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신학의 기원
제1절 계시(啓示=Revelatio)
신학의 출발점은 하느님의 지혜나 사상이나 말씀이 발표되었다는데 있다.
1. 자연 계시:창조를 통해서 즉 창조된 피조물을 관찰함으로써 피조물의 존재의 원인인 창조주를 인식할 수 있고 또 그 사물들을 통하여 하느님의뜻을 어느정도 알수 있다. 이렇게 피조물의 존재와 작용을 보고서 하느님의 존재를 알아보는 것을 자연적 계시라 한다. “사람들이 하 느님에 관해서 알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때부터 창조물 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 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 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되겠습니까?”(로마1,19-20) 그러나 계시는 하느님편에서는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지혜와 전능으로써 되는것 이지만,그 나타나시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는자 즉 인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즉 세상만물에 담겨져 있는 하느님의 뜻을 이성을 가진 인간이 획득해야만 자연적 계시가 성립되는 것이다.
2. 초자연적 계시:하느님의 뜻은 창조된 만물을 통해서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더 적극적으로 인간 역사에 들어오시어 말씀하심으로써 어느정 도 인간화 된다. 그 첫 단계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서 예언자 들이나 사도들이나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발표된 하느님의 사상 자체와 하느님의 직접간섭으로 진행되는 구세사의 내용등이 초자연적 계시이다.
이 초자연적 계시를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화의 첫 단계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뜻이 인간이 사고와 언어와 또 인간들이 사용 하는 상징을 통하여 우리에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이 초자연 적 계시의 결정파는 하느님의 말씀자체이신 성자께서 우리와 같이 인간이 되신 강생의 신비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곧 초자 연적 계시의 내용임과 동시에 가장 큰 계시자 이시다.
“……………”(1고린1,21;히브1,1-3;요한1,14)
제2절:신앙(계시의 이성적 수용)
하느님 뜻의 인간화의 제2단계는 이 계시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즉 하느님의 부르신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인 대답이 신앙이다.
*이 계시를 모두다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지식과 다르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계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충실한 대답을 찾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임과 동시에 인간의 활동이기도 하다. 이것을 합리적인 순종이라하고(로마12,2)계시의 이성적 수용이라고 할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간직한다는 것은 말씀의 뜻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시를 무주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맞들이고 규명하는 인간 노력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을 하느님께 대한 무저건적 신뢰로 규정하는 프로테스탄트적 신앙관은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는 ㅓ편견이고 신앙자가 믿는 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신앙자체를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다. (*프로테스탄트는 신성을 무조건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이라 함. )하느님의 계시를 신앙안에서 이해하는 데에는 2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신비적 인식인데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성령의 은사에 힘입어 하느님의 신비를 직감하는 것이다. 이러한 직감은 추리를 통하지 않고 하느님의 신비를 터득하는 것이니 인식자 자신만의 것이고 논리로써 타인에게 설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자 자신만의 구원의 길이므로 타인에게 빌려 줄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다만 증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인식은 성령의 은사중에서 통달함이라고 한다.
*은사. 恩賜:Charisma. 통달함-Intellectus.
*기적:기적이 일어나기 전과 후를 과학적으로 판단하여 증명이 될때 이를 기적이라 함. 성모의 발현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므로 기적이하고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하자 않았으며 다만 성인,성녀의 말을 신용할 따름이다.
뛰어난 신비가들의(예컨데 大데레사 또는 십자가이 요한등의)신인삭은 이러한 인식의 고차원적 현상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도달한 신비적 인식이 반드시 이러한 대신비가들의 인식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아무도 자신있게 논단할수 없다. 그리고 많은 신자 대중의 신비적 인식도 정도는 얕지만 이런 범주의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믿어보아야 한다는 경지이다.
이론적 탐구를 통하여 계시를 이해하는 길이다. 이 길은 신앙으로 받아들인 것을 근본적으로 인정하면서 그 애뇬을 우리 정신의 사유 능력으로 궁리해서 논리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이다.
