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묵시록
5.1. 문학 장르
“묵시록”이라는 명칭은 이 유형에서 그리스도교의 첫 작품이자 신약성서 경전인 요한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마지막 낱말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문학 유형은 유다교에서 유래하며, 구약성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묵시록은 다니엘서이다. 그리스도교의 묵시록은 전적으로 유다인 고유의 종말론으로 가득 찬 묵시문학을 모방하였다. 그러나 “모든 묵시록에 적용되는 형식적 원칙은 명확히 밝힐 수 없고”, 요한 묵시록이 그리스도교의 모든 묵시록 가운데 특수한 위치에 있지만 일관된 문체적․내용적 요소들은 확인될 수 있다.
1) 모든 묵시록은 가명으로, 곧 저자에게 없는 권위를 작품에 부여하기 위하여 과거에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빌려 저술되었다. 묵시록은 봉인에서부터 예정된 종말까지 비밀로 유지되어야 하기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씌어진 책으로 간주되어 항상 허구의 과거성으로 기술된다. 따라서 묵시록은 종말 환시에 대한 확실성에도 독자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정확하고 확증할 수 있는 역사 개요를 전형적 요소로 담고 있다. 또한 묵시록은 인류의 역사를 여러 시기로 구분하며 그 마지막 시기가 지금 시작되었다는 내용을 담는다.
2) 묵시록의 저자는 무아경 상태나 꿈에서 환시의 형태로 계시를 받으며, 내세를 알고 묘사하기 위하여 종종 하늘에 올라가 본 것처럼 서술한다. 이러한 계시는 계시를 받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계신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는 장면에서 정점에 이른다. 계시는 보통 1인칭 형식으로 묘사된다.
3) 환시들은 표상의 형태를 띠며 알레고리로 표현된다. 알레고리는 계시의 중재자나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가 직접 설명한다.
4) 묵시록은 신적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 현상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난해한 현상들을, 특히 숫자로 체계화한다.
5) 묵시록은 결코 선택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 곧 종말의 곤궁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우고 그들을 이끌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간청, 한탄, 칭찬, 감사, 찬미의 형태를 띤 권고와 기도가 묵시록의 고정적인 구성요소이다.
묵시록의 표상체계는 네 가지 중요한 대립관계, 곧 두 시대에 관한 이원론, 보편주의와 개인주의, 염세주의와 내세의 희망, 결정론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임박기대로 특징지어진다. 세계사와 각각의 시대는 하느님의 위대하고 변함 없는 구원계획에 따라 창조 때부터 세상의 종말까지 예정되어 있다. 세상의 시대는 악하고 사탄이 지배하며, 종말의 정치적․우주론적 재앙 때까지 대대로 퇴화된다. 이 시대에 하느님께 대한 복종으로 민족적인 구원 기대와 관계 없는 개별적인 구원 기대가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죄, 우상숭배, 인간의 통치라는 옛 세계는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 이전에 사라져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삶에서 계명을 지킨 경건한 이들이 새로운 세상에 참여하리라고 약속하신다. 다가오는 시대에 관한 구원을 기대하여 신자들은 자신들의 항구함과 성실함에 대한 보상 및 신을 멀리하여 받을 벌, 희망, 확신을 지닌다. 시대의 징표는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증명한다. 지금이 회개하고 다가오는 시대를 준비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골자에서 2세기부터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묵시록을 그리스도교식으로 개작한 작품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유언」, 「에즈라의 묵시록」, 슬라브어로 씌어진 「에녹서」가 저술되었다. 내용으로는 유다인의 내세에 관한 표상이 원시 그리스도교적 종말론으로 대체되거나 변형되었다. 