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장
기스칼라의 요한에 대하여, 그리고 요세푸스는 요한이 자기를 빠뜨리려는 함정에서 책략으로 빠져나와 반란을 일으켰던 몇 도시들을 원상 회복시킨 것에 대하여
1. 기스칼라 태생 요한의 음모와 공격
요세푸스가 갈릴리 행정에 힘쓸 때에 기스칼라(Gischala) 출신의 한 반역적인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레위의 아들로 이름이 요한이었다. 그는 그 지방의 악명 높은 다른 여러 사람보다 아주 교활하며 망나니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악한 기질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처음에는 가난하였다. 돈이 없었으므로 그의 악한 계획들을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천부적인 거짓말쟁이였고, 그의 거짓말로 신임을 얻게 하는데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을 속이는 것을 일종의 미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와 가장 친한 사람까지도 속였다. 그는 위선적으로 인간적인 체했으나 그에게 이익이 있을 때는 피 흘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요한에 대한 묘사(자서전에서 그를 묘사한 것보다도 더 흉악한)는 살루스트(Sallust)의 타락한 반역자<Catiline(로마의 귀족 Catilina에서 유래함-역자주)>의 묘사를 회상시킨다.] 그의 천박한 속임수를 통해 그의 기대가실현되자 그의 야심은 커져갔다. 요한은 도둑질에도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 그는 염치없는 일을 하면서도 얼마 동안은 동지 몇 명을 확보했다. 처음에는 소수였지만 악한 일을 진행시키면서 그 수가 많아져 갔다. 그러나 아무나 그들의 사기극에 끼워준 것은 아니고,특별히 신체가 건강하고 용감무쌍하여 무술이 뛰어난 사람들만 뽑았다. 그래서 그는 주로 두로 지방을 떠나와 각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불량배들 400명으로 일개 부대를 편성하고 갈릴리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여서 그들을 없애버릴 전쟁이 터지기를 기다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2. 요세푸스에 대한 요한의 적의
요한은 일찍이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서보고 싶었으나 자금력이 달려서 그의 야심은 억제되어야 했다. 그러나 요세푸스가 요한의 활동적인 성격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자 그는 처음에는 자기 고향(기스칼라)의 성벽을 수리하는 것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요세푸스를 설득했다. 그는 이 공사를 하면서 부유한 주민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아냈다.[㈜ 자서.13.(71) 이하를 따르면 요한은 요세푸스의 동료들로부터 북쪽 갈릴리에 저장된 제국의 식량을 팔도록, 그리고 Gischala 성벽의 보수 작업에 헌신하도록 허락받았다.] 그는 또 아주 간교한 수법을 고안해 내었는데, 수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본국에서공급되는 공인된 기름만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요세푸스에게그 기름을 국경으로부터 수리아 유대인들에게 운송하여 공급할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여 허가를 얻어냈다. 그래서 요한은 4아틱(Attic)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두로 화폐로 4암포라(amp-horae)의 기름을 사서 같은 가격에 반 암포라 씩을 팔았다.[㈜ 자서. 13(74) 이하의 이야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외국산 기름의 사용금지로부터 제외된 사람은 수리아의 모든 유대인들이 아니라, 명령에 의하여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의 제한된 사람들뿐이었다.「자서전」에서 요한은 10대1의 비율로 이득을 보았다. 여기서는 8대1의 비율로 이득을 본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갈릴리는 기름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었는데 특히 그 당시는 더많이 생산되었다. 그는 판매독점권을 가졌으므로 많은 기름을 운반하여 엄청난 돈을 모았는데, 이 돈은 곧 그에게 큰 돈을 벌게 해준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되었다. 요한은 요세푸스를 제거한다면 자신이 갈릴리 통치권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둑질하는데 아주 흥미를 느끼는 그의 부하들인 강도들에게 그 어느때보다도 강력하게 난동을 피우라고 지시하고, 혹 요세푸스가그 지역을 구원하러 온다면, 자기가 매복하였다가 그를 제거할 방책을 생각해낼 것이며, 혹 요세푸스가 도적떼에 대한 대책 수립을 소홀히 한다면 요세푸스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비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요한은 요세푸스가 동족을 배반하고 로마에 갈릴리의 통치권을 넘겨주었다는 소문을 원근에 퍼뜨리고 그를 망하게 하려는 많은 음모를 꾸몄다.
