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알렉산더의 상속자인 힐카누스가 왕관을 요구하지 않자 아리스토불루스가 왕이 된 것과 후에 그 힐카누스가 안티파테르와 아레타스의 지원으로 왕권을 되찾으려 하자 결국 폼페이가 형제들간의 분쟁을 중재하게 된 것에 대하여
1. 힐카누스 Ⅱ세가 아리스토불루스 Ⅱ세에게 왕위를 넘겨줌
알렉산드라는 죽기 전에 힐카누스에게 왕권을 위임하였기 때문에 힐카누스는 합법적인 계승자가 되었으나 아리스토불루스가 세력이나 능력에 있어서 힐카누스보다 우세했기 때문에 이둘 사이에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일전이 여리고(Jenicho) 근처에서 벌어졌다. 힐카누스의 군사들은 그를 버리고 아리스토불루스 편에 가담했다. 이에 힐카누스는 끝까지 자기편에 남아 있는 소수의 군사들을 데리고 안토니아로 황급히 피신하여 아리스토불루스의 처와 자녀들을 볼모로 잡고 자신의 신변보호를 꾀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일보직전에 이 두 형제는 극적으로 서로 타협을 보았다.
즉 아리스토불루스가 왕위에 오르며 힐카누스는 왕권을 포기하는 대신 왕의 친형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명예와 특권을 누리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화해는 성전에서 이루어졌다. 힐카누스와 아리스토불루스 형제는 많은 백성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다정스럽게 포옹하였다. 이들은 얼마후 아리스토불루스는 힐카누스가 지냈던 왕궁으로, 힐카누스는 아리스토불루스가 기거하던 사저로 그 거주지를 서로 바꾸었다.
2. 안티파테르가 아레타스의 도움으로 힐카누스를 다시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계획함
이와 같은 경위로 아리스토불루스가 예기치 않게 왕좌에 앉게되자 아리스토불루스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는데 특히 아리스토불루스와 뿌리깊은 반목이 있었던 안티파테르(Antipater)가 특히 두려워하게 되었다. 안티파테르는 이두매인으로서 그의 가계(家係)와 그가 누리던 부(富),그리고 그밖의 다른 잇점들 때문에 요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힐카누스를 설득하여 아라비아의 왕인 아레타스에게 가서 왕권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라고 부추기는 반면 아레타스에게는 힐카누스를 받아들이고 유대국의 왕위에 앉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안티파테르는 아리스토불루스의 도덕적인 문제들을 들어 그를 비난하고 상대적으로 힐카누스를 찬양하면서 아레타스에게 다음과 같이 사정하였다.
\”이렇게 광대한 왕국을 다스리시는 폐하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시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출생 서열로 보아 마땅히 승계해야 할 왕권을 부당하게 빼앗긴 힐카누스가 왕에 복위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안티파테르는 자기 의도대로 힐카누스와 아레타스가움직이도록 두 사람을 설득한 후 밤중에 힐카누스를 대동하고예루살렘 도시를 빠져나와 아라비아의 왕좌가 있는 페트라(Petra)라고 불리는 곳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안티파테르는아레타스를 만나 힐카누스를 그의 손에 맡기고 온갖 말로 그를 설득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많은 선물 공세까지 편 결과, 힐카누스가 왕위를 회복하는 데에 필요한 군대를 아레타스로부터 지원받는 데 성공했다. 이 군대는 50,000명이나 되는 막강한 보병과 기병으로[㈜ 고대. 14권. (19). \”보병외에도 50,000명의 기병.\”] 구성되어 있었기에 아리스토불루스는 처음부터 적수가 되지 못하여 첫번째 전투에서 예루살렘으로 퇴각하였다.만일 이때〔주전 65년〕로마 장군 스카우루스(Scaurus)가 이 전투에 개입해서 이 아라비아 군대의 포위망을 풀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리스토불루스는 단번에 잡혔을 것이다.
이 스카우루스라는 자는 톨레미 대제에 의하여 아르메니아에서 수리아로 파견되어 티그라네스(Tigranes)와의 싸움에 참전하였던 사람이었다. 메텔루스(Metellus)와 롤리우스에 의해 얼마전에 장악되었던 다메섹에 도착한 스카우루스는 그곳의 관리들을 파면시킨 후[㈜ 구절 (고대.에서는 생략)의 의미는 확실치 않음.] 유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해듣고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곳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3. 〔형 힐카누스에게서 독립하게 된 아리스토불루스〕
스카우루스가 유대 땅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힐카누스와 아리스토불루스는 각각 사신을 보내어 서로 자기를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스카우루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힐카누스의 정당한 주장보다 아리스토불루스가 보낸 300달란트의 돈이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불루스가 보낸 300달란트를 주머니에챙겨 넣은 스카우루스는 힐카누스와 아리비아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만일 아리스토불루스와 그의 군대를 둘러싸고 있는 포위를 풀지 않으면 로마군과 폼페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아레타스는 군사를 이끌고 유대로부터 빌라델비아로 철수하자 스카우루스도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리스토불루스는 포위된 상태에서 벗어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여 적군을 추적해 파피론(Papyron) 인근 지역에서 접전을 벌여 약 6,000명을 살해하였는데 이 가운데는 안티파테르의 형제 팔리온(Phalion)도 포함되어 있었다.
