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권 제 7장 요한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난폭하게 대했는지, 그리고 마사다에서 열심당원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또한 베스파시안이 어떻게 가다라를 점령했는지, 그리고 플라키디우스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하여

 


제 7 장



 요한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난폭하게 대했는지, 그리고 마사다에서 열심당원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또한 베스파시안이 어떻게 가다라를 점령했는지, 그리고 플라키디우스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하여



 1. 열심당의 분열 ; 요한이 독재적인 힘을 장악하다



 이때부터 요한이 폭정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다른 사람과같은 영예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품위가 격하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사악한 집단의 무리와 연합하고 다른 나머지 당과는 단절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명령하며 오만불손하게 일을 처리했다. 따라서 그가 절대 주권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일부분은 요한이 두려워서 복종하고 또 일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그에 대한 호감으로 복종했다. (왜냐하면 요한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거나 속임수를 써서 자기에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무례한 그들의 행동에대한 비난이 한사람에게로 모아지면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한의 활동능력은 아주 대단했으며, 행동에 있어서나 계획을 하는데 있어서나 주도 면밀하여 언제나 주위에 많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녔다. 반면 그는 적도 상당히 많이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요한을 시기하는 자들도 꽤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에 자기들과 같은 위치에 있던 요한에게 복종해야 되는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을 싫어하게 된 주요 원인은 독재적인 통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요한이 일단 한번 왕권을 얻게되면 그의 권력을 전복시키는 것이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요한이 권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계속 그들에게 적대감을 가졌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미가 불확실함. th;n ajrch;n(이것은 부사적인 것이 확실하다. 휘스톤(Whiston)이 \’그들은 그가 가진 권력에 대항해 왔다\’고 번역한것처럼 명사가 아니다.)이 의미하는 것은 항상 부정적 측면을 지녔다. 즉  to; <mh;> th;n ajrch;n ajntipa\’xai는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그에게 대항하지 않았다면 그가 그들에게 어떤 핑계도 댈 수 있었을 것이다\’는 번역이 가능하다.] 그들 모두는 얼마간 자진해서 복종하다가 죽게 되느니보다 차라리 싸워서 어떤 고통이든 견디는 편을 택했다. 그래서 두편으로 갈라져서 내분이 일어났다. 요한은 그의 반대세력에 대하여 막무가내로 폭정을 휘둘렀다. 그러나 서로 방어적인 태도만 취하고 무기를 들고 싸우지는 않았다. 그들은 주민들을 경쟁적으로 억압하고 누가 더 주민의 집을 많이 약탈하는지 경쟁을 했다. 예루살렘은 3가지 큰불행 즉 전쟁, 폭정 그리고 내분의 문제와 싸워야 했다. 이 3가지를 비교해 볼 때 주민들에게는 전쟁이 가장 가벼운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그들은 집을 뛰쳐나와 외국인(로마인)에게로 도망갔다. 그들은 같은 동족들 사이에서 살 가망이 없자 로마인들에게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2. 시카리파가 마사다를 점령하고 노략질을 하다



