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불신

 Ⅲ.세례「요한」의 불신




 위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당시의 제사장이나 전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우러르던 마음은, 그를 「메시아」로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누가복음 3장 15절, 요한복음 1장 20절). 따라서 만일 세례「요한」이, 자기가 바로 예수님이 증언하신 그대로의 「엘리야」라는 것을 선포하고 나섰더라면,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엘리야」를 고대하고 있었던 전 「유대」인들은, 이러한 세례「요한」의 증언을 믿게 되어 모두 예수님 앞으로 나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끝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주장한 세례「요한」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지는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주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일찌기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기 뒤에 오시는 이(예수님)는 불과 성신으로 세례를 주시기 때문에, 자기는 그의 신들 매를 매기에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증거 하였다(마태복음 3장 11절1)). 분만 아니라 「요한」복음 1장 33절을 보면 ꡔ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 이(하나님)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그리스도)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ꡕ고 한 세례「요한」의 고백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세례「요한」에게 직접 교시하셨고, 세례「요한」 자신도 또 그렇게 증거 하였으며, 한편 「요한」복음 1장 23절1)을 보면, 자기는 그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 고까지 말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3장 28절에는, 자신이 「그리스도」에 앞서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언명한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응당 자기가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의 지혜로써도 알았어야 할 것이었다. 설혹 세례「요한」이 그 사실을 미처 지각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이미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 받아 알고 있는 위에(요한 복음 1장 33 – 34절), 예수님이 친히 자기를 「엘리야」라고 증언하셨으니, 자기도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가 바로 「엘리야」라고 하는 것을 뒤늦게라도 선포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앞에 무지하여(마태복음 11장 19절) 이미 예수님의 증언을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요한복음 1장 21절) 그 후에도 섭리의 방향과 길을 달리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세례「요한」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이나, 또 이렇듯 난처한 입장에 놓인 예수님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서러우셨을 것인가 ?


 사실상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고 그를 증거 함으로써, 그의 증거 자로서의 사명은 다 끝난 것이었다. 그러면 그후에 있어서의 그의 사명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의 부친 「사가랴」는 성령에 감동되어 아직 복중에 있었던 세례「요한」을 두고서 ꡔ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ꡕ(누가복음 1장 75절1))고, 그의 사명을 분명히 예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한 후에는, 그 앞에 하나의 제자의 입장에서 그를 모시고 섬겨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예수님과 분리되어서 따로 세례를 주고 다녔기 때문에, 「누가」복음 3장 15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도리어 세례「요한」을 「메시아」로 혼동하였고, 한편 또 「요한」복음 1장 20절1)을 보면 제사장까지도 그렇게 혼동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과 세례「요한」의 제자가, 서로 자기의 선생이 세례를 많이 준다고, 세례를 중심하고 다툰 일까지 있었다(요한복음 3장 25절). 그리고 「요한」복음 3장 30절1)에, 세례「요한」이 ꡔ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ꡕ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그는 예수님과 흥망성쇠의 운명을 같이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전적으로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처지에 섰었다면, 어찌하여 예수님이 흥할 때에 그가 쇠할 수 있을 것인가 ? 사실상 예수님의 복음은 누구보다도 먼저 세례「요한」 자신이 전해야만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지로 인하여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위하여 바쳐야 할 그의 목숨마저 별로 가치도 없는 일에 희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 중심이 하늘편에 있었을 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증거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하늘의 역사가 끊어지고 인간 세례「요한」으로 돌아오게 되자, 그의 무지는 더욱 더 예수님에 대한 불신을 자아내게 하였던 것이다. 자기가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세례「요한」은, 특히 옥중에 들어가게 된 후부터 다른 「유대」인들과 같은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인간 세례「요한」의 눈에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비쳐질 뿐이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도 역시 「엘리야」가 오기 전에 나타난 예수를 「메시아」로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ꡔ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ꡕ(마태복음 11장 3절)하고 질문하여 그 의심을 풀어 보려 하였다.


