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시대적 배경1)
1. 정치적 상황
19세기초에 속하는 1801년(순조 원년)부터 1863년(고종 원년)까지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정치·경제·사회·사상적인 면에서 많은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조선왕조의 정치는 대단히 차별적인 계급 제도로 조직되어 있었기에 어떤 특권층에게만 관직에 오를 기회가 열려 있었다. 이러한 신분은 과거를 통해서만 넘을 수 있었고, 기존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양반 가문의 자제들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졌다. 이때는 세도정치라는 변태적 정치가 시행된 때였기에 조선왕조의 19세기 정치는 주로 내정의 발전과 개혁보다는 외척이 주축이된 정치체제였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정치가 움직여졌으며, 정권에서 소외된 대부분의 양반은 입신 출세의 길이 차단되어 자연스럽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큰 문제중 하나는 인사 행정이었다. 관직의 수요와는 관계없이 많은 명목으로 과거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 당쟁을 유발시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직에만 진출하려는 출세 지향적 풍토가 만연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금권·권력·혈연에 의하여 과거의 급락과 관리 인선이 결정되고,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결국 관직은 치부의 수단으로 타락했고, 백성은 재산을 강제로 수탈당해 생활은 극도로 궁핍해졌고, 정부에 대한 불만만 쌓여 갔다. 이런 불만은 홍경래의 난(1811)과 같은 농민 봉기와, 괘서로 나타났다.
대외적으로는 구미 열강 세력이 동양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1854년 미국이 일본을 개항시켰고, 1860년 영국을 중심으로 미국·프랑스·러시아가 북경을 함락시켰다. 이런 상황은 조선에도 나타났다. 예컨대, 1816년에 충청도 바닷가에 영국 군함의 출현, 1832년 영국 상선이 황해도 몽금포 앞바다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였고, 1840년에 제주도 남쪽에 영국 배가 정박하여 민가를 급습하는 등, 여러 차례 여러 곳에 나타나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었다.2)
이런 상황에서 일반 백성은 정치적 모순과 비리 속에서 政府 不在 現狀을 체험했고, 정치적 소외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