장 빼어난 용모로 헤롯의 사랑을 받던 남자 카로스(Karos)등을 처형하였다. 또한헤롯은 자기 가족 중에서도 바리새인들의 예언을 믿는 사람들은모두 처형시켜 버렸다. 내시 바고아스는 바리새인들이 \”당신은장차 모든 권력을 쥐고 왕이 될 사람의 대부이자 은인이 될 인물뿐만 아니라 왕이 당신을 결혼시켜 줄 것이므로 당신 자신의자녀도 갖게 될 것이오. [㈜ 그 의미는 확실치 않음. 메시야의 중요성이 암시되었다. 참). 사 56 : 1-5.]\” 라고 그에게 예언을 해주는 바람에 기뻐 날뛰다가 결국은 헤롯에 의해 처형당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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