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의 시도

(4) 福音化를 위한 試圖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증산교의 모순성을 비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들의 사고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개념으로 구원의 진리를 설명해 내야 한다. 그것이 복음화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진리를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은 역시 증산교 구원관의 출발점이자 핵심인 解寃 즉 ‘恨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 참된 恨은 무엇이며, 限에서의 진정한 해방은 도대체 무엇인가를 제시해 주는 것이 복음화, 나아가 토착화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증산의 구원관에 있어 가장 핵심은 해원(解寃), 곧 ‘한(恨)에서의 해방’이다. 그리고 그 해원(解寃)은 한국인의 현세중심적인 사고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恨이 ‘욕구 또는 갈망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맺혀 있는 것’이라면 증산의 해원은 현세적인 것이다. 그 실천덕목(인간존중, 평화로운 인간관계의 회복)도 현세적인 것이다. 


증산의 후천 선경(後天仙境)에 대한 언급에 주목하다 보면 현세 중심적, 현세개혁적인 면을 간과(看過)하기 쉽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증산의 구원은 현세를 중심으로 두고 있다. 현세를 위한 解寃이요, 현세를 위한 相生이다. 증산교를 창립한 것도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것이다. 증산사상은 인간에게 매력적인 것임은 분명하다. 인간이 神보다 더 존엄하고, 만인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인간관계의 회복으로 아무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그리하여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행복은 현세안에서의 행복일 뿐이다. 결국 현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증산의 限界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넘어서는 삶을 갈망하고 있는데, 인간존재의 육체적 유한성은 죽음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과 의미추구는 허무로 돌아가고 만다. 인간의 궁극적인 갈망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삶이지만, 영원한 삶에로의 궁극적인 갈망은 죽음으로 인해 허물어지고 만다. 그러기에 인간의 궁극적인 恨은 죽음이다. 현세를 문제삼고 있는 증산은 죽음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리하여 죽음이라는 恨을 풀지 못한 것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죽음이라는 恨을 풀어주는 ‘죽음의 解寃者’이신 것이다. 죽음의 강을 건너게 해주시는 ‘解寃의 뱃사공’, 죽음이라는 根源的인 限을 풀어주시는 ‘풀이의 전문가’이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인간이 죽음을 넘어서서 영원히 살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의 모든 역사와 삶의 양식, 그리고 개개인의 삶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되었다. 인간과 만물은 원래의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인간의 모든 수고는 죽음으로써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永遠에로 이어져 의미(意味)를 지니는 소중한 것이 되었다. 


결국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현세의 삶 자체도 의미를 지니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는 내세(來世)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리고 人間과 함께 하는 모든 現世的 狀況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현세집착적이라고 할만큼 현세를 중요시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소망을 감싸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완성하시는 하느님 뿐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고, 그에 알맞은 것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사랑도 함께 강조하셨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 하느님의 모상이므로 존엄한 존재이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이 세상에서부터 당신의 사랑을 실천하기를 명하신 것이다. 결국 이 세상자체도 의미있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제외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현세를 부정하지 않는 총체적이고 완전한 인간구원을 위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시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만민에게 전하게 명하심으로써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할 뿐만 아니라, 전하는 바를 실제로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나아가는 소명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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