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기스칼라의 요한에 대하여, 그리고 열심당과 대제사장 아나누스에 대하여, 유대인들이(예루살렘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게 된 것에 대하여
1. 예루살렘인들이 기스칼라의 요한을 받아들임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자, 전체 주민들은 큰 소동에 휩싸이게 되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자기들에게로 도망온 사람들 주위에 몰려들어 그들에게 어떤 비참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물었다. 그들의 숨소리가 헉헉거리고 거치른 것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과 함께 도망온 자들은 자신들의 불행에 대해 허풍을 떨었고, 그들이 로마인들에서 도망온 것이 아니라, 좀더 안전하게 로마인과 싸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거짓으로 말했다. \”우리들은 기스칼라와 같은 약한 도시에서 무모한 위험에 우리들을 내버려두는 것은타당성 없고,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며 오히려 우리들의 무기와힘을 아껴 수도방위에 합류하려 했습니다\”라고 허풍을 떨었다.그러나 이들이 얼떨결에 기스칼라가 점령되었다는 것과 그들이 점잖게 \”후퇴\”라는 말을 할 때 듣고 있던 많은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것이 도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예루살렘 사람들은 포로로 잡힌 사람들에 대해 듣고 큰 혼동에빠졌고, 이 모든 일들로 미루어 보아 그들도 머지않아 포로가 되리라는 분명한 징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은 뒤에 버려두고 왔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여러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전쟁을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는 로마군이 지금은 약한 상태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자신의 힘을 자찬하였다. 또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의 무지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갈릴리를 점령하는데큰 어려움을 겪은 후이고 가말라 성벽을 공격하느라 공성무기가 낡아 버렸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날개를 달 수 있다 해도 예루살렘 성벽 위로는 결코 날지 못할 것이라고 농담까지 하였다.
2. 내분이 일어남
요한의 이런 장황한 연설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먹혀 들어갔으며 그들은 전쟁을 하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신중하고 나이든 사람이라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고 마치이미 도시가 점령당하고, 사람들이 혼란에 처해 있는 것처럼 통곡하였다. 시민들 가운데서는 이런 혼란이 계속 확산 되고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선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지방에서 투쟁파들이 들고 일어났다. 왜냐하면 티투스가 기스칼라에서 가이사랴로 이동했을 때 베스파시안은 가이사랴로부터 얌니아(Jamnia)와 아소도(Azotus)로 와서 이 두 도시를 다 점령한 후이 두 도시안에 수비대를 배치하고 그가 제시한 평화 조약에 순복하여 그에게 항복한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전쟁. 4권. 3:2(130), 티투스(Titus)와 베스파시안(Vespasian)의 동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전쟁.4권. 3:2(129)와 전쟁. 4권. 3:2(131)사이의 밀접한 연관을 깨뜨리고 있다.] 모든 도시는 소요와 내란에 휩싸여 있었다.[㈜ 반란이 미칠 영향을 서술함에 있어서 요세푸스는 아마도 혁명에 관한 투키디데스(Thucydides, iii:81-84)의 유명한 소견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들은로마군들과 싸우지 않는 때에는 자기들끼리 서로 싸웠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서로 무섭게 싸웠다. 처음에는 이런 다소 논쟁적인 기질이 서로 의견을같이 하지 않은 개인적인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후에서로 사랑하던 사람들은 서로 서로에게 관련된 모든 인연을끊고 각자가 자기 의견과 일치하는 사람과 연합하여 서로 반대편에 서기 시작했다. 따라서 내분이 곳곳에서 일어났는데,젊음과 용기로 전쟁을 좋아하고 혁신을 원하는 사람들은 나이들고 신중한 사람들에게는 당해 내기 힘든 상대였다. 처음에는 수많은 도당들이 자기 이웃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런다음에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전국을 약탈하였다. 그래서 동족의 야만스러움과 불법행위가 로마군과 조금도 다를것이 없었고 오히려 로마인들에게 포로가 되는 것이 훨씬 덜 불행해 보일 지경이었다.