2세기 묵시록의 주된 주제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계획에 따라 아직 일어날 수 없는 재림의 지연에 대한 설명, 세계 종말, 내세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4세기부터 관심사는 그리스도인의 도덕과 정통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천국과 지옥에 대한 묘사로 옮겨가거나, 최후의 심판과 세계 멸망의 구체적인 상황에 관하여 호기삼을 불러일으키는 지식욕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교회의 종말론이 이미 4세기에 일정한 특징들을 확정하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리스도교 묵시록의 저자들은 유다인 저자들과 달리 소재를 독자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유명한 묵시록에는 「베드로의 묵시록」, 「이사야 승천기」, 「바울로의 묵시록」, 「토마의 묵시록」이 있다. 나그 함마디에서 영지주의의 여러 묵시록이 발견되었으나, 그 작품들의 가치는 아직도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5.2. 「헤르마스의 목자」
「헤르마스의 목자」는 그리스도교 첫 수세기 동안 가장 인기 있었던 비경전 작품이었으며, 많은 지역에서 경전으로도 사용되었다. 작품의 많은 부분은 오랜 기간에 걸쳐, 곧 약 130-140년 사이에 로마에서 씌었다. 묵시록의 저자 헤르마스는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인이며 소상인이었다. 이 작품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두번째 계시자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은 5편의 환시, 12편의 계명, 10편의 비유로 나뉜다. 첫번째-네번째 환시와 다섯번째 환시-일곱번째 비유는 개별적인 책으로 서로 관계가 없지만 같은 저자가 쓴 것이다. 저자는 작품의 구성에 따라 아홉번째 비유와 열번째 비유를 첨가하였다. 다섯번째 환시는 뒤에 오는 계명과 비유의 서론에 해당한다.
환시는 헤라마스가 로데라는 부인의 노예로 로마에 팔려갔다가 해방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이전의 여주인이 티베르 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보고 강에서 나오는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는 속으로 부인을 아내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다. 며칠 뒤 그는 나폴리 북쪽에 자리한 여자 예언자가 살고 있는 쿠메로 가는 길에 영에 이끌려 길이 없는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옛 여주인이 하늘에서 나타나, 그가 마음속으로 품은 생각이 마음으로 저지른 간통이나 다름 없다고 지적하였다. 헤르마스가 이 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 여자 예언자로 보이는 노파가 빛나는 옷을 걸치고 나타났다. 그는 그녀가 교회의 화신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녀는 헤르마스와 그의 가족 모두가 회개하도록 촉구하였다. 두번째 환시는 1년 뒤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노파는 헤르마스에게 편지를 베껴쓰게 하고, 이 환시와 앞으로 있을 다른 환시를 로마 교회와 다른 지방의 여러 도시에 알리라는 명령과 함께 작은 책인 “하늘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이 편지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마지막 회개의 가능성을 알려준다. 세번째 환시는 젊어진 노파가 헤르마스에게 교회를 상징하는 탑이 세워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탑의 완성은 모든 그리스돈이 회개를 통해 완전해질 때까지 연기도리라고 말한다. 다섯번째 환시는 이후의 계명들과 비유에서 이상적인 그리스도교 세계를 보여주는 두번째 계시자로서 회개의 천사가 마침내 목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문학 형태로 볼 때 「목자」는 묵시록이다. 특히 1인칭 설명, 환시, 무아경, “하늘의 편지”에 나오는 문체적 요소들이 묵시록임을 드러낸다. 헤르마스는 이 작품에서 유다․묵시적 전통을 따른다. 그렇지만 그는 로마 시대의 헤르마스문헌을 원형으로 삼아 노파와 목자의 모습으로 개작한다. 내용상 묵시록의 특징, 종말론적 미래, 또는 내세에 관한 계시가 없기 때문에 빌하우어는 이 작품을 “가假-묵시록”이라 하였으며, 스타츠는 오히려 “고대 가톨릭 교회의 묵시록의 원형”으로 여겼다.
