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권 약 1년간의 사건을 다룸
베스파시안이 유대를 정복하기 위해 출발한 때부터 가말라가 함락되기까지
제 1 장
네로가 유대인과 싸우라고 베스파시안을 수리아로보낸 것에 대하여
1. 네로가 유대 사건의 소식을 듣다
유대에서의 패전 소식은 당연히 네로 황제에게 심한 경악과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무시하는 척했으나 속으로는 화가 났다. \”이 불행한 사태들은 적들이 강력해서라기 보다 지휘의 태만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제국의 황제 체면상 그런일 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연연해 하지 않은 초월적인 영혼의 소유자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내부적인 동요는 고뇌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2. 네로가 베스파시안에게 지휘권을 주다
네로는 이런 현재의 동요중에 동방을 누구의 손에 맡길까 고심하고 있었다. 이 일을 맡을 자는 유대인 반역자를 벌주고, 이미 전염된 인근 국가들의 반란을 잠재워야 하는 이중의 의무를져야 했다. 네로는 이 비상 사태와 대규모 병력 이동을 감당할 만한 사람으로 베스파시안(Vespasian)만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베스파시안은 젊어서 입대하여 나이 들어서까지 군대에복무했다. 그는 이미 초기에 게르만인(the Germans)이 반란을일으켰을 때 서방(the West)을 평정시키고 로마의 통치를 회복시킨 경력이 있었다. 그의 천부적인 군인으로서의 재능으로 그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브리튼 제국(the Empire Bri-tain)까지 정복하여 네로의 부친인[㈜ 의붓아버지 ; 그는 네로(Nero)를 양자로 삼았다. 참). 전쟁.2권. 12:8(249). ] 글라우디오(Claudius)가개인적으로 어떤 힘도 들이지 않고 개선의 영광을 안을 수 있게했다.[㈜ 글라우디오가 베스파시안을 게르만족 정벌에 파견하였고 이어서 주후 43년에 브리튼을 원정케 했는데 wight 섬을 포함하여 브리튼을 정복하여 \”행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승리의 전과를 올렸다(Tac. \’Agric\’. 13 ; Suet. \’Vesp\’. 4).]
3. [네로가 베스파시안의 아들을 볼모로 잡다]
네로는 베스파시안의 연륜과[㈜ 주후 9년에 태어난 베스파시안은 그때 57세였다.] 경험으로 보아 좋은 결과를 점칠 수 있었다. 그리고 네로는 충성하도록 하기 위해 베스파시안의 아들을 확실한 볼모로 잡아두었는데, 그는 그들 조상의 두뇌로 무장되어 원숙하게 행동하였다. 하느님은 베스파시안을 제국의 운명을 좌우할 사람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네로는 이 장군에게 수리아(Syria) 군대의 지휘권을 주었다. 이같이 비상시라고 불리는 급박한 위기에 처하여 달래고 얼르면서 아낌없이 칭찬하여 보낸 것이다. 베스파시안은 아가야(Achaia)에서 네로와같이 있으면서 보좌하던 그의 아들 티투스(Titus)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파견하면서 알렉산드리아에서 제15군단을 소집하라고 했다. 그 자신은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을 건넌 후에 육상으로 수리아까지 왔는데 거기서 그는 로마 병력과 인근 지역의 왕들이 보낸 파견 원군을 집결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