3. 강도떼(열심당)들이 예루살렘으로 침투하다
도시를 수비하고 있는 로마 수비대들은 한편으로는 자기들에게 위험이 발생하는 것을 꺼려하고 또 한편으로는 유대 민족에 대해 갖고 있는 적대감 때문에 유대인들간의 이러한 약탈행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전국에 산재하던 도둑무리의 두목들은 약탈을 하는 것에 싫증이 나서 이제는 하나로 연합하여 통치자가 없는 예루살렘을 습격하였다. 예루살렘은 옛 유대 풍속이그랬듯이 아무 구분없이 유대민족에 속한 사람들은 아무나 다 받아들였다.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은 도시로 들어온 이 도둑의 무리들이 자신들을 돕기 위해 선한 동기로 왔다고 생각하였다. 반란과는 상관이 없던 예루살렘이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멸망하게 되었다. 이들은 불필요한 사람들로 그 숫자도 많아서, 군인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식량을 다 소비해 버렸다. 그러니 이들은 전쟁을 초래한 것 외에도 내란을 일으키고 기근을 발생하게한 주범들이었다.
4. 그들은 저명한 시민들을 잡아 죽이다
이들 외에도 다른 지방의 도둑들이 이 도시로 와서는 예루살렘에 먼저와 있던 그들보다 더 나쁜 도둑들과 연합하여 어떤 야만스런 행동도 서슴치 않고 자행하였다. 그들은 약탈과 노상 강도짓을 거리낌 없이 자행할 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것도 밤에나 혹은 은밀하게 보통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한낮에 공개적으로 도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죽였다. 그들에게 첫 번째로 당한 사람은 시 전체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이며 왕족인 안티파스(Antipas)였다.[㈜ 아그립바Ⅱ세 (AgrippaⅡ)의 두명의 다른 친척들, 사울(Saul),그리고 코스토바르(Costobar)와 함께 그는 왕의 영향력으로 유대인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했다.(2권. 418). 후에, 그는 다른 사람들이 도망한 후 예루살렘에 체류했다(2권:557).] 안티파스는 국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안티파스를 잡아다감금시켰다. 그 다음에 왕족인 아레게테스(Aregetes)의 아들소파스(Sophas)와 명성 높은 왕족 레비아스(Levias)를 잡아감금시켰다. 그 밖에 도시의 중요 인사들에게 똑같은 일을 자행했다. 이것은 주민들 사이에 무서운 경악을 자아내게 했고, 시가적군에게 점령된 것처럼 모두가 자신의 안전을 돌보는 것만으로로 만족해야 했다.
5. 무고한 죄목을 덮어 씌우다
그러나 도둑의 무리들은 앞서 언급한 사람들을 감금하는 것에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오래 감금한 채 사람들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감금된 사람들은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고 복수할 수 있는 많은 가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둑들은 이러한 옳치 않은 처사에 불만을품고 그들에게 대항해 올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이들을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을 죽여 피 보기를 가장 좋아하는 어떤 요한(Joph)이라는 사람을 보내 유명인사들을 죽이는 일을 하게 한다 ;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도르가(Dorcas)의[㈜ 즉 영양(Gazelle),아람어로는 바르 다비다(Bar Tabitha) 참). 행9:36;도르가(Dorcas)는 또한 여자의 이름으로 헬라에서 사용됨(Wetstein).] 아들이라 알려진 사람이다. 그와 함께 10명의 사람이 칼을 빼어들고서 감옥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의 목을 베었다. 이들이 이와같은 어마어마한 죄를 저지르고 변명을 날조하기를 살해된 사람들이 로마인들과 함께 공모하며 예루살렘을 로마인들에게 넘겨주려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단지 국민 공동의 자유에 대한 배반자들을 처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러한 대답하게 몹쓸 짓을 하고도 더 무례해졌고마치 자신들이 이 도시 예루살렘의 은인이나 구세주인 것처럼 행동했다.
6. 마음대로 대제사장을 임명함
결국 주민들은 대단히 놀라 공포에 떨게 되고 강도들의 만행은 극에 달하여 마침내 이들이 마음대로 대제사장(High priest)을 지정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들이 나오는 가문의차서에 따라 제사장의 직분을 물려주는 것을[㈜ 대제사장 직위를 몇몇 특권을 지니고 있는 가계로 제한하고 있는 것에 관해서는 쉬러(Schurer), \’G.J.V\'(3판) 88 : 222를 보라. 이 부분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되풀이 되는 것은 아마도 편집자가 불완전하게 개정판을 냈기 때문이다.] 폐지하고, 알지도 못하고 무식한 어떤 사람에게 성직을 맡겼다. 그들이 이같이하는 속셈은 자신들의 사악한 범죄에 대제사장도 공범자가 되게하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모든 영광스러운 자리 중에서 가장 높은 대제사장의 영예를 아무런 자격도 없이 얻었기 때문에 그것을 수여한 자들을 따르도록 되어있었다. 그들은 또한 몇가지 종류의 계략과 중상모략을 동원하여 고관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계획을 방해할지도 모를 사람들을 서로 분쟁하게만들어 그들이 원하고 바라던 것을 얻을 기회를 찾았다.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하는 잘못된 행동에 진력이 나자 하느님께로 오만무례한 행동을 돌리고 더러운 발로 성전안으로 들어왔다.
