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권 제 5장 폭풍 중에 성전을 침입한 이두매인들의 잔인성과 열심당원들의 잔인성에 대하여, 아나누스와 예수와 사가랴의 살해에 대하여, 그리고 이두매인들이 고국에 돌아간것에 대하여

 


제 5 장



 폭풍 중에 성전을 침입한 이두매인들의 잔인성과 열심당원들의 잔인성에 대하여, 아나누스와 예수와 사가랴의 살해에 대하여, 그리고 이두매인들이 고국에 돌아간것에 대하여



1. 아나누스의 호위병에 대한 대대적인 살해



 이러한 명령에 복종하여, 이두매인들은 도시를 통해 성전으로 올라왔다. 이두매인들이 오기를 크게 기대하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열심당들은 이두매인들이 성전 안뜰(inner court)로 들어오자 대담하게 성전 안으로 인도하고 이두매인들과 합세하여 감시병들을 공격하였다. 감시하다가 잠이 든 감시병들은 잠이 든 채 죽임을 당했으며, 깨어 있던 감시병들은 소리를 지르자, 이에 전체 군인들이 깜짝 놀라 일어나서 곧 무기를 들고 싸우러 나갔다. 감시병들은 공격하는 자들이 단지 열심당 뿐이라고 생각할 때까지는 대담하게 나가 싸웠고, 숫적으로 많기 때문에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감시병들이 열심당이아닌 이두매인들도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되자, 대부분이 손에서 무기를 놓은 채 용기를 잃고 통곡을 했다. 그러나 몇 몇 젊은 감시병들은 용감하게 이두매인들의 공격에 대응하며 얼마동안 약한 감시병을 보호했다. 다른 몇 몇 사람들이 예루살렘 안에 있는 주민들에게 그들이 처한 불행에 대해 소리쳐 신호를 보냈으나 이들 역시 이두매인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자 아무도 감히 감시병들을 도우러 가지 않았다. 단지 이들은 이 불행을 애통해 하며 울부짖는 괴로운 응답만을 했다. 죽을 위험에 놓여있는 감시병 가족과 친척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열심당들 역시 이두매인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함성을 질러댔다. 또한 폭풍우도 합세하여 더욱더 무시무시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참). 전쟁.3권. 7:23(247)이하(요타파타는 산울림으로 인해 전쟁의 소음이 높아졌다).전쟁.6권. 5:1(272)이하(예루살렘도 유사함).] 이두매인들은 주민들을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성적으로 야만적이고 피 흘리기 좋아하는 민족이며, 폭풍우 때문에 괴로움을 당해서 그들의 무기를 성문을 열어주지 않고 대항한자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사용했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들이나 대항하는 자들이나 똑같이 가리지 않고 죽였다. 또한 그들은 성전을 보아서라도 살려 달라고 애원하거나 동족임을 생각해서라도 살려달라는 자들도 모조리 칼로 죽였다. 그래서 병사들은 더 이상 싸울 장소도 없고 살 희망도 없었다. 병사들이 한 곳으로 몰리게 되었고 살해당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병사들은 힘에 밀려 후퇴할 곳도 이제 없게 되고, 살인마 이두매인들이계속 몰려오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도시 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래서 이들은 내 생각으로는 도망가는 것보다 더 경건하게 자신을 운명에 맡겼다고 본다. 이제 성전 바깥 뜰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날이 밝자, 팔천 오백명의[㈜ 봉쇄를 시작하면서 근무중인 수비는 한번에 많아야 6,000명(eij\” exakiscilivou\”,) 전쟁.4권. 12(205))이었다. 오늘밤에 \’온 힘을 다하여\’ 혹은 \’~에 넘치게\'<plhquvousan , 전쟁.4권. 12(295)>라고 말한 것을 보면 후에 그숫자는 분명히 증가했던 것 같다.] 시체가 그곳에 있었다.



