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권 제 6장 마카이루스라고 하는 도시에 대하여, 그리고 루킬리우스 바수스가 마카이루스 성과 다른 지역을 점령한 것에 대하여

 


제 6 장



 마카이루스라고 하는 도시에 대하여, 그리고 루킬리우스 바수스가 마카이루스 성과 다른 지역을 점령한 것에 대하여



1. 유대에 파견된 루킬리우스 바수스가 마카이루스를 공격하는 것에 관하여



 한편 루킬리우스 바수스(Lucilius Bassus)는 유대에 부총독(legate)으로 파견되었으며, 그는 케레알리우스 베틸리아누스(Cerealius Vetilianus)에게서[㈜ (비문에 기록된 것과 같이 불려지는) 섹스투스 베툴레누스 케리알리스(Sextus Vettulenus Cerialis)는 전쟁기간중 제5군단의 사령관이었다. 전쟁.3권. 7:32(310)등, 그리고 그후 티투스에 의해 점령군 즉 제10군단과 다른 부대의 명령하에 두어졌다(전쟁.7권. 1:2(5)).] 지휘권을 인계받은 후에 인수받은 수비대를 거느리고 헤로디움(Herodium)요새를[㈜ 예루살렘의 정남쪽 60스다디온 떨어진 헤롯 요새와 매장지.] 정복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흩어져 있던 수많은 분대들을 모두 한 곳으로 집결시켰다. 여기에는 제10군단도 포함되었다. 루킬리우스는 이 모든 병사들과 함께 마카이루스(Machaerus)를[㈜ 마카이루스(Macherus)의 북쪽 끝 부근, 사해의 동쪽.] 공격하기로 결심하였다.



[마카이루스 요새에 대한 설명]



 이 마카이루스는 아주 튼튼한 요새로 반역을 일으킬 소지가다분하기 때문에 애초에 근절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마카이루스는 지형적인 특성상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그곳에 거주하는 자들에게는 안전에 대해 높은 신뢰감을 가질 수 있기에 아주적절했으며, 반면 그곳을 공격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에 기가꺾여 공격을 그만두게 만드는 천연의 요새였다. 마카이루스는위치상 바위로 된 아주 높고 험준한 지역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점만으로도 그곳은 정복하기 힘든 요새였던 것이다. 게다가 접근하는 것조차 지형적으로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마카이루스는사방이 보기에도 아찔한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너기도 쉽지 않았으며, 마카이루스 요새를 에워싸고있는 서쪽 계곡은 60퍼얼롱까지 이르렀으며 아스팔티티스 호수(the lake Asphaltitis)까지[㈜ 사해.] 이어졌다. 마카이루스의 가장 높은 절정은 서쪽이었다. 북쪽과 남쪽에 있는 계곡들은 서쪽보다는 덜 깊었지만 공격을 하기 위해 건너기에는 여전히 힘든 지형이었다. 동쪽 계곡은 깊이가 100규빗정도 되었는데 마카이루스맞은 편에 있는 산까지 이어져 있었다.



 2. 마카이루스의 역사



 유대의 왕 알렉산더(Alexander)는[㈜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 주전. 104-78년.] 이러한 마카이루스의 지형적 특성을 주목하고 제일 처음으로 이곳에 요새를 세웠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후 가비니우스(Gabinius)가[㈜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교전한 폼페이의 총독(전쟁.1권. 6:6(140)), 그리고 주전 57-55년부터 수리아의 지방총독이었음(전쟁.1권. 8:2이하(160)이하)).]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전쟁을 하면서 이 마카이루스 요새를 파괴하였다.



[헤롯의 건축물]



 그러나 헤롯(Herod)이 왕이 되면서 아라비아(Arabia)와의관계를 염두에 두고 마카이루스가 아라비아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마카이루스를 가장 막강한 요새로 만들려고 하였다. 따라서 헤롯은 넓은 지역에 성벽과 망대를 삥둘러 세우면서 그 안에도시를 건설하였으며, 도시에서부터 산꼭대기에 있는 요새까지이르는 오르막 길을 만들었다. 게다가 헤롯은 산꼭대기 위에도삥둘러 가며 성벽을 쌓았으며 각 모퉁이에는 60규빗 높이의 망대를 건설하였다. 헤롯은 둘러친 성벽 한 가운데에 크고 아름다운 궁전을 지었다. 그는 또한 가장 적절한 장소에 빗물을 받기위한 수많은 저수지를 마련하여 충분한 물을 공급하였으며, 마치 거의 난공불락의 마카이루스의 자연적인 지형적 잇점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인위적인 방법으로도 더욱 튼튼히 요새화하였다.왜냐하면 헤롯은 수많은 저수지 이외에도 요새 안에 충분히 많은 무기들과 공성 장비들을 비축해 두었으며, 오랜 포위공격에도 성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