7. 열심당에 대한 폭동
이제 주민들이 그들에게 대항하여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가장 나이많은 대제사장인 아나누스(Ananus)가 주민들을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는 아주 신중한 사람으로 만일 그에게 음모를 꾸민 사람들의 손을 벗어날 수만 있었다면 이 도시를 아마 구했을 것이다.[㈜ 그의 살해와 그의 성격에 대한 찬사에 관해서는 전쟁. 4권. 5:2(316-325)을 보라.] 위협을 당한 불한당들은 아예 하느님의 성전을 그들의 요새와 백성들의 분노를 피하는 피난처로 삼았을 뿐만아니라 성소를 강도단 본부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이러한 끔찍한 일을 하고도 조소(mockery)까지 하였다. 그들이 한 행동에 더 견딜 수 없는 주민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복종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힘이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지 과시하기 위해서 제비뽑기로 대제사장직을 지명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제사장직은 특정한 가문에서 계승해 내려오는 것이다. 그들은 이같이 이상한 시도를 하는데 대한 구실로 고대의 실례를 핑계 삼았다. 고대에는 제비뽑기로 대제사장을 뽑았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통치자를 지명하려는 저의가 분명하며 통치권을 장악하려는 교활한 계략이자 명백한 율법의 파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8. 제비뽑기를 통해 아무것도 모르는 판니아스가 대제사장으로 뽑힘
그들은 에니아긴(Eniachin)이라 부르는 제사장 가문(high-priestly clans)[㈜ fulhv(\”가문\”)는 혹은 !efhmeriv\”(\”계열\”)를 다시 나눈 것이다. 요세푸스 자신은 24명의 제사장 계열중 첫 번째 가문이며 또 그 가문 중 가장 저명한 가문에 속한다. 자서. 서문. 1.(2)에니아킨(Eniachin)은 이곳에서만 언급되었다;대상 24:12 <야킴(Jakim)게열>을 비교하여 !Eniavcin(!Eniavkeim)으로 $h !Iakivm을 읽어야 한다는 로우스(Lowth)의 제안은 근거가 없다.]중의 한 사람을 불러서 제비뽑기를 하여 대제사장을 정하려고 했다. 다행히 제비뽑기가 이러한 그들의 불법행위가 가장 사악한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다. 왜냐하면 제비뽑기가 아프디아(Aphthia)[㈜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출신의 판니(Phanni)라는 사무엘(Samuel)의 아들이 뽑혔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뜨기로 대제사장에 어울리지 않은 인물일 뿐 아니라 대제사장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판니를 억지로 시골에서 끌어다 마치 무대 위에서 배역에 맡게 분장시키는것 처럼 판니에게 제사장 옷을 입히고 그가 해야할 것을 매번 가르쳤다. 이런 소름끼치는 사악한 행동은 그들에게는 운동이요 오락이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율법이 희롱 당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던 다른 제사장들은 눈물을 흘리고 성직의 가치가 완전히 파멸 된 것에 대해 매우 애통해 했다.