3. 다바리타(Dabarittha)의 사건과 아그립바의 분실한 물건 들
이 무렵 다바리타(Dabarittha) 마을[㈜ 구약성경의 Daberath은 현지명으로 Deburieh인데 다볼산의 서쪽 경사지 아래에 있다. \”대평원\”은 에스드라엘온(Esdraelon) 평원을 가리킨다. 참). 자서. 26(126) 이하에서의 병행이야기.] 젊은이들이 대평원(the great Plain)에 매복해 있다가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Ber-nice)의 청지기였던[㈜혹은 \”재정 관리인.\”] 톨레미(Ptolemy)를[㈜ 자서. 26(126)에는 톨레미(Ptolemy)의 아내.] 덮쳐 그가 가진모든 것들을 탈취했다. 이중에는 수많은 고급 의복들, 적잖은 은잔들, 600[㈜ 500, 자서.26(127)]개[㈜ 불명확함:\”Stater(옛 그리스의 금화이름)\” (Reinach).]의 금화가 있었다. 젊은이들은 탈취한 것들을 비밀리에 처분할 수 없었기에 타리카이아(Tarichaeae)에 있다고 요세푸스에게 모두 가져왔다. 여기서 요세푸스는 그들이 왕과 여왕을 모독했다고 책망하고 물건들을 타리카이아 최고의 유력인사인 안나이우스(Annaeus)에게[㈜ 자서.26.(131)에 따르면 아그립바의 친구 Dassion과 Jannaeus임.] 가지고 가서 보관시켰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원 주인들에게 물건들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이런 행동은 그를 큰 위험에 빠지게했다. 물건을 탈취했던 자들이 요세푸스에 대해 분개하였다. 그들이 얻었던 것들을 자신에게 분배하지 않고, 미리 요세푸스의 의도를 알아보고자 한 것뿐인데, 요세푸스는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것들을 마음대로 아그립바 왕과 왕비에게 넘겨 주려 하자 화가 난 것이다. 이에 이들은 밤에 마을을 빠져나와 요세푸스가그들을 배반하려 하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또한 이들은 모든 인근 도시까지 가서 큰 소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하자 아침에 100,000명의 무장한 사람들이 타리카이아(Tarichaeae)로 쳐들어 왔다. 이 무리들은 타리카이아의 경기장에서 모여 그에 대해 항의하며 아우성쳤다. 어떤 이는 그 반역자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소리치고 또 어떤 이는 그를 화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요한은[㈜ 요한은 자서.에서 언급되지 않음.] 디베랴(Tiberias)의 통치자였던, 사피아스(Sapphias)의아들인 예수와 함께 군중들을 선동했다. 그때 요세푸스의 동료들과 그의 호위병들은 군중들의 갑작스런 습격에 놀라서 4명만[㈜ 자서.28(317)에서는 한 명 (Simon).] 빼놓고 모두 도망쳤다. 요세푸스가 잠들어 있는데, 무리들이 집에 불을 지르려고 하자 남은 4명은 요세푸스에게 도망가라고 했으나[㈜ 시몬은 요세푸스에게 자결하지 말 것을 충고함. 자서. 28(137).] 그는 그 자신이 버림받은 것과 많은 군중이 자기에게 몰려온 것에 대해서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그의 옷을 찢고 머리에재를 뒤집어 쓰고 그의 손은 머리 뒤로 젖히고 그의 목에 칼을걸고 군중 앞으로 뛰어나왔다. 이 광경을 보고 요세푸스의 동료들과 특히 타리카이아의 주민들은 그의 처지를 동정했지만, 요세푸스 정권에 염증을 느꼈던 인근 마을과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면서 즉각 그들의 돈을 내놓으라고 했으며 또한요세푸스가 그들을 배반하려 했다고 고백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그가 이렇게 차려입고 나타난 것 즉 온통 동정심을 일으키는차림을 한 것을 보고 자기들이 의심했던 것을 시인하고 사죄를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나타난것은 그의 전략적인 계략일 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그에게 분노한 사람들 사이에서 분란을 일으킬 심산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고백하겠다고 