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장
가이사의 지시로 헤롯이 베리투스에서 자기 아들들을 고소한 것과 그들을 법정에 세우지도 않고 판결하여 조금 후에 세바스테로 보내 거기서 교수형에 처한것에 대하여
1. 살로메의 고발
두 아들에 대한 헤롯의 잔인한 응징을 더욱 충동질한 것은 바로 살로메였다. 그 이유는 아리스토불루스가 장모이자 고모인 살로메를 자신의 위험에 끌어들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살로메에게 사람을 보내 \”헤롯왕이 장모님을 처형할 준비를 하고 있으므로 생명을 보존하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에 장모님이 헤롯왕의 적인 아라비아인 실라이우스(Arab Syllaeus)와 결혼하여 왕의 기밀을 누설하려고 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참).전쟁. 1권. 24:6 (487).]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는 다시 헤어날 수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살로메가이 이야기를 들은 즉시 왕에게 달려가 고해버렸고, 이 말을 듣게된 헤롯왕은 분기 탱천하여 그들을 즉각 격리 구금토록 명령했다. 헤롯은 또한 군대장관인 볼룸니우스(Volumnius)와 그의 친구인 올림푸스(Olympus)에게 친서를 주어 가이사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로마로 항해하여 가이사에게 헤롯의 친서가 전달되자, 가이사는 헤롯의 두 아들에 대해서 심히 고민하게 되었고, 또 자신이 헤롯의 부친으로서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이같은 회답을 보냈다. \”헤롯왕이여, 내가 그대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합니다. 다만 자녀들을 그대의 친척들과 각 지방의 총독들을 배심원으로 하는 정당한 재판정에 세워 그들을 심문하고 판결을 내리도록 하시오. 그래서 아들들이 유죄로 확정된다면 사형에 처하도록 하고, 단지 그들이 도망치려고만 했다면 좀더 가벼운 벌을 내리도록 하시오.\”
2. 베리투스에서 열린 재판[주전 약 7-6년]
가이사가 보낸 명령에 순종하기로 한 헤롯은 그가 지정한 법정인 베리투스(Berytus)에서[㈜ 베이루트.] 재판을 열었다. 자리 배치는 가이사가 지시한 대로 했는데, 맨 앞 자리에 총독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주전 19년경. 전임 영사였던 수리아의 총독. 세티우스 사투르니누스(Setius Saturninus).] 페다니우스(Pedanius)가 앉고, 그 옆에는 그의 부관들과 행정장관인 볼룸니우스가[㈜ 그가 헤롯의 친구인 대사였는지는 불확실하다.(전쟁.1권. 27:1 (535)).] 함께 앉았으며, 그뒤에 헤롯왕의 친척들과 측근들이 앉게 되었다. 물론 살로메와 페로라스도 포함되었다. 그 다음에는 헤롯이 알렉산더의 장인인 아르켈라우스왕을 의심하여 초청치 않고, 그를 제외한 수리아전 지역의 유지들이 앉았다.[㈜ 그 당시의 갑바도기아는 수리아 총독의 감독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헤롯은 매우 음흉한 계략을 세웠는데, 즉 재판의 당사자격인 피고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그들이 법정 진술을 통해 유연하게 빠져나가거나 또는 배심원들의 동정을 살 것을 우려해 재판정에 출석치 못하게하고, 대신 시돈 부족 마을의 플라타네(Platane)에[㈜ 베이루트의 남부. 해안에 있는 라스 다무르(Ras Damur). 베이루트와 시돈의 중간 지점에 위치함.] 감금시켜 버린 것이다.