 이러한 세례「요한」의 질문을 받게 된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3절 내지 19절1)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분개심에 격한 경고의 내용을 가지고 대답하셨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하여 복중에서부터 택함을 받았고(누가복음 1장 75절1)), 그의 앞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고난 어린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 노정을 출발하실 때에, 하늘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에게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고, 또 그것을 증거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늘의 은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세례「요한」으로부터 그러한 질문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은 새삼스럽게 자기가 바로 「메시아」라는 대답을 하시지는 않았다. 그는 ꡔ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ꡕ(마태복음 11장 4 – 5절)고 완곡한 대답을 하셨다. 물론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이러한 기사와 이적을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와 같이 구구하게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하시는 일을 세례「요한」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상기케 하심으로써, 자기가 누구시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고(마태복음 11장 5절) 하신 말씀에는, 세례「요한」과 「유대」인들의 불신에 대한 예수님의 비감한 심정이 어리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선민으로 부름을 받았던 「유대」민족, 그 중에서도 특히 세례「요한」은 하늘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은 부유한 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예수님은 부득이 「갈릴리」 바닷가를 헤매시고 「사마리아」땅을 두루 도시면서 가난한 자 가운데서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을 찾으셨던 것이다. 무식한 어부들과 세리와 창녀들은 모두 이처럼 가난한 자들이었다. 사실상 예수님이 찾고자 하셨던 제자들은 그러한 자들이 아니었다.


 지상천국을 건설하러 오신 예수 님이었으니 그에게는 따라다니는 천명보다도 먼저 천명을 영도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이 예비한 능력 있는 무리들을 찾으시려고, 제일 먼저 성전으로 들어가 제사장과 교법사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나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비한 잔치에 청함을 받은 손님들은 하나도 응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거리에 나가 방황하는 거지 떼를 불러 모아야만 하셨다. 이처럼 불청객들을 맞으러 나선 예수님의 서러운 심정은, 드디어 ꡔ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ꡕ(마태복음 11장 6절)라고 하는 심판의 말씀을 토하시고 말았다.


 세례「요한」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혹은 「메시아」, 혹은 「엘리야」, 혹은 「선지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다(누가복음 3장 15절, 요한복음 1장 20 – 21절)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자기(예수)로 인하여 실족하면 무슨 복이 있겠느냐고 하는 간접적인 표현을 통하여서, 세례「요한」의 운명을 심판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어떠한 실족을 하였던가 ?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바와 같이 그는 종신토록 예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질문하러 왔던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떠나간 뒤에 예수님은, 사명적인 면에서 보아, 세례「요한」이 본시 가장 위해한 선지자로 왔으나, 이제 맡겨진 바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시어, ꡔ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ꡕ(마태복음 11장 11절)고 말씀하셨다.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일찌기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 지상생활을 거쳐 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일라면, 천국에서도 가장 큰 자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역사상 가장 큰 자로 지상에 태어난 세례「요한」이 어찌하여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만도 못할 것인가 ?


 과거에 왔다 간 수 많은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며 시간적인 먼 거리를 두고 간접적으로 이를 증거 하였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메시아」를 직접적으로 증거할 사명을 띠고 왔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직접적으로 증거 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일진대, 증거 적인 처지에서 보아, 「메시아」를 직접적으로 증거 하는 세례「요한」은 간접적으로 증거한 그 어떠한 선지자보다도 위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를 모신다는 점에서 볼 때에는 그는 가장 작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모시고 있는데, 누구보다도 「메시아」를 가까이 모셔야 할 자리에 부름을 받은 세례「요한은 (누가복음 1장 75절), 도리어 예수님과 엇갈린 길을 걷고 있었으니, 이로써 그는 천국의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 다음 절에는 ꡔ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ꡕ고 기록되어 있다. 「메시아」를 위하여 복중에서부터 택함을 받았고, 광야에서 그렇게 어려운 수도생활을 하여 온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잘 모시기만 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시는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님의 수제자의 자리는 침노한 「베드로」에게 빼앗긴 바 되었다. 여기에 ꡔ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ꡕ라고 시간적인 한계를 지은 것을 보면, 그 아래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일반인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바로 세례「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ꡔ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ꡕ고 말씀하셨다. 세례「요한」이 지혜가 있어서 지혜롭게 행동하였다면, 예수님의 무릎 밑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요, 따라서 그의 행적은 영원히 의로서 남아질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그는 무지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어니와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마저 모두 막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로써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가게 된 큰 요인이 세례「요한」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또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 8절에서, ꡔ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ꡕ고 하여, 세례「요한」을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이 지혜가 없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고 한탄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