 유대나라가 몰략으로 가는 4번째 재앙이 일어났다.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주 강한 요새가 있었다. 이것은 옛날 유대왕들이 건축한 것으로 유사시 전쟁 때 재산을 피신시키거나, 몸을 피신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그곳이 바로 마사다(Masada)[㈜ 셉베(Sebbeh), 사해의 서쪽 해안의 하단 근처임.] 침입자들로 장악된 곳으로 전쟁.2권. 17:2(408)에 나옴. 요새에 관한 것과 로마군에 의해 마지막으로 장악된 것에 관하여는 전쟁.7권. 8:3(280)이하에 상술되었다.]라고 불리는 성채였다. 시카리파(Sicarii)라고 불리던 자들이 전에 마사다를 점령했었다. 그러나 이 당시 그들은 생필품을 마련하기 위해 인근 지방을 약탈했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약탈하기 힘들겠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식량을 비축해놓기 위해 노략질을 자행했다. 그러나 그들이 로마군이 아직도 잠자코 있고, 유대인들이 내란과 폭정으로 갈라졌다는 소식을 듣자 대범하게 더 큰 사건들을 저질렀다. 유대인들이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된 기념으로 지키는 무교절에[㈜ 그리고 그때는 결국 주민들 대부분이 예루살렘을 비웠을 것이다.] 그들은 밤에 들키지 않고 내려와서 엔게디(Engaddi)[㈜ 엔게디, 즉 아인 지디(Ain Jidy)는 사해 서쪽 해안에 있으며, 마사다에서 북쪽으로 약 10마일 되는 거리에 있다.]라고 불리는 어떤 작은 마을을 약탈했다. 이 원정에서 그들은 엔게디 주민들이 무장을 하여 싸우기도 전에 공격을 해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주민들을 흩어버리고 도시 밖으로 쫓아냈다. 그들은 도망가지 못한 부녀들과 어린아이들을 약 700명 가량 죽였다. 그리고 나서 집들을 약탈하여 모든 것을 빼앗고, 잘 익은 과일들을 모두 빼앗아 그것들을 마사다로 가지고 갔다. 그들은 요새 주변에 있는 모든 마을들을 황폐화시키고 전체 지역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반면 그들처럼 악한 무리들이 매일매일 전지역에서 마사다로 많이 몰려왔다. 이때에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유대의 다른 지역들도 강도들 때문에 소란스러워졌다. 마치 인간의 육체의 중요 부분이 병들면 사지가 모두 같은 질병으로 시달리는것과 마찬가지로[㈜ 참). 고전 12:26의 \’만일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같은 직유로서 전쟁.1권. 25:4(507).] 악한 무리가 수도에서 내분과 혼란을 일으키자, 지방에서도 똑같은 내분과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따라서 악한 무리들은 모두 각자가 자기 마을을 약탈한 후 광야로 피신했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모여 파당을 형성하여 음모를 꾸미는무리가 생겼는데, 이들은 군대라 하기에는 너무 작고 도적떼로서는 너무 숫자가 많은 그런 규모의 무리가 형성됐다. 게다가 그들은 도시와 성전[㈜ 분명히 회당이나 기도의 집을 의미한다. 이 건물들은 정결의 목적으로 해변이나 강 근처 도시 밖에 세워지기도 했다. 유대는 예루살렘에 유일한 성전이 있었다.]등 거룩한 장소를 습격했다. 이들의 공격을 당한 불행한 희생자들은 전쟁 포로와 같은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노련한 강도들처럼 약탈하다 발각되면 그대로 재빨리 도망을 쳤기 때문에 그들에게 보복할 수가 없었다. 유대의 그 어떤 지역도 이런 비참한 상황을 겪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중요도시든 지방 도시든 온통 수라장이 되었다.



 3. 도망자들에 의해 격앙된 베스파시안이 예루살렘 진격을 준비하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예루살렘을 도망쳐 나온 자들에 의해 베스파시안에게 보고되었다. 왜냐하면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예루살렘 밖에 있는 길목마다 지키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건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몸을 숨겨서 로마군에게 도망온 자들이 몇 명 있었다.[㈜ 전쟁. 4권. 6:3(378).]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와서 남은 주민들을 구해달라고 로마장군에게 간청했다. 아울러 이들은 로마군에게 호의를 가졌다는 이유로 많은 주민들이 이미 살해당했고, 남아있는 자들은 같은 처벌을 받을 것 같은 위험 속에 빠져있다고 알려주었다. 베스파시안은 이들이 겪은 불행을 안타까워하면서 마치 지금 당장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가는 것처럼 진영을 거두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미 처한 「더 나쁜」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 주민들을 구해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다른곳에 남아 있던 자들을 정복해서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방해받지 않게 예루살렘 주변을 먼저 장악하려고 했다. 따라서 베스파시안은 페라이아(Peraea)의 수도인 가다라를[㈜ 본문에 나오는 가다라는 모든 주석가들이 갈릴리 해 남서쪽에 있는 현재의 움 카이스(Umm Keis)또는 무케스(Mukes)라고 하는 중요한 곳과 동일시 한다. 그곳은 경귀시 작가 멜레거(Meleger)와 에비구레오파(Epicurean)인 필로데무스(Philodemus)와 같은 작가들 사이에서 헬라문화를 꽃피운 발상지인 데가볼리(Decapolis)의 주요도시이다. 그곳의 \’많은 부유한 주민들\’을 언급하는 것 때문에 지지를 얻더라도 이 동일화는 많은 반대에 부딪힌다. 즉,(1)무케스(Mukes)는 데가볼리에 있고, 여기에 언급된 가다라(Gadara)는 펠라(Pella)지역의 페라이아(Peraea)의 수도 혹은 대도시라 불리우는 곳으로, 무케스에서 남쪽으로 15마일 떨어진 북쪽 변경에 위치해 있다(전쟁.3권. 46이하). (2)가도라(Gadora, Gadara인지 불확실함)에스 살트(es Salt)는 페라이아에 있고 다른 자료와 부합된다. 왜냐하면 (3)가다라의 도망자들이 도망하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며<420 각주 83)>. (4) 그 마을은 여리고로 바로 가는 노상에 위치해 있어서 북쪽 가다라에서 온 도망자들의 피난처로는 자연스럽지가 못하기 때문이다(431). (5)베스파시안은 가이사랴에서 남쪽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했으며(412), 이미 정복한 갈릴리로 북진한 것이 아니다.] 공격하였다. 가다라는 강한 곳이었는데, 디스트루스< Dystrus, 아달(Adar)>월(月)4일(주후 68년 3월 21일경)에 그 도시로 들어갈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권력을 지닌 인사가 반란자들모르게 베스파시안에게 대사를 보내 항복할 것을 제의했기 때문이다. 가다라 주민들은 평화를 원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특히 가다라의 많은 주민들은 부유했기 때문에, 그들의 재산을 구하기 위해서 항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반대파는 대사를보낸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나, 로마군들이 가다라로 다가오는것을 보고 곧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반대파들은 가다라를 지킬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도시 안에 있던 사람이 적들보다 숫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군들이 도시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도망갈 결심을 했다. 그런데 반대파들은 아무도 죽이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고 도망가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항복하려고 한 장본인을 복수하기로 했다. 그들은 돌레수스(Dolesus)를 잡아서 살해했다. 이런일에 대사를 보낼 듯한 자는 가문으로나 서열로 보나 돌레루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체를 야만스럽게 내던져버렸다. 그들은 너무나 화가나 돌레수스의 죽은 시체까지도 잔인하게 버리고 가다라를 빠져나가 도망쳤다. 이제 로마군대가 들어왔고, 가다라주민들은 즐거운 함성으로 베스파시안을 맞아들였고, 그로부터 신변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다. 베스파시안은달아난 자들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병과 보병의 수비대를 배치했다. 주민들은 로마군이 요청하기도 전에 성벽을 부서뜨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로마군에게 자신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주려고 했기 때문이며, 또한가지는 만약 그들이 마음속에 로마군을 대항하려고 한다하더라도 성벽을 무너뜨렸으니 로마군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4. 플라키두스가 가다라의 도망자들을 죽이다



