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론”은 그리스어의 두 낱말 πατήρ(아버지)와 λόΥος(…론, …학)가 결합된 용어로 글자 그대로 옮기면 (교회의) 아버지에 관한 학문이다.
1. 아버지(父)의 개념
그리스도교의 경칭인 “아버지”는 일반적으로 인간적․구약성서적․그리스-로마 표상들이 모두 녹아 들어간 용어이다. 아버지는 생명을 주신 분이자 가정을 돌보고 권위 있게 이끌어가야 할 책임을 지닌 가장이다. 그는 경험과 전통의 수호자이자 중개자이며, 특히 신앙의 참다운 스승이다. 로마 시대의 가장은 집안의 제의(祭儀)를 주관하는 사제였다. 이스라엘 가정에서 부모는 구약성서에 정통한 하느님의 대리자였으며, 선조들은 약속의 수호자이자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은총에 대한 보증인들이었다. 따라서 후손들은 그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을 존경해야만 했다.
이러한 아버지 개념은 본디의 뜻에서 “교부”와 “정신적” 또는 “영적 아버지”로 확대되었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교회의 주교들은 세례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낳고 신앙을 선포하고 해석하면서 신자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가정”을 권위 있게 돌보기 때문에 전의적(轉義的) 의미에서 신자들의 아버지였다. 고대교회는 4세기까지는 아버지 칭호를 주교에게만 사용했으나 5세기부터는 사제(예: 히에로니무스)와 부제(예: 시리아인 에프렘)에게도 확대 사용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제에 대한 호칭은 많은 언어에서 “아버지”로 사용되고 있다(Pater, father, pere, padre).
2. 교부 – 교회학자 – 교회저술가
“교부” 개념은 복합적인 아버지의 표상들 가운데 하나의 관점, 곧 사도들을 직접 계승하고 교회 공동체에서 신앙의 계속성과 일치를 수호하는 진정한 전승자이자 참된 신앙의 보증인이라는 점에서 주교에게 적용되었다. 교부는 신앙에 관해 의심스러운 문제가 생길 경우에 확실한 증인으로 내세울 수 있는 스승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귄위만으로 모든 교부가 모든 점에서 오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교부는 성서와 전 교회의 신앙의 규범에 맞을 때에만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진정한 증인이 된다. 4세기부터〔니체아 공의회(325년)에서 처음으로〕 특히 신앙의 전승, 설명, 변론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주교들을 “교부” 또는 “거룩한 아버지”라고 불렀다.
대 바실리우스는 “교부 논증”의 의미에서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료고 그의 작품 「성령론」에 교부들의 이름을 처음으로 열거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도 412년부터, 특히 펠라기우스주의 논쟁에서 교부 논증을 이용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루스는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교회회의가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교회회의의 문서에 실린 교부들의 작품을 발췌하여 낭독하였다. 레렁의 빈첸치우스는 「비망록」에서 “개연적 스승들”에 과한 고전적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마침내 교부 논증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교부들은 교회의 활기찬 전통에서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은 증인으로서 그들이 지닌 특별한 의미 때문에 전통적으로 네 가지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1) 교리의 정통성: 교부들의 모든 신학이론은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이 모든 점에서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2) 생애의 성덕: 교부는 명시적인 성인으로 선포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고대교회의 관점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 신자들이 인정하고 공경할 만한 성덕을 지녀야 한다.
3) 교회의 승인: 명시적으로 승인하지 않았더라도 인물과 학설에 대해 교회가 인정했어야 한다.
4) 고대성: 교부들은 고대교회의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어야 한다.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는 1295년에 라틴 교부인 암브로시우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 대 그레고리우스에게 “교회학자”라는 경칭을 처음으로 부여하였다. 마찬가지로 교황 비오5세는 1568년 성무일도에서 그리스 교부인 아타나시우스, 대 바실리우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를 “교회학자”로 선언하였다. 이때부터 이들은 “서방과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로 존경받았고, 많은 예술작품에서 교회학자로 묘사되었다. 교회학자라는 개념은 고대성을 제외하고는 교부 개념과 같다. 곧, 교회학자에게는 네번째 기준으로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이 요구된다.
교부들 가운데 몇몇 교부를 교회학자로 선언한 것은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에대한 뛰어난 전승자로서 그들의 특유한 의의를 강조하고 존경하기 위해서이다. 1722년에 세빌라의 이시도루스, 1729년에 베드로 크리솔로구스, 1754년에 대 레오, 1851년에 프와티에의 힐라리우스, 1882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루스와 예루살렘의 치릴루스, 1890년에 다마스쿠스의 요한, 1920년에 시리아인 에프렘이 교회학자로 승인되었다.
한편, 교부를 가늠하는 첫 세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 이상의 기준을 갖추지 못했지만, 가톨릭 교회의 신앙 안에 머문 고대 그리스도교의 저자를 “교회저술가”라고 부른다. 그밖에 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고대 그리스도교에 관한 저작물들은 넓은 의미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또는 “고대 그리스도교” 문헌에 속한다.
고대성이라는 시대 구분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분명해졌다. 장 마비용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를 마지막 교부로 여겼다. 자크-폴 미뉴는 자신의 기념비적인 모음집인 Patrologia Graeca에는 비잔틴 시대까지, 곧 콘스탄티노플의 겐나디우스2세까지의 모든 문헌을, Patrologia Latina에는 교황 인노첸시우스3세까지의 모든 문헌을 싣고 있다. 고대성이라는 시대 구분이 아직도 논의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체로 일치하는 편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입문서는 서방의 교부시대를 세빌라의 이시도루스로, 동방의 교부시대를 다마스쿠스의 요한으로 끝맺는다. 합당한 근거를 들어 5세기 중엽 또는 말기에 교부시대가 끝나야 한다는 의견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