약속하고 허락을 받아 말하기를\”나는 이 돈을 다시 아그립바에게 보낼 생각도 없었으며, 내 자신이 착복하고자 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해가 되는 일이 내게 이익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들 타리카이아의 백성들이여 나는 여러분의 도시가 다른 요새들보다도안전도에 있어 더 뒤떨어져 있으며, 성벽을 쌓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또한 디베랴와 다른 도시의 주민들이이 약탈물들을 탈취해 가려는 음모를 꾸미지 않나 걱정하여 이 곳의 성벽을 쌓을 비자금으로 마련해 두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만일 여러분이 이것을 기쁘게 생각지 않는다면 나는 내게 가져온것들을 내놓고 여러분들이 이것을 약탈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여러분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 행동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의 은인을 벌하지 마십시오.\”
4. [비난하는 자들에 대한 요세푸스의 변호]
이 말을 들은 타리카이아 주민들은 그를 매우 칭찬했다. 그러나 디베랴와 그외의 곳에서 온 사람들은 요세푸스를 욕하며 해치워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양쪽은 요세푸스와 논쟁하던것을 멈추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타리카이아 주민인 약 40,000명 정도의 동료를 가진 것을 믿고 요세푸스는 대담해져 모든사람들에게 더 자유스럽게 그들의 무분별함을 크게 책망하며 말했다. 요세푸스는 이 돈을 가지고 타리카이아 주변에 성벽을 쌓고 다른 도시도 안전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그들이 동의만 한다면 요새 강화에 필요한 자금은 즉시 마련할 것이므로 그 자금을 공급할 사람(요세푸스-역자2주)을 난폭하게 공격하는 사람은, 이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 혹은 아마도 \”그들이 대비해야 하는 적들을 대항하는데 요세푸스와 연합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타리카이아 사람들의 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요세푸스의 대응]
이에 현혹된 군중들은 매우 흥분해 있으면서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 중 화가 난 2,000명[㈜ 600, 자서. 30(145).] 정도는 무장하고 요세푸스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요세푸스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고 무리들은 그냥 서서 그를 위협하기만 했다. 이때 요세푸스는 그들을 피할 두번째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집 꼭대기로 올라가서 손짓으로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 그들이 너무 소란스럽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으므로, 그들이 그와 조용히 담판할 대표들을 구성해 자기에게 보낸다면,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말을 듣고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과 행정장관들을 요세푸스의 집으로 들여보냈다.[㈜ 자서.30(147)에서는 한 명의 사절이 파견된 것으로 기술됨 : 그는 매질당한 것 외에 한쪽 손을 잘렸고 그리고 목에 (잘린 손이)매달렸다.] 그는 그때 집의 가장 외진 곳으로 그들을 끌고와 방문을 닫고 뼈가 드러나 보일 때까지 그들을 심히 매질했다. 그러는 동안 군중들은 집주변에 서서 둘러서서 그들이 요세푸스에게 원하는 것들에 관해그들의 대표와 요세푸스 사이에 담화가 길어진다고 생각했다. 요세푸스는 그때 갑자기 문을 열고 그 사람들이 온통 피투성이인 채로 보냈는데 전에 그를 위협했던 무리들은 매우 놀라서 그들의 무기를 버리고 도망했다.
