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 9장=전쟁. 2권 1 : 2, 3(5-13), 2 : 1-7(14-38).]
백성들이 아켈라오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것과 아켈라오가 로마로 간 것에 대하여
1. 아켈라오에 대한 백성들의 요구
일부 유대인들이 개혁하기로 마음을 합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유대인들은 금독수리상을 끌어내리다가 유죄판결을 받아 헤롯에 의해 처형당한 마티아스와 그 일행들을 진심으로 애도하였다. 왜냐하면 헤롯의 보복이 두려워 장례때 그들에게 조의를 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마치 그렇게라도 해야만 이미고인이 된 사람들의 영혼을 다소라도 위로해 줄 수 있기라도 하는것처럼 큰 소리로 애통해 하면서 헤롯왕을 비난하였다. 백성들은 함께 뭉쳐 아켈라오에게 몰려가 아켈라오가 그들 대신 보복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또 무엇보다도 우선 헤롯에 의해서 대제사장이 된 자를 당장 끌어내리고 율법에 더욱 적합하고 청렴결백한 자를 새로 임명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아켈라오는 그들의 끈질긴 요구에 마음이 몹시 상하였으나 이제 곧 로마를 방문해서 가이사에게 자신의 왕위 계승 문제를 추인받을 야심을 품고 있는 그였기에 백성들의 무례함을 억지로 참았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보내 비록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금독수리상을 끌어내리다가 처형당한 마티아스와 그 일당은 법에 따라 공정하게 처형된 것이니 더 이상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고 상황을 보다냉철하게 분석할 것과, 아켈라오 자신이 보기에 백성들의 요구자세가 매우 거만한데 이와같은 행동은 자신이 가이사로부터 왕좌의 동의를 얻어 그들 앞에 다시 돌아와 머리를 맞대고 그들의 요구 조건에 대해 숙의하게 될 때까지 자제하고 지금은 로마 정부로 하여금 유대인들은 선동과 소요만 일삼는 폭력집단이라는 그릇된 인상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조용히 참고 인내해 줄 것을 설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 아켈라오는 불평주의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다
이같은 요지의 내용을 전달하라는 명령과 함께 아켈라오는 그의 신하를 백성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백성들은 소란을 피우며 아켈라오의 신하가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가중된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고 격앙된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하자 그의 생명까지도 위협하려 하였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자기들의 통치자에게 복종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모든 요구사항이 실현될 것인지 여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헤롯이 살아있는 동안에 지배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었기 때문에 이제 헤롯이 죽은 상황 아래에서 그 주동자들을 벌주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과격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계획을 밀고 나갔으며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것은 모두 적법하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에게 어떤 위험이 도래할 것인지를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했다. 아니, 그들은그러한 낌새는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이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면서 얻어지는 커다란 기쁨이 그것을 압도한 것이다. 아켈라오는 그들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백성들을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백성들은 그들을 왕이 보낸 사신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로 여겨그들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주 과격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던 소요는 많은 무리가 빠른속도로 가세함으로써 점차 반란의 성격을 띠기 시작하였다.
3. 유월절에 성전에서 소요가 일어남
[㈜ 유월절 사건에 관해서는 전쟁. 2권. 1 : 3(10-13)을 참조하라.]
그 무렵 축제 기간 동안 모인 무리들에게 무교병을 주는 것이유대인의 고대 풍습인 축제 기간이 다가왔다. 이 축제 절기를 유월절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절기이다. 그들은 기쁘게 그 절기를 보냈으며 다른 어떤 절기보다도 더 많은 희생제사를 드리고 전국 각지에서 심지어는 외국에 있는 유대인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하느님께 경배하는 것이그들의 관습이었다. 이러한 유월절을 맞아 소요자들은 성전에 모여 율법 교사였던 유다와 마티아스를 애도하면서 그곳에 모여든 원근 각처의 사람들에게 많은 음식을[㈜ 참). 요세푸스의 조수가 분명히 잘못 이해한 trofhv의 의미에 관해서는 전쟁. 2 권 1 : 3(10)과 각주 6을 참조하라.] 제공해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식을 구걸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켈라오는 군중들의 광기로 인해서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 열광적인 분위기가 전체 군중들에게 확산되기 전에 소요 주동자들의 반항을 강제 진압하기 위해 무장한 1개 연대의 병력과 천부장을 무리들이 운집한 곳으로 보내면서 명령하기를 주위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격렬하게 행동하는 자들은 모두 체포해 오라고 하였다. 