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제 14장 헤롯이 아라비아에서 쫓겨나자 서둘러 로마로 간 다음 거기서 안토니와 가이사가 그를 유대의 왕으로 세우는 합의를 얻어낸 것에 대하여

 


제 14 장



 헤롯이 아라비아에서 쫓겨나자 서둘러 로마로 간 다음 거기서 안토니와 가이사가 그를 유대의 왕으로 세우는 합의를 얻어낸 것에 대하여



 1. 아라비아의 왕 말리쿠스에게 자극받는 헤롯



 한편 헤롯은 아라비아로 가는 발길을 재촉하였는데 이는 아라비아의 왕으로부터 돈을 빌리려는 이유에서였다. 헤롯의 형이아직 살아있고 이 돈만이 야만인들의 탐욕스런 기질로부터 파사엘을 살려낼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만일 아라비아 왕이 자신의 부친과 그와의 우의를 잊어버리고 너무 탐욕스러워서 헤롯에게 돈을 공짜로 주지 않는다면 그래도헤롯은 자신의 형을 구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빌리고 담보로 구하려는 형의 아들을 아라비아 왕의 수중에 두려고 생각했다. 따라서 헤롯은 형의 아들을 대동했는데 이 아들은 7살이었다. 또헤롯은 형을 구하기 위해 300달란트를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두로인들(Tyrians)의 중재를 통해 이 돈이 전해지기를 바랬다.그러나 운명은 헤롯의 부지런함보다 더 빨리 다가왔다. 파사엘이 죽었기 때문에 헤롯이 형을 구해보려던 기도는 쓸모없이 되어버렸다. 그는 또한 아랍이 더 이상 그의 우방이 아님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아라비아 왕 말리쿠스(Malichus)가 즉시 헤롯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나라에서 나갈 것을 명령하면서 파르티아인들의 사신이 헤롯을 아라비아에서 내쫓으라고 부탁해서 헤롯을 포기한 것처럼 변명했으나 실상은 아라비아인들이 안티파테르에게 진 빚을 갚지 않고 안티파테르가 아라비아인들에게 거저 준 것에 대해 아들 헤롯에게 보답하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던것이다. 또한 말리쿠스는 비축해 두었던 것을 헤롯에게로부터 빼앗아야 한다는 자들의 뻔뻔스런 간언도 받아들였는데 이 자들은 아라비아에서 가장 능력있는 자들이었다.



2. 헤롯이 애굽으로 출발함



 이러므로 헤롯은 아라비아인들이 자신의 적이 되었음을 알았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가장 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격렬한 비난을 퍼붓고는 아라비아에서 돌아와 애굽으로 향했다. 그리고 헤롯은 그 나라의 한 신전에서 첫날밤을 묵었는데 이는 자신이 뒤에 남겨놓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다음날 헤롯이 리노코루라(Rhinocorura)로[㈜ 리노콜루라(Rhinocolura=el Arish). 애굽과 팔레스타인의 접경 지역인 해안 마을.] 향하던 중 전갈이 왔는데 그의 형이 죽었고 또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게 되었다.그 소식을 듣자 헤롯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형을 애도하고[㈜ 가장 우수한 사본 본문의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슬픔을 감내하며 여행을 계속했다. 그런데 얼마후에 아라비아의 왕이 헤롯에게 행했던 것을 후회하고 곧바로 사신을보내 헤롯이 아라비아로 돌아오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은헤롯을 만날 수 없었다. 헤롯은 펠루시움(Pelusium)에 당도해서 배를 타고 가려 했으나 배를 타도록 허락받지 못했다. 그래서헤롯은 배를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선장에게 간청하자 이들은 헤롯의 명성과 위엄을 보고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까지 태워다 주었다. 이에 헤롯이 알렉산드리아에 당도하여, 클레오파트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녀는 헤롯을 설득하여 막원정하려고 하는 그녀의 군대의 지휘관으로 앉힐 수 있을 것이라는 속셈에서 이렇게 잘 대접했던 것이다. 그러나 헤롯은 클레오파트라의 간청을 거절하고, 한 겨울의 위험과 이달리야에서 일어나는 소요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향해 출항했다.



 3. 헤롯이 로데스를 거쳐 로마로 감



 그러나 헤롯은 밤빌리아(Pamphylia)에서 풍랑을 만나 대부분의 뱃짐을 바다에 던지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은 끝에 로데스(Rhodes)에 가까스로 당도했으나 그곳은 카시우스와의 전쟁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헤롯은 그곳에서 톨레미와 사피니우스(Sappinius)라는 친구들에 의해 영접을 받았다. 비록 헤롯은 당시 재정적인 궁핍에 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갑판이 3층이나 되는 커다란 배를 만들어 친구들을 함께 태우고 브룬두시움(Brundusium)을 지나 전속력으로 로마를 향해 항해했다. 로마에서 헤롯은 맨먼저 안토니를 찾아갔는데 이는 헤롯의 부친과 안토니의 우의를 생각해서였다. 안토니를 찾아간 헤롯은 그에게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당한 재난들을 얘기하고, 또 가장 가까운 인척들이 요새에서 포위당해 있다는 것과 안토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폭풍에도 무릎쓰고 달려왔다는 것도 덧붙여 얘기했다.



 4. 안토니는 원로원에 압력을 가하여 헤롯을 유대왕으로 선포하게 함



 이에 안토니는 헤롯이 당한 일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헤롯이 당한 갑작스러운 불행에 대해 동정하기 시작했으며 또한 자신이 헤롯의 부친 안티파테르에게 얼마나 환대받았었는지를 회상하였다. 그는 더욱이 헤롯의 영웅적인 자질 때문에 더욱 연민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토니는 이전에는 분봉왕으로 임명하였던[㈜ 전쟁.1권. 12:5(244)] 헤롯을 이제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하기로 결심하였다. 헤롯에 대한 경탄 외에도 안토니는 평소 선동적인 인물이며 로마의 적으로 여기던 안티고누스와 헤롯이 경쟁 관계에 있다는 사실때문에라도 더욱 그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런 안토니보다 가이사가 헤롯에 더 관심을 가졌다. 가이사는 헤롯의 진취적인 성품을 바라보며, 헤롯의 부친 안티파테르가 가이사의 부친과 함께 애굽에서[㈜ 전쟁.1권. 9:3(187)] 전쟁을 할 때 얼마나 환대해주고 변함없이 충성했는지를 회상하였다. 그래서 가이사는 원로원을 소집했다. 거기에서 메살라(Messala)와 그후 아트라티누스(Atr-atinus)가 헤롯을 원로원들에게 소개하고 그의 부친의 공적과 로마에 보여준 헤롯의 호의를 설명하는 반면 안티고누스는 로마에 대적했을 뿐만 아니라 파르티아인들을 이용하여 정권을 탈취하려 했기 때문에 로마의 원수라고 말하였다. 이런 설명들로 원로원은 동요되기 시작했으며 이때에 안토니가 들어와서 헤롯을 왕으로 앉혀야만 파르티아인들과의 전쟁에서 큰 유익을 얻을 수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원로원 모두 이 제안에 찬성하였다. 그리고 원로원 회의가 해산되자 안토니와 가이사는 의사당 안에 남아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는 헤롯도 끼여 있었다. 행정장관들과 나머지 집정관들은 그들보다 앞서 나와서 제사를 지내고 원로원 의사당 안에 그 칙령을 비치했다. 안토니 또한 헤롯이정권을 가진 첫날에 그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주전 40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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