6. [요한이 요세푸스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요한의 악심은[㈜ 혹은 \”시기\”임. 이 장과 다음 장(전쟁.2권. 21:3-5(595-613)에 기록된 디베랴에서 일어나 사건은 병행구절인 (자서.16-21(84-103))에서는 타리카이아(Tarichaeae) 사건 전에 위치한다. 자서전에서 요한은 요세푸스가 인기가 있기 때문에 시기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맥은 어떤 그러한 연결점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서전이 전쟁사보다 오래된 작품이라고 하는 Laqueur의 이론을 뒷받침 해준다고 주장한다.] 깊어만 갔고 요세푸스에 대해 제2의 음모를 꾸몄다. 그리하여 그는 아픈 체하고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러 디베랴(Tiberias)에 있는 온천에 가기 위해그에게 휴가를 달라고 편지로 요세푸스에게 요구했다. 이에 요세푸스는 그에 대한 요한의 음모를 의심하지 않고 디베랴 지사에게 편지를 써서 요한을 위한 숙박과 편의시설을 제공하라고 했다. 그는 이런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는 이틀만에 사건을 일으켰다. 어떤 사람은 기만적인 술수로 또 어떤 이들은 돈으로 매수되었으며 그들에게 요세푸스를 반역하도록 설득했다. 이때 요세푸스가 도시의 감시인으로 임명한 실라(Silas)는 급히 그에게 서신을 띄워 그에 대한 음모를 알렸다. 요세푸스는 이 서신을 받고[㈜ 그는 그때 카나(Cana)에 있었다(자서.16(86)).] 밤새껏 행진해 이른 아침에 디베랴에 도착했다. 그때 요한을 제외한 나머지 군중들은 그를 맞으러 나와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요세푸스가 온 것이 그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해서 그의동료 중 한명을 보내어서 그가 아픈 체하고 침대에 틀어박혀서요세푸스에게 경의를 표하러 올 수 없다고 알렸다.[㈜ 자서. 17(91)에서 요한은 요세푸스를 만나려고 직접 갔다. 그러나 서둘러 물러났다.] 그래서 곧요세푸스는 디베랴 주민들을 경기장에 모으고 그가 받았던 편지에 관해 그들과 대화하려고 했다. 요한은 비밀히 몇몇 무장한 사람들을 보내 요세푸스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무장한 사람들이 칼을 뽑으려고 할 즈음에 그제서야 음모를 깨닫고 소리쳤다. 이 외침을 듣고 요세푸스가 돌아보았을 때 칼은 바로 그의 목에 닿아 있었다. 요세푸스는 6규빗(cubit)이나 되는 연단(演壇)에서 뛰어내려 호숫가로 달려갔다. 그는 항구에 있는 배를 잡아 타고 2명의 호위병과[㈜ 그의 경호원인 야고보(James)와 디베랴의 한 시민인 헤롯은 요세푸스의 동료였다. 자서. 18(96).] 함께 호수 가운데로 도망했다.
7. 요세푸스가 요한의 추종자들을 해산시킴
한편 요세푸스의 병사들은 즉시 무장시키고 음모자들에게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소수의 사람들이 시기심 때문에 민란이 일어나서 도시가 파괴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그의부하 몇 사람을 보내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하는 이상의 행동을 하지 말도록 그들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누구도 죽이지 말고 범죄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 문장과 다음의 문장은 자서전에서 어떤 병행구도 없다.] 따라서 부하들은 그의 명령에 복종하여 잠잠했지만 인근 부락의 주민들이이 음모와 음모자들에게 관하여 들었을 때 많은 무리들이 요한을 대적하여 모여들었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의 습격을 피하여 그의 출신지인 기스칼라로 도망하였다. 한편 갈릴리인들은 여러도시를 떠나 요세푸스에게로 달려왔다. 그들은 무장하였고 수만명이 되었는데, 그들의 이익에 대치되는 공통의 음모자 요한을대항하러 왔으며, 그를 화형함과 동시에 그를 용납한 도시도 불에 태울 것이라고 외쳐댔다. 이에 요세푸스는 그에게 베푼 그들의 호의를 감사하면서도, 그들의 화를 억제시켜 살륙보다는 협상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대신에 그는 각 성읍으로부터 요한의반란에 가담했던 자들의 명단과 그들의 동료 시민들이 꾸준히 제공해 온 정보를 입수해서, 5일[㈜ \”20일,\” 자서.66(370).] 안에 요한을 버리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축과 함께 집을 전소시키겠다고 공표했다. 이 협박은 즉시 효과를 내어서 요한의 추종자 3,000명이[㈜ \”4,000,\” 자서.66(371).] 