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권 제 3장 많은 로마군들을 태워 죽인 유대인들의 전략에 대하여, 그리고 예루살렘 시 안의 극심한 기근을 또다시 설명함.

 


제 3 장



 많은 로마군들을 태워 죽인 유대인들의 전략에 대하여, 그리고 예루살렘 시 안의 극심한 기근을 또다시 설명함.



 1. 유대인의 계략으로 많은 로마군이 회랑위에서 불에 타 죽음, 파네무스월 27일에 있었던 사건 [8월 15일]



 성전 안에 있던 강도들은 토성위에 있는 로마 병사들을 격퇴하기 위해 매일 정면 공격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파네 무스월 27일에 다음과 같은 계략을 꾸몄다. 강도들은 서쪽 회랑의 서까래 사이에 있는 공간과 회랑의 천장 밑을 마른 나무와 역청과 송진으로 가득 채운 다음에, 마치 완전히 기진맥진한 사람처럼 후퇴했다. 그러자 신중치 못하고 경솔한 많은 로마 병사들이 무분별하게 후퇴하는 유대인들을 추격하기 위하여 사다리를이용해 회랑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좀더 신중한 병사들은 유대인들의 까닭모를 철수를 수상쩍게 생각하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회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병사들로 빽빽했다. 바로 그때 유대인들이 아래에서 건물전체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고, 사다리로 올라오지 않고 밖에 있던 로마군은 놀라움에 사로 잡혔으며 회랑위에 올라갔던 로마군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떤 병사들은 화염에 휩싸이자 예루살렘 쪽으로 뛰어 내렸으며, 어떤이들은 적 가운데로 뛰어 내렸다.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구하려고 동료들 쪽으로 뛰어 내렸으나 사지가 부러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사는 불길을 피하려고 우왕좌왕 하다가 불에 타 죽었으며 몇몇 병사들 은 불길에 휩싸이기 전에 칼로 자살하였다. 게다가 불길이 사방으로 삽시간에 퍼졌기 때문에 병사들이 미처 칼로 자결하려고 하기도 전에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티투스는 병사들이 명령도 없이 사다리를 타고 회랑에 올라간 것에 대해 화가 났지만 죽어가는 병사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찼다. 그들을 구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어쨌든 군인 복무 중에 숨져 가는 병사들에게는 적어도 안타까워하고 애통해 하는 티투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도 위안이 되었다. 왜냐하면 병사들은 티투스의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는데, 티투스는 그들에게 뭐라고 소리치면서 앞으로 나왔으며 주위에 있는 병사들에게 최선을 다해 그들을 구해내라고 격려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죽어가는 각병사들은 마치 화려한 장례식처럼 엄청난 함성과 티투스의 동정을 받아가면서 기뻐하며 죽였다. 한편 일부 병사들은 회랑의 성벽으로 되돌아 왔는데 그곳은 넓었으며 불길을 피할 수 있었다.그러나 병사들은 그곳에서 유대인들에게 포위 당했으며 한동안 저항하면서 버티었으나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은 끝에 결국은 모두 죽고 말았다.



 2. 개인적인 공훈 ; 롱구스(Longus)의 용맹성



 그들 가운데 최후의 생존자인 롱구스(Longus)라는 젊은이는 이런 비극적인 상황속에서 빛을 발하는 인물이었으며 죽어간 모든 사람 각자 각자가 다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었지만 특히 그는 용맹스러움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었다. 유대인들은 롱구스를 죽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의 용맹성에 탄복해서 목숨을 살려줄것이니 내려오라고 설득했다. 반면 롱구스의 형제인 코르넬리우스(Cornelius)는 롱구스에게 롱구스 자신의 명예와 로마군 전체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롱구스는 코르넬리우스의 말에 동조하여 로마군과 유대인 양편이 모두 보는 가운데 칼을 뽑아 자결하였다. 불길에 휩싸였던 자들 가운데 아르토리우스(Artorius)라는 자는 꾀를 써서 목숨을 던졌다. 아르토리우스는 급히 달려왔으며 아르토리우스는 루키우스쪽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아르토리우스의 몸을 받던 루키우스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도로 위에 넘어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러한 재난은 로마군을 얼마동안 낙담케 했지만 그후로는 오히려 로마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사건을 통해 로마군은 유대인의 술책에 대해 더욱 조심했으며 이러한 도전과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더욱 경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군은 유대인의 기질과 지리를 잘 몰랐기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불길은 요한이 시몬과 대항할때 키스투스(Xystus)로 이어지는 성문 맞은 편에 세운 망대까지[㈜ 기스칼라의 요한(John of Gischalas)이 세운 4개의 탑중 두 번째. 전쟁. 4권. 9:12(580).] 회랑을 태워 버렸다. 사다리를 이용해 회랑에 올라간 로마 병사들이 전멸당한 후, 나머지 남은 회랑들은 유대인들이 부숴버렸다. 그다음날 [8월 16일경] 로마군들은 동쪽 회랑까지 이르는 북쪽회랑 전체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북쪽 회랑과 동쪽 회랑이 만나는 귀퉁이는 기드론(Kedron)골짜기 위에 건설되어져 있었으며, 이 지점은 내려다 보기 겁날 정도로 깊었다. 성전 주위의 상황이 바로 이와 같았다.