9.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무례한 행동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압제자(강도)들을 전복시키기 위해 하나같이 모여들었다. 이들중 명성높은 지도자는 요셉의[㈜ 아나누스(Ananus)와 함께 한 고리온(Gorion)의 아들 요셉(Joseph)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예루살렘에서 최고 통치권자였을 것이다. 2권. (563) ; 여기서 언급된 아들 고리온(the younger Gorion)은 그의 조부의 이름을 따랐다.] 아들 고리온(Gorion)과 가말리엘(Gamaliel)의 아들 시므온(Symeon)이었다.[㈜ 가말리엘(Gamaliel)의 아들인 시몬(Simon)과 동일인이며, 역사가 요세푸스와 적대적인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세푸스는 자서. 38(190)이하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로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군집되어 있을 때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으며, 사람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에는 일일이 방문하여 더 이상 참지말고 그들의 자유를 앗아가고 좀먹은 자들을 처벌하여 피로 물든 더러운 자들에게서 성전을 정결케하자고 설득했다. 대제사장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가말라(Gamala)의 아들 예수(Jesus)와[㈜ 요세푸스의 편을 들었다. 자서. 38(193), 41. (204); 그의 죽음과 그에 대한 요세푸스의 찬사에 관해서는 전쟁.4권. 5:2(316)이하를 보라.] 아나누스(Ananus)의 아들 아나누스(Ananus)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을 때 백성들의 나태함을 맹렬히 비난했고 열심당에 대항하자고 선동하여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강도들은 자신들이 열심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마치 악한 일보다 선한 일에 더욱 열심인양, 그리고 다른 사람의 본이 되는 것 이상으로 더욱 선한 일에 모범이 된다는 것처럼 열심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10. 주민총회와 아나누스의 연설
주민들이 총회로 모였다. 모든 사람들이 성전을 장악하고 약탈과 살상을 하는 이들에 대해 분노해 있었지만 공격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열심당들을 진압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나누스는 백성들 가운데 서서, 눈물을 머금고 성전을 쏘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확실히 나는 하느님의 집이 이 많은 가증스러움으로 가득차고, 거룩한 곳이 닥치는 대로 짓밟혀 피 흘리는 야만인들의 발자국으로 가득찬 것을 눈으로 보기 전에 죽는 것이 좋을 뻔했습니다. 대제사장 옷을 입고 대제사장이라는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내가 나이들어 용기있게 죽음으로써 빛을 발하기보다 아직까지 살아있어서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 너무 연연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가장 열악한 사막이라도 나 홀로 가야한다면 나는 오직 하느님을 위해서 내 목숨을 포기했을 겁니다. 문제를 붙들고 해결해 보려는 의지가 없는 재난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들 중에 내가 더 살아 무엇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성전이 점령당했을 때 그대로 참았습니다. 그리고 때리면 조용히 맞았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누구도 감히 공개적으로 불평하지 못했습니다. 오! 우리는 얼마나 비참하게 억눌려 있습니까! 왜 내가이 폭행자들에 대해 불평합니까? 여러분들이 참고만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세력을 키웠던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처음에 그들이 모였을 때는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습니까? 또 침묵만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의 숫자가 많아 진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무기를 가진 것을 묵인해 줌으로써 그들은 여러분에게 그 무기를 들이 댄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그들이 귀족들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자행했을 때 바로 그들의첫 시도를 막았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시기 적절하게 일을 시행하는 것을 소홀히 함으로써 이런 사악한 무리들에게 사람을 약탈하도록 부추키게 된 셈입니다. 집이 습격 당했을 때 어느 누구도 말한마디 한 사람이 없었으며 그 때문에 그들이 집주인까지 끌고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도시 중심부를 통해 끌려갈때에는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넘겨준 사람들을 감옥으로 쳐 넣는 모욕을 준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으며 그들이 어떤 신분의 사람들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끌려간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비난당하지 않았고 고소당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감옥에 있을 때 아무도 이들을 구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 이들이 죽임을 당한 것을 여러분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그 광경은 마치 말 못하는 짐승 떼 중에서 한 마리씩끌어다 도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도 반대 의견이나오지 않았고, 한 사람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참고 또 참으십시오. 