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서론 : 규범 윤리적 체계에 속하는 공리주의는 벰담의 사회적 행복주의의 발단이 되어 밀이 이를 본격적으로 창시하였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무엇이 유용한가?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가 기준이 된다. 즉 행위자가 행위하고 난 그 결과에 의해서 윤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판별한다. 앞으로 우리는 공리주의에 대하여서 알아보되, 공리주의의 두 가지 형태와 공리주의의 비판과 그에 따른 대답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본론 : 공리주의 윤리학의 기본 개념은 유용성의 개념, 즉 한 행위가 유용하다면 그 행위는 옳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이 옳은 행위와 결과를 좋다고 보는 본래적 가치의 표준은 무엇인가? 벤담은 이를 쾌락이라 했고, 밀에게서는 행복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누구를 위한 쾌락, 행복 또는 본래적 선이며, 누구를 위한 고통, 불행 또는 본래적 악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답변이 있겠으나 공리주의자들의 대답은 행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쾌락, 행복, 본래적 선이라고 말한다.


공리주의자에 의하면 그러한 대답이 무엇이든지 행동의 결과를 판단할 가치의 표준은 적용될 때 반드시 공평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그들의 이익을 충족하는데 있어서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공리주의자는 어떠한 행위도 그 자체로서 도덕적으로 그르지 않다면서 행위의 그름은 오로지 결과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한 행위자가 완전범죄를 저질렀는데 잡히지 않는 경우, 또 안락사의 경우가 있다고 하자. 여기서 공리주의에 의하면 행위에 대한 도덕 규칙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공리주의의 두 가지 형태, 즉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를 구별하는 기초가 되었다.


먼저 행위 공리주의는 개별적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알기 위해서 그 행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옳은 행위란, 다른 어떤 가능한 행위보다 더 큰 유용성을 갖는 것으로 정의된다. 규칙 공리주의는 한 행위가 타당한 규칙에 일치하면 옳고 위반하면 그르다. 이 역시 행위에 대한 규칙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척도는 유용성이다.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간의 갈등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완전범죄를 했다고 하자. 이에 대한 결과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처벌을 받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처벌을 받았다고 하자. 행위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전자의 경우를 옳은 행위로 보고 후자는 그르다고 보았다. 그러나 규칙 공리주의는 완전범죄를 저지른 그 자체가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이 두 경우 모두 그르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공리주의 입장에서도 이 둘은 양립이 불가능한가?


예를 들어 살펴보겠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거짓말을 해라”보다 더 큰 유용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여서 고통과 불행을 피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또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길에서 지갑을 주었다. 규칙대로 하나면 이 지갑을 주운 사람은 그 지갑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옳다. 그러나 주인은 부자이고, 주운 사람은 이 돈이 없으면 생계에 많은 지장을 받기 때문에, 이 돈을 가지는 것이 더 유용할 수 있다. 이렇게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의 기본적인 논쟁점은 개별적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과 규칙이 지배하는 사회 체계에서 전체의 도덕성을 판단하는데서 차이가 난다. 이 둘 사이에서 모순점이 있기 때문에, 이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공리주의자는 이에 대해 반박한다. 두 공리주의는 외연적으로 동치이다. 즉 개별적 행위의 도덕성 판단이 행위 공리주의에 의해서 그것이 정당한 예외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정당한 예외는 첫 번째 예외의 경우에서는 그것보다 더 높은 도덕 규칙에 의해서 요구될 때, 두 번째 경우에서는 예외를 따름으로서 생기는 결과가 규칙을 준수해서 생기는 결과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때이다. 이처럼 정당한 예외를 인정하면 이 두 공리주의는 서로 동치인 셈이다.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의 입장이 서로 상충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이 둘을 규범 윤리학에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유용성과 정의의 문제를 내세운다. 유용성의 원리는 본래적 가치를 극대화시키고, 본래적 비가치를 극소화시킨다. 본래적 가치의 극대화 혹은 비가치의 극소화는 세 가지 변수(요소)를 도입시켜야 한다. 첫째로, 가치에서 비가치를 밴 것이 최대의 대차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둘째로, 그 행위로 영향받은 모든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로, 각기 다른 사람의 불행과 행복을 측정할 때 동일한 기준이 선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대우된다고 해도 여전히 유용성을 계산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사회에서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게 대우받는 가능성이 많다. 이처럼 유용성과 정의는 양립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나 한 사회의 어떤 특정한 유형을 가질 때 양립이 불가능하다. 유용성만 이야기하면 정의를 지키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유용성만 고려하는 사회에서는 정의와 충돌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왕따”와 같이 한 개인의 불행이 집단의 행복이 된다면 집단은 유용성 입장에서 개인의 불행을 허용했고 심하게는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에 대해 공리주의자들은 반박하고 나선다. 그들은 한 개인의 이익을 좌절시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이익이 증진되지 못할 때, 그런 사회적 갈등의 상황도 고려해야된다고 말한다. 불화를 해결하고 상호간의 조화를 찾아내기 위해서 사회적 규칙을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유용성의 원리이다. 조화를 이루면서 산다는 것은 갈등을 풀어줄 규칙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 규칙을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 위에 논의되어져야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그 규칙을 따를 때 최대의 행복과 최소의 불행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소외자를 만들 수 있다. 아무리 규칙이 공정하다 하더라도 공정치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이들에게는 규칙이 사회의 구속일 뿐이다. 이런 갈등을 더 잘 조화시키려고, 규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억압할 수 있는 권력 구조를 만든다면 이런 방식으로는 권력이 없는 사람은 어떤 고통을 당해도, 권력이 있는 사람은 그들의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폐쇄 사회를 만들게 된다.


이런 비판에 대해 공리주의자들은 또 반박한다. 만일에 유옹성의 원리를 소외자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끈다면 이것은 제대로 된 유용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폐쇄 사회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정의가 정의보다도 장기적으로는 결코 더 큰 유용성을 갖지 못한다.


공리주의를 제창하는 사람들은 “공리주의가 정의와 규칙을 포함해서 도덕에 전체적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거기에 좋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은 “그렇다면 만약 정의의 규칙들이 유용성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에 공헌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라고 비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공리주의자는 정의와 모든 도덕 규칙들은 인간의 행위를 제한하는데, 이런 제한을 정당화시킬 필요나 근거는 유용성의 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첫째, 인간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그것의 좋은 목적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정당화되지 못한다. 둘째, 만약 인간 행동의 자유에 그러한 제한이 없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본다면, 우리는 사회 생활에 즐거움을 도저히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론 : 지금까지 우리는 공리주의와 공리주의의 두 가지 형태인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에 대해서 알아보고, 또한 유용성과 정의의 갈등 관계를 알아보았다.


공리주의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가능한 한 가장 합리적 방법으로 한 사회의 도덕률을 그것에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정당화할 필요성을 만족시키는 규범 윤리적 체계이다. 또 공리주의자들은 정의와 유용성의 상반관계를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공리주의자들의 유용성의 원리에 의해 정의가 지켜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판단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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