3. 왕자들의 유죄 판결
시간이 되어 재판이 열리자 헤롯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두아들들이 앞에 있는 것처럼 신랄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헤롯은 그들이 왕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었으므로 별로 호소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헤롯은 두 아들들이 자기를 비웃고, 비방하고 음해하려고 할 뿐 아니라 수만 번 죄를 저질렀다고 강변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의 아들들이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고, 헤롯은 자식들을 정죄하는 것이 마치 자신을 정죄하는 것처럼 꾸며 사람들의 동정을 사려고 햇다. 이윽고 배심원 각 사람의 판결에 따르면, 맨 처음 사투르니누스는 \”나는 당신의 두 아들들이 유죄라고 판결은 하지만, 사형만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나 자신이 세 아들들을 둔 입장에서 남의 아들을 죽이는 데 찬성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고, 여기에 그의 두 부관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이 뜻을같이했다. 그러나 갑자기 상황이 돌변했는데 그 이유는 볼룸니우스가 그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나서부터 그 뒤모든 사람들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찬성했던 것은 헤롯왕에게 아첨하기 위해서나 또는 그를 미워해서이지 그아들들의 죄에 대한 적개심 때문은 아니었다. 이에 수리아와 유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비극의 마지막이 어찌될지 매우 궁금해 하여 기다리면서도 헤롯왕이 정말 자신의 아들들을 사형에처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간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한편 헤롯은 배로 그의 아들들을 두로(Tyre)를 거쳐 가이사랴에 끌고가면서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했다.
4. 노병 티로의 행동
헤롯의 군대에 오래 근무한 병사 중에 티로(Tiro)라는 사람이있었는데, 그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었다. 그 아들은 알렉산더와 친구로서 두 형제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티로는 헤롯왕이 아들들을 죽이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하는 사실에 분노하여 정신나간사람처럼 거리를 떠돌면서 \”이 땅에 정의는 짓밟혔고, 진리는간 곳 없고, 자연 또한 뒤죽박죽 되었도다. 세상은 불법이 횡행하고 자신의 생명 또한 파리 목숨처럼 가벼이 생각하는구나\” 라고 외치고 다니다가 마침내 헤롯왕 앞에 나아가 이같이 말했다.\”제 생각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바로 왕이십니다. 아주 흉악한 무리들의 말만 듣고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려 하는것은 잘못입니다. 전에는 얼마나 페로라스와 살로메를 처형하려고 하셨습니까?\” 그들이 왕의 아들들과 그렇게도 원수처럼 지냈었는데, 또 그들이 왕의 아들들을 죽이고 안티파테르로 하여금왕이 되게 하여 그를 배후 조종하며, 권력을 잡으려는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만일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처형하게 되면 병사들이 마리암메의 두 아들들을 동정하여 안티파테르는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지휘관들이 그들의 불만을 드러내놓고 털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는 이러한 불평분자들을 일일이 열거했다. 그러나 헤롯왕은 즉시 티로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가 열거한 자들을 모두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5. 이발사 트리포의 행동
그때 궁정 이발사 중에 트리포(Trypho)라 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도 이상한 광기에 사로잡혀 미친 사람처럼 날뛰면서 이같이 외쳤다. \”나 역시 티로가 매수하기를 왕을 이발할 때 면도기로 그의 목을 자르면 알렉산더에게서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티로와 그의 아들과 이발사에게 고문을 가했다. 티로와 그의 아들은 그 사실을 부인했고 다른 죄가 전혀 없다고 말했으나 헤롯은 더욱 심하게 티로를 고문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동정에 못이겨 그의 아버지를 용서해 준다면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노라고 왕에게 아뢰었다. 헤롯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티로의 아들은 알렉산더의 간교한 말에 넘어가 왕을 살해하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진술에 대해 몇몇 사람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고통에 못이겨 꾸며낸 것이라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일축했다.
6.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처형
헤롯은 티로와 그와 관련된 지휘관들을 백성들 앞에 소환한후에 그들을 직접 처형토록 했다. 이에 백성들은 현장에서 그들과 이발사를 막대기와 돌로 쳐죽였다. 헤롯은 또한 그의 아들들을 가이사랴에서 멀지 않은 도시인 세바스테(Sebaste)에[㈜ 사마리아] 보내어 그들을 교수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명령은 즉시 실행되어 그 시신들은 알렉산드리온(Alexandrion) 요새에 옮겨 그들의 외조부 알렉산더 곁에 매장토록 했다. 이렇게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는 종말을 맞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