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유대」민족의 갈 길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그가 바로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엘리야」라 하셨고(마태복음 11장 14절), 이와 반대로 장본인인 세례「요한」자신은 이미 이 사실을 부인하여 버렸으니, 「유대」민족은 누구의 말을 곧이듣고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인가 ?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시의 「유대」인들의 눈에,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두 분 가운데서 누가 더 믿을 수 있는 인물로 비쳐졌던가 하는 데 따라서 좌우될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먼저 당시 「유대」민족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으로 보여졌을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자. 예수님은 빈천한 목수의 가정에서 생장한, 하나의 배우지 못한 청년이었다. 이러한 청년이 이름 없이 일어나, 스스로 안식일의 주인이라 칭하면서, 「유대」인들이 생명과 같이 여기는 안식일을 범하였다(마태복음 12장 1 – 8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원의 푯대인, 율법을 폐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마태복음 5장 17절).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지도자들에게 몰린 바 되어, 하는 수 없이 어부를 불러 제자를 삼았으며,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먹고 마셨다(마태복음 11장 19절).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유대」인의 지도자들보다도, 세리들과 창기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마태복음 21장 31절) 주장하셨던 것이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씻은 후에,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값진 기름을 부은 일이 있었다(누가복음 7장 37 – 38절). 이러한 행동은 오늘날의 사회에 있어서도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어 든, 하물며 음행 하는 여인을 돌로 쳐죽여도 말못하던 「유대」인의 엄격한 윤리사회에 있어서 어떻게 허용될 수 있었을 것인가 ?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용납하셨을 뿐 아니라 여인의 태도를 비난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도리어 그 여인을 칭찬하셨던 것이다(누가복음 7장 44 – 50절, 마태복음 26장 7 – 13절).
한편 또 예수님은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에 세우시고(요한복음 14장 9절), 자기로 말미암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주장하시면서(요한복음 14장 6절), 자기를 그들의 부모나 형제나 처자나 무엇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고 강조하셨다(마태복음 10장 37절, 누가복음 14장 26절).
예수님의 모습이 이러하였으므로,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그를 ‘마귀’의 왕 「바알세불」이 접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조소하였던 것이다(마태복음 12장 24절).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전후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당시의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결코 믿겨운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당시의 「유대」민족의 입장에서 본 세례「요한」의 모습은 어떠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자.
세례「요한」은 당시의 명문가인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다(누가복음 1장 13절1)). 그의 부친이 지성소에서 분향할 때에, 그 아내가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말을 곧이듣지 아니함으로써 벙어리가 되었다가, 「요한」이 출생하자마자 그 입이 열린 기사이적 등으로 인하여, 온 「유대」고을 사람들이 크게 놀랐던 것이다(누가복음 1장 9 – 66절). 분만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면서 수도하던 그의 빛나는 신앙생활을 보고, 일반 「유대」인들은 물론 제사장들까지도 그에게 혹 당신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물어볼 정도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훌륭하게 보였던 것이다(누가복음 3장 15절, 요한복음 1장 20절).
위에서 밝힌 바 그 당시의 사정을 놓고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모습과 세례「요한」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 과연 그들이 누구의 말을 더 믿을 수 있었을 것인가 ? 그것이 세례「요한」의 말이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보다도,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부인한 세례「요한」의 말을 더 믿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의 말을 믿게 되자, 예수님의 이 증언은 「메시아」로 자처하기 위한 일종의 위증이 되고 말았기 대문에, 예수님은 자연히 망언자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망언자로 몰리게 될 때, 위에서 논급한 바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모두가 「유대」인들에게 있어 거리끼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불신의 정도는 점점 더 높아지기만 하였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세례「요한」의 말을 믿고 보니, 「엘리야」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엘리야」가 오셨으리라 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유대」인들은, 「말라기」의 예언을 믿는 처지에 서면,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메시아」로 자처하는 예수님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이와 반대로 예수님을 믿는 입장에 서면, 「엘리야」가 온 다음에야 「메시아」가 오시리라고 예언한 성경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은 부득이 예수님을 불신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