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傳道)시대(4세기 말까지)> 불교 전래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으나, 대략 기원 전후 무렵, 서역(西域)을 경유해서 중국에 전해졌다. 물론 중국은 이 시대까지는 벌써 고도의 문화를 확립하였으며, 또 문자의 표현과 기록의 보존을 중히 여겼으므로, 이국의 문화는 반드시 한자로 옮겼다. 안세고(安世高)·지루가참(支婁迦懺)·축법호(竺法護)·불도징(佛圖澄) 등의 외국 승려 외에 주사행(朱士行)·도안(道安)·혜원(慧遠) 등의 중국인 학승들이 여러 경전을 번역해서 중국인에게 불교를 전하는 한편, 그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불교사상의 독자성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전설상의 황제(黃帝)나 노자(老子) 수준으로 신봉되었고, 특히 반야(般若, 智慧)의 공(空)을 노자의 무(無)로서 해석하는 융합·절충이 성행하였고, 격의불교(格義佛敎)라는 일종의 혼효사상(混淆思想)이 시행되었다.
<연구시대(580년까지)> 5세기 초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서역으로부터 장안(長安)에 도착하여, 이후 9년 동안 여러 대승경전을 훌륭하게 번역하였고, 또 3000여 명의 제자를 교육했다. 여기서 중국불교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번역한 한문경전만으로 충분히 불교교리를 연구, 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밖에 불타발다라(佛馱跋陀羅)·담무참(曇無讖)·진제(眞諦)·보리유지(菩提流支) 등의 도래승에 의하여 뛰어난 한역불전이 완성되었으며, 이들 여러 경과 논(論)의 연구가 진척되고 많은 학파가 형성되었다. 한편, 이 시대에는 역경서(譯經書)가 정리되어 경록(經錄)과 전기 등 신뢰할 만한 불교사의 여러 자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혼란이 계속된 이 시대에 불교는 겨우 민중 속으로 들어가 한민족의 습속과 융합하여 우란분회(盂蘭盆會)같은 법회(法會)가 성행하게 되었다. 때로는 왕조에 의한 폐불(廢佛)이 있었으나, 불교는 즉시 부활하였다. 다퉁〔大同〕·윈강〔雲崗〕의 석불과 룽먼〔龍門〕의 석굴 등은 열렬했던 불교신앙을 말해주고 있다.
<독립시대(8세기 중반까지)> 300년에 가까운 분열에서 중국은 마침내 통일되고, 수(隋)나라·당(唐)나라의 왕조가 계속되어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통일과 종합을 가져왔다. 불교의 여러 학파는 이른바 종파로서 독립하여 중국불교의 황금시대를 출현시켰으며, 수나라의 3대법사라고 하는 정영(淨影;慧遠)·천태(天台;智潭)·가상(嘉祥吉藏)이 나타났다. 먼저 혜원은 그의 저서 《대승의장(大乘義章)》으로 유명하고, 지론종(地論宗)의 기초를 열었으며, 지의는 천태종(天台宗)의 개조로서 알려졌고, 오시팔교(五時八敎)의 교판(敎判, 敎相判釋)의 원형을 제시하여 《법화경(法華經)》을 여러 경전의 최상위에 두었으며, 또 지관(止觀정신의 集注)에 힘써 많은 제자를 육성하였다. 길장은 용수(龍樹) 계통을 이어 받아 삼론종(三論宗)을 확립시켰다.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에 걸쳐 삼계교(三階敎)가 행해졌는데, 말법사상(末法思想)의 고취가 과격하였기 때문에 즉시 탄압되었으며, 그 가르침은 정토교(淨土敎)에 흡수되었다. 담란(曇鸞)·도작(道綽)·선도(善導)와 같은 승려가 나와, 오로지 아미타불 신앙을 주창하는 정토교가 확립되었다. 645년, 17년 동안의 인도―서역 여행으로부터 귀국한 현장이 당시의 인도에서 번영했던 불교를 중국에 전했다. 그 방대한 번역경전 중 아비다르마·유식·논리학(因明) 등에 귀중한 것이 많고, 특히 유식설(唯識說)은 그 문하인 자은대사(慈恩大師)에 의해 법상종(法相宗)으로 성립되었다. 한편, 현수대사(賢首大師) 법장(法藏)은 화엄경의 번역에 참가하여, 그 이전부터 내려온 화엄종(華嚴宗)을 확립했고 오교십종(五敎十宗)의 교판을 세움과 동시에, 일체의 것이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연기설(緣起說)을 그 가르침의 중심으로 했다. 또, 이미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의해서 전해져 있던 선(禪)은 그 6대째라고 하는 혜능(慧能)과 그 동문인 신수(神秀)에 의해서 종풍(宗風)이 확립되고, 많은 우수한 후계자가 나와 엄격한
교 수행을 철저하게 하여 선종은 중국에서 안정된 지위를 쌓았다. 이 시대에 마지막으로 전래된 것이 밀교이며, 선무외(善無畏)·금강지(金剛智)·불공(不空)이 인도에서 당나라로 와서 밀교의 여러 경전을 번역하였고, 밀주(密呪)의 염송(念誦)과 가지기도(加持祈禱) 등 독자적 수법(修法)이 특히 왕실과 귀족 사이에서 유행하였으며, 곧 민간에도 널리 퍼졌다.
<실천시대(12세기 초까지)> 이 시대 중반에 다시 폐불이 있어서 여러 경전이 소각되고 종파도 중절되었으나, 실천에 전념하는 정토교와 선종 그리고 민간신앙에 동화된 밀교가 번창하였다. 그 중에서도 선종은 충분히 중국화된 불교로 발달되고, 탁월한 승려가 배출되어 그 가르침이 계승되어감과 동시에, 그들의 어록이 편집되었다. 또 선종의 사원에서는 자급자족적인 생활규정이 생겨, 그것을 청규(淸規)라고 했다. 송(宋)나라. 이후, 대장경이 개판(開板)되고 경전이 간행됨으로써 널리 읽히게 되었다.
<계승시대> 송나라가 북방민족의 압력을 받아 이동하여 남송(南宋)이 되자 특히 선이 유행하였는데, 천태·율(律)·정토 등도 부흥하여 정토교에서는 결사(結社)를 만들어 염불을 재가자사이로 넓혀 갔다. 몽골에서 일어난 원(元)나라는 티베트에서 티베트교를 도입하였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가 유착되어 그것이 여러 가지 폐해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명(明)나라 때는 불교에도 국가통제가 엄격하여 중국불교사상 일찍이 없었던 불교교단의 중앙집권적 통제가 이루어져서, 활발한 불교활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유(儒)·불(佛)·도(道)의 3교 융화가 활발히 논의되었다. 다음의 청(淸)나라 때에는 일시적으로 티베트교가 부활하였으나 이미 국가 통제하에 안주해 온 불교에는 이제 지난날의 활력은 없었다. 재가불교의 부흥도 있었으나 원래 중국불교는 출가불교가 주류였으므로 전반적으로 불교는 쇠퇴하여 갔다. 제2차세계대전 후 중국대륙으로부터 불교는 그 모습이 거의 사라졌으며 최근에 조금씩 부흥되어 가고 있다. 한편, 타이완에는 불교의 여러 종파가 전해져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