이와 같이 성전이 짓밟히고 있는데도 참으십시오. 이러한 포악 무도한 자들의 만행을 지켜만 보고 있다가 그들의 만행이 절정에 이를 때 그들에게 불평하지는 마십시오. 지금 그들이 전복시키려고 머무르고 있는 성전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전복할 수 있다면, 그들은 더 큰 일을 저지를 사람들입니다.그들은 도시 전체에서 가장 강한 장소를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성전을 단지 성채나 요새로 부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이렇게 많은 폭행자들이 강하게 버티고있고,[㈜ !epiteteicismevnhn turannivda 구절은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133)의 4번째 연설(the fourth Philppic-Demosthenes가 마케도니아왕 Philip을 공격한 12연설 중의 하나-역자주)에 나오는 turannida jepereivcisen ujmi\’n에서 유래한다.] 여러분의 머리 바로위에서 적들이 내려다 보고 있는데도 대체 여러분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또한 여러분은 무엇에다 희망을 걸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우리의 성전을 로마군이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어 이런 불행에 처해 있게 되었고 우리 적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기를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오! 가장 인내심이 많은 자들이여! 왜 여러분은 일어나서 여러분을 친 자들을 복수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들짐승들도 공격을 당하면 복수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당한 수모를 기억하지 못합니까? 여러분이 어떤 심신의 고통과 고난을 당했는지 눈앞에 선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보면서도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안생깁니까? 우리의 감정중 가장 귀하고 본능적인 것이 자유를 갈망하는 것인데 여러분은 그것을 잃어버렸습니까? 여러분은 노예 상태를 좋아하고 여러분 위에 군림하는 자를 좋아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치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이런 굴종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조상들은 자유를 위해서 수많은 큰 전쟁을 치루었으며 애굽 사람들(Egyptians)이나 메대 사람들(Medes)의 힘에 의해 정복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반대로 정복자들의 명령을 순종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내가 왜우리 선조들의 행동을 언급하는지 아십니까? 이제 우리는 로마인들과의 전쟁중에 있습니다. 나는 유리하고 적절한 전쟁이냐 아니냐를 묻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의 지배자들(로마인-역자주)에게 굴복하는 것도우리가 거절하는데 하물며 우리나라의 폭도들을 참고만 있을 수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견딜 수 있을 수도있습니다. 왜냐하면 운명이 이미 우리에게 그렇게 되리라 결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동족의 악한 무리에게 굴복한다는 것은 너무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로마인들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로마인들에게 점령당한다 해도-하느님께서 이 말대의 우리의 운명이되지 않게 해주시기를 바라지만-우리가 로마군이 이미 우리에게 가했던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들을 폭도들에게 당하고있습니다. 로마군들이 성전뜰에서 제물을 바치는 것을 본다해도 눈물이 날 노릇인데, 로마군들이 승전한다해도 살려둘 도시의 귀족들을 동족인 폭도들이 능멸하고 살해하는 만행을 보고도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로마인들은 제사장들에게만허용된 경계를[㈜ 혹은 만일 tw\’n bebhvlwn이 중성이라면 \”신성하지 않은(허락된)땅의 경계\”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바깥뜰과 내부 성전을 분리하는 돌로 된 난간(the stone balustrade)에 관한 언급이다. 이 난간은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경고조의 비문이 있는데, 이방인들이 통과하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어기면 죽음을 당한다고 했다. 5권.(193). 이하. 반면 일반 로마인들은 그러한 규칙을 철저하게 준수한 반면 2권. (341). 네아폴리스는 허용된 지역에서 제물을 바쳤다)폼페이(Pompey)와 티투스(Titus)와 같은 정복자들은 성소(Holy Place)를 침범했다. 참). 아피.2권. 1:7(82). 전쟁.1권. 7:6(152), 6권. 8:1(260).] 결코 침범하지 않았고 우리의 거룩한 풍습을깨뜨리려고 한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경외심을 갖고 멀리서 성역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바라보았습니다. 반면 여기서 태어나서 우리 풍습으로 양육된 소위 유대인들이라는 작자들은 동족들을 살해한 뒤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성소를 거리낌 없이 짓밟고 다녀도 되겠습니까? 우리 동족들보다 외국인들이 훨씬 더 관대한데 적군과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누가 두려워하겠습니까? 