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권 제 2장 아디아베네의 왕후 헬레나와 그녀의 아들 이자테스가 유대 종교를 받아들인 것과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헬레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제공한 것에 대하여

 


제 2 장



아디아베네의 왕후 헬레나와 그녀의 아들 이자테스가 유대 종교를 받아들인 것과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헬레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제공한 것에 대하여



 1. 아디아베네(Adiabene) 왕 모노바주스(Monobazus)와 그의 아내 헬레나(Helena)와 아들 이자테스(Izates)



[㈜ 택커래이(Thackeray)는 그가 가진 요세푸스 사본에서 이자테스(Izates)의 이야기는 쉽고도 유창한 문체로 쓰여진 것으로 고대. 17권-19권의 이야기와 매우 다르다는 독특한 논평을 하고 있다. 그는 또한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와 어떤 필적할 만한 것이 있다고 분명히 한다.]



 이 때쯤에 아디아베네의[㈜ 메소보다미아 북방에 있는 지역으로 주요 도시는 아르벨라(Arbela)임.] 왕후인 헬레나와 아들 이자테스는 삶의 과정을 전환하여 유대 풍습을 받아 들였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바제우스(Bazeus)라는 이름을 지닌 아디아베네의왕 모노바주스(Monobazus)는 여동생 헬레나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녀를 자기의 아내로 삼아 아기를 낳았다. 모노바주스는 어느날 밤 헬레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녀의 배위에다 손을 얹고 잠 들었다. 그때 배 속에 있는 아기가 다치지 않도록 아내의 배에서 손을 떼라고 하는 소리와 그 아기가 신의 섭리에 의해 안전하게 태어나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 소리로 그는 혼란에빠졌고 즉시 잠에서 깨어나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아기가태어나자 이자테스(Izates)라는[㈜ 조이토스(Zoitos)(\’Midrash Rabbah on Genesis\’ 46 : 10). 유스티(F. Justi)의 \’Iranisches Namenbuch\’, 1895, x, v. \”Yazata\”, pp.145-146에 의하면, 이자테스(Izates)라는 이름은 이란어로 \”천재\”, 특히 미드라에 쓰이는 \”신적인 존재\” 그리고 후에는(복수 형태로) \”하느님\”을 의미한다.] 이름을 지어 주었다. 모조바주스는 다른 아내와의 사이에서도 아들들이 있었고, 헬레나와의사이에서도 장자인 모조바주스(Monobazus)가 있었다. 그러나그는 이자테스에게 독생자[㈜ \”인기있는 사람\”, \”가장 사랑받는 이\”, 혹은 \”필적할 사람이 없는\”의 의미를 지닌 \”독생자(monogenhv\”)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윈터(P. Winter)의 \”MONOGENHΣ HARA HATROΣ\”, \’Zeit. f. Religions-und Geistesgesch\’ v. 1953, 335-365이하를 참조하라.]와 같이 공공연하게 모든 애정을 기울였는데 이것이 이자테스의 다른 형제들의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게도 했고, 또 이러한 이유로 그들이 이자테스를 더 좋아하는것처럼 큰 애정을 베풀기도 했다. 비록 모노바주스왕이 그들의 흥분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용서해 주었다. 왜냐하면 못된 성품으로 인해 그들이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모조바주스왕은 이자테스를 많은 선물과 함께 카라스 스파시니(Charax-Spasini)의 왕[㈜ 문자적으로는 스파시누스(Spasinus)의 진영 참). 고대. 1권. 6 : 4(145). 그것은 팔미레네(Palmyrene)로, 카라케네(Charakene)라는 아주 작은 왕국의 수도인 카랄 아스파시나(Karak Aspasina), 혹은 카르카(Karka)이다. 참). Ptolemy vi.3.2(Cavrax Pasinou\’)와 Dio 68 : 28.4(o Cavrax oJ tou\’ Spasvnou kalouvmeno\”). 이곳은 티그리스강과 유브라데강의 입구 사이에 있다.] 아벤네릭(Abennerig)에게[㈜ 그의 화폐들 중의 하나에 따르면 아비네르글로스(Abinerglos)이다. 그는 주후 5년부터 21년까지 통치했다. 보내었는데, 그것은 이자테스에 대해 큰 염려가 되어 형제들이이자테스에 대해 지니고 있는 증오로 인해 이자테스가 어떤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모노바주스왕은아벤네길에게 이자테스의 보호를 위탁하였고 아벤네릭은 기쁘게 이자테스를 받아들여 큰 애정을 베풀었으며 자신의 딸 시마코(Symmacho)와[㈜ 여러 가지 철자로 쓰인다. Samachos, Amachos, Symacho. 그 이름은 수리아어로 \”재창조\”를 의미한다.] 혼인시켰다. 또한 큰 세를 받을 수 있는 땅을 이자테스에게 주었다.



