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의 극복 – 성서중심과 신비주의

5. 뉴 에이지의 극복 – 성서중심과 신비주의




   앞에서 뉴 에이지는 결코 새로운(New) 것이 아니라 옛(Old) 것을 다시 혼합시킨 것 뿐이라는 것을 언급했듯이, 그리스교인들은 이러한 뉴 에이지의 사상을 앎으로써 이것을 식별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하겠다.  새로운 세대, 즉 참된 의미의 뉴 에이지는 점성학에 의해 지금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가 벌써 도래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이미 영적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그리스도교 신앙은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이 세상과 우주의 주님이시며 우리 삶의 근원(참조 골로 1, 5-20) 이시며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한없이 해소시켜 주는 생명의 물(요한 4,5-45)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참된 의미의 뉴 에이지, 즉 새로운 시대를 성취하고, 새로운 복음화와 새로운 신앙실천과 나눔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서중심으로, 복음속에 숨겨진 에너지에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양성교령(Opetatem Totius)’ 5장 16항에서는 바로 모든 신학이 “성서의 가르침으로 부터 보다 풍부하게 자양분을 섭취하여, 그리스도로 부터 신자들이 받은 성소의 고상함을 깨달아 응답하게 하고, 현세적 삶 속에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신자들의 의무를 밝혀 주어야 한다”고 하여 ’성서중심‘으로 되돌아 가야 함을 강조한다.  교회가 살아있는 주체로서의 바탕인 ’신앙‘’을 가지고‘성서’를 통해 주어지는 계시진리를 파악하여 ‘삶’으로서 나타내고, 삶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줄 때, 뉴 에이지와 같은 그릇된 사상과 생각은 결코 신앙인들을 위협하는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명상을 통해 영성적 감수성이나 친밀한 내적자아를 발견함을 강조하는 뉴 에이지의 사상 역시 그리스도교 신앙과 역사안에 이미 있었던 ‘신비주의’ 표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이 ‘신비주의’적인 면을 강조하고 활성화 시킴으로써 뉴 에이지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현대가 추구하는 정신적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위대한 신비가들과 신비주의의 전통을 – 현대에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사상과 감각은 매우 뛰어나고, 십자가의 성요한, 아빌라의 데레사, 토마스 머튼 등이 있고, 아직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나 매우 뛰어난 녹색의 신비주의가인 빙겐의 힐데가르트 등이 있다.


   따라서 올바른 명상과 피정에 주력하여, 영성생활의 체험과 양식을 제공하는 기도 모임과 여러가지 신심운동을 장려해야 하고 명상, 관상, 묵상기도, 성체조배 등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예컨대 그리스도와 신앙안에서 그분과의 기도, 영적인 대화에 활력을 넣어줄 방법으로 선, 요가, 단 등의 수행방법을 받아들여 현대인의 정신적 요구를 충족시켜 줌도 유익하리라고 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삶속에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서 검증되고 드러나지 않을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참다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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