사실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제 후로는 로마인들이 우리율법의 준수자들이고 반대로 성벽 안에 있는 우리는 율법의 원수들로 여겨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자유를 빼앗아간 이 공모자들의 파렴치한 성격과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어떤 적절한 처벌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조차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집을 나서며 어떤 처벌을 할 것인지 생각을 다 하셨을 줄로 믿습니다.그리고 내 말을 듣기 전에 이미 여러분들이 몸소 겪은 그들의 만행에 격분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아마 여러분중 대부분은 열심당이 수도 많고 또 무모하기도 하며 그들이 성전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여러분의 태만 때문에 생긴 것이며 여러분이 태만하면 할수록 그들의 세력은 더 커질 것입니다. 못된 짓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들에게로 달려가기 때문에 이들의 수는 매일매일 늘어갑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어떤 방해물도 없기 때문에 그들의 오만방자함은 날로 더해만 갑니다. 그들은 유리한 곳을 차지하고있어서 우리가 지체하여 그럴 시간만 준다면 틀리없이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만일우리가 그들과 싸우러 올라간다면 그들은 양심상 조금 누그러질것이며 그들이 있는 높은 지형적 장점도 잊게될 것입니다. 아마 그들에게 모욕당하신 하느님께서도 그들의 화살을 그들에게[㈜ 가말라(Gamala)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쟁.4권과 1:9 (76).] 되돌아 가게 하실 것이며 무례한 사악자들을 자신의 무기에 멸망하게 하실겁니다. 자! 이제 우리 나갑시다. 그들은 이제 끝장났습니다. 만일 이번 시도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라도 성문앞에서 죽는 것은 우리 아이들과 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하느님의 성전을 위해서 죽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몸과 마음을 다해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혜는 여러분을 지원하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내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11. 아나누스와 시민들이 열심당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하다
아나누스는 열심당의 숫자나 그들의 젊음과 힘과 용맹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기 백배해 있는 정신력 때문에 그들을 물리치는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위와같은 연설로 주민들에게 열심당과 맞싸울 것을 격려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들에 대해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끝까지 저항 할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나누스유대민족이 이러한 큰 혼란에 빠진 것을 수수방관하기 보다 오히려 그에게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감수하겠다고 결심했다.그래서 주민들은 그에게 자신들을 이끌어 달라고 간청했고 각자모두는 어떠한 위험도 무릎 쓸 준비가 되어 있었다
12. 격렬한 싸움
아나누스는 군사들을 뽑고 전투하기 좋게 적절히 이들을 배치시켰다. 열심당은 이 일을 알게 되었고(모든 백성이 자신들에게 몰려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이에 분개하였다. 이들은 몇 명씩 무리를 지어 성전 밖으로 달려나와 만나는 사람을 무조건 죽였다. 이에 아나누스는 급하게 주민들을 모았는데 그것이 열심당보다 훨씬 숫자는 우세했으나 무기에 있어서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양편 모두 열성으로 자신들의 결점들을 보충하였는데, 시민들은 어떤 무기보다도 강한 열정으로 무장했고, 성전을 점령하고 있는 폭도들은 시민들이 아무리 숫자가 많다해도 개의치 않고 싸웠다. 시민들은 도둑을 섬멸해야만 자신들도 이 도시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심당 역시 자신들이 승리하지 않으면 가장 힘들고 나쁜 처벌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도시 전역과 성전앞에서 투석전으로 시작하였고좀 먼곳은 창을 던졌다. 한쪽이 지게되면 승리자들은 칼을 사용하여 양편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당했다. 부상당한 시민들은 친척들이 집으로 옮겼다. 그러나 부상당한 열심당 중 몇 명이성전을 더럽혔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이번 전투에서 도둑들은 항상 승리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점점 더 분노하게 되고 그 숫자들이 도망가는 사람들에게 도주로를 내주지 않고 앞으로 계속 다시 전진하게 만들어서, 마침내 그들은 하나가 되어 적을 대항하였다. 폭도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점차적으로 성전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아나누스와 시민들은 그들을 뒤쫓아 갔다. 바깥뜰을 빼앗겨 당황한 열심당들은 성전으로 들어가자 즉시 문을 걸어잠갔다. 아나누스는 비록 적들이 그들에게 돌과 화살을 쏘아 댐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성문을 공격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들이 이기고는 있지만 아나누스 역시 성결케 되기 전에는 이 뜰안으로 주민들을 끌고 들어가는 것이 율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나누스는 그들 가운데 제비뽑기로 6천명의 군사를 택하고 그들을 회랑의 수비병으로 배치했다. 이 수비병들은 순번대로 교대되었다. 각자는 모두 자기 차례에 기다리도록 되어졌다. 그러나 이 도시의 많은 지도급 인사들은 자기 상관들의 허락을 받고 자기보다 계급이 낮은 군인들을 사서 자기들 대신 수비병으로 보냈다.