2. 이자테스가 노아(Noah) 방주의 잔해가 있는 카론(Carron)지역을 하사(下賜)받다



 그러나 모노바주스왕이 나이 들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서 죽기 전에 이자테스를 한번 보고 싶어했다. 따라서 모노바주스왕은 이자테스를 데리러 사신을 보내었고, 그를 다시만났을 때 가장 애정있는 태도로 그를 포옹했다. 그리고 카론(Carron)이라고[㈜ 캐론(Carron)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메소보다미아 북쪽에 있는 카레(Carrhae)가 아니라, 티그리스강의 근원이 아르메니아 국경 동쪽에 위치한 고르디에네(Gordyene)로 교정하는 것이 지리적으로 더 받아 들일만 하다. 왜냐하면 그곳이 성경적 지명인 노아의 방주가 정착한 아라랏(Ararat)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콰어트(J. Macquart)는 \’ Osteuropaische und ostasiatische Streifzuge,\’ 1903, p.289 주.4에서 카르두(Kafdou\’)로 제안한다.] 불리우는 땅을 주었는데, 이 땅은 아모뭄(Amomum)이[㈜ 정확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생강과(科)의 향기로운 식물, 와글러(Wagler)의 \”Amomum\”, Pauly-Wissowa, I, 1894, pp.1873-1874를 보라.] 풍부하게 있는 땅이었다. 또한 그 곳에는 노아(Noah)가 대홍수를 면할 수 있었던 방주의 잔해가[㈜ 고대. 1권. 3 : 5(90)에는 노아 방주가 아르메니아(Armenia)에 있는 산 꼭대기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1권. 3 : 5(92)에서 요세푸스는 흔적이 심지어 자기 자신의 시대에도 아르메니아인들에 의해 보여졌다고 말하고 있다. 요세푸스가 고대. 1권. 3 : 6(93)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갈대아인 베로수스(Ber-osus : 주전 3세기) 또한 방주의 일부분이 여전히 코르디아인들(Cordyaeans, 오늘날의 Kurdistan)의 산 위, 아르메니아 지역에 존재하며, 사람들은 그 역청 조각들을 수집해서, 마귀를 쫓는 마력으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다메섹의 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도 <고대. 1권. 3 : 6(95)에서 요세푸스가 인용한> 그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데, 홍수 기간 동안, 그가 생각하기에, 노아라고 여겨지는 한 사람이 성경의 기사에 언급된 아라랏산에서 가까운 아르메니아의 미니아스(Minyas)지역에 있는 바리스(Baris)라고 불리는 장엄한 산 위에 방주와 함께 머물렀다는 것이다.] 있다. 그잔해를 보고자 할 경우에는 지금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자테스는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그 땅에 거주하였다. 그러나 모노바주스가 죽은 바로 그날 왕후 헬레나는 왕국의 모든 고관과 총독들과 군대 지휘관들을 불러 모은 후 헬레나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그들에게 했다. \”내 남편께서 이자테스에게 왕권을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는 사실과 이자테스가 그 왕권의 적임자라는 사실에 여러분들이 생소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의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단 한사람에 의해서가아니라 많은 사람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서 왕위를 받는 것이그 사람에게는 유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헬레나는 초대된 그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하여 이와같은 말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말을 듣고 그들은 먼저 그들의 관례대로 왕후에 대한 경의를 표했고 왕의 결정에 따라 그 뜻에 복종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뜻과 일치하므로 왕이 나머지 형제들을 제외하고 이자테스를 임명했다는 사실이 기뻤다.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이자테스가 정권을 안전하게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자테스의 형제들과 그 친척들을 살해할 것을 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단 제거되어야 그들의 시기와 증오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모든 두려움을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헬레나는 자신과 아들 이자테스에게 보여준 그들의 호의에 먼저감사로 보답하고, 이자테스가 와서 동의할 때까지 이러한 살해집행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사람들이 형제들과 친척들을 살해할 것을 헬레나에게 충고했을 때 헬레나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이자테스가 올 때까지 적어도 형제들과 친척들을 감금해 둘 것과 자신들의 안전을 헬레나에게 간청했다. 그들은 또한 가장 크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잠정기간동안 왕국의 통치자로서 옆에 둘 것을 헬레나에게 조언했다. 따라서 왕후 헬레나는 그들의 이러한 조언에 따라서 장자 모노바주스를 왕의 자리에 세우고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인장이 있는반지를 그에게 주었다. 그들이 삼프세라(sampsera)[㈜ 클레멘츠(Clementz)는 \’고대\’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주(註)에서, 삼프세라는 아랍인들 사이에서 태양을 의미하여 통치권의 상징을 지니고 있는 태양 형태로 된 금방패였다고 설명한다.] 부르는 장식품도 주었다. 그리고는 그의 동생이 올 때까지 국정을 다스려 줄 것을 간청했다. 이자테스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에게 정권을 이양한 형 모노바주스의 뒤를 이었다.



