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을 위한 기대

     (2) 성막을 위한 기대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상징적 메시아인 성막을 맞기 위하여서도 성막을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는,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하여서 이 두 기대를 세울 수 있었던가 ?


 모세가 성막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금식기도로서 ‘40일 사탄분립기간’을 뜻맞게 세우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는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막이상을 세워 나아가는 모세에게 믿음으로써 순종굴복하면, 성막을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지고,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성막이라 함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성판과 법궤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다.




     ㄱ. 제1차 성막을 위한 기대


인간은 6일만에 창조된 말씀의 실체이다(요한복음 1장 3절1)). 따라서 이와같이 창조되었다가 타락된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한 재창조의 말슴을 주시려는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는, 사탄의 침범을 당한 창조기간의 6수를 성별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6일 동안 여호수아의 영광의 구름으로 시내산을 덮으심으로써 성별하신 후, 제7일내에 그 구름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셨다(출애굽기 24장 16절2)). 모세는 이때부터 40주야를 금식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24장 18절3)). 그것은 이미 위에서 상세히 논한 바와같이 이스라엘민족이 홍해를 건너 후,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상징적 메시아인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은, 저들이 일시적으로 모세를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때까지 계속하여 그러한 입장에 서 있어야만, 그것이 성립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논한 바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막을 세우기 위하여,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이루는 데 있어서도,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40일 사탄분립기간’을 지나서 성막을 세울 때까지, 그를 믿고 모시고 순종해야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금식기도를 하는 기간에,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서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섬겼던 것이다(출애굽기 32장 4절4) ).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하여 세워야 했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룰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주셨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말씀의 터를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으로 그것을 찾아야 할 이 기간에 있어서만은, 하나님도 그들의 행동을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상을 만들어 놓고 춤을 추는 백성들을 보자마자 모세는 크게 노하여 손에 들었던 두 석판을 산 아래로 던져서 깨뜨렸다(출애굽기 32장 19절5)). 그리하여 이것은 모세가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 세웠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에 사탄이 침범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두 석판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같이 후아담과 후해와로서 보귀될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한다. 모세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는 두 석판을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깨뜨렸다는 것은, 다음에 예수님이 오실 때도 만약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를 중심하고 행해진 이스라엘의 이와같은 불신은, 모세가 ‘40일 사탄분립기간’을 세운 후,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에게 순종케 하심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섭리를 좌절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시려는 섭리는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2차 또는 3차까지 연자오디어 나아갔던 것이다.




        ㄴ.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석판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신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르비듬에서 석판의 뿌리 되는 반석의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서 있었기 때문에(출애굽기 17장 6절6)), 모세가 석판을 깨뜨린 후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석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어 오면, 처음 석판에 써주시었던 것과같은 말씀을 다시 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애굽기 34장 1절7)). 그러나 여기에서 <40일 사탄분립기대>를 다시 찾아 세워,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고서는, 석판을 중심한 성막을 복귀할 수 없기 때문에, 모세는 다시 40주야를 금식한 후에 십계명의 말씀을 기록한 제2차 석판과 성막이상을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출애굽기 34장 28절8)).


 한번 깨뜨린 석판을 40주야의 금식기도로써 복귀하였다는 것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도 저를 믿는 성도들이 40일 사탄분립기대로써 그를 맞을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면, 그 기대 위에 재림하셔서 구원섭리를 다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모세가 제2차로 석판을 중심한 성막이상을 복귀하던 ‘40일 사탄분립기간’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니, 때는 제2년 정월 초하루였던 것이다(출애굽기 40장 17절9)). 이리하여 이스라엘 선민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이룸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룩한 터전 위에서 성막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논한 바와같이, 그들이 성막을 짓는 것만으로는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때까지, 변치않고 이 성막을 자기들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모시고 받들어야 하였던 것이다.


 제2년 2월 20일, 이스라엘 민족은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성막을 중심하고 시내광야에서 출발하였다(민수기 10장 11~12절10)). 그러나 그들은 다시 불신으로 흘러 모세를 원망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어 불로써 진 끝을 사르기도 하셨다(민수기 11장 1절11)).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도 깨듣지 못하고 통곡하며, 만나외에는 생선도 외도 수박도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며 애급땅을 그리워하였다(민수기 11장 4~6절12)).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세우고 나아가야 할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게 되어,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는 다시 제3차로의 연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ㄷ.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


 이스라엘 미족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들을 중심한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모세의 변함없는 믿음과 충성으로 말미암아, 그 성막은 여전히 모세를 중심한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서 있었고, 또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르비듬에서 성막의 중심인 석판의 뿌리되는 반석의 샘물을 마신(출애굽기 17장 6절13)) 터전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세우고, 성막을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위한 조건으로서 주신 것이 40일 정탕기간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각 지파로부터 족장 한 사람씩을 모든 12명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어(민수기 13장 1절14)) 40일 동안을 정탐하게 하셨다(민수기 13장 25절15)). 그러나 정탐에서 돌아온 12명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적인 보고를 하였다. 즉 그 땅의 주민은 강하고 성읍이 견고할 뿐 아니라(민수기 13장 28절16)),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키가 커서 자기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더라(민수기 13장 32~33절17))고 하면서, 이스라엘은 그 성과 그 백성을 공격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새로이 한 장관을 세워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떠들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땅 백성들은 이미 그 보호자가 떠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밥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반면에 자기들은 여호와가 보호자시니, 두려워 말고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자고 외쳤던 것이다(민수기 14장 9절18)).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도리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하였다(민수기 14장 10절19)). 이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시어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수기 14장 11절20))고 하시면서,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한하여 그 40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민수기 14장 31~34절21))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도 복귀할 수 없게 되어, 제2차 21개월 광야노정은 제3차 40년 광야노정으로 연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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