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님과 천주
동학을 처음으로 세운 수운은 신을 「한울님」 혹은 「천주」라고 불렀다.
「없는 정신 가다듬어 한울님께 아뢰오니 한울님 하신 말씀 너도 역시 사람이라 무엇을 알았으며 억조창생 많은 사람 同歸一體하는 줄을 사십 평생 알았던가」 <교훈가>
수운은 이러한 한울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서 동학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수운은 한울님을 「천주」라고 말할 때도 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을 잘 살펴보니 정성을 다하여 지극히 천주를 위하는 사람은 번번히 효과가 있고 도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효과가 없었다. 이것은 靈符를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동경대전 포덕문>
여기서 말하는 천주는 중국의 古代祭祀에서 받들어졌다고 하는 八神의 하나인 천주와는 아주 다르다. 이 8신이란 온 세계를 나누어서 다스리는 여덟가지 신 곧 天主・地主・兵主・陰主・陽主・月主・日主・四時主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 수운이 말하는 천주는 온 세계를 다스리는 오직 하나의 절대적인 신임에 틀림없다.1)
이러한 뜻의 천주라는 말은 1584년에 중국 肇慶에서 출판된 ꡔ天主實錄ꡕ에 처음으로 나타나 있다. 이 책은 예수회 Michele Ruggieri신부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엮어내는데 같은 예수회의 Matteo Ricci신부가 깊이 관여하였다. 그 뒤 Matteo Ricci신부는 1596년에 ꡔ天主實義ꡕ라는 책의 원고를 다 쓰게 되자 ꡔ천주실록ꡕ의 판목을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 ꡔ천주실의ꡕ가 1903년에 북경에서 출판되어 널리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의 천주교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천주라는 말이 1784년까지는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때까지 천주라는 말은 대체로 두가지 뜻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곧 처음에는 천주는 그저 중국 고대의 上帝를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ꡔ천주실의ꡕ의 서문에서 「천주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상제다」라고 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유교의 쪽에 서서 천주교(西學)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천주란 유교의 상제를 뜻한다고 하여 이 천주라는 말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편이었다. 그들은 ꡔ천주실의ꡕ의 首篇에서 「천주란 우리 서양에서 말하는 두사이다」라고 밝힌 뜻을 그리 깊이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두사」는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대상을 뜻하는 데우스(Deus)를 중국 발음으로 나타낸 것이다.2)
이에 대해 천주교의 쪽에 서서 이해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차츰 천주가 상제와는 다른 신앙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천주교 밖에서도 천주에 대한 이해가 차츰 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이질감은 우리 나라에서는 1785년 뒤에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儒學者들이 천주교를 비판하고 그 폐해도 말해 왔는데 또 재주있는 젊은이들까지 끼어 천주교의 신앙 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드디어 1785년 3월에 譯官 金範禹 집에서 교회의 의식을 행하는 것을 알아내고 형조판서 金華鎭이 이것을 습격했다. 이 해 4월에 柳河源이 천주교의 서적을 禁絶해야 한다고 상소했다. 이에 따라 천주교의 서적이 정부에 의해 금절되었다.
그 뒤에 우리 정부는 오랫동안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계속해 왔다. 그러므로 천주라는 말까지도 본래 천주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여 꺼리게 되었다. 특히 1801년(辛酉)과 1839년(己亥)의 두 차례의 큰 탄압이 있은 뒤에 더욱 그러했다.
우리 나라의 이러한 사정 밑에서 수운이 굳이 천주라는 말을 쓰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수운도 천주교에서 천주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庚申(1860년)에 접어들어 전하여 들은 바에 따르면, 서양 사람들은 천주의 뜻이라고 하여 富貴를 찾지 않고 天下를 쳐서 빼앗아 敎堂을 세우고 그들의 宗敎를 편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도 과연 그럴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동경대전 포덕문>
이렇게 수운은 천주교(西學)가 천주를 믿고 받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가 천주교로부터 천주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과연 수운은 천주교의 믿음의 대상을 받아들여 이름만 동학이라고 내세운 것일까?