「목자」의 주요 주제와 가치는 회개론에 있다. 이 회개론은 그리스도교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근본적인 죄를 용서하는 세례를 받은 뒤 다시 짓는 죄에대해 일회적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회개론의 해석과 적용은 서로 다르게 평가된다. 빈디쉬와 디벨리우스는 헤르마스 이전의 고대 그리스도교에서는 세례를 받은 뒤 다시 회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헤르마스의 목자」가,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 매일 죄를 짓는다는 경험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재림의)임박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성화를 위한 엄격한 요구를 부인하면서 새로운 회개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이해하였다. 따라서 헤르마스는 교회의 전통이나 자신의 권위를 증거로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묵시록, 직접적인 신적 계시, 위임의 형태를 취해야만 했다. 이와 달리 포쉬만등은 「헤르마스의 목자」가 회개 관습을 일회적인 것으로 한정하여, 이미 존속하는 교회의 관습을 굳히거나 강화시켰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다고 이해하였다. 노르베르트 브록스는 이러한 해석에 중용적인 입장을 취하여 헤르마스 당시의 교회는 일회적인 회개를 인정하였지만, 이 회개는 연기할 수 있거나 연기되었다고 규정하였다. 한편 헤르마스는 더 나아가 원시교회의 뜨거운 열정을 지키려고 하였으며 일회적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현 시점으로 선포하였다.
고대교회에서 그밖의 회개에 관한 역사는 5세기까지 세례 후 중죄를 지었을 경우, 단지 일회적이고 공개적인 회개 가능성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경우 회개에 부과된 보속이 강화되어 – 예를 들어 평생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처럼 – 지키기가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회개는 점점 더 임종 때까지 연기되었다. 더구나 갈리아 교회회의는 젊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허용하는 것을 금하였다. 5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대륙 선교가 라틴 교회에 개인적이고 제한없이 되풀이될 수 있는 회개를 발전시켰다.
5.3. 그리스도교 여예언자(시빌라)들의 신탁
묵시문학의 특유한 형태는 기원전 7세기로 거슬러올라가는 「시빌라의 신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시빌라는 동방, 아마도 페르시아 출신으로 인간의 나이를 초월한 신비스러운 여예언자였으며, 5세기부터 그녀의 신탁이 그리스에 퍼졌다. 후대에는 여러 장소, 특히 에리트라이, 델피, 쿠메 등에 그녀의 이름으로 불리는 많은 시빌라가 있었다. 서사적 육각시로 작성된 예언은 종종 위협적이고 불길한 예고를 담고 있으며, 현재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새로운 나라를 선포했다. 따라서 이 신탁은 정치적․반로마적 선전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디아스포라 유다교는 여자 예언자들의 예언을 새로운 내용으로 변조하여 종교적으로 선포하였다. 여자 예언자들의 잠언은 이제 유일신론을 위한 증언이 되었으며, 무서운 징벌의 내용으로 세상의 심판을 예고하고 회개를 호소하였다. 잠언은 예언 전체의 진리를 증명하기 위하여 가명의 진술, 허구의 과거성,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 미래형의 역사 개요를 계시와 결합하였다. 신자들의 신심을 깊게 하려는 묵시록과는 달리 여자 예언자들은 외부에 대한 선전과 방어에 눈을 돌렸다. 기원후 2세기 중엽부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형태, 주제, 정서에서 외부에 대항하여 자기주장을 내세워 투쟁하는 데에 매우 적합한 이 문학 유형”을 유다교에서 넘겨받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12권으로 된 「시빌라의 신탁」은 모두 세 형태가 혼합된 것으로 기원전 180년경부터 기원후 3세기에 씌었다. 제6권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예언만, 제7권과 8권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예언을 주로 다루며,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증명할 수 있다. 28행만 싣고 있는 제6권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찬미하며, 제7권에서는 영지주의적으로 윤색된 표상들 안에서 이교 제국들의 멸망과 종말의 황금시대를 묘사한다. 500행에 이르는 제8권이 가장 중요하며, 고대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증언되었다. 8권은 216행으로 로마에 대한 긴 비탄의 외침으로 시작되며, 그 다음에 그리스도교 종말론을 전개한다. 종말론의 첫 행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인용한 유명한 ΙΧΘΥΣ(물고기) 이합체의 시가 있다. ʾΙησού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ίός σωτηρ σταυρός(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십자가).
많은 교부가 여자 예언자들의 신탁을 인용하였으며, 신탁은 중세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단테의 찬가 「분노의 날」, 「신곡」과 시스티나 경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영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