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권 10장 유대와 애굽에 있는 군인들이 어떻게 베스파시안을 황제로 선언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베스파시안이 어떻게 요세푸스를 구금에서 풀어주었는지에 대하여

 


제 10 장



 유대와 애굽에 있는 군인들이 어떻게 베스파시안을 황제로 선언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베스파시안이 어떻게 요세푸스를 구금에서 풀어주었는지에 대하여



 1. 비텔리우스가 게르만에서 로마로 돌아오다



 이즈음에[㈜ 전쟁.4권. 9:9(549)로부터 발췌한 이야기를 요약함.] 로마의 전 지역에서는 심한 중상모략이 있었다.왜냐하면 비텔리우스가 병사와 함께 게르만에서 돌아왔으며 게다가 많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거느리고 왔기 때문이다. 병사들에게 할당된 장소가 비좁아 그들을 다 수용할 수가 없자 비텔리우스는 전 로마지역을 그의 진영으로 만들어 집집마다 모두 무장한 병사들로 가득채웠다. 병사들은 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는 로마의 부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금과 은으로 사방이 장식된것을 발견하자 탐욕을 채우려는 욕심으로 약탈하는 것을 서슴치않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온갖 살육을 자행하였다.[㈜ 비텔리우스(Vitellius)의 로마 입성은 타키투스, \’박물학\'(H.N.).  ii : 89(그의 동포들은 장악된 도시 로마로 무장한 채로 진군해 오는 것을 막기 어려웠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의 Vitell.2에서도 무장한 채로 입성한 자로 그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이달리야에서 일어난 일의 정황이었다.



 2. [비델리우스의 황제 즉위 소식에 베스파시안이 분노함]



 한편[㈜ 전쟁.4권. 9:9(555)로부터 발췌한 이야기를 요약함.] 베스파시안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던 전 지역을 장악하자, 그는 가이사랴로 돌아왔으며 로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와 비텔리우스가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은 베스파시안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가 통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 통치를 따라야하는 것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텔리우스같이 생각없이 행동하며 통치자로서의 자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가 통치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 전혀 만족할 수 없었다. 따라서 베스파시안의 슬픔은 비장했으며,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뿐 아니라[㈜ @perialghvsa\” tw\’ pavqei(고통을 참은 후)라는 구절은 투키디데스(Thuc.)iv:14에서 나온다.] 조국이 폐허화된 마당에 더 이상 이 전쟁을 치를 마음이 없었다.그러나 조국의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는 열정이 그를 자극하는 것만큼 조국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달리야로 건너가려면 많은 어려움이 가로 놓여 있는데 특히 겨울에 여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큰 문제였기 때문에 운명이 그를 막는 것같았다. 그래서 베스파시안은 분노를 자제할 수 밖에 없었다.



3. 성난 그의 병사들이 그들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하다



 한편 베스파시안의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끼리 끼리 모여 공개적으로 혁명을 논하였다. 그들은 분노에 차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로마의 병사들은 전쟁의 풍문도 듣지 않고 편안한 생활을하면서 우리 조국의 통치자들을 그들 마음에 드는 자들로 뽑아서 뭔가 이득을 보려는 희망으로 황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헌데,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렇게 많은 전투를 하고 힘든 무장을 한 채 몇 년을 버텨온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황제를 그들 마음대로 선택하는 권한을 주려고 한 것이란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그들이 세운 어떤 황제들보다 더 그 자리에 합당한 자들이많이 있습니다. 만일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우리 장군들에게 보답할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비텔리우스보다 베스파시안 장군이 훨씬 황제의 자리에 적격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한 자들보다더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게르만에서 온 자들보다 훨씬 많이 대전투를 치루었을 뿐 아니라 반역자들을 로마로 보내는 것에 있어서도 그들보다 많이 했으며, 자질구레한 일이나 고생도 우리가 더 많이 치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로마 원로원이나 주민들도 비텔리우스 같은 음탕한 황제를순수한 베스파시안 장군과 비교한다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베스파시안 장군같은 훌륭한 통치자를 마다하고 야만스런 폭군 비텔리우스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아들이 없는 비텔리우스보다는 아버지인 우리 베스파시안 장군을 선택할것입니다. 가장 큰 평화의 보장은 왕좌의 합법적 승계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어떤 사본 본문에는 \”왕자들의 훌륭한 탁월성에 의해 허용되는\”으로 되어 있다.] 나이든 사람의 연륜에서 나오는 통치능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면 우리에게는 베스파시안 장군이 계시고 젊은이의 강인함이 필요하다면 티투스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연령에서 나오는 두 개의 잇점을 동시에 얻을 수있습니다. 베스파시안과 티투스는 이미 3개의 군단 이외도[㈜ 제5군단, 제10군단과 제15군단(전쟁.3권. 4:2(65)).] 인근지역 왕들로부터 원군을 요청할 수도 있으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비텔리우스에게 위협을 받지 않을 동방 전역과 유럽에도 우리를 지원할 군대가 있습니다. 이달리야에는 바로 베스파시안의 형과[㈜ 플라비우스 사비누스(Flavius Sabinus)는 브리톤(Britain)에서 베스파시안(Vespasian)과 함께 일했고 모에시아(Moesia)의 총독으로 칠년 동안 봉직했으며 이때는 로마시의 총독(praefectus urbis)이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베스파시안의 또다른 아들 (도미티안, Dom-itian)이 있는데, 도미티안에게 많은 귀족청년들이 모일 수 있고, 베스파시안의 형은 로마의 시정(市政)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가 힘을 쓰면 베스파시안이 통치권을 얻는 데에 큰 힘이 될 수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지체를한다면 로마 원로원은 로마병사들이 업신여기는 그런 사람을 황제로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4. 병사들이 베스파시안을 황제로 공포하다



