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를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

   Ⅱ.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


 모세가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이스라엘선민을 이적과 기사로써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노정은, 장차 예수님이 이 죄악 세계에서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을 이적과 기사로 인도하여, 이 죄악세계의 고해를 건너고 생명의 물이 마른 사막을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창조본연의 에덴으로 복귀케 될 그 노정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이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된 것과 같이,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도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모세노정과 예수노정과의 세밀한 대조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은 본절과 다음 절을 대조함으로써 소상히 밝혀질 것이다.




           1.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ㄱ. 믿음의 기대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을 애급에서 고역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초래된 민족적인 탕감기간은 끝나게 되었었다. 여기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이 되기 위하여, 민족적 탕감기간인 400년을 다시 개인적으로 탕감함으로써,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모세는 이 목적과 함께, 타락전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워야 했던 40수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후편 제3장 제2절 Ⅳ) 사탄세계의 중심인 바로궁중에 들어가 40년을 지나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남 모르게 그의 유모로 세워진 어머니로부터 선민의식에 불타는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 궁중생활 40년을 마친 후, 선민의 혈통에 대한 지조와 충절을 변치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을 받기를, 잠시 바로궁중에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기뻐하여, 그 가운데서부터 뚜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히브리서 11장 24~25절). 이와같이 모세는 바로궁중생활 40년으로써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던 것이다.




         ㄴ. 실체기대


 모세는 믿음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동시에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같이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게 되었었다. 이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이, 그들의 부모의 입장인 동시에 자녀로서의 아벨의 입장에 있었던 모세에게, 믿음으로 순종굴복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게 되었더면, 그 때에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같이 모세를 따라 애급을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는 기간은, 바로 그들이 이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모세는 자기의 동포가 애급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불타는 동포애를 이기지 못하여 그 애급인을 쳐 죽였던 것이나(출애굽기 2장 12절), 실상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처참한 광경을 보시고(출애굽기 3장 7절) 울분함을 느끼신 그 심정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세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모세를 따라서 사막을 횡단하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성공적으로 출발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사실을 결정짓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모세가 이와같이 애급인을 쳐 죽인 것은 첫째로 천사장이 인간시조를 타락시켰고 또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사탄이 장자의 입장에서 인류죄악사를 이루어 나오고 있으므로, 하늘편에서 장자의 입장에 있는 사탄편을 쳐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모세로 하여금 바로 궁중에 대한 미련을 끊고, 다시는 그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서게 하시기 위함이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의 애국심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믿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하나님이 애급인의 장자와 그 가축의 맏것을 전부 쳐버렸던 이유도 이러한 데 있었다.


 모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모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더 존경하고 더 믿고 모시며 따랐더면, 그들은 모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홍해를 건너거나 시내광야를 도는 일이 없이, 바로 블레셋으로 가는 곧은 길을 통하여 가나안복지로 들어가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노정은 야곱의 하란 21년노정을 탕감하는 21일 노정이 되었을 것이었다. 출애굽기 13장 17절에는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급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보아서 하나님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블레셋땅의 곧은 길로 통하게 하려 하셨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모세를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보지 못하고 말았고,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때는, 제1차 때와 같이 그들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가나안 복귀의 도중에서 애급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가도록 인도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다.




         ㄷ.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더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도리어 그를 오해하고 나쁘게 소문내었으므로, 바로는 이 소문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2장 15절)이에 모세는 할 수 없이 바로의 눈을 피하여 이스라엘민족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게 되었으므로 그 실체기대는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며,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복귀노정은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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