 베스파시안은 500명의 기병과 3천명의 보병을 플라키두스(Placidus)[㈜ 전쟁. 4권. 1:8(57) 각주 21.)]에게 주고 가다라에서 도망간 탈주자들을 추격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군대와 함께 가이사랴(Cas-area)로 되돌아왔다. 탈주자들은 기병들이 바로 등 뒤에 추격해오는 것을 보고 마주 싸울 생각을 않고, 베데나브리스(Bethen-nabris)라[㈜ 벧 니므라(Beth-Nimrah), 즉 델 니므린(Tell Nimrin)인 것이 분명하다. 이곳은 페라이아 지역에 있는 가다라의 남서쪽으로 약 12마일쯤 떨어져 있고, 여리고(Jericho)로 바로 가는 노상에 있으며, 여리고는 요단강 저편, 즉 이곳과 거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하는 마을로 모두 들어갔다.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반은 그들의 동의를 얻고, 반은 강제로 그들을 무장시켜 갑작스럽고도 무모하게 플라키두스와 기병들을 공격했다. 기병들은 성벽으로 좀더 멀리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첫번 공격에서는 조금 도망가는 척했다. 그리고 공격할 적절한 장소로 유인한 후에 말머리를 돌려 그들을 포위하고 나서 창을 던졌다. 그리고 기병들은 탈주자들의 도망을 차단시키고 그들을 대항해서 싸웠던 자들은 비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유대인들은 용기를 내어 싸웠으나 그야말로 중과부적으로 당할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밀집해서 공격해오는 로마군을 공격했으나 로마군의 완전무장한 군대에 둘러싸여서 화살을 쏠 곳은 찾을 수 없었으며, 로마군의 대열을 부서뜨릴 수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로마군의 화살을 뚫고 마치 사나운 야수처럼 돌격했지만, 로마군의 칼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얼굴에 칼을 맞아 죽거나, 기병들에 의해 쫓겨 흩어지게 되었다.