 이러한 대화들이 로마군 병사들 중에 널리 오갔다. 그후 그들은 일치 단결하여 서로 용기를 북돋우고 격려하면서 베스파시안을 황제로 선포하고 그에게 현재 위험에 처한 제국을 구해 달라고 간언했다. 그러나 베스파시안은 공공의 복리를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결코 자신의 승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경력을 생각해 볼 때 황제로서 적격자 임이 틀림없지만 오히려 그는황제로 위험한 위치에 있기보다는 평범한 장군으로 안전하게 있기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황제의 자리를 거절하자, 지휘관들은 더 열렬하게 황제를 수락하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병사들은 떼를 지어 칼을 뽑아들고 둘러서서 황제를 수락하지 않으면죽이겠다고 그를 위협했다. 베스파시안은 황제가 되지 못할 이유를 여러 가지로 대면서 오랫동안 완강하게 거절했으나 결국할 수 없이 그를 황제로 세우려는 간청을 받아들였다.



 5. 베스파시안이 애굽을 확보하다



 무키아누스(Mucianus)와[㈜ 리키누스 무키아누스(Licinus Mucianus)는 수리아(Syria)의 대사였지만 (전쟁.4권. 1:5, 10:6(621)), 곧 베스파시안(Vespasian)제국의 안전을 위해서 이달리야로 파송되어졌다(전쟁.4권. 11:1,4(632,654)). 그의 복합된 성격은 타키투스(Tacitus)에 의해 간결하게 묘사되어진다(Hist. i:10).] 다른 지휘관들은 베스파시안에게 황제처럼 행동하라고 간청하고 병사들은 베스파시안의 모든 반대자들을 공격하겠다고 떠들어 댔다. 그는 애굽이 로마에 곡물을 공급하기 때문에 전적인 통치권을 얻기 위해서는 애굽이가장 중요한 지역임을 알고 먼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점령하기로 마음먹었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그해의 넉 달동안 지내기에 충분한 곡식을 로마에 공급했다(전쟁.2권. 6:4(386)).] 만약 베스파시안이 애굽을 차지한다면 비텔리우스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리라 생각했다.왜냐하면 로마의 주민들이 식량부족[㈜ 혹은 아마 \”(그 전쟁이)지리하게 계속된다면\”일 수 있다. 참).고대.15권. 5:4(148).]을 한번 당하게 된다면 비텔리우스도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베스파시안은 그의 휘하에 있는 군대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2개의 군단을[㈜ 제3군단과 22군단, 전쟁.2권. 16:4(387).] 합세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를 먼저 공격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또 한가지는 베스파시안은 만일 혹시나 계획이 실패될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지역이 바로 알렉산드리아라고 나름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애굽은 육지로도 들어가기 힘들고, 해안으로도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참).전쟁.2권. 16:4(385).] 애굽은 서쪽에는 리비아(Libya)의 메마른 사막이 있고,남쪽에는 에디오피아(Ethiopia)와 나눠지는 시에네(Syene)[㈜ 아스완(Assuan).] 뿐 아니라 항해할 수 없는 나일강(Nile)의 지류들이 있었고, 동쪽으로는 홍해(Red Sea)에서 콥투스(Coptus)까지[㈜ 코프트(Koft).카르낙(Karnak)의 북쪽. 나일강 오른편 제방에 있음. 아마 그 강이 가장 가까이 바다에 붙어있는 장소의 이름일 것이다. 수에즈운하( The Gulf of Suez)를 포함하지 않는 홍해(The Red Sea)는 실제로 훨씬 더 먼 북쪽을 관통(官桶)한다.] 이르는지역이었다. 북쪽으로는 수리아(Syria)까지 이르는 대륙으로 요새화되어져 있었으며, 애굽해(Egyptian Sea)라 불리는 배가 정박하기 위한 항구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바다와 접해 있었다. 이렇게 애굽은 4방이 둘러싸여 있으며, 펠루시움(Pel-usium)과[㈜ 일명 티네(Tineh). 