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실체기대

  ㄴ. 영적인 실체기대


 예수님은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의 처지에서, 영적인 부활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조성하심으로써, 영적 참 부모의입장에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또 영적인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영적인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 표류 40년의 탕감기간을 지남으로써,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과 같이,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모세 때에는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우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 흩어졌던 제자들을 거두어 모으시고, 자신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영적인 실체가 되어, 제자들에게 기사와 이적의 권능을 주심으로써(마태복음 28장 16~18절1)),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가인의 입장에 선 성도들은,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로서 영적인 아벨의 입장에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라, ‘타락성을 벗기 위한 영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된 것이다.




        ㄷ.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남은 열 한 제자는 모두 힘없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들을 다시 한 곳으로 거두어 모으시고, 영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섭리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제자들으 가룟유다 대신으로 맛디아를 택하여 12제자의 수를 채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숨을 바쳐 믿고 모시고 따름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조성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를 복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적인 메시아의 입장을 확립하고 성신을 복귀함으로써, 영적인 참 부모가 되어 중생의 역사를 하시게 되었다.


 즉 사도행전 2장 1절 내지 4절2)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오순절에 성신이 강림하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적인 참 아버지로서, 영적 참 어머니 되신 성신과 합하여 역사하심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접붙이게 하시어 영적 중생의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영적 구원섭리만을 이루시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권내에는 사탄의 영적 참소조건이 청산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영적인 면에 있어서의 사탄의 불가침권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타락인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와 하나가 되어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은 여전히 사탄의 침범을 당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육적 구원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예쑤님을 믿으면 그와 함께 영적으로 사탄 불가침권내에 있게 됨으로써, 사탄의 영적인 참소조건을 면하고 영적 구원만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ㄹ. 영적 가나안 복귀


 기독교 신도들은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인 메시아로 서게 된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써, 영적 가나안 복귀만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적 가나안 복귀의 혜택권내에 있는 성도들의 육신은, 십자가에 의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의 육신과 같은 처지에 서게 됨으로써,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나 다름 없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원죄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로마서 7장 25절3)), 성도들도 도한 예수 재림을 위한 사탄 재분립의 노정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모세를 중심학도 섭리하셨던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성막이상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적 실체성전을 중심하고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지성소와 성소는 그것들이 상징한 바, 예수님과 성신, 예수님의 영인체와 육신이 영적 실체로 이루어졌고, 속죄소의 이상은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짐으롰, 거기에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그 속죄소에서, 인간시조가 타락된 후에 그 앞을 가로막았던 그룹을 좌우로 갈라 세우고, 법궤 안으로 들어가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히브리서 9장 4~5절4)). 이와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의 재림은 모세노정을 통하여 보더라도 그것이 밀부터 정해진 섭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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