그를 떠나 요세푸스에게로 와서 그들의 무장을 자진해제하였다. 이에 따라 요한은 추종자가 2,000명의 수리아인[㈜ 아마도 자서. 66(372)에서와 같이 \”Tyrian\”(두로인)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참).전쟁.2권. 21:1(588)상위).] 부랑자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공격하지 못하고더 은밀하게 반역을 꾀할 뿐이었다.[㈜ 이 내용(21:7(624)이하)은 아마도 정확히는 다른 이야기의 훨씬 후에 있을 것이지만 예루살렘 사절단과의 갈등 이후에 위치할 것이다.(자서.66 (368-372)).] 요한은 요세푸스를 비방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사신을 비밀스럽게 보냈는데,[㈜ 요세푸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야기는 자서. 38-64(189-332)에서 훨씬 장황하게 서술된다.] 요세푸스가 너무 큰 힘을 갖고 있고 그를 막지 않으면 곧 반란을 일으켜예루살렘까지 진격할 것이라고 알리려 했다. 백성들은 이런 고발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교관들과지도자들은 시기심이 나서 은밀히 요한에게 돈을 보내어 요세푸스를 대항하기 위해 용병을 모을 수 있게 했다. 그들은 요세푸스의 통치권을 박탈하고 소환하는 법령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법령이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았으므로, 무장 군인 2,500명과[㈜ 자서.40(200)에서는 불과 600명의 병사들과 300명의 시민들로 기술됨.] 그들중의 최고 유력인사 4명을 보내었다. 이 4명은 노미쿠스(Nom-icus)의 아들 요아자르(Joazar),[㈜ 자서전에서는 요아자르(Joazar)혹은 요살(Josar)이라고 불리움.] 사독(Sadduk)의 아들 아나니아(Ananias), 요나단(Jonathan)의 아들 시몬과 유다(Judas)인데,[㈜ 요나단의 아들, 유다(Judas)에 관해서는 자서. 39(197)등을 보라.] 이들은 모두 능변가로 요세푸스의 명성에 흠집을 내기 위하여 파견되었다.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지침이 내려져 있었다. 즉 요세푸스가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그의 권좌를 떠난다면, 그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에 대해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지만, 요세푸스가 그의 통치권을 고집한다면 그들이 그를 대중의 적으로 취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요세푸스의 동료들은 그를 대적하는 군대가 오고 있다는 전갈을 갈릴리로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대적들이 이 계획과 작전을 비밀리에 수행했기 때문에, 요세푸스에게 그 대적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귀뜀해 주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는 아무런 대책도조처도 취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즉시 세포리스(Sepphoris),가바라(Gabara), 기스칼라(Gischala), 디베랴(Tiberias) 등 4도시가 요세푸스에게 반역했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싸우지 않고도 이 도시들을[㈜ 기스칼라(Gischala)는 제외됨.] 회복시켰다. 그때 그는 계략을 써서 그 도시들의 4명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정예부대를 그의 휘하에 복속시켰고,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들에대해 매우 화가 나서, 그들이 신속히 달아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지도자들이나 개개 병사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8. 디베랴의 반란
이때 요한은 요세푸스가 두려워 기스칼라의 성 안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며칠 안되어 디베랴인(Tiberian)들은 다시 반역을 시도했고 그들은 아그립바 왕에게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아그립바를 초청했다. 그러나 그는 정한 때에 오지 않고 그날 소수의 로마 기병대가 나타나자, 디베랴 사람들은 그 성에서 요세푸스를 축출하자고 한 목소리를 주장하였다.