 3. 이자테스와 헬레나가 유대 종교로 개종함



 이자테스가 카락스 스파시니(Charax-Spasini)에 거(居)하고 있을 때 아나니아(Ananias)라고 불리우는 유대인 상인이[㈜ 클라인(G. Klein)은 \’Der alteste christliche Katechismus\’, 1909, pp.137-138에서 유대 상인들은 종종 선교사로서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클라인은 말하기를 유대 상인들은 sam hayyim(\’Tanhuma Mezora\’ 5)이라는 진짜 향유를 파는 척하면서 그 대신 그들은 시편 34편 14절에 묘사된 것과 같은 선한 삶에 대한 규범을 제시했다고 한다. 클라인에 의하면\’sam\’이라는 단어는 단어들의 첫 번째 문자들인 surmera(시 34 : 14), 즉 \”악으로부터 떠난\”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비유인데, 미드라쉬 작품들(Midrashic works) 중 많은 것이(흔한 상징인) 상인을 도덕을 전달해 주는 도구로써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일이 종종 일어났다는 것을 지시해 주는 것은 아니다. 탄후마(Tanhuma)에서의 지적이 한 이야기의 매개자로 상인이 사용되지 않는 알렉산더라 불리는 어떤 랍비가 만든 탈무드(\’Abodah Zarah\’ 19b)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주목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데이비스(W.D.Davies)는 \’Paul and Rabbinic Judaism\’, 1948, p.133 주. 1에서 클라인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 \”바울이 고린도후서 2 : 17에서 \’소매상인이 되는\’이란 의미의 동사에서 파생한 kaphlevont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단어의 배경으로 클라인이 말한 상업 선교 활동을 뜻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왕에게 속한 여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유대종교에 따라서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가르쳤다. 따라서 아나니아는 그들을통해서 이자테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유대종교를 수용하도록 설득했다. 또한 아나니아는 이자테스의 진지한 간청으로 이자테스가 아디아베네(Adiabene)로 오라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을 때 이자테스와 동행했다. 동일한 때에 헬레나는 어떤 유대인에 의해 가르침을 받아 유대종교로 개종(改宗)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자테스가 왕권을 잡고 아디아베네로 왔을 때 그의 형제들과 다른 친척들이 감금되어 있는 것을보고서 불쾌하게 생각되었다. 이자테스는 그들을 살해하거나 투옥하는 것은 무정한 처사라고 여겼지만 형제들과 친척들은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처사를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석방하는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이자테스는 그들 중 일부와 그들의 자녀들을 인질로 로마에 보내고, 다른 자들도 파르티아(Parthia)왕 아르타바누스(Artabanus)에게 비슷한 의도로 보냈다.