 3. 기근의 참상



 한편 예루살렘 성 안에는 기근으로 죽어가는 희생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생겼으며 기근의 참상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없을 정도였다. 각 집마다 음식이 있다는 기미만 보이면, 그것은곧 싸움이 벌어진다는 신호였다. 가장 가까운 일가라도 목숨을겨우 연명하는 음식물을 서로 빼앗으며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못먹어서 거의 다 죽어가는 자라 할지라도 음식이 없다고 말해도 믿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강도들은 먹지 못해 곧 죽어가는 자들까지 낱낱이 뒤졌으며 혹시 그들이 옷속에 먹을 것을 숨기고 죽는 척하는 짓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이 악당들은마치 미친 개처럼[㈜ 참). 시편기자의 미소. \”저휘로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저희는 식물을 위하여\” 시 59:14이하.] 배고픔으로 멍하니 입을 벌린채 비틀거리며갈지(之)자로 걸으면서 술취한 사람처럼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으며, 배고픔에 너무 견디다 못해 한 시간에도 두 세 번씩 같은집에 난입하여 샅샅히 뒤졌다. 굶주림으로 어쩔 도리가 없자, 그들은 어떤 것이든 먹을 수 밖에 없었으며 가장 더러운 짐승들조차 먹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을 손수 모아다 먹었다.

 이리하여 결국 그들은 허리띠나 신발도 마다 않고 뜯어 먹었으며 방패의 가죽조차도 씹어 먹었다. 어떤 사람들은 건초 더미를 씹기도 했으며, 몇몇은 나무줄기를 모아 적은 양을 아덴의4 드라크마(drachmas)에[㈜ 돈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처럼 헬라어로 나와있지 않다. 전쟁.2권. 21:2(592). 아덴의(Attic)드라크마는 노동자 하루 품삯이다.] 팔기도 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을 막론하고 역사에 있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요세푸스가 왕하 6:28이하에 나오는 사마리아 공격과 병행된 사건을 간과한 것은 이상하다. 참). 신28:57과 바룩서 2:2이하. \’예루살렘에 발생한 이런 큰 질병은 하늘 아래 없을 것이며…모든 남자들은 그의 자녀를 고기로 먹을 것이며\’.] 말하기 조차 끔찍스럽고 들어도 믿기 어려운 행동을 기록하는 이 마당에 기근으로 인해 먹을 수 없는 물건들까지 부끄러움 없이 먹어야 된 사실을 내가 왜 굳이 말했겠는가? 나는 후세 사람들이 내가 이상한 끔찍스러운 날조된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나 의심할까 두렵다.[㈜ 또는 \”나는 자손들에게 의심받지 않기를 바란다…그리고 정말 나는 기쁘다\”등.] 만일 내 당대 사람들 가운데 이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많지 않았다면 나는 기꺼이 이러한 비극적 참상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나의 조국이 실제로 당한 이같은 재난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조국에게 찬사를 돌리는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기록한 것이다.