 3. 마카이루스의 자연현상



 궁전안에는 엄청나게 큰 운향(蕓香)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눅11:42에 나오는 소규모 정원의 약초. ruta graveloens(강렬한 냄새가 나는 약초)는 팔레스틴에서 아직도 재배되고 있으며 반면에 ruta bracteosa는 흔한 야생식물이다(Tristram은 \’성서백과\'(Encycl.Bibl.)서 인용함).] 크기나 두께에 있어 무화과 나무는 비교가 될 수 없는무성하고 거대한 나무였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그 나무는 헤롯왕 때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왔으며, 후에 궁전을 장악한유대인들에 의해 잘려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 후대에도 전해졌을 나무였다는 것이다. 마카이루스를 에워싸고 있는 북쪽 계곡에는[㈜ 사해로부터 흘러 떨어지는 Wady Zerka(아마도 광야 방황의 한 지역인 나할리엘(Nahalie)일 것이다, 수21:19).] 바아라스(Baaras)라고[㈜ \”바아루(Baaru)\”온천(아래 참조)은 제롬과(\”iuxta Baaru in Arabia, ubiaquas calidas sponte humus effert\”)그리고 그밖의 곳에서 언급되었다. \’G.J.V.\’ i;414.] 불리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곳의 이름을 따서 붙힌 바아라스라는 식물의 뿌리가 있었다. 이뿌리는 새빨간 빛을 띠고 있다가 저녁이 되면 밝은 불빛을 발하였는데, 그것을 뽑으려고 다가가서 붙잡으면 손에 붙잡히지 않고 오그라들었으며 아무리 해도 뽑히질 않고 오로지 사람의 배설물을 부어야만 뽑을 수 있었다.[㈜ 참). 전쟁. 4권. 8:4(480).] 게다가 그 뿌리를 만진 자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으며, 손을 대지 않고 뿌리 자체를[㈜ 의미가 의심스럽다 : 추측컨데 \”어떤 이가 동일한 뿌리를 가져가지 않는 한\”.] 다른것으로 묶어 운반해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뿌리를 뽑는 다른 안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뿌리 주위를 다 파고 뿌리 주위의 최소한의 부분만을 남겨둔 후에 개를 그 조금 남은 뿌리 주위에 묶어 두면 주인을 따라오려는 개가 돌진하면서 쉽게 그 뿌리를 끌어 당기게 되어 뽑을 수가 있었다. 결국 그 개는 그 식물을뽑으로 온 사람 대신 희생자가 되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개가 죽은 후에는 식물에 손을 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놓고 식물을 만질 수 있었다. 이 식물을 뽑는데 이와 같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물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이유는 그 뿌리의 뛰어난 약효 때문 이었다. 왜냐하면 환자들에게이 식물 뿌리를 갖다 대기만 하면 소위 귀신들(demons)이라 부르는 사악한 자들의 영들을 즉시 쫓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러한 악한 영들은 살아있는 자에게 들어와서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지 않으면 귀신들린 자는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카이루스에는 또한 온천들이 흘러 나왔는데, 각기 아주 다른 맛을 지니고 있어 쓴맛도 있고, 어떤 것들은 아주 단맛이 났다. 또한 냉천들도 솟아 나왔는데, 모두 한줄기로 흐르는 저지대에만냉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그 옆에 그리 깊지 않은 동굴이 하나 보이는데, 이 동굴을 삐죽솟아나온 바위로 막혀져 있었으며 그 바위 위로 마치 2개의 유방처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솟아난 부분에서 한쪽은 아주 뜨거운 물이, 다른 한 쪽은 아주 찬물이 흘러나왔다. 양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합쳐져서 이 온천수는 아주 적절하고 기분 좋은 목욕을 할 수 있었으며, 일반적인 의학적 질병 치료에 효능이 있었는데, 특히 근육에 원기를 회복시키는 데에는 특효였다. 또한 마카이루스에는 유황과 명반(明礬 : alum)광산들도 있었다.