 4. 헬레나가 이자테스를 강권하여 할례받지 못하게 하다



 이자테스는 모친 헬레나가 유대의 풍습을 크게 즐거워하는 것을 알고 서둘러 변경하여 유대의 풍습을 모두 수용하도록 했다.그는 할례를 받지 않는 한 전적으로 유대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할례를 행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헬레나는 그가 할례를 행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였다. 헬레나는 이러한 일이 그를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며, 그는 왕인데 왕이 낮선 이방의 의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백성들이알면 신하들로부터 큰 미움을 받게 될 것이며, 또한 백성들은 유대인의 통치를 결코 받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그에게 말하였다. 이외에도 그녀는 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갖은 수단을 모두 동원하였다. 이자테스는 이러한 권고를 받아 들였다. 이자테스는 헬레나가 아나니아에게 말한 것을 이해했고 이자테스는 그의 모친이 말한 것을 확신했다. 그는 또한 아나니아가 자신의 뜻에 응하지 않는 한 자기의 곁을 떠나라고 위협한 것을 기억했다.한편 아나니아는 그러한 왕의 행위가 대중에게 알려진 나쁜 평판을 가져오는 영향을 주어 왕의 교사자로 지목되어 처벌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말하였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왕이 유대법을전적으로 따를 것을 결단하였을 때는 할례를 행하지 않고도 하느님을 섬길 수 있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할례보다는 우위의 태도이며, 또한 비록 그 필요성을 간과하였거나 백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득이 행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를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이자테스왕은 이러한아나니아의 권면을 받아 들였다. 그러나 그후에도 왕은 할례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갈릴리로부터 온 엘르아살(Eleazar)이라고[㈜ \’Essai sur I\’histoire et la geograhie de la Palestine\’. 1867, pp.225-229<밤버거(B.J.Bamberger)가 인용한 저술, \’Proselytism in the Talmudic Period\’. 1939, pp.48-49를 보라>에서 아나니아(Ananias)와 엘르아살(Eleazar)사이의 논쟁 중, 힐렐(hillel)과 샴마이(Shammai)학파들 사이의 논쟁을 발견하려고 시도하는 데렌버그(J.Derenbourg)와 같은 많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제시하였는데, 즉 개종을 위한 할례의 필요성에 관한 아나니아와 엘르아살 사이의 차이점이 탈무드 \’Yebamot\’ 46a에서도 발견되는데 랍비 요수아(Joshua)는 아나니아가 여기서 표현한 견해와 유사한 것으로 할례는 개종을 위한 전제조건(sine qua non)이 아니라는 것이며, 세례만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반면에 본문의 엘르아살(Eleazar)과 유사한 견해를 가진 랍비 엘리에셀(Eliezer)(철자가 유사한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랍비 엘리에셀은 1세기 말엽과 2세기 초반에 활약했던 것이다)은 할례가 개종을 위한 전제조건(sine qua non)이라고 말한다. 클라우스너(J. Klausner)는 \’From Jesus to Paul\’, 1943, pp.39-40에서 요수아와 엘리에셀 사이의 논쟁이 할례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이방인들에게 필요한 것인가 혹은 세례만으로 충분한가에 관해서 한편으로는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논쟁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야고보와 베드로 사이의 논쟁에서도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엘르아살 사이의 논쟁과 유사한 것으로 제시된 이것들은 비슷하기는 하지만, 아나니아의 동기들이 그 물음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라기 보다는 경계하려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동일한 것이 될 수 없다. 요세푸스는 다른 곳에서 예를 들면, 고대. 20권. 7 : 1(139)M에메사의 아지주스왕(Azizus king of Emesa)>과 고대. 20권. 7 : 3(145)<길리기아의 폴레모왕(Polemo king of Cilicia)>에서 할례를 개종에 필요한 것으로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나니아에 의하면 <비알로블로키(S.Bialoblocki), \’Die Beziehungen des Jedentums zu Proselyten und Proselytentum, 1930, p.16> 할례는 어떤 사람이 혈우병일 때와 같이 신체적으로 위험할 때 생략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계명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보며 아나니아는 이자테스(Izates)의 경우를 생명에 대한 위험성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엘리에셀은 탈무드에 인정되는 것으로서의 법은 오직 할례를 통해서만 비유대인들이 유대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수아와 엘리에셀 사이의 논쟁은 \’팔레스틴 탈무드\'(palestinian Talmud), \’Kiddushin\’ iii : 14에서 따로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엘리에셀은 할례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반면 요수아는 세례 또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참). 