이러한 아켈라오의 명령은 마티아스를 죽게한 로마정부에 반항하기 위해 모여든 마티아스 추종자들과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격분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병사들을 밀어붙여 그들을 완전히 포위한 다음 돌멩이로 공격하였는데 그 결과병사들의 대부분은 돌에 맞아 죽고 불과 몇 명의 병사와 그들을 통솔했던 지휘관만이 부상을 입은 채 겨우 달아났다. 반란자들은 이렇게 병사들을 격퇴시킨 후에 미리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다시 하느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아켈라오는 소요를 일으킨 유대인들을 모두 잡아 죽이지 않고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군을 동원하는 한편, 성전안으로 도피하거나 보병의 추격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에[㈜ 즉 평지위. 참). 전쟁. 2권. 1 : 3(12)와 각주 104.] 도착했다고 믿는 자들까지도 끝까지 추격하여 잡아 죽이도록 기병까지 동원하여 보냈다. 그 결과 기병들에 의해 약 3,000명이 죽음을 당하였고 나머지는 인근 산악지역으로 도망쳤다. 그후 아켈라오는 그들에게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훈련이 부족하여 경솔하게 행동하는 기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켈라오의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 닥칠 커다란 화를 미리 두려워하여 유월절 절기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그곳을 떠나갔다. 그 후 아켈라오는 동생 빌립(Philip)에게 나라의 일을 모두 맡기고 그의친구들 중 니콜라스(Nicolas), 톨레미(Ptolemy),[㈜ 참). 고대. 16권. 7 : 2(191) 각주104. 가이사와의 공식 회견에 관해서는 고대. 17권. 9 : 5-7(229-249) 11 : 1-3(300-316) ; Abel의 \’HP\’ I : 409주 1을 참조하라.] 그리고 프톨라스(Ptollas)를[㈜ 전쟁. 2권. 2 : 1(14)에서는 포플라스(Poplas)라고 부름.] 데리고 배를 타고 여행하기 위해 항구로내려갔다. 이때 헤롯의 여동생인 살로메(Salome)도 함께 갔는데 그녀는 자기의 가족들과 헤롯의 다른 친척들도 함께 데리고갔다. 살로메와 그 친척들은 겉으로는 아켈라오가 왕위를 얻는것을 도와주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아켈라오를 반대하고 주로성전 안에서 그가 자행했던 행위를 맹렬히 비난하는데 그들의목적이 있었다. 아켈라오는 헤롯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로 급히 가던 중 로마 제국의 수리아 지역 행정장관인 사비누스(Sabinus)를 가이사랴에서 만났다. 그러나 바루스(Varus)가이곳으로 달려와 사비누스가 헤롯의 재산에 관여하는 것을 막았다. 바루스가[㈜ 참). 고대. 17권. 5 : 2(89) 각주 69.] 그곳에 왔던 것은 아켈라오가 톨레미를 통해 그를 그곳에 와 주도록 호소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사비누스는 바루스의 명령에 복종하여 유대에 있는 어떠한 성이나 보물도 취하지 않고 가이사가 그것들에 대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아켈라오가 맡아서 관리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사비누스는 이렇게 약속하고 나서 가이사랴에 계속해서 머물렀다. 그러나 아켈라오는 로마로 항해해가고, 또 바루스는 안디옥으로 되돌아가자 사비누스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왕궁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수비대의 지휘관들과 헤롯의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들을 소환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목록들을 가지고 와서 하나 하나에 대한 값을 매기라고 지시하였다. 그는 또한 성들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했다. 그러나 그 성과 보물들을 관리하는 청지기들은 아켈라오가 지시한 명령을 등한시하지 않았으며 겉으로는 가이사를 위해서 재산을 관리하는것처럼 하였으나 실제로는 아켈라오가 명령한 대로 모든 재산을 관리하고 보호하였다.
4. 안디바도 로마로 항해하다
바로 이때 헤롯의 또 다른 아들인 안디바(Antipas)도 유대왕국은 안디바가 장악해야 한다는 살로메(Salome)의 부추김을 듣고 유대왕국을 장악하기 위해 로마로 항해하였다. 살로메는 안디바가 아켈라오보다는 더 훌륭하고 헤롯 이후의 왕으로서도 더적합할 뿐만 아니라 전에 헤롯의 유언장에도 안디바를 왕의 후계자로 지정해 놓았으니, 그 이후의 유언장보다는 그 유언장이더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안디바를 부추겼다. 안디바도 아그립바처럼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니콜라스(Nicolas)의형제 톨레미(Ptolemy)와 함께 떠났다. 톨레미는 헤롯이 가장자랑스럽게 여기던 친구였으며 지금은 안디바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디바가 왕권에 도전하도록 가장 크게 용기를 북돋아 준 사람은 웅변가인 이레나이우스(Irenaeus)였는데 그는 총명하기로 평판이 나 있었던 사람으로 정무를 관장하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형인 아켈라오에게 왕위를 양보하는것이 마땅하다고 충고도 했고 아버지 헤롯의 마지막 유언에서도그렇게 명령했었는 데도 불구하고 안디바가 그것을 수락하지 않고 왕위에 도전하게 된 것은 바로 이레나이우스 때문이었다. 아켈라오가 로마로 떠나가자 모든 친척들은 한결같이 안디바의 편을 들었다. 그들이 안디바를 편든 것은 안디바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켈라오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다. 그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자유를 누리는 것과 로마 통치자들에게 지배를 받는 것이었으나 그렇게 되려면 아켈라오보다는 안디바가 더 적절한 인물이라 생각하여 안디바가 왕위를 얻도록 그의 편에 가담한 것이다. 더욱이 사비누스조차도 가이사에게 아켈라오를 비난하는 내용의 편지를 띄워보냈다.
