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하느님-구약 성서(야훼-창조주 하느님)

 

1.1.2.4. 창조주 하느님




신적인 능력에 의한 세상 창조는 모든 신화들에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주제들이다. 구약성서는 신화적인 요소들로부터 엄중 선택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범신론 유형에 빠질 수 있는 유출론의 형태는 철저히 배격한다. 이는 ‘야훼 하느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창조하신다’는 기본 주제 아래 집중된다. 야휘스트계 사료에 의하면 하느님은 모든 생물과 동물과 인간을 만드시며 그들에게 생명의 영을 베푸신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입과 입을 통해 인격적인 방법으로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으시며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를 한다(창세 2,7). 제관계 사료(창세 1,1-24)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를 반복하면서 오로지 하느님 말씀의 능력을 통한 창조를 규범처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bara’(창조하다)동사를 하느님의 창조에 적용시키고 있는데 이때 하느님의 창조행위는 어떤 노력도 개입되지 않는 오락이나 놀이에 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동사의 의미는 더 깊으며 어떤 예술가가 거의 생각하지 않고 어떤 작품을 창작하는 행위와도 같다. 이처럼 이 동사는 하느님이 피조물에게 각기 고유한 역사를 선사하는 창조주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행위를 드러낸다. 이 동사는 단지 세상과 인간의 시작에만 적용되지 않고, 그들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창조행위 전체를 포함한다(시편 89,48 ; 104,30 ; 이사 41,20 ; 42,5 ; 43,1 ; 45,7 ; 54,16 ; 65,17이하). 따라서 야훼 하느님은 어떤 사물들의 창조주만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창조주이시며, 그분은 또한 이 사건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이 사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도록 하신다. 이는 영원한 순환을 되풀이하는 윤회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목표나 완성을 향해 지속되는 사건으로 구성되는 직선적인 개념을 지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야훼 하느님은 역사의 끝과 시작을 동시에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원인과 결과 이론으로 설명되기에는 불충분하다. 창조행위의 역사적인 특성이 이러한 철학적인 개념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면 창조주 하느님은 위격자임에 틀림없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는 하느님의 장엄한 선언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의 절정이며 중심임을 밝힌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특권인 ‘다스리는 권한’을 나누어 받는다(창세 1,26.28). 이와 같이 창조주 하느님은 스스로 세상과 인간을 위한 은총이심을 드러내신다. 그분은 벌하시기로 작정하셨다가도 사랑 때문에 그 벌을 거두시며 더 큰 구원까지 약속하신다(창세 3,15참조). ‘야훼의 종’에 대한 약속은 그 구원의 극치를 이룬다(이사 42,3 ; 50,4 ; 53,4이하 ; 53,11). 구약성서의 전통에 있어서 창조와 구원은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 혹은 해방자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이끌어 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역사의 하느님이신 창조주 하느님은 새로운 창조와 구원에 대한 약속으로 구세사의 완성에 개입하신다(이사 65,17이하 ; 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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