밤버거(Bamberger), pp.49-51을 참조하라. 밤버거는 요수아가 할례를 생략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독창적으로 주장하는데, 그것은 요수아에 의해 지적된 것처럼 이방인은 단순히 세례를 받고 개종자가 되는 것이지만, 이방인도 이제는 토라(Torah)의 계명들 모두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 계명들 중의 하나가 할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밤버거는 주장하기를 요수아와 엘리에셀 사이의 논쟁은 개종이 일어나는 정확한 순간에 관한 물음 즉, 물음은 실제적인 목적들을 위해 중요한 것인데, 요소아는 세례가 결단하는 행위라고 믿는 것이고, 엘리에셀은 할례가 결단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하는 유대의 지식에 상당히 능통한 어떤 유대인은 왕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권유했다. 엘르아살이 왕에게 인사하러 왕궁에 들어 갔을 때 왕이 모세의 율법을 읽는 것을 보고서[㈜ 이자테스(Izates)의 할례는 자기 아버지가 여전히 살아 있는 동안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The Midrash Rabbah on Genesis\’, x1vi : 10에는 이자테스와 그의 형 모노바주스(Monobazus)가 예전에 창세기를 읽다가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창 17 : 11)는 구절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둘은 한탄하기를 시작했고, 별도로 할례를 결심했다. 얼마 후에 그들이 다시 한번 창세기를 읽다가 이 구절에 이르자, 서로 상대편이 아직 할례받지 않았음을 보고 슬퍼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서로 비밀을 터놓고 그들이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그들의 아버지에게 아들들의 몸에 상처가 생겨서 내과 의사에게 할례를 이미 시켰다고 말을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미 끝나버린 일이라고 생각하여 동의를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 왕이시여! 왕께서는 지금 할례를 행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율법의 원칙을 부당하게 위반하셨고 하느님께 무례한 행위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왕께서 모세의 율법을 읽을 뿐만 아니라 율법이 왕께 명한 바를 행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할례인 상태로 언제까지 계시렵니까? 그러나 만일 왕께서 할례에 관한 율법을 아직 읽지 않으셔서, 또는 할례를 무시함으로써 왕께서 얼마나 큰 불신앙을범하고 있는 지를 알지 못하신다면 지금 그 부분을 읽으십시오.\”그의 말을 듣고 난 왕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의사를 데려오도록 했다. 의사는 명령받은 대로 할례를 행했다. 그리고 나서 왕은 모친과 후견인 아나니아를 불러서 자신이 행한 바를 알려 주었다. 그들은 즉시 놀라움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그러한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져서 비난받지 않도록 하며, 또 왕이 왕국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하며, 그리고 백성들이 다른 종교에 흠뻑 빠져 있는 이자테스에게 통치받는것이 문제되지 않도록 하게 하며, 그들 스스로 그러한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왕이 그러한 행동을 취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발생할 결과로 인한 두려움을 이기게 한 것은 하느님이셨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이자테스와 그의 아들이 수많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보호해 주셨고, 상황이 불가능하게 여겨질 때마다 구원해 주셨으며, 경건의 열매는 하느님을 존경하고 하느님 한 분만을 신앙하는 자들에게서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증해 주셨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이후에 언급될 것이다.[㈜ 이 약속의 일부는 고대. 20권. 3 : 4(69-74), 4 : 1, 2(75-91)에서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유리는 이자테스의 아이들이 직면했던 위험들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것에 대해 전혀 듣지 못한다. 또한, 아마 31년 이자테스의 통치 시작 바로 후인 이자테스의 개종과 46년이나 47년의 헬라나(Helena)의 여행 사이에 경과한 기간 동안 이자테스에 대한 하느님의 도움에 대해 우리는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미쉬나(Mishnah)의 \’Naxir\’ iii : 6은 이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한 사건에 관해 언급해 주고 있다. 한번은, 이자테스가 전쟁터에 갔을 때 헬레나는 그가 안전하게만 돌아온다면 7년 동안 나실인(Nazirite)이 될 것을 서약한다. 자기 아들이 돌아오자 그녀는 서약을 지킨다. 7년 끝 그해에 헬레나는 이스라엘 땅으로 갔는데-아마 46년이나 47년의 여행이었을 것임-그곳에서 그녀는 7년 더 나실인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듣게 된다. 왜냐하면 나실인으로 있는 동안 이스라엘 땅 바깥에 머물게 되면 그 사람은 의식(儀式)적으로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실하게 7년을 더 봉사하였지만, 또 7년이 다 될 무렵에 자신을 더럽히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나실인으로서의 세 번째 시기를 시작했다. 이자테스가 죽은 것은 이 기간 동안의 주후 55년이었고, 헬레나는 아디아베네(Adiabene)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그후 바로 죽었다.]