 4. 자식을 잡아먹은 어머니 마리아(Mary)



 한편 요단강(Jordan) 건너편 지역에 살던 거주자들 가운데 마리아(Mary)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엘르아살(Eleazer)로 베데수바(Bethezuba)마을 출신이었다. (베데수바는 \”히솝의 집\”(House of Hyssorp)이란[㈜ 히브리어는 벧 에솝(Beth Ezob):장소가 불분명함.] 뜻이다) 마리아는 가문이나 재산에 있어 유명인사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도망쳐 왔다가 예루살렘 포위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페라이아(Peraea)에서[㈜ 트랜스요르다니아(Transjordania).전쟁.3권. 3:3(44).] 짐꾸려 가지고 온 모든 재산은 폭군(강도)들에게 모두 약탈당했다. 그녀의 남은 귀중품들과 힘들게 구한 식량들은 강도들이 매일 약탈해 갔기 때문에 모두 빼앗기고 없었다. 마리는 몹시 분개해서 욕설을 계속 퍼부었으며 그래서 강도들도 맞서 마리아에게 화를 냈다. 그러나 강도들은 이에 격분했거나 동정을 했거나 간에 다른 식량을 찾아 헤매는데 지쳐 누구도 그녀의 목숨을 건드리는 자는 없었다. 어느곳에서도 먹을 것을 구하기란 불가능했다. 기근은 그녀의 창자와 뼈속까지 고통에 사무치게 만들었으며 배고픔보다 심지어 분노때문에 가슴이 타게 되었고 이러한 격분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자, 마리아는 결국 윤리 도덕에 벗어나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마리아는 품안에 있는 어린 아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오 불쌍한 아가야! 전쟁과 기근과 내란 속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너를 보호해야 하겠니? 로마군이 성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다 해도 노예의 신분이 되는 것이고, 아마 노예가 되기 전에 기근으로 죽게 될 것 같단다. 그러나 노예 신분과 배고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강도들이란다. 자 아가야! 이리와서 내 음식이 되어다오. 그래서 강도들에게는 복수의 분노를 보여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의 재난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되어다오. \”이말을 하고 마리아는 아들을 죽여서 몸을 구운 후에 반은 먹고 반은 싸서 감추어 놓았다. 이때 강도들이 냄새를 맡고 그녀에게 들이 닥쳐서는 만들어 두었던 음식을 내놓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마리는 그들을 위해서 충분한 양을 남겨 놓았다고 대답하면서 뜯어 먹다 남은 아들의 시체를 펴 놓았다. 강도들은 이 광경을 보고 끔찍스러워 어안이 벙벙한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이에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들이요. 내가 손수 만든 요리란 말이요. 내가 금방 이 요리를 먹었으니 당신들도 먹어 보시오. 여자보다 더 나약하거나 어머니보다 더 측은히 여기는 모습을 보이진 마시오. 만약 당신들이 내가 아들을 죽인 것을 불쌍히 생각하고 양심의 가책이 된다면, 당신들의 몫을 내가 먹었다고 생각하고 남은것은 그대로 손대지 말고 가시오.

 그러자 강도들은 겁에 질려 떨면서 남은 인육(人肉)을 마리아에게 남겨두고 떠났다. 이 가증스러운 사건은 예루살렘 전체에 곧 퍼졌으며 주민들은 모두 그러한 끔찍한 사건을 상상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그 일을 저지르기라도 했던 것처럼 공포에 몸을 떨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은 죽기를 매우 갈망하면서 차라리 이러한 무섭고도 끔찍한 사건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그 전에 죽은 자들을 부러워하였다.



 5. 티투스의 선언



 이 무서운 소식은 곧 로마군에게 전해졌다. 병사들 가운데 어떤이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고 어떤이들은 측은하게 생각했으나 대부분은 유대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그들의 증오심을 더욱 불태우게 되었다. 가이사 티투스는 하느님 앞에서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은 죄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티투스는 하느님께 자신의 결백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저는 유대인들에게 평화와 독립을 제안했으며 과거에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서는 사면해 준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반면 유대인들은 화해보다는 내분을, 평화 대신 전쟁을, 풍족함과 번영 대신 기근을 선택한 자들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저와 우리 로마군이 그들을 위해 보존하려고 했던 성전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불을 지른 작자들입니다. 아들을 잡아 먹는 이러한 끔찍스러운 사건도 어쩌면 받아야 될 벌을 마땅히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 아이를 잡아먹는 이러한 혐오스러운 일을 유대의 폐허속에 묻어 버릴 것이며, 태양이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자식을 잡아먹는 도시는 지구위에 남겨두지 않을 것입니다. \”티투스는 이같이 말하면서 자식을 잡아 먹는 행위가 아버지라도 차마 할 수 없는 것인데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이러한 끔찍한 사건 후에도 계속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티투스는 이러한 감정들을 표현하면서, 유대인들은 이미 온갖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지 오래며,동정받을 수 있는 차원을 벗어난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유대인들의 필사적인 극한 상황에 더욱더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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