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권 제 12장 결 론

 


제 12 장



결 론



1. \’유대고대사\’의 결론으로 요세푸스는 자신과 미래 저술에 대해 언급한다.



 로마와 유대간의 전쟁에 대하여 언급한 \’전쟁사\’에 이어서[㈜ 문자적으로는 \”내가 그 전쟁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한 후에.\” 그러나 \’유대전쟁사\'(Bellum Judaicum)는 \’유대고대사\’ 이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요세푸스가 의미하는 것은 \’유대고대사\’는 \’유대전쟁사\’가 시작하는 곳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술한 \’유대고대사\’를[㈜ 라쿠오이어(R. Laqueur)는 \’Der judische Historiker Flavius Josephus\’, 1920, p.5에서 \’유대고대사\'(Antiquities)에 대한 두개의 다른 판이 있었는데, 첫 번째 것은 고대. 20권. 12 : 1(259-266)과 자서를 생략하고 있고, 둘째 것은 고대. 20권 11 : 1(258), 12 : 1(267, 268)을 생략하고 있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그에 의하면 두 번째 판은 요세푸스가 그 반란에서 했던 역할로 인해 그를 공격했던 디베랴의 유스투스(Justus of Tiberias)에 의한 유대 전쟁에 관한 경쟁적인 이야기를 출판한 것에 기인한다고 한다. 따라서 요세푸스는 다른 화제로 넘어가기 위해 고대. 20권. 12 : 1(259-266)을 서론으로 다루면서, 그는 고대사에다 어떤 변명, 즉 그의 자서전을 부가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쯤에서 끝맺고자 한다. \’유대고대사\’는 창조로부터 네로 통치 12년까지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의 역사를[㈜ 문자적으로는 \”전승.\”] 기록했다. 즉 수리아와 팔레스틴[㈜ 참). 휠셔(G. Holscher)는 \”Josephus\”, Pauly-Wissowa, ix, 1916, pp.1956-1957에서 \’팔레스틴\’이란 용어는 요세푸스에게는 이곳을 제외하고 주후 70년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든지 요세푸스는 \’블레셋의 땅\'(the land of the Philistines)이라는 오래된 표현을 쓰고 있다. 참). 전쟁. 5권. 9 : 4(384).] 그리고 애굽에서 유대인들이 어떤 일을 겪었으며, 바사와 마게도냐와 로마인들이 어떻게 유대인들을 유린했는가를 담고 있다. 나는 \’유대고대사\’를 전반적으로 아주 정확하게 서술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나는 2천년 기간 동안의 유대 대제사장들을 열거하고자 하였으며 유대 왕들의 계보를 서술하였다. 그들의 행적과 정치행정 그리고 권력을 실수 없이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에관한 모든 기록은 유대의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유대고대사\’ 서두에서[㈜ 고대. 1권. 서문2(5).] 약속했던 내용이다. 내가 제안했던 본서를 완결하는 이때에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발췌문 : \”요약과 완성.\”]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유대의 고대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헬라인에게 이 책에 기록된 것만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모국어를 장기간 구사하는데 익숙하여져서[㈜ 혹은 \”우리 민족의 습관들에 익숙해져서.\”]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은 서툴다 하더라도[㈜ 요세푸스는 아피. 1권. 9(50)에서 \’유대전쟁사\'(Bellum Judaicum)를 쓸 때, 헬라어를 위해 몇 명의 조수를 고용했다고 말한다. 요세푸스의 헬라어 지식과 조수를 이용한 것에 관해서는 H. St. J. Thackeray, \’Josephus the Man and the Historian\’, 1920, pp.100-124를 보라. 그들 중에는 헬라어와 문학을 잘 알았던 랍비들을 포함해서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은 S.Lieberman, \’Greek in Jewish Palestine\’, 1942. 특히 pp.1-67에서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의 아버지가 2세기 초에 토라(Torah)를 공부하는 학생 500명과 헬라의 지혜를 연구한 학생 500명 등 1,000명의 문하생들을 거느렸다는 라반 가말리엘(Raban Gamaliel)의 아들 랍비 시므온(Simeon)의 진술은 특히 인상적이다(\’Sotah\’ 49b, 리버만이 p.20에서 인용). 