텔 파라마(Tell Farama)는 한때 나일강(the Nile)의 극동부의 어귀였던 곳에 혹은 어귀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시에네(Syene)사이의 길이는 2,000퍼얼롱이며,[㈜ 다시말해 \’약 230마일\’, 이는 매우 틀린 계산이다. 실제적인 거리는 약 650마일이었다.] 플린티네(Plinthine)에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서쪽안에 있는 애굽(Egupt)의 전초기지. 정확한 장소는 밝혀지지 않고 있음.] 펠루시움까지 뱃길로는 3,600퍼얼롱이다.[㈜ 다시말해 \’약414마일\’, 이 숫자는 델타(Delta)유역(약220마일)을 배로 항해하는 실제 거리의 거의 두배이다.] 나일강은 엘레판틴(Elephantine)이란[㈜ 아스완(Assuan)맞은 편에 있는 제일 카타락트(First Cataract)아래 있는 섬.] 도시까지 항해할 수 있었는데, 지류들 때문에 더 이상 배가 들어갈 수 없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항구는[㈜ 즉 대항구(Great Harbour), 스트라보(Strabo), xvii, : 791 이하에서 이 세 항구에 대한 더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음.] 보통 평화스러운 시절에 조차도선원들이 힘들게 통과하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입구가 좁고 물속에 바위가 많아,[㈜ 스트라보(Strabo), 791.]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항구의 왼쪽은 인공 구조물들로 막혀있으며, 오른쪽에는 파로스(Pha-ros)라는 섬이 있는데, 바로 항구 입구에 위치해 있었으며, 아주 큰 탑이 있어서 300퍼얼롱까지 불빛을 비추어 주어 밤에 배들이 항해할 수 있게 하거나, 항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멀리서 닻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게 한다. 이 파로스 섬 둘레에는 아주 큰 인공방파제가 있다. 파도가 거세게 인공 방파제를 때리면 그 파도의 파문 때문에 항해가 매우 힘들고 곧 바로 진입하기가 위험스럽다. 그러나 일단 항구는 들어오기만 하면 아주 안전하다. 항구의길이가 30퍼얼롱이다.[㈜ 대항구(Great Harbour)는 단지 이 길이의 반쯤되었던 것 같다. 언급된 숫자(약 3.5마일)는 유노스투스(Eunostus)항구를 포함하여야 겨우 성립될 수 있다. 다시말해 이 둘은 원래 헵타스타디온(Heptastadion)이라 불리는 둑길에 의해 나누어졌는데 이것은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스트라보 792).] 그 항구를 통해 애굽에서 부족한 물품을 가져오고 애굽에서 남는 것은 전세계로 수출되었다.[㈜ 스트라보(Strabo)798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세상에서 가장 큰 시장(megiston ejmpovrion th\’\” oijoumevnh\”)이라 부르고 그리고 알렉산드리아가 외부에서 공급받아 비축하고 있는 값비싼 상품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6. 티베리우스 알렉산더는 베스파시안을 위해 알렉산드리아를 확보하다



 따라서 베스파시안은 전 제국을 장악하기 위해 애굽을 장악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애굽과 알렉산드리아의 통치자인 티베리우스 알렉산더(Tiberius Alexander)에게[㈜ 전쟁.2권. 11:6(220)주에서는 그의 다양한 경력을 요약하고 있음.] 사람을 보내 군대가 그를 강권하였기 때문에 황제라는 무거운 짐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신의 지지자와 동맹을 하기를 바란다는 전갈을 보냈다. 알렉산더가 이 편지를 읽자마자 곧 군대와 주민들에게 베스파시안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 이미 베스파시안의 용감함에 대해선 인근지역에서 행한 그의 업적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이들은 거기에 기꺼이 따랐다. 따라서 플린티네안은 이미 통치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보고 로마로 원정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가 동부지역을 통괄하는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전지역에 퍼졌으며, 이에 각 도시들은 축제를 열고 제사와 봉헌식을 가지기도 했다.