 4. 마카이루스의 포위공격



 한편 바수스(Bassus)는 마카이루스를 사방으로 정찰한 후에동쪽 계곡을 흙으로 메꾸어 마카이루스로 접근하기로 결심하였다. 바수스는 이 작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며, 마카이루스를포위하기 쉽게 하기 위한 흙으로 토성 쌓는 일을 최대한 빨리 끈내려고 노력하였다. 마카이루스 안에 서로 유대인들은 함께 생활하는 이방인들과 자신들을 분리시켰다. 이방인들은 한낱 별볼일 없는 오합지졸로 여겨 그들을 하부 도시에 남아 있도록 강요하여 만약 공격을 당하게 될 경우 제일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되도록 하였다. 반면 유대인 자신들은 위쪽의 요새를 차지하고 있어요새가 워낙 튼튼해서 방어하기 좋은 점도 있었으며, 혹시 그들이 로마군에게 요새를 넘겨줄 경우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하면서 자신들만의 안전을 위해 위쪽의 요새를 차지하고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먼저 로마군의 봉쇄된 포위망을 뚫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따라서 마카이루스의 유대인들은 매일 기습공격을 강행하였으며, 토성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는 로마 병사들과 백병전을 벌였다. 여기서 많은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동시에 로마군도 많이 살해하였다.그런데 이 로마군과 유대인들 양쪽 편 가운데 매일 매일 전투의승리는 운이 항상 주로 승패를 결정하였다. 만약 유대인들이 로마군의 수비가 허술한 때 공격하면 승리는 유대인들에게 갔으며, 토성을 쌓고 있는 로마군이 유대인들의 공격을 미리 알고 방어태세에서 유대인들과 붙으면 승리는 로마군쪽의 것이었다. 그러나 로마군의 마카이루스 포위공격을 종결시킨 것은 유대인들의 기습공격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요새를 넘겨줄 수 밖에없었던 놀라운 사건 때문이었다. 그 사건은 다음과 같다.



 [엘르아살의 체포]



 로마군에 의해 포위 당한 마카이루스에 한 젊고 대담하고 불굴의 힘을 지닌 엘르아살(Eleazar)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엘르아살은 로마군과의 백병전에서 뛰어난 공훈을 세운 인물로서, 많은 동료 유대인들이 공격을 잘 할 수 있도록 선동하면서 로마군이 토성 쌓는 일을 진척시키지 못하도록 하는데 앞장서서 싸웠으며, 매 전투마다 로마군을 무섭게 쳐부순 젊은이였다. 게다가엘르아살은 함께 싸우는 동료 유대인들 모두가 쉽게 공격을 할수 있도록 했으며, 후퇴할 때에도 맨 나중까지 남아 동료 유대인들이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로마군과의백병전이 끝나서 양편이 퇴각했을 때에 엘르아살의 적군이 다시공격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성벽에서 동료들과 성문밖에 남아 있으면서 이야기하는 데만 정신이 빠져있었다. 이때애굽출신의 루푸스(Rufus)라는 로마 병사가 이 기회를 포착하여 아무도 전혀 예상치 못하게 엘르아살을 공격하여 무장해 있는 그를 사로잡았다. 이 광경을 성벽에서 보고 있던 유대인들이놀라서 질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루푸스는 엘르아살을 로마 진영까지 끌고갈 수 있었다. 이에 로마 지휘관 바수스는 엘르아살의 옷을 벗겨 마카이루스 성 안에 있는 유대인들이 볼 수 있는지점에서 그를 심하게 채찍질하라고 지시하였다.



[엘르아살이 요새를 넘겨주도록 요청하다]



 유대인들은 채찍질 당하는 엘르아살을 보고 심히 마음이 아팠으며, 마카이루스 전 시내가 단순한 개인적인 불행이상 가는 애통과 탄식을 했다. 바수스는 이 광경을 보고 유대인들의 이러한슬픔을 더욱 자극하여, 그들로 하여금 요새를 넘겨주고 목숨을구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유도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바수스의 이러한 생각은 적중하였다. 바수스는 우선 마치 엘르아살을즉시 처형할 것처럼 십자가를 세우라고 지시하였다. 이 광경을보자 유대인들은 크게 당황하여 엘르아살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참상을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탄식하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이때 엘르아살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자신을 생각해서 로마군에게 항복하여 그들 자신들의 안전을 구하라고 부탁하였다. 엘르아살은 마카이루스를 제외한 다른모든 유대인들이 이미 굴복 당한 마당에 강력한 군사력과 행운까지 따라주는 로마군에게 항복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호소하였다. 엘르아살의 이러한 호소는 마카이루스의 많은 유대인 중재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왜냐하면 엘르아살은 세도있는 훌륭한가문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본래 그들의 기질과는달리 이번에는 엘르아살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일어, 요새를 넘겨주는 것을 타협하기 위해 급히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유대인들은 안전하게 이 성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 줄 것과 엘르아살도 그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바수스와로마 병사들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한편마카이루스의 하부도시에 있던 이방인 주민들은 유대인들이 자기들만 로마군과 협상한 사실을 듣고 밤에 몰래 도망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성문을 열기가 무섭게 이 소식이 바수스의 귀에 들어갔다. 이것은 바수스와 협상을 했던 유대인들이바수스에게 이를 알려준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부도시의 이방인들이 목숨을 구하는 것을 싫어했던지, 아니면 그들의 탈출에책임을 져야하는 것을 두려워해서인지 어쨌든 바수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용감한 이방인 탈주자들을 무사히 도망칠수 있었으나, 하부도시에 남아있던 1,700명 가량의 남자들이 학살당했으며,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한편 요새를 넘겨준 상부 도시의 유대인들과의 협상을 지킬 의무가 있는바수스는 유대인들은 안전히 떠나보내도록 했으며 엘르아살도함께 돌려주었다.



