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에 이른 강증산

 


4) 得道 – 入山 修道를 통한 宗敎的 經驗의 極大化


전술하였듯이, 3년여의 유력활동을 통해 많은 사회적 경험과 종교적 지식을 습득한 증산은 1900년 가을 本家로 돌아왔다. 이 기간까지 증산은 우리 국가의 난국은 전 세계의 난국이요, 우리 민족의 고통은 전 인류의 고통임을 깨닫고, 특별히 큰 환난을 겪고 있는 이 나라는 세계적인 대변란의 중심지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절망적인 대시련에 처한 이 국가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의 도통공부(道通工夫)를 완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귀가(歸家) 즉시 송주수련(頌呪修鍊)의 도통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는 때때로 호둔(虎遁)한다고 하며 밤낮 없이 동리(洞里) 뒷산을 오르내리면서 고함을 지르기도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광인으로 여겨 상대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타인으로부터 광인취급을 받게 됨으로써 그는 자아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증산은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소명의식의 발로로써 형성된 사회구제의 방법이 타인으로부터 경원시 당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심리적 고통을 겪고, 또 한번 자신의 정체위기를 체험하였을 것이다. 이 과정은 종교적 경험의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서, 성숙과정에서 대부분 거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증산은 자신이 아직도 도통단계에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보고, 도통공부의 완성을 이루어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권능을 얻기 위해 1901년 전주 모악산에 있는 대원사(大願寺)에서 입산수도를 하였다. 대원사에서 기도정념(祈禱正念)으로 求道하기 시작하여 7월 5일1)에 다섯 마리의 용이 불어내는 심한 폭풍우 가운데서 홀연히 광명과 지혜가 열려 천지의 대도를 깨달았다 한다. 증산교측의 주장에 의하면 증산은 천지대도를 깨달아 탐음진치(貪淫瞋痴)를 극복하였다. 그리하여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찰지리(下察地理)하여 중통인의(中通人義)한 도력(道力)을 갖추어 옛 성인들이 오르지 못한 큰 인격을 소유한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大巡典經은 비와 천둥과 번개, 지진과 치병(治病-앉은뱅이를 일으킴), 신명(神明)의 회산(會散) 등을 뜻대로 움직여 천지안의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권능을 갖게 되었다고 전한다.2) 


道를 얻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 증산은 그 해 겨울, 집에서 창문의 종이를 다 뜯어버리고 불을 때지 않은 냉돌방에서 지내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홑옷을 입고 지내며, 무언가 괴상한 글과 그림을 백지에 그려서는 계속해서 불태워 버렸다고 전한다. 증산에 의하면 그것은 천지의 도수(度數)를 뜯어고치는 작업, 곧 천지공사(天地公事)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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