5. 가이사 아구스도 앞에서 아켈라오가 비난받다
한편 아켈라오는 부친 헤롯의 유언장과 재산 목록이 들어있는 편지를 부친의 인장을 담당하는 톨레미와 함께 보내어 자신을 유대 왕국의 후계자로 인정하여 주기를 가이사에게 요청하였다.가이사는 아켈라오의 청원서는 물론 바루스(Varus)와 사비누스(Sabinus)의 서신, 재산 목록 그리고 왕국의 연간 수입내역을 읽어 보았을 뿐만 아니라 왕위를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안디바가 보낸 여러 통의 서신을 읽은 다음 친구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 친구들 중 가이사의 바로 옆 첫 자리에가이우스(Gaius)라는[㈜ 이 당시에 그는 16살쯤 되었고 아구스도의 뒤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는 주전 1년에 동방의 총독이 되었고 주후 4년에 죽었다. 참). \’CP\’ 51(1956), 104 주 4에 나오는 R. Getty(1956)의 글.] 자를 앉혔는데, 그는 아그립바와 가이사의 딸 율리아(Julia)에게 양자로 입적된 자였다. 가이사는 그들을 않게 한 후 유대 왕국의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해서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살로메의 아들이면서뛰어난 웅변가요, 아켈라오를 철저하게 대항하는 안티파테르(Antipater)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켈라오가 가이사께 왕위를 허락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가이사가 그를 왕으로 인정하기전에 이미 실제로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아켈라오는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 때 수많은 유대인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했습니다. 설사 그 사람들이 잘못을 범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처벌 여부는 그 권한을 가진 사람들에게 맡겼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켈라오는 가이사께서 왕위를 허락하기도 전에 그 권위를 찬탈함으로써 가이사께모욕을 주었습니다. 만일 아켈라오가 개인적으로 그러한 일을했다면 그것은 더욱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가이사께 왕위를 허락받지도 않고 왕위를 승인받은 것처럼 행동하는것은 가이사의 권한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는 또 군대 지휘관을 자기 멋대로 바꾸고, 왕의 보좌에 앉히기도 하고 법률 소송 사건을 멋대로 판결하는 등 왕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수없이 자행해 왔습니다. 또한 공적(公的)으로 청원하는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는데 이같이 중대한 문제는 설혹 그가가이사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았다 할지라도 자기 멋대로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또 경기장에 가두어 놓았던 죄수들을 풀어주었으며 수많은 실수와 오류들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지배욕에 불타서 하루 빨리 손쉽게 정권을 손에 넣으려는 보통 젊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그러한 실수들을 저질렀습니다. 아켈라오는 부친의 장례식 때도 애곡하는 관습을 무시하고 넘겼을뿐만 아니라 부친이 죽은 바로 그 날 밤에 흥겨운 모임까지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중들이 소란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아켈라오는 부친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고 그에게 왕위까지 계승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위의 배우처럼 낮에는 눈물을 흘리는 척하다가 밤만 되면 쾌락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 가이사께서 아켈라오를 왕으로 인정하신다면 그가 자기의 부친에게행한 대로 가이사께도 똑같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많은 자비를 베풀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는 가장 가까운사이인 부친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마치 그의 적이 죽은 것처럼가무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는이미 오래 전에 자신이 마치 가이사로부터 왕권을 승인받기라도한 듯이 권력을 손에 쥐고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던 자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가이사께 편지로 왕위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것보다도 우리를 더욱 전율케 하는 것은 그의 편지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유월절 기간 중에 자행하였던 성전에서의 잔혹한 살육행위였습니다. 비록 외국인과타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이 살육의 현장에서 마치 희생제물처럼 피흘리며 죽어갔으며 성전에는 아켈라오의 부하들의 손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의 시체로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일개 이방인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법적으로 왕의 직위를 사칭한 아켈라오에 의해서 자행되었다고 하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사악한 폭군의 성품을 지녔고 바로 그점 때문에 모든사람이 그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부친인 헤롯이 온전한정신을 가졌을 때에는 그의 이러한 성격을 알기 때문에 그를 왕의 후계자로 꿈도 꾸지 않았으며, 그래서 더 권위가 있는 헤롯의첫 번째 유언장에는 아켈라오의 경쟁자인 안디바를 후계자로 지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이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아켈라오를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반면에 안디바는 헤롯의 판단력이 온전하고 국정(國政)을유능하게 집무할 때 후계자로 지명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헤롯이 아켈라오가 괴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후계자로임명했다 하더라도[㈜ 즉 그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서.] 