 모에샤(Moesia)와 판노니아(Pannonia)에서[㈜ 다누블(Danuble)의 남쪽 지방에 있는 지역들, 즉 동쪽지역(세르비아 와 불가리아)을 덮고 있는 모에샤(Moesia), 그리고 서쪽지역(오스트리아와 그 주변 영토)을 포함하는 파노니아(Pannonia).] 얼마 전에 소동을 일으켰던 군대들은 베스파시안이 황제가 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워하며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타키투스(Tacitus) \’박물학\'(H.N.)ii : 85이하. 모이샤(Moesia)에 있는 군단들은 제3군단 갈리카(Gallica)(전쟁.4권. 11:1(633)을 참고), 제7군단 클라우디아(Claudia),그리고 제8군단 아우구스타(Augusta)였다. 파노니아(Pannonia)에 있는 군단들은 제7군단 갈비아나(Galbiana)와 13군단 제미나(Gemina)였다.] 그후 베스파시안은 가이사랴를 떠나 베리투스(Berytus)로[㈜ 베이루트.]왔는데 그곳으로 리아에서 많은 사절들이 그에게 찾아왔으며, 그밖에 다른 지방에서도 주민들의 축하와 성원을 가지고 그에게 문안했다. 또한그 지방의 총독이었던 무키아누스도 와서 주민들이 그 소식을듣고 아주 기뻐했다는 것과 각 시의 주민들이 베스파시안에게 충성의 맹세를 했다는 사실을 베스파시안에게 전했다.



7.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된 요세푸스



 이렇게 베스파시안을 지지하는 행운이 도처에서 그가 바라던 바대로 되어져 갔으며, 국정의 거의 대부분은 이미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이런 사실에 대해 그는 신의 섭리(Divine Provi-dence)에 없이 통치권을 장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어떤 정의의 운명이 자신을 황제의 자리에 앉히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황제가 될 것이란 사실을 미리 예고한 많은 예언들 중에서[㈜ 서로 다른 절대권력(omima imperii)들이 타키투스의 \’박물학\'(H.N.)ii : 78과 수에토니우스(Suetonius)(Vesp.5)와 디온 카시우스(Dion (lxvi : 1)에 언급되어 있다. 뒤의 두 작가들은 요세푸스의 예언을 언급한다. 베버(Wever)는 그의 저서 \’Josephus and Vespasian\’ 45에서 그들은 어떤 동일한 자료를 사용했다고 믿는다. 참). 전쟁. 3권. 8:9 (404) 각주.] 그는 요세푸스가 네로 생전에 그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감히 위험을 무릎 쓰고 예견한 것을 기억해냈다.[㈜ 전쟁.3권. 8:9 (401).] 그는 요세푸스가 아직도 결박당해 있다는 것에 매우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그는 무키아누스를 다른 지휘관들과 친구들을 함께 불러서 그들에게 요세푸스가 얼마나 용기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알려 주었고, 요타파타 공격 때에 얼마나 자신이 요세푸스에게 몹쓸 짓을 했는가에 대해 말했다. 요세푸스가 두려움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황제가 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하늘에서 온 예언임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에 베스파시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 그전에 내가 황제가 될 것을 예언한 요세푸스가 아직도 조수나 포로상태로 결박되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는 하늘의 전갈을 내게 전해 준 사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베스파시안은 요세푸스를 불러서 자유의 몸이 될 것을 지시했다. 여기에 지휘관들도 베스파시안이 완전히 이방인인 요세푸스에게 베푼 보답을 보고 자신들도 요세푸스를 환대할 것을 약속했다. 옆에 있던 티투스가 베스파시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님 요세푸스에게 쇠사슬과 함께 죄수라는 불미스러운 명패도 벗겨주셔야 합니다. 단지 그의 결박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전과를 말소시켜야 그는 전혀 결박당한 적이 없는 사람과 같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이유없이 결박당한 자들에게 행하던 통상적인 관례였기 때문이다. 베스파시안 역시 이 충고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쇠사슬을 도끼로 잘라 풀어주었다. 그리하여 요세푸스의 예언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틀리지 않은데 대한 보답으로 베스파시안이 해방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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