5. 야르데스 숲속에서의 전투



 마카이루스에서 일을 다 해결한 바수스는 병사들을 거닐고 야르데스(Jardes)라는 숲으로 행군을 강행하였다. 왜냐하면 예루살렘과 마카이루스가 각각 포위당했을 때 도망쳤던 많은 유대인들이 이 숲에 모여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야르데스 숲에 도착한 바수스는 들은 정보가 사실임을 알고 기병들로 하여금 전 지역을 포위하게 하여 유대인들이 이 포위망을 뚫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고 나서 바수스는 보병들에게 나무들을 자르라고 명령하였다. 유대인들이 나무들에 의해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유대인들은 사력을 다해 싸우면 어쩌면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수도 있다는 한가닥의 희망을품고 용감하게 한 번 싸워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무리를 지어 큰 함성을 지르면서 돌진하여 포위하고 있는 로마 병사들에게 공격을 가하였다. 로마 병사들도 끈질기게 유대인들의 공격에 맞섰으며, 유대인쪽에서도 사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싸웠고, 로마 병사들 쪽에서는 이에 질세라 대항을 했기 때문에 전투는 당연히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다. 왜냐하면 로마군은 단지 12명의 사망자와 약간의 부상자를 낸 반면 유대인들은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3,000명 정도의 전원이 모두 몰살당했던것이다. 몰살당한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앞서 이미 언급했던 아리(Ari)의 아들이자 유대인들의 지휘관인 유다(Judas)도[㈜ 공격시 두드러진 열심당의 지도자들 중 한명, 전쟁. 6권. 1:8(92), 예루살렘에서 달아난 것은 앞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있었다. 유다는 예루살렘이 포위당했을 때 지휘관으로서 그당시 지하 동굴을 통해 몰래 예루살렘을 빠져나왔던 인물이었다.



6. 유대의 영토가 매각당하고 전 유대인들에게는 세금이 부과되는 것에 관하여



 한편 바로 이 때에 가이사는 바수스와 유대 총독 라베리우스막시무스(Laverius Maximus)에게[㈜ 비문에 언급된 라베리우스 막시우스(L.Laberius Maximus).] 전 유대 영토를 매각하라는[㈜ \”판매하다\”가 아니라 \”임차하다\”(\”임대하다\”, verpachten)와 동일함. Schurer, \’G.J.V.\’;i:640. 몸센(Monnsen)의 대답으로.] 지시를 전달하였다. 왜냐하면 가이사는 그곳에 도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유대땅을 자신의 개인 소유로 남겨 두었던 것이다. 가이사는 그 중 예루살렘에서 30퍼얼롱 떨어진 엠마오(Emmaus)를[㈜ 추측컨데 예루살렘의 북서쪽 4마일 떨어진 현재 클로니(Kulonieh : Colonia)와, 그리고 신약성서의 엠마오(Emmaus)와 동일한 것 같다. 눅24:13은 60퍼얼롱거리의 두배이다. Schurer, \’G.J.V\’ i.640이하에 있는 충분한 논의를 보라.] 800명의 퇴역한 로마 병사들을 위한 거주지로 할당하였다. 가이사는 또한 유대 영토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그전에) 예루살렘 성전에 바쳤던 것처럼[㈜ 원래 한 세겔의 ⅓(느10:32), 후에는 ½세겔(출30:13)=2트리안 드라크마(2 Tyrian drachms)이었던 성전세를 20년 이상 동안 전 유대인들이 지불했다. 마) 17:24, 요세푸스 고대. 18권. 9:1(312).] 매년 2드라크마(drachms)의 세금을 로마 신전(the Capitol)에 바치라고 강요하였다.[㈜ 디온 카시우스(Dion Cassius) 66권. 7장의 kai; ajp! ejkeivnou divd racmon ejtavcqh, tou;\” ta; pavtria autwn wqh peristevllonta\” tw\’ Kaptwlivw Dii kateto\” apoferein. 도 그러하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유대 지역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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