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권 69년간의 사건을 다룸
대헤롯의 죽음부터 네로가 유대인을 정복하라고 베스파시안을 파견할 때까지
제 1 장
아켈라오가 헤롯의 장례식을 치루며 백성들에게 후하게 대접했으나 그후 백성들이 큰 소동을 일으키자 군인들을 출동시켜 약 3,000명을 죽인 것에 대하여
1. 아켈라오의 왕위 계승과 약속 [주전 4년]
[㈜ 전쟁. 2권. 1:1(1-3) ; 고대. 17권. 8:4 (200-203).]
한편 아켈라오 자신이 필히 로마에 가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아켈라오는 헤롯왕의 장례를 위해 7일간의 애도 기간을 마치고, 조문객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푸짐하게 대접한 후에 (이러한 유대관습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되었는데, 장례식에 풍성하게 접대하는 것을 의무로 여겼기 때문에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는 것은 경건치 못한 행동이 된다) 흰 옷으로 갈아입고 성전에 나아가니 거기에 있던 백성들이 그를 환호하며 맞아들였다. 아켈라오는 금으로 만든보좌에 올라가 백성들에게 답례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들이 부친의 장례식에 보여준 정성어린 조의와 또 아직 왕으로 확정된 것도 아닌데 왕으로서 경의를 표해 주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부친의 유언장에 기록된 모든 권한을 승계한 자로 가이사에게 재가받을 때까지는 권위를 행사하거나 호칭 또는 왕권을 행사하는 것은 피할 것입니다. 그랬기에 병사들이 여리고에서 내 머리에 왕관을 씌우려 애썼을 때에도그들을 극구 만류하며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로마의최고 권력가이신 가이사께서 나를 왕으로 분명히 선포하신 후,병사들에게와 백성들이 보여주신 성원에 진심을 다하여 충분하게 보답할 것입니다. 왜냐면 나는 아버지께서 다스리던 때보다 더 충실하고 열심히 다스리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유대인들의 요구
아켈라오의 이러한 선포를 듣고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의 의향을 떠보기 위해 많은 요구 사항들을 제시하였다. 사람들은 제각기 조세 감면이나 다른 세금들의[㈜ 고대. 17권. 8:4 (205)에 보면 판매에 대한 세금.] 폐지, 또는 죄수석방을 소란스럽게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 아켈라오는 백성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기꺼이 승낙했다. 그후 그는 제사를 지낸후에 친구들과 함께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헤롯에 대한 애도의 기간 동안 침묵을 지키던 혁명(revol-ution)을 원하는 수많은 군중들은 저녁이 되자 한자리에 모여헤롯이 성전문 위에 있던 금 독수리상을 부숴뜨린 죄목으로 처형시킨 사람들의 운명을 애통해하면서 그들 임의로 애도 기간을 갖기 시작했다.[㈜ 유다, 마티아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 전쟁. 1권. 33: 2-4(655).] 그들의 애통하는 소리는 간장을 녹이는 듯했고,또 집단적으로 울었기에 온 시내가 떠들썩했다. 그들은 헤롯에게 불행을 당한 사람들은 그 나라의 율법과 성전을 수호하는데밑거름이 되었노라고 단언하는가 하면, 순교자라고 칭송하는 한편, 헤롯과 결탁했던 자들은 복수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또 그가 대제사장으로 임명했던 자를[㈜ 요아살, 고대. 17권. 6:4 (164).] 쫓아내고 더욱 더 경건하고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인물을 선택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3. [아켈라오가 유대인들을 무력으로 진압함]
이같은 소란으로 아켈라오는 크게 화가 났지만 로마 방문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에 반역자를 처벌하는 것을 연기시켰다. 만약 소요 주동자들을 처벌한다면 대대적인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이고, 만일 그렇게 되면 그의 로마 방문은 연기가 불가피하였기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강압적으로 다스리기 보다는 비밀리에부하[㈜ 혹은 추측컨대 \’성전의 대장\'(성전 맡은 자) 행 4:1.]들을 보내 설득을 통해 그들 스스로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켈라오의 부하들은 성전에 발을 들여놓고 말도꺼내보기 전에 과격시위자들의 무차별한 돌 세례를 받고 쫓겨나고 말았다. 이에 아켈라오는 다른 사람들을 보냈으나 전과 같이 쫓겨나야 했고, 또 적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보내어 진정시키려했으나 그럴 때마다 유대인들은 켤코 물러서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난폭한 행동으로 일관했다. 그런데다가 절기 의식을 통해제사를 드리는 유월절(passover)이라 하는 무교절[주전 4년 4월]이 가까와 오자 각처에 있는 수많은 무리들이 제사드리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러한 와중에 몇몇 사람들이 성전에서 헤롯에게 처형당했던 두 랍비를 위해 애도하면서 모반을 일으키기 위한 자금을[㈜ 헬라어로는 \’먹을 것\’ 고대. 17권. 9:3(214)에 나오는 병행구절에서 저자(요세푸스의 조수)는 \’그들은 음식을 구걸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반역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음식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마련키 위해 모금 활동을 했다. 이에 크게 당황한 아켈라오는 이 전염병과 같은 사태가 온 백성들에게 퍼질까 봐서그것을 무력으로 신속하게 진압하려고 군단지휘관(tribune)에게 일개 보병대(cohort)를 보내 주동자들을 색출하여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유대백성들은 자신들을 진압하기 위해군대가 나선 것을 보고 흥분하여 격렬한 투석전을 전개한 결과지휘관만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을 뿐 나머지 그의 부하들은 거의 모두 돌에 맞아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요자들은 별 일이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제사 의식에 다시 열중하였다. 이에 아켈라오는 이 폭도들에게서 피흘림이 없이는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전 군대를 총출동하여 보병은 시내 정면으로 공격하고 기병은 평지로 우회 공격하도록전술을 짜고 이를 각 부대에 하달하였다.[㈜ 보병들이 그 성의 남서부에 위치한 궁전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성전에 이르기까지 직선으로 돌파하는 동안 기병들은 성벽의 외곽, 성의 남서부를 둘러 있는 평야를 통해 이동함.] 아켈라오의 병사들은 유대백성들이 각종 제사에 열중하고 있는 틈을 타 습격하여 3,000여명을 살해하자 나머지는 근처에 있는 산으로 황급히 도망갔다. 아켈라오는 그들에게 사신을 보내 모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모든 절기 행사를 포기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