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사적으로 볼 때 수운의 동학사상은 기성의 동양 전통사상 즉 유・불・선을 일단 부정하면서 비판적으로 종합한 점에서 한국 현실의 주체적 입장에서 유・불・선의 종합적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ꡔ용담유사ꡕ <교훈가>에는 「유도 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라고 해서 기왕의 유교・불도도 모두 무력해지고 시운면에서 쇠퇴기에 들어섰고 오히려 서학이 바야흐로 성운기에 들어섰음을 비치고 있다.1)
「仁義禮智는 先聖之所敎요 守心正氣는 惟我之更定이니」 <수덕문>
그러나 유교의 기본 덕목인 「인의예지」라든가 「성경」 두 글자 등은 그대로 긍정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공자를 「선성」으로 존칭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는 점에서 유교적 교양을 수운 자신이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 더우기 수운의 「수심정기」는 「유아지갱정」의 「갱정」이란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의예지의 덕목은 좋으나 그것이 형식적 교조로 외면화한 윤리적 현실에서 그것을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수심정기」를 첨가해서 「갱정」할 필요를 느꼈다는 말이다. 그는 유교나 불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니고 그 지혜를 각 개인의 내면(修心正氣)에서 자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점에서 유・불의 개인에의 주체화에서 그의 독창적 노력을 볼 수 있다.
수운이 내세운 수심정기는 개개인의 내면적 자각과 수행 실천이다. 이 「수심정기」나 「성경」 두 자는 유교・불교 등 전통적 종교의 「갱생」 내지는 「신생」을 위해 개개인의 내면성에의 침잠과 그 내적 체험의 핵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형식적・외면적 권위로 전락한 유교・불교의 사상 내용을 그의 독자적 창안인 「수심정기」의 내면적 수양에 기초하여 전통사상의 「갱생」을 도모한 것이다.
기존의 유교・불교가 보편주의적 형식화에 빠진 것이었다면 수운의 「수심정기」는 개개인에 특수화된 개인적 직관 내지는 자기 통찰이며 이상적 거점이 개인이요, 자아이다.
「무지한 세상 사람 아는 바 천지라도 경외지심 없었으니」 <도덕가>
수운은 「무지한 세상 사람이 아는 바 천지라도」라는 일견 서로 당착된 표현을 쓰고 있다. 「아는 바 천지」인 박식도 「敬畏之心」이 없고 보면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기성 유교・불교의 외면적 박식보다는 「경외지심」이 있는 무지를 높이 사고 있다. 이 점은 독일 신비주의가 기성적인 외적 권위로 타락한 로마 가톨릭이나 스콜라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무지」를 내세운 Cusanus가 최고 단계의 인식인 신적 직관은 지적 사유를 초월한 양식 있는 「무지」(doctai ignoratia)의 상태라고 한 점과 비교될 수 있다.2)
또한 수운은 입신출세를 위한 과거준비용의 관학화한 유학이 너무 장기간의 학습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널리 서민의 것이 되지 못하고 소수의 특권적 양반자제들의 독점물이 된 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칠팔세 글을 배워 尋章摘句하여 내어 청운교・낙수교에 입신양명 할 마음은 사람마다 있지마는 깊고 깊은 저 웅덩에 盡心竭力 지은 글을 넣고나니 허무하다.」
이 <흥비가>에서 과거의 별슬길이란 「깊고 깊은 웅덩이」와 같아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패가 망신하는 폐단이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요행수로서 묘사되고 있다. 이 요행 바라는 허영에 대한 비판이 바로 유교 비판이 된다. 오히려 도성덕립하여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가 되는 길도 10년 이상 걸리는 유학보다는 3년 이내, 아니 「입교한 그 날부터」가능한 동학의 길을 권하고 있다. 만일 「도성덕립」을 주자학적 주지주의에서 이해하면 10년 이상의 장구한 시일이 요하나 「시천주」 신앙과 천주에 대한 「경외지심」만 가지면 그 때부터 「군자」가 된다는 사상적 세속화를 감행하고 있다. 동학입도는 「시천주」를 통해 모든 서민의 군자화로 「도성덕립」의 속성과정이고 결국 과거 지배층인 양반만의 전유물이던 부국안민의 과제를 널리 만인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상사적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동학의 중심신앙은 경신 4월 5일에 대각한 「시천주」 신앙을 중심으로 해서 만인이 각기 「네 몸에 모셨으니 捨近取遠하단 말가」의 「시천주」의 주체로서의 자각이며 이 자각이 양반과 서민의 차등을 철폐하고 모두가 다 같은 「군자」로서 인간평등의 인간관을 마련해 준다. 누구든지 귀천・상하・상반의 차별을 불구하고 각자 자기 몸에 천주를 모시면 다 같이 지상신선이요 군자이다. 「시천주」 신앙에서는 봉건적 신분 차등은 부정되고 「시천주」의 주인으로서 만인은 평등하다. 실로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천주의 각 개인에의 내재화를 통해 인간관의 세속화에 성공했고 그 때문에 「사인여천」3)의 인간 존엄성의 근대적 원리를 선각한 「근대인」의 발견자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수운은 보편적인 「天主」,「天道」를 소수 양반의 가치에서 널리 서민대중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전기를 서학에서와 같이 만인의 대상으로서의 「천주」를 「시천주」하는 데서 찾고 있다.
수운은 서학과의 차이점에 대해 「運卽一」 – 天時를 받은 점은 같고 「道卽同」 – 같은 천도라는 점도 같으나 「理卽非」 – 그 이치를 밝혀내는 데서는 다른 점이 있어 서학은 「비는 듯하되 실이 없다」(如呪無實)는 점에서 주술적 효험이 없고 조상 숭배를 부인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천운과 천도를 받은 「천주」의 신앙이라는 서학은 민간신앙적 토착성적 요소가 결여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수운은 서학이 조상 숭배를 부정한 점을 크게 드러내 비판하는데 「우습다 저 사람은 저이 부모 죽은 후에 신도 없다 이름하고 제사조차 안 지내며」라고 해서 서학의 교리 중 유독 조상 숭배 문제를 들어 비판한 점이 흥미롭다. 수운의 가족 공동체의 관점에서는 서학에서 부모형제가 다 같이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고 각기 혼자만 가게 되어 있는 개인본위의 교리가 가장 못마땅했던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수운은 유교비판의 논리는 대개 서학이었다면 이번에 서학 비판에는 다시 유교를 채용함을 볼 수 있다.
「오륜에 벗어나서 유원속사 무슨일고 부모없는 혼령혼백 저는 어찌 유독 있어 상천하여 무엇할꼬 어린소리 말았어라」 <권학가>
이상에서 수운은 서학비판에서 그 「理卽非」는 주로 오륜등 가족 공동윤리의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다시 유학에 대해 비판할 때에는 천주에 대한 「경외지심」의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결국 수운은 유・불 등 전통 사상과 새로 수용되는 서학과의 주체적 종합을 시도한 점에서 그의 사상사적 위치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