4. 두 형제가 폼페이에게 호소하다
동맹국 아라비아인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사라지자 힐카누스와 안티파테르는 아라비아의 반대 세력에 그들의 희망을 걸었다. 그리하여 폼페이(Pompey)가 수리아에 진입하여 다메섹에 다다르자 그에게 피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레타스에게 청원하였던 꼭 같은 청원을 폼페이에게 하였으나 그때처럼 뇌물을 바치지는 않았다. 그들은 폼페이에게 아리스토불루스의 포악성을 열거하고 나이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왕권의 계승자는 힐카누스가 되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하였다.
한편 아리스토불루스는 이를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스카우루스를 뇌물로 매수한 사실만 믿고 왕처럼 치장하고 왕처럼 행세하고 다녔다. 그러므로 아리스토불루스는 폼페이 앞에서 신하 노릇하는 것은 그의 존엄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그런식으로 비굴하게 찾아가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치욕으로 느끼고 디움(Dium)에서 발길을 돌렸다.[㈜ 유대 고대사에는 \”그는(다메섹으로부터) 디움(Dium) 으로 갔으며 그후 유대로 갔다\”로 나옴.]
5. 반항자 아리스토불루스는 폼페이와의 일전을 준비하다.
이런 아리스토불루스의 행위에 앙심을 품고 있는데다가 힐카누스와 그의 동료들의 절박한 요청에 굴복한 폼페이는 로마군대뿐만 아니라 수리아 함대의 지원을 받아 아리스토불루스 공격에나섰다. 폼페이의 군대는 펠라(Pella)와 스구도볼리(Scy-thopolis)를 통과하여 코레아(Coreae)라고 하는 곳에 당도했다.이 코레아라는 곳은 유대로 들어가는 변경이며, 지중해의 일부를 통과하면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당도했을 때 폼페이는 아리스토불루스가 알렉산드리움(Alexandrium)으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알렉산드리움은 강하게 무장되어 있는 요새로써 높은 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폼페이는 사람을 보내 아리스토불루스에게 그곳에서 내려오라고 명령하였다.
이 오만한 명령을 전해들은 아리스토불루스는 명령에 무력하 게 순종하기 보다는 차라리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백성 대다수가 아주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았고 또 그의 친구들은 로마군의 가공할 위력을 명심하라고 그에게 충고하였다. 이 충고를 받아들여 아리스토불루스는 요새를 내려와 폼페이를 찾아가서 장황하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자기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후요새로 되돌아 왔다. 그후 그는 형 힐카누스의 초청을 받고 다시 내려와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주장한 뒤 폼페이로부터 별 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요새로 철수하였다.
희망과 두려움이 뒤범벅된 아리스토불루스는 요새를 내려와서는 자신의 완전한 왕권 장악을 위해 폼페이를 설득시키려고,지위와 체면을 가리지 않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다가도 다시요새로 올라가서 자신이 체통에 맞지 않게 너무 비굴하게 처신한 것은 아닌가 하고 후회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폼페이는 마침내 아리스토불루스에게 그의 요새를 포기하라고 명령했으며, 각 요새의 사령관들은 아리스토불루스가 손수 쓴 명령서 외에는 어떤 서신 명령에도 복종하지 않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에게 요새 포기 명령서를 써보내도록 그에게 요구하였다. 아리스토불루스는 분노를 삼키며 폼페이가 하라는 대로 요새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철수했지만 그의 가슴은 적개심으로 불타올라 폼페이와 일전을 벌일 준를 하였다.
6. 폼페이는 예루살렘으로 진군함.
그러나 폼페이는 아리스토불루스로 하여금 전쟁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곧바로 그의 뒤를 추격하였다. 이런 폼페이를 더 서두르게 만든 것은 그가 여리고 근처에 도착했을 때 미드리다테스(Mithridates)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토양은 유대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며 팜과 발삼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날카로운 돌로 발삼나무 줄기에 흠집을 내어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진액을 모아 내다 팔았다.) 폼페이는 그곳에서 하룻밤만 진친 후 다음날 새벽 여명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죄어들었다. 아리스토불루스는 폼페이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접근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떨며 폼페이를 먼저 찾아가 애원하고 금품을 제공하고 자신과 예루살렘을 폼페이의 처분에 맡기겠다고 약속하여 폼페이의 분노를 겨우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그의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아리스토불루스 추종자들이 아리스토불루스가 약속한 돈을 받기 위해 파견된 가비니우스(Gabinius)가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