아켈라오는 자신이 어떤 왕이 될 것인지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왕권을 인정해 주는 황제에게서 그 임명권을 빼앗아 간 자이며 또한 그가 아직 평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동족들을 학살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자입니다.\”
6. 다메섹의 니콜라스가 아켈라오를 변호하는 연설을 하다
안티파테르는 이 말을 하고는 아켈라오의 친척들 중에 많은증인들을 내세워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게 한 후에 말을 마쳤다.그러자 이번에는 니콜라스(Nicolas)라는 자가 일어나 아켈라오를 변호하는 연설을 했다. \”성전에서 일어난 일은 아켈라오에게 책임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죽은 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그 자들은 그러한 일을 유발하도록 만든 장본인들로서 그들 스스로에게 악행을 저지를 정도로 사악할 뿐 아니라[㈜ 마르쿠스(Marcus)의 추정(비평 각주 : 이는 헬라어 본문에 따른 것으로 본 책 에 수록되지 않음-역주)은 불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착실한 사람들로 하여금 복수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자들의 반란행위가 겉보기에는 아켈라오에 대항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가이사께 반역을 행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들은 그들의 행동을 중지시키려는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파견된 아켈라오의 병사들을 공격하고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뿐 아니라 절기도 등한시했는데 방금 안티파테르는 아켈라오에 대한적대감으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도덕과 정의를 중오해서인지모르겠지만 그런 무법자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참). 비평 각주(헬라어 본문에 따른 것으로 본 책에 수록되지 않음-역주_.] 그런데 이같이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을 처벌하다 보면 본래의의지와는 관계없이 불의한 폭력(Unrighteous actions)도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안티파테르는 스스로를 고발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잘못되었다고 고발한 모든 내용들은 아켈라오를 모함하기 위해 꾸며진 거짓말입니다.[㈜ 이 절의 헬라어 본문에 관해서는 Schumidt, p.416을 참조하라.] 그들은 다 한 통속이요, 허물없이살아온 아켈라오를 모함하기 위해서 거짓을 꾸민 좋지 않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계속해서 헤롯의 유언장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유언장은 헤롯의 정신이 온전할 때 만들어진 것이므로 앞서 만들어진 유언장보다 더 권위가 있어야 할 줄압니다. 왜냐하면 그 유언장에는 가이사가 모든 것을 판결하고결정한다고 최종 결정권을 유보하여 두었기 때문입니다. 가이사여! 황제께서는 저 사람들이 행하던 불의를 결코 범치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저 사람들은 헤롯이 살아있을 때에는 그와 함께 영화를 누리던 자들인데도 지금 와서는 헤롯의 결정에 해를 입히는 모략을 서슴없이 하고 있고 또한 아켈라오와는 달리 친척에대한 최소한의 사랑마저도 갖고 있지 않은 자들입니다. 가이사시여, 모든 결정을 전적으로 당신께 위임한 당신의 친구요 우방이었던 헤롯의 유언장을 휴지로 만들지 마시고 그를 믿고 재가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바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시고 덕스러운 가이사께 간구하오니 선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했던 헤롯을 미쳤다고 비난하는 저 사악한 사람들의 말에 결코귀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이사의 옳은 결정을 피난처로알고 찾아온 아켈라오에게 왕위 계승을 결정한 헤롯이 어찌 미친 사람일 수가 있으며 모든 것을 가이사의 결정에 위임할 정도로 신중한 헤롯왕이 후계자를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찌 실수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7. 아구스도가 아켈라오에 대한 판결을 연기하다
니콜라스(Nicolas)는 이렇게 간청을 하고 그의 말을 마쳤다.그러자 가이사는 그의 발 아래 꿇어 앉은 아켈라오를 일으켜 세운 뒤 왕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추켜 세우며 부친의 유언대로 행하여 아켈라오에게 도움이 되도록해 주겠노라고 그를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가이사는 아켈라오에게 그를 의지하도록 격려는 해주었지만 왕위 계승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결정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 회의를 해산시키고 나서 가이사는 과연 아켈라오에게 왕국을 물려 주어야 할지 아니면 헤롯의 모든 자손들 중에서 지명해야 할지를 홀로 곰곰이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많은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