탈무드 문헌에서 아마 1,500단어가 넘는 외래어인 헬라어가 쓰여진 것과 팔레스틴에 있는 유대인 묘비에 헬라어 비문이 유행한 것은 헬라어가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M. Hadas의 \’Hellenistic Culture\’, 1959, pp.35-39와 48-49를 보라.] 헬라시와 산문의[㈜ 혹은 \”학문.\”] 영역까지 열심히 연구하여 헬라 문법에 대한 지식까지 습득하게 되었다.[㈜ 혹은 \”작문까지 습득하게 되었다.\” 리챠드(G. C. Richards)는, \”The Composition of Josephus\’ Antiquities\”, \’Class. Quart.\’ xxxiii, 1939, p.36에서 그 의미는 \”나는 언어에 대한 학식을 암기함으로써 배웠다\”는 것이라고 한다.] 동족인 유대인들도 내가 유대에관한 지식이 있어서 자신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고있다.[㈜ 참). 자서. 2(9). 이곳에서 요세푸스는 단지 14살이었을 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유대 울법의 특수한 점들에 관해 자기에게 의견을 묻곤했다고 말한다.] 내가 유대는 수많은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인정되는 것처럼 모르드개(Mordecai)는 70개의 언어를 알았었다는 Mishmah, \’Shekalm\’ v.1참조.]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러한언어습득을 모든 자유인뿐만 아니라 많은 종들이 여러 나라 언어를 원하는 대로 배울 수 있는 것처럼 흔한 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에 정통하여 율법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한다. 이러한 연유로율법을 배우고자 커다란 인내로써 노력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즉시 그들의 수고에 대한 효과가 나타나는 사람은 두어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기록이 거짓이라고 증명하거나 혹은 그것이 사실이라고확증할 사람들이 아직 생존해 있으므로 이제 내가 간략하게 나의 가족과 내 자신의 행적을[㈜ 비록 쉬러(Schurer, I. 87)가 그 두 작품은 연관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언급은 요세푸스의 \’자서전\’에 관한 것인데, \’유대고대사\’에 포함되어 있다.] 다룬다 할지라도 불쾌한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나는 20권[㈜ 택커래이는 \’Josephus\’, p.56에서 \’로마고대사\'(Roman Antiquities, Rwmai+kh; !Arcaiologiva)라는 같은 제목이 붙은 할리카르나수스의 디오니시우스(Donysius of Halicarnassus)의 작품이 20권으로 구분된 것처럼, 20권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권장할만 하다고 한다.] 6만 여 절로[㈜ \’유대고대사\’는 니이제(Niese)의 구분을 따르면 7,375의 소단락으로 구성되므로, 평균 소단락이 8줄을 넘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 파노다 요세푸스의 원판에서는 줄(line)마다 글자 수가 다소 적었었다. 그렇게 줄을 계산하는 다른 목적들 중에는 필경가가 백 줄마다 댓가가 지불된다고 할 때 원본을 베낀 사람은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를 지시해 준다(Thackeray, ; Josephus\’, p.73. 이는 R. Harris의 \’Stichometry\’, p.26을 인용함). 그렇지만 보통 이러한 계산은 본문에서 하지 않고 원본의 끝에 따로 첨가되어 있다. Weinberger, \”Stichometrie\”, Pauly-Wissowa, 2. Reihe, iii, 1929, pp.2,487-2489를 보라.] 기록된 \’유대고대사\’를 끝맺으려고 한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앞으로[㈜ 혹은 \”한번 더.\”] 도미티안(Domitian)황제 통치 13년, 내 나이 56세인[㈜ 주후 93년 혹은 94년.] 그 때에 우리 역사상에 있었던 사건들과 함께 이전쟁에 관한 것을 간략하게 다시 다룰 것이다.[㈜ 피터슨(Petersen, 그는 이 점에 대해 H. Clementzdmll \’고대사\’ 독일어 번역판에서 예상했었다)은 앞의 책 p.260에서,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요세푸스의 자서전에 관한 것이며, \”우리의\”(our)라는 표현은 요세푸스에게서 흔히 나타나듯이 \”나의\”(my)를 대신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 피터슨은 이것을 지시해 주는 것으로, 요세푸스는 도미티안(Domitians)의 통치 연대 뿐 아니라 일반 역사서술이 아닌 자서전에 적당한 자기 자신의 나이도 기록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용한다. 