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바루스가 유대의 소요를 진압하고 소요를 일으킨 2,000명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에 대하여
1. 바루스가 사비누스를 구출하러 진군하다
바루스는 사비누스와 그의 장교들로부터 전보를 받은 즉시 전체 군대를 소집하여 구출을 서둘렀다. 그에 따라 남아있는 기병연대[㈜ 대개 500마리의 말을 단위로 구성된 보조 기병 연대. 120마리의 말로 구성된 기병 대대와는 확연히 구별되어짐. 전쟁. 3권. 6:2(라이나흐).] 넷을 휘하에 둔 두 군단을 동원하고, 왕들과 지휘관들에 의해 유지되는 예하 부대를 같은 장소에 소집한 후 톨레마이스(Ptolemais)를 향해 진군했다. 베리누스(Berytus)를[㈜ 베이루트.] 가로질러 가는 길에, 그의 군대는 그 도시로부터 징집되어 1,500명 쯤이 더 증원되었다. 헤롯에 대한 증오를 기억하여, 상당한 수의기병과 보병을 데려온 아랍의 아레타스 왕(Aretas the Arab)뿐아니라 또 다른 생각지도 않은 동맹국들과 연합하게 되자 사비누스는 톨레마이스 일원을 관할하고 있는 친구 가이우스에게 편지를 보내 허락받은 후 톨레마이스와 인접한 갈릴리 지방에군대의 일부를 진입시켰다. 가이우스는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모두를 무참히 짓밟고, 포로로 잡았으며, 세포리스(Sepphoris)시를 태웠으며 거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던 인물이다. 그후 바루스는 직접 주력 부대와 함께 사마리아 지역으로 진군했다. 그는 사마리아는 전혀 소요가 없었음을 발견하고는 조금도 피해를 입히지 않고 아루스(Arous)라고[㈜ 위치 미확인.] 불리는 마을 근처에 진을 쳤다. 그리고 나서, 그는 또 다른 요새 마을인 사포(Sappho)로[㈜ 불분명 : 고대. 17권. 10:9 (290)에는 삼포(Sampho)로 나옴.] 진군했다. 그런데 그들은 행군하는 길에 마주친 인접 마을 모두를 약탈한 것처럼 거기서도 약탈을 자행하였다. 전 지역이 불에 타고 선혈이 낭자하였다. 아랍인들의 약탈에는 어떤 것도 안전하지 못하였다. 주민들이 벌써 달아나버린 엠마오(Emmaus)는바루스의 명령에 의해 아리우스와 그의 부하들을 살해한 데 대한보복으로 기초까지 다 태워졌다.[㈜ 전쟁. 2권. 4:3(63) 엠마오(Emmaus)는 틀림없이 유대 언덕 기슭에 있는 현재 지명은 암와스(Amwas)이며, 한 때는 니고볼리(Nicopolis)라고 했던 이 엠마오는 눅24:13에 언급된 예루살렘에서 가까이에 있는 그 엠마오가 아니다. 룻다(Lydda)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2. 바루스가 예루살렘의 폭동을 진압하다
그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바루스는 자신이 유대 진영들을 해산시키기 위한 군대의 우두머리임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유대 진영에 있던 이들은 모두 달아났지만 예루살렘에 있던유대인들은 바루스를 맞이하고, 그들은 스스로 소요를 일으킨 적이 없고, 그 축제는 군중들이 모이게 마련이며, 그들이 반역자로서 무리를 지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인들에 의해 포위당했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소요의 책임을 부인했다. 이 일에 앞서바루스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 아켈라오의 사촌 요셉을[㈜ 헤롯의 형제 요셉의 아들인 요셉. 그는 여리고에서 살해당하였다. (고대. 18권. 5:4(134), 전쟁.1권. 17:1(323)이하).] 통해왕실 군대와 세바스테인들의 군대를 맡고 있는 루푸스(Rufus)와 그라투스(Gratus)를 만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바루스와 마주하기를 꺼리는 사비누스는 이전에 해안쪽으로 예루살렘을 떠났기 때문이다. 바루스는 이제 그의 군대를 각지에 보내 소요의주동자를 찾도록 하였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왔다.소요에 가담한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사람들은 감옥에 보내고,깊이 가담한 약2,000명은 십자가형으로 처형하였다.
3. 바루스가 이두매에서도 소요를 진압하다
바루스는 이두매에 10,000명 정도가 아직 무장한 상태로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아랍인들은 동맹국답게 행동하지 않고, 오해려 자기들의 사적인 분노를 만족시키기 위해 전쟁을 하며 헤롯에 대한 증오 때문에 그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시골 지역에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알고 바루스는 그들을 해산시키고,자기의 군대를 거느리고 급히 반역자들에게로 갔다. 그들은 아키압(Achiab)의 충고에 따라 순순히 항복하였다. 바루스는 계급대로 분류하여 주동자를 가이사에게 재판해 달라고 보냈다.가이사는 왕족을 살인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용서해 주었다. 이리하여 예루살렘에 질서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바루스는이전에 주둔시켰던 곳에 주둔군으로서 군단을 남기고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