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무의 신계조직
降神巫는 成巫 초기에 神이 내리면 명성이 있는 기존 무당을 초빙하여 降神成巫 祭儀인「내림굿」을 하고, 이 무당을 따라다니며 굿하는 일을 배우게 된다. 이렇게 내림굿을 해주고 祭儀技能을 가르쳐 준 무당을「神 어머니」라 부르고, 학습자는「神딸」또는「神아들」이 된다. 그리고 이「神 어머니」에게 또다른 降神者가「내림굿」을 하고 제의기능을 학습하면 神母, 神子, 神女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물론, 같은「神 어머니」밑에서 굿을 배운 학습자들 상호간에 神緣을 계기로「神兄弟」관계가 성립된다. 이 때 神兄弟는 연령에 관계없이, 강신성무 제의로 신이 내려 무당이 된 시기의 선후에 기준을 두어 결정된다. 그리고 이들은「神 어머니」를 정점으로 5-6명 또는 10명이 뭉쳐져 굿을 같이 하는 굿패가 조직되고,「神 어머니」의 명성이 높아 神아들이나 神딸이 많을 경우에는 이런 굿패가 여러 개의 占組織網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강신무들이 혈연과는 별도로 神統을 중심으로 神緣 의 母女, 母子 관계로 성립된 조직을 神系組織이라 한다.
제2절 무의 단골組織
세습무는 혈통을 따라 세습되는 사제권을 중심으로, 한 혈연에 의해「굿패」가 조직된다. 굿을 하자면 女巫가 歌舞를 하고, 男巫格인「고인」(또는「화랭이」)이 장고를 치고 북, 징, 꽹과리, 제파리(제금)를 쳐서 도합 6-7명의「굿패」인원이 필요한데, 이들이 모두 한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血緣集團이다.
호남지역의 경우, 각기 분담된 일정 구역 안에서 하나의「굿패」만이 굿을 할 수 있는 관할구역제가 무속에서 제도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관할구역을「단골판」이라 부르며, 단골판이 없으면 굿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단골판 안에서 굿을 할 수 있는 사제권이 혈통을 따라 세습되면서, 온가족이 하나의「굿패」로 구성되어 자기들이 소유한 단골판 안에서 굿을 도맡아서 한다.
단골은 보통 자연부락 단위 또는 문중부락 단위로 나누어지며(500-1000호), 자기 단골판의 주민들로부터 봄, 가을로 보리와 벼(2-3되)를 거두어 들인다. 그리고 굿을 거만두고 이사갈 때는 단골판을 팔든가, 세를 주든가 하여 철저하게 소유권을 행사한다. 그렇기에 남의 단골안에서는 굿을 할 수 없으며, 몰래 굿을 했을 경우에는 단골판의 주인 단골에게 巫具 일체를 압수당하고 매를 맞게 된다.
이처럼 단골이 단골판 안의 주민들과 독점된 단일 거래 체계를 갖고, 단골 상호간에 단골판의 경계가 지켜지고 있는 것은 강신무와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강신무는 한 지역 안에서 수의 제한이 없이 난립하여, 상호 경쟁 상태에서 정착하지 못한 유동적이고 개별적인 사적 巫이다.
이에 비해 세습무 단골은 한 지역안에 하나의 巫만이 있어서, 이 지역(단골판)에 정착하여 주민들과 단일의 神事 거래 체계를 갖는 단골판 안의 공적 巫이다. 따라서 제7장 무의 변천(變遷)에서 본 바와 같이 카리스마적 강신무를 초단계(初段階)의 난립적이고 사적인 流動的 巫로 볼 때, 이와 같은 상황에서 2단계적 정착을 본 세습무가 초단계의 카리스마적 난립상을 제압하고 단일적 정착을 가져오기까지는, 그것이 사회적 통사권(統師權)과 관련된 제도화라는 면에서 社會史的인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단골 제도가 광적인 유대(紐帶)와 규제가 조화를 이루어 단골 상호간에 단골판을 침범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단골조직의 광적 조직성을 갖는 단골의 사회적 조직체제로 보인다.
영남지역의 경우도 세습무가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집단이「굿패」로 조직된다. 그러나 영남지역은 호남지역과 같은 단골판이 없기 때문에, 굿을 독점할 수 있는 일정 지역 내에서의 사제계승권도 없다. 따라서 영남지역의 무당들은 세습무이면서 정착되지 못한 유동적인 무(巫)이다. 그래서 세습되는「굿패」상호간에 경쟁이 벌어지며, 이런 예는 제주도 세습무인 심방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심방이 조상 대대로 혈통을 따라 세습되지만 단골판과 같은 소유 영역이 없어 심방 상호간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