그러나 분명히 요세푸스의 자서.를 언급하고 있는 고대. 20권. 12 : 1(266)에서, 1인칭 단수형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그가 여기에서 사용되는 1인칭 복수는, 전쟁에 대한 2권으로 된 연속적인 설명이 유대 백성들을 전쟁의 와중 속에 있도록 한 사건을 언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자서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 백성들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나이를 말하는 이유는 도미티안의 통치 연대를 말하는 것처럼, \’고대사\’의 완성 연대를 추정하게 해주는 단순한 한 방법인 것같다. 즉 요세푸스는 역사를 서술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자격들을 말해왔기 때문에, 자기 나이를 계속 인용함으로, 그 작품의 완성시기에 대해 알리는 것이 부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피터슨은 요세푸스가 유대 전쟁에 대한 또 다른 기사를 쓰려고 의도했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미 그것을 현존하지 않는 아람어 작품과 현존하는 헬라어 작품에서 서술했기 때문이며, 이 헬라어 작품은 요세푸스가 고대. 20권. 11 : 1(258)에서 그의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여기서 그 전쟁에 대해 계속적인 설명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 현존하는 작품보다는 훨씬 짧았을 것이다. 그러한 작품은 리비(LIvy)의 역사서와 같은 두터운 작품의 발췌문이 요세푸스 시대에 로마에서 상당히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현존의 상세한 작품보다는 훨씬 더 방대한 독자를 가졌을 것이다. 참). Martial xiv. 190). 그렇지만 그 자서전은 너무 개인적이고, 너무 간략하며 너무 허술해서 그 전쟁에 대해 연속적인 이야기로 부를 수는 없다.] 나는 또한 하느님과 하느님의 본성 그리고 율법에 따라서 왜 어떤 것들은 허용되었고 다른 것들은 금지되었는가에 대한 유대인들의 견해를 4권의 책에[㈜ 참). 고대. 1권. 서문4(25). 피터슨은 앞 글 pp.263-265에서, 이 작품을 이른바 \’아피온 반박문\'(Contra Apionem)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그는 아피온 반박문이 네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두 권으로 구성하려 했다는 것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요세푸스의 예언이 옳은 것으로 판명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둘을 동일시하려는 피터슨에 대한 실제적 반대는 \’아피온 반박문\’이 하느님의 본성(2권. 180, 188-192, 197)과 유대 법전(2권. 145-187)등)에 관한 논의는 짧으며, 그 작품의 중심 주제는 분명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뫼링(H.R.Moehring)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인 \’Novelistic Elements in the Writing of Flavius Josephus\’, 1957. pp.11-12에서 자신의 재구성을 그 작품에 대한 여러 언급에 기초를 두면서 이 언급들은 동일한 작품을 가리킬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이 작품의 내용에 대한 다음과 같은 개요를 제공해 준다 : 그 법의 범위(고대. 3권 94) ; 정치적 법령에 관한 법으로부터 분류된 \’상호관계\’에 관한 법(4권. 198, 302) ; 희생 의식(3권. 205) ; 모세의 법에서 어떤 것은 금지되었고, 어떤 것은 허락되었는가 하는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20권. 268) ;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3권. 259) ; 유대인들이 할례받는 이유(1권. 192) 진설병 놓는 상(3권. 230) ; 흉패(胸牌) 닦는 것의 금지(3권. 218) : 피타고라스파(Pithagoreans)와 에세네파 비교(15권. 371) ; 애굽의 이스라엘 사람들(아피. 1권. 92)(뫼링은 요세푸스가 아마 그의 작품 처음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본질을 논의하려 했다는 요세푸스의 진술을 생략했다). 이것으로부터 뫼링은p.12에서 요세푸스는 적어도 이 작품 윤곽을 생각했다고 그럴듯한 제안을 하고 있다.] 담아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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