5. 헬레나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굶주린 자들을 구제할 식량을 주다



 그러나 왕의 친 헬레나는 이자테스의 국정(國政)이 태평스럽고, 하느님의 섭리로 아들 이자테스가 행복하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사람들 사이에 매우 널리 알려진 하느님의 성전에 예배를 드리고 감사의 제물을 봉헌하기 위해서 예루살렘(Jerusalem)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헬레나는아들에게 그곳에 가도록 허락해 주라고 했다. 이자테스 왕은 모친의 뜻에 기꺼이 동의하고 모친의 여행 출발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였고 상당한 양의 돈도 주었다. 헬레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 장거리까지 아들 이자테스의 수행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헬레나의 예루살렘 방문은[㈜ 그레츠(H.Graetz)는 \”Zeit der Anwesenheit der adiabenischen Konigin in Jerusalem, unter der Apostel Paulus,\” \’Monatsschr. f. Gesch. u.. Wissen. d. Jud.\’ xxvi, 1877, pp.244-255와 289-306에서 주장하기를, 추측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바울은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가 머문 것은 바울에게 메시야 시대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어서, 이방인을 개종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믿음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곳 주민들에게 매우 큰도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때에 기근으로[㈜ 참). 대헤롯의 통치기에 유대 지역에 있었던 대 기근과, 제2의 요셉과 비슷하게 헤롯이 굽으로부터 곡식을 사옴으로써 자기 백성들을 안전하게 구원했다는 요세푸스의 설명을 참조하라(고대. 15권. 9 :1, 2(299-316). 행11 : 28에 의하면 아가보(Agabus)라고 하는 어떤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와서, 전 세계에 큰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사도행전 저자는 이에 그 기근은 글라우디오Claudius)통치시에 있었음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 기근은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기근인 것 같다. 행 11 : 29-30에서 판단해 보면 그 기근은 전 세계적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이 유대 지역에 부조(扶助)를 보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토레이(C.C.Torrey)는 \’The Composition and Date of Acts\’, 1916, p.21에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 기근을 \”그 땅\”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아람의 자료(Aramaic source)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그 땅\”은 보통 팔레스틴을 언급하지만, 누가는 잘못하여 자기 자신이(눅 2 : 1) 구레뇨(Quirinius)가 (\’팔레스틴\’)땅 모두가 아니라 \’천하에\'(pasan th;n o!ikoumevnhn )호적하라고 한 것을 언급했듯이, 누가는 실수로 \’그 땅\’이라는 것을 \’온 세계(o{lh hJ o!ikoumevnh)로 했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고대. 3권. 15 : 3(320, 321)에 언급된 그 기근이 본문의 기근과 동일한 것이라면<그러나, 태커래이(Thackeray)의 각주를 보라>, 그 기근은 주후 46년 아니면 47년 봄에 있었을 것이다<갑(K.S.Gapp), \”The Universal Famine under Claudius,\” \’Harv. Theol. Rev,\’ xxviii, 1935, p.261 주.11).] 주민들이 어려움을겪고 있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식량이 부족해서[㈜ 문자 뜻 그대로는 \”비용이 부족해서.\”] 굶어 죽었기 때문이었다. 왕후 헬레나는 종들 중 몇 명에게 돈을 주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갑(Gapp)이 p.258 이하에서 인용한 파피루스학적인(papyrological) 증거에 의하면 애굽도 역시 45년에 기근으로 고생했었다. 갑이 p.260에서 주장하듯이, 그 기근이 46년이나 47년까지 확대되었다면, 헬레나의 호의는 매우 큰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45년의 곡식 값은 로마 시기에서 이전에 기록되어 왔던 것의 최소한 두배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시우스(Orosius)가 \’Hist.\’ vii. 6, 12에서 언급하는 대로 그 기근이 수리아 전역에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헬레나는 곡식을 구하러 종들을 수리아로 보내지는 않았다(그러나 행 11 : 29-30)을 보라).] 보내어 많은 양의 곡식을 사게 하였고, 나머지 종들은 구브로(Cyprus)로[㈜ 구브로(Cyprus)에서 과일들이 팔레스틴에 규칙적으로 수입되었음을 알려주는 팔레스틴 탈무드, \’Demai\’ ii : 1을 보라, 참). A. Reifenberg, \”Das antike zyprische Judentum und seine Beziehungen zu Palastina,\” \’Jour. of the Pal. Or. Soc.\’ xii, 1932, pp.209-213.] 보내어 마른 무화과열매를 가져 오게 하였다. 그 종들이 식량을 가지고 도착하는 즉시 헬레나는 아주 신속하게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었고, 이러한 자선(慈善)은 후에 가장 칭송할 만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들 이자테스는 이와같은 기근을 통보받고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예루살렘 유지들에게[㈜ 탈무드 \’Baba Bathra\’ 11a에는 이자테스의 계승자인 모노바주스왕이 이 궁핍한 기간 동안에 자기 자신의 것 뿐 아니라 부친의 보고(寶庫)까지 모두 써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이 기근을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없었고, 팔레스틴에 대한 원조도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형들과 부친의 식구가-고대. 20권. 4 : 1(75)에 의하면 그들은 유대교로 개종했었다.-모노바주스에게 대표로 와서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돈을 저축하여, 조상들의 재산을 증식시켰는데, 너는 그것을 낭비하고 있구나\”라고 했다. 그는 대답하기를 \”내 조상들은 땅에 저장했지만 나는 위에(곧 하늘에)저축하고 있는 중이오\”(Soncino 편, M. Simon역).] 보내었다.

