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수의 닦음과 혜능의 깨침
북종 신수는 “마음을 모아 선정에 들고 마음이 머무르게 하여 깨끗함을 보며 마음을 일으켜 밖으로 관조하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증득한다”라 하여 점(漸)의 입장이었고44>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을 가르친 반면, 남종선에서는 이러한 가르침 모두 마음의 얽메임이라 하여 물리치고 있다.45> 무념의 근거에 있는 각자의 본성을 곧바로 자각하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주장한다.
남종선에서는 이르기를 “우리들 6대조사(六大祖師)는 모두 단도직입하여 곧바로 견성하여 깨닫도록 했지 단계적으로 깨닫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하여 학도자는 반드시 곧바로(頓) 불성을 자각한 뒤 점차로 인연을 닦아야 하여(漸修) 지금의 삶에서 해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돈오점수적 입장에서의 새로운 돈오선을 주장하는 것이다. 46>
혜능은 깨침에 있어서 頓悟의 길을 제공한다. 이에 비해 신수가 제공하는 구경각의 길은 <屈.曲.直>의 어렵고 오랜 수행의 길이었다. 그 의미를 풀어보면,먼저 사람이 <一行>을 인식하게돨 때까지는 몸이 구부러져 펴지지 않는 것과 같아(屈) 세계의 온갖 차별적 현상들에 미혹과 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숨을 가라앉히고 定에드는 것은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 나아가는 것과 같으며(曲), 마지막으로 만물이 한모습(一相)인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은 뱀이 대통 안에들어간 뒤 곧아지게 되는 것과 같다(直)는 말이다.47>
이러한 혜능과 신수의 ‘깨침과 닦음’의 길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실존적이며 실천적인 차원의 논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올바른 깨침의 기준이다.
불교의 사상, 특히 대승불교의 사상은 현실적인 것이다. 깨침과 수행은 보살행없이 사변적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으며,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이다. 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되고 있는 돈점론은 바로 이 세상에서 자기완성과 불국정토를 이루려는 보살행과 정토사상에 입각하여 바라보아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