 5. 요단강가의 대참상



 플라키두스의 관심은 그들이 도망가서 마을에 이르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병들은 그들을 추격하여 둘러싸고 가까이에 있던 유대인들을 겨냥해서 쏘아 죽였다. 멀리 있던유대인들은 위협하여 꼼짝 못하게 하였다. 그들 가운데 용감한 사람들은 기병들의 포위망을 뚫고 마을 성벽으로 도망갔다. 성벽을 감시하고 있던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왜냐하면 가다라에서 온 자들은 같은 동족도[㈜ 421에 나오는 그 마을에서 모여진 신병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그대로 둔다는 것도 어려웠지만 한편으로 만약 그들을 받아들인다면, 자기들도 함께 망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쩔줄을 몰랐다. 그들이 성벽에 이르러 밀고 들어오자 로마군 기병들도그들을 따라 함께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자 감시병들이 로마군들을 막기위해 성문을 닫아버렸다. 이때 플라키두스는 그들을 공격했으며,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용감히 싸워 성벽을 점령했다. 성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힘이 없는 자들 뿐이었는데,그들은 살해당했다. 그러나 힘이 있는 자들은 도망갔다. 병사들은 집을 약탈하고 마을을 온통 불질렀다. 마을을 탈출해 도망간자들은 국경 근처에서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즉 그들의 불행을과장하고 로마군 전 부대가 모두 몰려와 엄청나게 공포심을 자극하여 자기들을 모두 쫓아 냈다고 허풍을 떨었다. 그리하여 도망자들은 많은 무리를 이끌고 여리고(Jericho)로 도망갔다. 왜냐하면 여리고는 강한 성벽으로 싸인 도시이고, 주민들도 아주 많이 살아남을 희망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키두스는 든든한 기병들이 있었고 그 전의 큰 승리에 자신을 얻어,그들을 추격해서 따라잡은 모두 사람들을 살해하며 요단강까지왔다. 플라키두스가 강가로 전체주민을 몰고갔을 때, 병사들에게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전열을 가다듬었다. 강가에서 도망자들은 강물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얼마전에 비가많이 온 까닭에 건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은 강의 제방들을[㈜ 복수형은 한쪽(왼편)제방만을 언급할 수도 있고, 혹은 그 하천의 제방 위에 차례로 포개어진 축대를 나타낼 수 도 있다.] 따라 쭉 늘어서서 로마 기병대의 공격 뿐 아니라 그들에게 쏘아대는 화살들을 버텨냈으나 부상자들과 다른 사람들도 로마군에 밀려 강속에 빠졌다. 적군의 손에15,000명이 살해되었고, 뜻하지 않게 요단강으로 밀려서 죽은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2,200명이 포로로 잡혔다. 또한 당나귀, 양, 낙타, 소 등 엄청난 전리품이 탈취당했다.



 6. 플라키두스는 계속해서 인근의 소도시와 마을을 공격함



 유대인들에게 덮친 이러한 파멸을 얼핏보기에는 다른 지방에서 일어난 재난만큼 심했으나 실상은 지금까지 당했던 것 중 가장 큰 재난이었다. 왜냐하면 여리고 전체가 탈주자들의 시체로 온통 뒤덮였고, 요단강은 시체들로 가득 차 있었을 뿐 아니라 아스팔티티스(Asphaltitis) 호수[㈜ 비투미누스호(Bituminous Lake)로 사해(Dead Sea)를 가리킴.] 역시 요단강을 따라 떠내려온 시체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키두스는 이번에 큰 승리를 거두자 인근의 소도시들과 마을들을 맹렬히 공격했다. 그는 아빌라(Abila)와[㈜ 아벨-싯딤(Abel-Shittim,Kurbet 디-Keffrein)으로 추정됨. 벧 slam라(Beth-Nimrah)의 정남쪽으로 약5마일 떨어져 있음. 전쟁.2권. 13:2(252)에 보면 율리아스(Julias)와 관련하여 언급되어짐.] 율리아스(Julias)[㈜ 율리아스(Julias)혹은 리비아스(Livias),전에는 벧-하람(Beth-Haram,Betharamatha)이었고, 현재는 텔-라메(Tell-Ram도)로 여리고 맞은 편 아벨-싯딤(Abel-shittm)에서 남쪽 2마일 떨어진 곳이다. 전쟁. 2권. 4:2 (59) 각주 31)9:1(168)각주.] 베시못(Besimoth)과[㈜ 벧-예쉬모드(Beth-Jeshimoth)로 율리아스(Julias)남쪽의 수에이메(Sueimeh)임.] 아스팔티티스 호수까지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고, 수비대를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배치를 했다. 그는 병사들을 배에 태우고 추격하여 호수로 도망간 자들을 살해했다. 마카이루스(Mac-haerus)까지[㈜ 사해(Dead-sea)상단부 동쪽 지역.] 페라이아 전 지역이 항복되거나 로마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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