이 디베랴의 반역은 곧 타리카이아(Tarichaeae)에 있는 요세푸스에게 보고되어서 알려졌지만, 요세푸스는 그와 같이 있었던 병사들을 모두 곡식 거두는데 내보냈기 때문에,[㈜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병사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보낸 후에 군대의 면전에서 타리케이안(Tarichaean)의 성가심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자서.32 (159)).] 그는 홀로 나아가 반역자를 맞아 싸울 수도 가만히 기다릴 수도 없어 안절부절하였는데. 왕의 군대가 그의 지연에 덕을 입어 선수쳐서 그성을 점령하게 될까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다음날은 안식일로 안식일의 규정의 제약으로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반역자들을 전략을 써서 우회시키려고 생각했다.요세푸스는 처음의 타리카이아의 성문(the gate)을 닫으라고 명령했는데 이는 아무도 디베랴 주민들에게 가서 요세푸스가 짠 전략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230척 쯤되는 호수의 배들을 모두 모아서 각각 4명의 수군 만을타게 했다. 그래서 급히 디베랴로 향해서 디베랴에서 주민들이 배를 알아보기 어려운 거리에서 빈 배를 끌고 가서 항구에 댔다. 요세푸스는 그의 호위병 일곱 명만을 데리고 무장하지 않은 채 보일 만한 거리로 나아갔다. 여전히 그를 비난하던 그의 적들(디베랴 주민들)은 성벽에서 그를 보았으며 배들이 무장한 군인들로 가득한 것으로 생각하고 매우 놀란 나머지 그들의 무기를 던져버리고 디베랴를 용서해 주라고 계속 호소했다
9. [반란에 대한 요세푸스의 대응]
이에 요세푸스는 그들을 무섭게 위협하면서 이렇게 책망하였다. 그는 첫째로는, 그들의 어리석음과 로마에 대항하여 무기를든 것, 내란에 앞서 그들의 힘을 다 허비하여 가장 좋아하고 바라마지 않던 일을 성취시켜 준 일과, 둘째로는 그들의 보호자요 지도자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열심을 내었던 점과, 그 성벽을 쌓아준 그에게 그 성 출입을 거부한 몰염치함에 대해 질책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그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죄할 사절들을 받아줄 것이며, 그 성의 안전을 위해 모든 도움을 다 제공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디베랴의 유력인사 10여명이 내려왔는데 요세푸스는 한 배에 그들을 태우고 그 도시로부터 아주 멀리 데리고 가게 했다. 그는 유명한 인사들 50명을 더 요구했으므로, 그들은 외견상 그에게 사죄하기 위해 나아왔다. 이처럼 요세푸스는 항상 그럴듯한 구실을 대어 한 무리 한 무리 불러들여서형식상으로 동의안을 받아낸 후 배가 성공적으로 가득차게 되자, 조타수에게 최대 속도로 타리카이아로 항진하라고 명령하여 도착하자 감금해 버렸다. 이리하여 그는 600명의 평의회 의원전원과 2,000여명의 다른 시민을 체포하여 타리카이아로 보낸것이다.
10. [반역의 주동자인 클리투스의 손을 자름]
이에 남은 주민들은 외치기를 이 반역의 최고 주동자는 클리투스(Clitus)라는 사람인데, 그를 처벌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그러나 요세푸스는 아무도 죽이기를 원치 않았으므로 그의 호위병인 레비우스(Levius)에게 명하여 클리투스의 양손을 잘라오라고 했다. 그러나 레비우스는 그렇게 많은 적대적인 군중 속으로 혼자만 간다는 것이 두려워서 그에게 한 손 만은 남겨놓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이에 요세푸스는 클리투스 자신이 자신의 손을 스스로 자른다는 조건하에 그의 애원에 따라 한 손을 자르지 않겠다고 대답하였다. 따라서 클리투스는 칼을 뽑아 그의 오른손으로 왼손을 잘랐다. 그는 요세푸스가 두려웠으므로 스스로 이같이 행동을 했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빈 배들과 호위병 7명으로 디베랴 주민들을 감옥에 넣었고, 도시를 다시 전대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세포리스와 디베랴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더욱이 그는 며칠 후 세포리스 주민들과 함께 반역한 기스칼라를 다시 장악했다. 그는 그의 병사들에게 약탈을 허락하고 모든 약탈물을 함께 모아 주민들에게 주었다. 또한 세포리스와 디베랴의 거주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했다. 그가 그 도시들을 정복했을 때 생각하기를 군사들이 약탈함으로써 어떤 좋은 교훈을 주민들에게 주고자 하였고, 동시에 주민들의 금품을 그들에게 다시돌려줌으로써 그들의 호의를 다시 얻고자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