 헬레나는 이 돈으로 기근에 고통당하던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꽃 피었던 더 아름다운 선행은 이 다음에 다시 언급하겠다.[㈜ 이 약속은 성취되었던 것 같지 않다. 페터슨(H. Petersen)은 \”Real and Alleged Literary Projects of Josephus\”, \’Am. Jour. of Philol\’. 1xxix, 1958, p.273에서 말하기를 요세푸스는 자기가 이 계획을 성취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피라미드가 헬레나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언급하는 고대. 20권. 4 : 3(94, 95)를 언급한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들을 건축하는 것이 예루살렘에 있는 건축 노동자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는 점에서 유대인들에게 축복이기는 했지만, 이자테스와 헬레나에 의해 행해진 선한 행실과 이 곳에 언급된 선한 행실들-예로 들면, 고대. 20권. 2 : 5(51, 52)에서 언급된 기근시의 음식 배부등-이 유대인에게 더 직접적인 혜택을 부여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쉬나(Mishnah), \’Yoma\’ iii. 10으로부터 우리는 여왕 헬레나가 성전에 두 개의 선물을 증정했음을 알게 되는데, 그것들은 성소 출입문 위에 놓여 있던 황금촛대와, 의심받는 간음한 여인에 관해 다루는 토라(민 5 : 12-31)부분이 적힌 황금판이었다. 전쟁. 5권. 6 : 1(253), 6권. 6 : 3(355)에 의하면 헬레나는 예루살렘에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헬레나의 거룩한 땅(the Holy Land)체류에 관한 또 다른 상세한 설명은 탈무드 \’Sukkah\’ 2b에 나오는데, 그곳에는 헬레나가 룻다(Lydda)에 초막절 축제를 위해 수카(Sukkah)를 지었는데, 그것은 20규빗 이상이었고 장로들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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