그러나 사실은 수운이 말하는 천주가 천주교에서 말하는 천주와 매우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수운은 한문으로 된 글도 썼고 우리 말로 된 글도 썼다. 전해 오는 ꡔ東經大全ꡕ은 한문으로 되어 있고 ꡔ용담유사ꡕ는 우리 말로 되어 있다. ꡔ용담유사ꡕ에서는 어김없이 「한울님」이라는 말만 쓰고 ꡔ동경대전ꡕ에서는 「천주」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수운이 「한울님」이라는 말을 한문에서 「천주」라고 번역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수운 자신이 천주라는 말이 한울님을 한문으로 번역한 말임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主란 그 높은 德을 찬양하여 父母와 같이 섬기는 것을 말한다」 <동경대전 논학문>
이것은 천주라는 말에 붙인 主자를 풀이한 대목이다. 수운에 따르면 천주라는 말의 「주」자는 천의 높은 덕을 찬양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와 같이 천을 섬기기 위해 主자를 붙인다는 것이다. 곧 어머니를 존경하는 뜻으로 母主(=어머님)라고 하듯이 天(하늘)을 존경하는 뜻으로 天主(한울님)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운은 「주」자로써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우리 말 「님」을 표현하고 있다.
과연 수운이 「한울님」을 「천주」라고 한문으로 번역했다면 그가 말하는 천주는 천주교의 천주와 다를 수 밖에 없다. 천주교의 천주가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대상인 데우스(Deus)를 뜻하는 데 대해 수운의 천주는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한울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운이 세운 동학의 믿음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한울님이다.3)
「우습다 저 사람은, 저의 父母 죽은 후에, 神도 없다 이름하고, 祭祀조차 안지내며, 五倫에 벗어나서, 惟願速死 무삼 일고, 父母 없는 魂靈 魂魄, 저는 어찌 惟獨 있어, 上天하고 무엇 할고」 <용담유사 권학가>
이렇게 수운은 천주교에 대해 거의 감정적으로 심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천주라는 말만은 거리낌 없이 쓴다는 것은 역시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수운은 유교나 불교와는 다른 어떤 새로운 종교를 찾고 있었다. 그러므로 천주교도 어떤 새로운 종교로서 수운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원래 수운은 우리 민족이 믿어오던 한울님을 뚜렸한 믿음의 대상으로 끌어 올리는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한울님을 믿는 한국적인 종교를 새로 세우려고 했다. 상제나 부처님이 아닌 한울님을 믿는 종교는 새로울 수 밖에 없다. 과연 지금까지 한울님을 믿는 종교는 없었다. 수운은 자기가 비로소 한울님을 믿는 새로운 종교를 세운다고 믿어 크나 큰 사명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아주 새로운 종교를 세우려는 수운에게 비친 천주교는 유교나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비친 천주교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종래의 유교나 불교와는 매우 다르다는 점에서 천주교의 새로움을 대조적으로 잘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수운 자신이 새로운 종교를 찾고 있었으므로 같은 길동무라는 의식을 저도 모르게 가질 수 있다.
「西洋의 宗敎는 우리 宗敎와 비슷하면서 서로 다르다. 곧 한울님을 위하는 듯하면서 그 실속이 없다. 그러나 타고난 運數는 같고 내세우는 道도 같다. 그렇지만 그 敎理는 같지 않다.」 <동경대전 논학문>
수운은 그의 동학과 천주교는 같으면서 다르다고 하는 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동학과 천주교는 어떤 같은 점이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점 가운데 하나가 「한울님을 믿는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수운은 천주교를 한울님을 믿는 종교라고 거의 단정하고 있다.
「이 모든 까닭은 다름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그 道를 西道라고 하고 그 學을 天主의 學이라 하고 그 敎를 聖敎라 하니 아마 그들이 天時를 알고 天命을 받은 것이 아닐까?」 <同上>
여기서는 수운이 천주교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천주교가 천명을 받은 것이라고 하여 부러워하는 빛까지 보이는 듯하다. 왜냐하면 천주교는 「그 學을 천주의 학이라 하고 그 敎를 聖敎」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聖敎」란 역시 천주의 학을 가르치는 성인의 가르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수운은 천주교를 「천주의 학」이라고 거의 단정하고 그런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이 「천주의 학」은 한울님을 믿는 종교라는 뜻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수운에 있어서는 천주는 곧 한울님이기 때문이다. 수운이 천주교를 한울님을 믿는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상제나 부처님을 믿는 종교와는 달리 천주교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한울님의 조화를 받을 수 있는 정말 새로운 종교는 동학뿐이라는 주관적인 신념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천주교에 대한 그의 태도도 결국 대항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러나 타고난 운수는 같고 내세우는 道도 같다」고 하면서 결국 「그렇지만 그 교리는 같지 낳다」고 하여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것이다. 이렇게 천주교는 실제로 수운에게 어떤 동질감도 주었고 어떤 대항의식도 품게하였다는 뜻에서 외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동학은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의 한울님을 믿는 아주 한국적인 종교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