*(단순파악)-개념-판단:-추리-체계적 추리
상식:-지식-학문
신앙안에서 인간은 자기의 양심돠 자유를 하느님의 계획안에 맡겨버리는 것이고 그 신앙안에서 인간은 지성을 활용하여 가능한 한 더 많이,더 정확하게 더 충만하게 계시내용을 인식하려는 것이니 이 인간의 지적 노력을 신학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학의 출발점은 근원적으로는 계시에 있으나 학만적으로는 신앙에 입각한 지성에 있는 것이다. *신앙에 입각하지 않은 학문은 종교철학이지 신학은 아님
제3절 신학
1)계시의 이성적 탐구-이러한 신학적 노력은 구약성서시대 즉 고대 유다이즉에는 없는 현상이다. (예외로 알렉산드리아의 Philon 그러나 그는 기원 후 사람이다. )그리스도 교도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노력을 시작했으니 신학이란 그리스도적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호교론자들은 신앙내용을 다른이에게 설명하거나 반대의 학설을 반박하기위하여 신학을 하였고 알렉산드리아의 Clemens,아우구스티노,기타 교부들은 그들이 가진 문화적 교양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봉사하기 위하여 이성이 신앙의 준비단계가 되고 신앙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신학을 하였고,Cyprianus,Tertullianus같은 이들을 전심전력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기위하여 의지뿐아니라 지성까지 동원하여 연구함으로써 결국 신학을 하였다.
@유대교(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음)와*로마제국(황제를 신으로 받들게 함)의 국권과@철학(그노시스-Gnosis 인간 지성으로써 받아들여질수 있는 것만 인정하겠다는 아단자들의 사상 경향,그래서. . . )의 적에 대해 대처하다가 신학이 성립.
그러므로 신학은 인간이 자기 이성의 능력을 동원하여 체계적으로 신앙 내용을 연구하고 표현하는 학문이며 이 학문은 두 가지 대전제위에 성립한다. 그 하나는 한가지 진리가 다른 진리와 모순될수 없다는 것과 건전한 이성과 건전한 신앙사이에는 모순이 있을수 없다는 기본전제이다. 왜냐하면 이성이나 신앙의 근원은 진리하체이신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둘째 전제는 인간의 인식이란 반드시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라야 되는 것이기에 신앙도 일종의 인식이라면 무질서한 판단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우리 이성의 요구와 구조에 따라서 질서있게 이해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자연계시나 초자연계시의 내용을 인간지성의 법칙에 따라서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바로 신학하는 일이다.
2)신학의 학문성
그렇다면 신학의 내용이 되는 대상은 하느님과 관계되는 사물이요,이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은 근원적으로는 신앙의 빛이지만 직접적으로는 신앙의 빛과 이성의 능력의 공동 작용이다.
신학의 대상(Objectum quos 바로 그것)
도구방법(Objectum quo 바로 그것으로)
이것을 “신앙으로조명된 이성”이라고 한다.
신학은 그렇기 때문에 계시된 것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성과결합된 신앙으로 계시를 해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은 철학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신앙으로 하는 것이지 이성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신학과 종교철학은 본질적으로 다른 학문임이 명백하다.
무릇 모든 학문은 어떤결과 또는 현상을 그것의 원인내지 원리에서부터 논리적으로 모순없이 풀어나가서 원리에서 현상까지의 과정이 명백해질때 비로소 성립되는것이다. 이것은 신학이나,철삭이나,과학이나 모든 학문이 학문으로서 성립되는데 요구되는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각 학문의 기초 원리는 자명하든가 아니면 그 원리를 상위의 학문에서 얻어와야 한다. 이때 하위의 학문을 종속된 학문이라 본다. 신학의 원리는 하느님의 전지하신 인식에 있으므로 신학은 신앙에 종속된 학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하느님의 인식-계시-신앙-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