2. 이두매인들이 아나누스와 예수를 죽임



 그러나 이두매인들의 분노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그들은 시내로 들어가 집집마다 모두 약탈하고 만나는 사람은 무조건다 죽였다. 그들은 주민들을 죽이는 것은 힘만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제사장들만 주로 찾아 다녔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들을 잡아 살해하였다. 그리고는 시체를 밟고 올라서서 아나누스가 백성의 은인인 체 했다고 비난하고 예수는 성벽에서 자신들에게 말했던 것을 비난하였다.[㈜ 전쟁.4권. 4:3(238)이하.] 그들은 장례식도 하지 않고, 시체를 내다버리는 불경스러운 짓의 극을 달렸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십자가형에 처한 자들도 일몰 전에[㈜ 참). 신 21:22 이하. 요29:31.] 끌어내려 장사를 지내는 등 장례에 대해서는 극심한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아나누스의 죽음이 예루살렘 함락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때부터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황폐화되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안전히 보호해줄 수 있었던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도시 한 가운데서 살해당한 때가 바로 예루살렘 멸망의 날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아나누스[㈜ 본문에서 아나누스는 거의 페리클레스의 대칭(counterpart)이다. 투키디데스 ii. 65에서 페리클레스를 칭찬한 것을 요세푸스가 염두에 두고 쓴 것이 분명하다.]는 여러 면에서 진실하고 매우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귀족의 우아함과 위엄, 명예 이 모든 것을 다 소유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인물이었고 심지어 가장 비천한사람들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유에 대한 열성적인 수호자였으며, 정치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의 열망자였다. 또한 자기 자신의 이익에 앞서 공공의 복지를 더 좋아하고무엇보다도 먼저 평화를 원하는 자였다. 왜나하면 그는 로마군이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또한 전쟁이 일어나고 유대인들이 협상하기를 원치 않는다 해도전쟁이 유리하게 되도록 하여 나라를 지키는 데 힘썼을 것이다.한마디로 말해서 만약 아나누스가 살았었더라면, 그들은 확실히사건을 잘 해결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나누스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것에 있어 아주 뛰어난 인물로 그의 계획을 반대하고,전쟁을 원하는 자들을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사람이었다. 만일 아나누스와 같은 그런 장군이 있었다면, 유대인들은 로마군의 승리를 상당히 지연시킬 수있었을 것이다. 예수는 아나누스만은 못하지만 나머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지키던 지도자들인 이들을 하느님께서 죽이신 것은 하느님께서 타락된 도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불로써 그의 성전을 성결케 하려고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대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전 세계적[㈜ 문자적으로 \’우주적인\'(Cosmical)은 \’전세계에 열려진\’ 혹은 \’현체계의 상징인\'<트라일(Traill)>을 뜻할 것이다. 참). 고대. 3:123,180이하의 우주의 상징인 천막, 히9:1(세상에 속한 성소)에 관한 웨스트코트(Westcott)의 주.]인 예배를 집전하고, 모든 지역에 거주하는 자들이 이 도시를 방문하여 그들을 진정으로 존경하였다. 이들이 벌거벗겨진 채 내동댕이 쳐있어 개와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지게 된 것은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악인의 손에 이렇게 무참히 이 두사람이 살해된 것을 선(virtur herself)이 괴로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나누스와 예수는 최후를 맞았다.



3. 열심당과 이두매인들이 귀족을 고문하고 살해하다



 아나누스와 예수를 살해한 후 열심당들과 대부분의 이두매인들은 마치 동물들을 대하듯 주민들을 덮쳐 그들의 목을 잘랐다. 귀족이나 젊은 귀족[㈜ \’잘 길들고 묵혀둔 것들을\’ (tou;\” eu!gei\’\” kai nevou\”)은 아래 전쟁. 4권. 5:3(333)의 tw\’n euvgenw\’n nevwn과 평행구이다.]의 경우는 먼저 잡아서 결박시키고 감옥에 가두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으로 죽이려는 것을 연기하고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조국을 배신하는 사악한 무리에 가담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더 원했다. 그들이 거부하면 무서운 고문을 받았다. 열심당과 이두매인들은 너무 심한 매질과 고문을 하여, 그들의 몸이 고문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칼로 죽였다. 낮에 잡은 사람들은 밤에 살해하고 새 죄수들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체는 내버렸다. 모든 주민들은 너무 놀라 위축되어 어느 누구도 감히 친척들의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울거나 슬퍼할 수도 없었고, 장사지낼 수도 없었다. 문을 닫고 몰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고, 적들이 들을까봐 아주 조심조심하지 않고서는 신음소리조차 감히 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애도하는 자들도 곧 죽음을 당한자와 똑같은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단지 밤에만, 흙을 몇줌 떠다가 시체 위에 뿌려줄 수 밖에 없었다. 용기있는 몇 사람은 대낮에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죽은 젊고 지체높은 사람들의 수가 12,000명이 되었다.