13. 아나누스를 반역한 기스칼라의 요한
이제 요한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기스칼라에서 도망쳐 나온 자로 예루살렘 함락의 원인이 되는 인물이다.[㈜ 전쟁. 4권. 2:4(106)이하.] 그는 절대권력을 잡으려는 열정을 가진 아주 교활한 인물로 나라를 차지할 음모를 오래전부터 꾸며온 자이다.[㈜ 전쟁. 4권. 2:1(85)의 각주를 참고하라. 이 구절은 살루스트(Sallust)가 카틸리네(Catiline)를 묘사한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용감한 정신, 교활함,…이런…큰 욕망은 국가를 떠맡을 수 있었다(animus audax, subdolus…hunc…lubido maxuma invaserat rei pablicae capiundae).] 이때에 그는멀리서 강도들의 행동을 조정하면서도 예루살렘 주민 편인 척하고 아나누스가 매일 회의할 때 그 주위를 맴돌고 저녁에는 보초들을 방문했으며 열심당에게 그들의 비밀을 폭로했다. 그래서 제안된 계획들은 그를 통해 낱낱이 적들에게 알려졌다. 심지어 그들이 완전한 합의를 보기도 전에 비밀들이 폭로되어 졌다. 스파이로 몰리지 않도록 계략을 써서 아나누스나 지도급 인사들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그가 너무 지나치게아부했기 때문에 이런 과잉행동들이 오히려 의심을 샀다. 그는 초대받지도 않았을 때에도 어느 곳이나 계속 참석하여 그들의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이 바로 요한일 것이라는 강한 의심을 받게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채택된 결정들을 적들이 다 알고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 외에 이런 누설에 대한 의심을 받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를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악을 행하는데 있어 그만큼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영향력 있는[㈜ 문자적으로는 \’그를 많은 사람들이 둘러싼\’이 된다. 참). 전쟁.2권. 14:1(275)의 i[dion sti\’fo\” u+pexwsme;no\”는 \’그를 둘러 모인 그 자신의 추종자들의 떼와 같이\’로 이것은 다른 곳에서는 증명되지 않는 동사의 은유적 사용법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꽤 무게있는 일을 함께 의논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가 선한 양심으로 확실하게 맹세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요한은 즉시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 즉 그가 예루살렘 주민 편에 설 것이며 적에게 어떤 협의나 행동사항을 누설하지 않고 침략한 사람들은 전복할 때 직접 몸으로나 충고를 통해 도와줄 것을 맹세했다. 그래서 아나누스와 그의 편은 요한의 맹세를 믿었고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그들의 협력자로서 그를 받아들였다. 그들이 그를 믿은 만큼 그들은 그를 협상을 제안하는 대표로 열심당에게 보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능한 한 성전을 더럽히는 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민족 중의 누구도 성전 안에서 살해당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14. 아나누스를 대항하여 요한이 열심당원들을 부추기다
요한은 성전으로 가서 가운데 선 다음 마치 열심당들을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충성의 맹세를 하듯이 다음과 같이 열심당들에게 말했다. \”나는 아나누스와 그 일당들이 여러분들을 대항하려는 모든 비밀계획을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릎썼습니다. 나와 여러분들 모두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는 한 피할 수 없는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나누스가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베스파시안에게 가서 이 도시를 점령하도록 대사들을 보내자고 백성들을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더욱 곤란한 일은 아나누스가 경배를 드리고자 해서인지아니면 여러분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인지는 모르나 시민들을 이곳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 내일 정결제사(purificationservice)[㈜ 그의 추종자들이 사전에 정결함(purification)이 없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그가 꺼려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럴듯한 겉치레의 말이다. 참). 전쟁.4권 3:12(205).]를 드린다고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러분들이 포위를 견딜 수 있을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적과 대항하여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한은 덧붙여서 자신이 화해 조정을 위해 대표로 보내진 것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했다. 아나누스가 그들이 무장을 해제할 때 협상을 하겠다는 제안을 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그러므로 여러분은 살려고 하면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아니면 외국에 원군을 청하든지 해야합니다. 만일 정복당할 경우, 용서받겠다는 희망을 품는다면 무모한 짓이며, 그것은 마치 때린 자가 용서를 빌자마자 곧 맞은 자가 그들과화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모한 생각입니다. 반면 모욕을 가한자가 아무리 후회하는 척 해봤자 모욕 당한자의 미움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살해된 자들의 친구와 친척들이 항상 복수할 기회를 노릴 것이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법과 재판소[㈜ \’율법과 율법 재판소\’의 배열을 보면 사가(史家=요세푸스)의 헬라인 조수의 연설을 듣는 것 같다. 참). 전쟁.4권. 4:3(258)과 전쟁. 서문.]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 동정을 한다고해도 화가 난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압도당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