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사례 – 마무리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다시 강조하건대, 태아는 하나의 고유한 생명입니다. 그것도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순결하고 신성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죄악의 결과로 잉태된 태아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그 태아만큼 무죄할 수 없고, 따라서 그 누구도 어떠한 이유로도 태아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것이 태아의 생명을 해칠 권리를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설사 그 아이가 태어남으로 인해 당신과 아기의 인생 전체가 불행해진다고 해도 한 생명과는 무게를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 생명이 아무리 나약하고 고통을 겪고 있다하더라도 언제나 선하신 하느님의 훌륭한 선물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1) 하물며 아기가 태어난다고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아이를 길러 가면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와 자비로우신 안배를 체험하는 은총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얼마나 많은 태아가 침묵 속에 죽어 가고 있습니까? 태어나는 숫자보다 죽는 숫자가 더욱 많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아기를 낳는다면 당신은 온 몸으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세상에 증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자 쟌느는 아기의 출산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바쳐가며 태어날 아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달라고 했답니다. “이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단다!”2)


   나는 지금 당신에게 불가사의한 어떤 가시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고, 오직 당신 스스로가 아기를 낳고 겪을 어려움과 태아의 생명 사이에서 인격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 뒤의 책임 또한 당신 자신이 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만 한다면 당신의 불행을 아기의 목숨으로 보상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큰 후회와 죄책감만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부디 양심에 따른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그리고 절대 당신의 인생은 이제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하느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점에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결단의 ‘그날’입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다른 상담자나 생명 수호 운동 단체를 소개시켜 주는 것을 원하는 지 물어 본 뒤, 그녀를 현관까지 마중하였다. 아직도 그치지 않은 밤빗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의 등뒤에 한 마디를 던져야 했다. 아무래도 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갈등 끝에 자신의 삶이 아기의 삶보다 무게 나간다는 결정을 내리고 낙태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가 더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한 편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이 마지막 말로 그녀가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참사랑을 느끼고 태아를 살리기를 바라며.


   “당신이 이 길로 뒷골목의 무면허 의사에게 가서 낙태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진정 회개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기꺼이 용서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벌써 ‘나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습니다.’라고 아드님 예수께서 말씀하셨기에….“


   다음 번에는 그녀가 아기를 안고 나를 찾아오기를 바란다. 입양을 부탁하는 방문이라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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