4. 모의 재판과 사가랴의 처형



 열심당들과 이두매인들이 그냥 사람을 대량학살하는 데 진력이 나서 가짜 법정을 만들어 사람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바리스(Baris)의 아들 사가랴(Zacharias)를 죽이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은 벨하우젠(Wellhause, \’Eineitiung in die drei eresten Evangelien\’, 2판. 1911. p118이하)에게서 다시 나온 주장으로 인해 신약 학도에게 흥미를 주어왔다. 즉 아벨의 피에서 시작한 유대인 살인극의 마지막으로서 마23:35에 그리스도께서 언급한 성전에서 죽은 \’바라갸(Bariscaeus). 바룩(Baruch)의 본문은 무시됨>의 아들 사가랴와 동일시하려는 것이다. 이름의 유사성과는 오히려 관계가 먼 것에 근거를 둔 이 이론은 지지할 수 없는 많은 근거들이 있다. 첫 복음서의 저자는 몇몇 유대인 랍디들과 같이 여호야다<Jehoiada,(대하24:19이하)>의 아들 사가랴의 죽음을 말하는데 그는 부활의 예언자인 베레갸(Berechiah)의 아들 스가랴(슥1:1)와 혼동했다.] 그는 시민들 중 가장 유력한 인사 중의 하나로 자유의신봉자요 악의 혐오자인 고로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또한 부유했다. 따라서 그를 죽이면, 그의 재산을 장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반대하는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공식적으로 포고령을 내려 유대주민 중 70명의 주요인사를 성전으로 불러 모으고,마치 이들이 실질적인 재판관인 양 꾸몄으나 사실 이들은 어떤권한도 전혀 가지지를 못하였다. 이들 70명 앞에서 사가랴는 예루살렘 통치권을 로마인들에게 넘겨주려는 반역의 죄로 고소당하였고, 또한 이런 목적으로 베스파시안에게 사신을 보내는 배신행위를 저질렀다고 고소당했다. 그러나 그가 고소 당할 어떤증거나 사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소 당할 만 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그들의 주장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단언했다. 사가랴는 배신자로 몰리고 감옥에 갇혀서 그것도 합법적인 재판도 거치지 않고, 체포당한 것을보고 그들에게서 벗어날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살아날수 없는 절망감에서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따라서 그는 일어서서, 그들의 고소내용에 조소를 보내면서 단 몇마디 말로 그에게 뒤집어 씌운 죄들을 논박했다. 그런다음 다시 고소자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그들이 어긴 율법을 분명하게 조목조목 따졌으며, 그들의 공무에 미친 혼란에 대해 매섭게 비난했다. 이러는 동안 열심당들은 점점 더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으며, 끝까지 그럴듯한 엄청난 재판을 하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칼을 뽑고 싶은 마음을 수천 번 참아야 했다.70명의 재판관들은 또한 고소당한 사가랴에게 무죄를 선고했다.이들은 같은 동족의 시체를 보느니보다 차라리 이들도 그와 함께 죽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무죄로 판결했던 것이다. 그가 무죄로 판결되자 열심당들에게 큰 소동이 일어났다. 열심당들은 모두 재판관들에게 분노했다. 왜냐하면 재판관들에게 판결권을 준 것은 단지 생색을 내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이들이 실제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대범한 2명의 열심당이 성전 가운데에서 사가랴를 덮쳐 그를 살해했다. 사가랴가 쓰러져 죽자 그들은 그를 희롱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판결이다. 이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너에게 더 확실한 석방[㈜ 헬라어 단어 ajpovlusi\”는 \’석방과 사망\’ 둘 다를 의미한다.]인 것이다.\” 그들은 또한 그의 시체를 성전 아래 골짜기로 던져버렸다. 게다가 그들은 칼등으로 재판관들을 때리면서 모욕을 하고 성전 뜰 밖으로 몰아냈으며,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왜냐하면 재판관들이 예루살렘 주민들 사이에 흩어져 살게 되면, 이 70명의 재판관들이 바로 예루살렘 주민들은 노예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사신 역할을 한다는 속셈에서 살려준 것이다.



 5. 열심당원 한 사람이 이두매인들에게 행한 자기 당의 범죄 행위를 비난하고 그들에게 떠날 것을 요구함



 그러나 바로 이 때에 이두매인들은 도와주러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했던 행동에 대해 걱정했다. 열심당 중의한 명이 은밀하게 이두매인들에게 와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이두매인들이 열심당들과 연합하여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루살렘의 실상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들은 대제사장들이 예루살렘을 로마군에게 넘겨주는 줄 알고 무기를 잡았으나 사실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믿도록 꾸민 열심당들을 구하려고 했으며 무례한 방법으로 전쟁과 폭정을 마구 휘둘러 댔습니다. 여러분들은 처음부터 그런 일들을 조사해 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동족의 피를 흘리는데 열심당과 한편이 되었다는 것을 일단 알았으니, 그런 죄악을 멈추고 조상의 율례를 전복시키는 그런 자들을 더 이상 돕지 않아야 합니다. 성문이 닫혀서 이 도시 안으로 들어올수 없던 것에 대해 만약 여러분 중 아직까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자들은 처벌을 받았고 아나누스도 죽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모든 주민들은 그날 밤에 다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후회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여러분에게 도움을 요청한 열심당들의 소름끼치는 야수성을 잘 보았을 것이며, 열심당들을 구해준 여러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도 잘 알았을 것입니다. 열심당들은 자신들을 지원해 주었던 여러분들의 눈앞에서 비열한 온갖 짓들을 자행하는 그런 무례한 자들이며, 이들의 사악한 행동을 이두매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파렴치한 인간들입니다. 따라서 반역을 했다는 비방은 열심당의 중상모략일 뿐이며, 로마군도 공격해오지 않으며 예루살렘은 쉽게 쓰러뜨릴 수 없는 폭정에 사로잡혀 있으니 여러분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셔야만 합니다. 열심당같은 악한 사람들과 더 이상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속임을 당해 그들과 공범자가 된 것에 대한 사과를 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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