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적 영성 – 인간적, 삼위일체적 영성..

   3.2.3. 다양적 영성


  우리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또한 의식과 자유라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 개인이기도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그 개인이 어떤 비인격적 집단에 흡수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어떠 수도회나 어떤 영성학파 또는 어떤 교회 운동이나 특별한 집단도 영성이나 신성함을 독점할 수 없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데 있어서나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체험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길은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영성을 개발하기 위한 가능성은 매우 다양한 것이다. 


  따라서 영성의 어떤 특정한 형태도 사목자들을 포함한 신자 어느 누구에게 강요할 수 없다. 각 사람은 언제나 일반적인 교회 및 신자들이 관련된 특별한 신앙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하느님과 지기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를 돈독히 할 자유를 지녀야만 한다. 여기에는 취해야할 균형이 있다. 어떤 영성도 특이하고 인지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개별화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영성도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만큼 획일적이어선 안 된다. 즉 그 영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혹은 부지불식간에 비난받고 질책받아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제가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하나의 사제적 영성은 없으며 수도자들이나 교리교사들 그리고 신자들을 위한 어떤 하나의 영성도 없다. “필요한 일에 있어서 일치하고 불확실한 일에 있어서 자유를 존중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을 보존해야 할 것이다.”(세계의 사목헌장,92항) 그리스도교 영성은 다원적인 것이지 완전히 획일적인 것이 아니다.




   3.2.4. 인간적인 영성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 안에 하느님은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 실로 하느님은 인간적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정의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창조와 구속에 대한 제 교리는 그리스도인이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 자연적인 것 만질 수 있는 것, 볼 수 있는 것, 역사적인 것, 구체적인 것들을 거절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도 인간적인 것들을 억압하는 것을 정당하게 지지하거나 또는 천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간 존재의 전체적 구성 요소들(예: 정열들이나 보다 낮은 욕구들)에 무관심할 수 없다. 인간적인 것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지탱해 주시는 하느님과 육신을 취하시고 인간을 구속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을 새롭게 하시고 인간들 상호간에 그리고 하느님께 좀더 가깝게 이끄시는 성령께 무관심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인간적인 것이지 반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3.2.5. 삼위일체적 영성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삼위일체적인 것(trinitarian)이지 그것을 부정하는 일신론적인 것(unitarian)이 아니다.


  우리는 성부에 의해 창조되고 불림받고 지탱되며, 성자에 의해 구속되고 재창조된다. 그리고 성령에 의해 쇄신되고 충만하게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만일 성부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만을 형성하려 하거나, 성자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만을 이루려하는 영성 또는 성령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만을 주장하는 영성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히느님의 첫째 위격만을 주장하는 유니타리안교(Unitarianism) 경우, 그들은 인간을 창조하셨으나 인간의 존재와 업무에서는 본질적으로 동떨어져있는 먼 하느님을 전한다. 그것은 ‘하늘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 관념을 갖게 함으로써 인간이 그분께 특별한 경우에 입으로만 경우를 표시하며 그분은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도록 그를 혼자 내버려 두신다.  그들은 또한 어떤 특별한 역사적 사건(육화 사건 등)과는 관계가  없는 성령을 전한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단지 현재의 성령체험만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삼위일체적인 것이지 일신론적인 것이 아니다.




   3.2.6. 복음적 영성


  그리스도교 영성은 시종 일관 복음적이다. 어떤 이념이나 파벌적 사고나 삶이 아닌, 하느님 말씀에 근거한 영성이다. 영성의 규범과 교과서는 성삼위의 신비 안에서 성부의 뜻을 찾고 행하시며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께 관해 기록한 책인 복음 성서와 그 밖의 성서 말씀이다.




   3.2.7.성사적 영성


  믿음의 공동체의 삶의 체험인 전례생활은 영성의 중요 부분이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이다. 또한 “전례, 특히 미사성제에서 샘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은총이 흐르고 여기서 성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가작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전례헌장 10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며 또한 효과적으로”(전례헌장 11항) 참여하도록 불린다. 


  그리스도인에게 공동체와의 연결(일치)은 온갖 부류의 인간 생활을 신앙의 맥락 안에서 포용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조명되어 자신들의 세계와 역사를 볼 수 있는 공통 목적, 관심 그리고 목표를 제공한다.


  실로 미사 안에서 신자들이 만남, 친교, 나눔의 장이 이루어져야 하며 하느님께 공동으로 기도하고 또한 공동으로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주일 미사를 공동체나 이웃과 단절된 채 하느님과 개인적 관계로 즉 채워져야 할 의무로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또한 성세, 견진, 고백, 성체, 혼인 성사 등을 생활 안에 구현하도록 해야한다.


  한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어디서나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므로 모든 실재, 즉 개인적, 자연적, 역사적, 우주적 실재는 성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제 실제 안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제 실제에 의하여 전달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의 지평 또는 범위는 항상 창조된 질서 자체와 마찬가지로 광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냐시오 로욜라가 역설하였듯이) 항상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하겠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인간 실재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 즉 전례와 기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예술, 문화, 과학, 그리고 오락 등으로부터도 단절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느님은 모든 것에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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