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특히 4차 라떼란 공의회(1215)는 육체의 구원에 대해서, 그리고 천사와 악마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 공의회는 공식적으로 창조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공동 작용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삼위는 하나의 신적 주체안에서 공동 능력자(coomnipotentes)요, 따라서 “우주의 단일한 원리,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영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막론하고 모든 것의 창조자”라고 말한다. 동시에 세상 창조를 함에 있어서 시간 역시도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 원리는 그의 전능한 능력으로 시간의 시작과 더불어 무로부터 창조하셨다.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천사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Ds 800).
공의회는 구원하시는 창조주 이심을 인식하고 있었다. 공의회에 의하면, 구약성서 안에서부터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 계획을 보여주시고,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의 이론을 제시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명확하게 생명의 길을 계시하셨다. 그분의 육화안에 삼위 전체의 공동작용이 이루어 지고 있다. 그 육화는 인간적 이성과 인간적 육체가 구성요소로 이루어지고 있는 바, 하나의 위격 두가지 본성을 이룬다(DS801). 육화하신 하느님은 완전한 방법으로 인간이 되셨으며, 따라서 수난 받으셨고, 죽으셨으며, ‘고성소’에 내려 가셨다( 구약성서에서 고성소는 ‘셰올’이라고 해서 죽은 자들의 나라를 의미하였다). 그리스도는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에 있어서도 부활 하셨으며, 마지막 날에는 모든 창조된 인간들도 영혼과 육신이 함께 부활하게된다. 이 육신부활은 이 지상에서의 실존과 부활의 실존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의회는 “이 지상에서의 육체 그대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DS 801). 이처럼 영지주의자들이 영적인 존재만을 강조하는 것을 거스려서 교회는 육체의 귀중함을 옹호하고 있다.
4.3.1 천사와 악마
공의회의 주교들은 천사와 악마에 대해서 그들이 담고 있는 의미와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와 관련해서 하느님의 전령, 또는 사탄과 악령들에 대해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천사에 대해 논함에 있어서 공의회는 천사의 본성이나 순수 영적 존재에 대한 교의화의 의도는 없었다. 악마에 대해서도 악마의 본성을 규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지혜서에 근거해서 죄라는 것이 악마의 암시의 하나로서 인격화된 존재로 이해되는 것을 알아보고자 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유비적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1442년 피렌체 공의회는 “악은 어떤 본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본성이란 어떤 본성도 본성인 한선한 것이기 때문이다”(DS 1333)라고 언급하고 있다. 어떻든 공의회의 의도는 존재하는 이 세상이 두개의 경쟁적인 원리, 즉 하느님과 하느님의 적수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한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 한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영적인 것이든지 육체적인 것인든지,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한분이시며 세위이신 하느님은 무로부터, 영적인 피조물, 육적인 피조물, 즉 천사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 모두를 무로부터 창조하셨다”(DS 800).
분명한 것은 공의회는 악의 영들, 또는 악마나 천사의 이론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으로 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보다 전통적이고 오래된 공의회들, 니체아공의회나 콘스탄틴노플 공의회에서는 어떤한 영적 존재들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4차 라떼란 공의회가 영적 존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단자들이 악마들을 하느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세상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세력으로 이해하는 까닭이다.
4.3.1.1 천사에 대하여
성서상 천사란 매우 다양한 여러가지 존재들에 대한 집합명사로 나타난다. 구약시대, 특히 왕정시대 이전 시기에는 천사에대한 이야기가 자명한 사실로 등장한다. 천사들이 당연한 사실들로 등장하지만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천사는 사절로서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때때로 천사들은 야훼의 위치에서 등장하기도한다. 처음에는 천사로서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는 천사가 아니라 야훼께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왕정시대에 이르러 예언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거의 천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이제 하느님의 사자들은 예언자들이다. 유배시대 이후 천사들 이야기가 많아진다. 묵시문학에는 천사들의 위계제도까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약시대에는 천사들을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성서작가들도 천사에 대해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천사들은 사절로 또는 시종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신약성서에 있어서도 천사들은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선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 역사의 범위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뿐이다. 예외적으로 묵시록은 천사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천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에 촛점을 맞추고 있고 천사는 예수가 이세상에 오실 때, 이 세상을 떠나실 때, 부활 하실 때, 그리고 재림하실 때와 연관되어 나타날 뿐이다.
일부 교부들에게 천사란 하느님께 가까이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가장 순수한 정신적 존재로서 세라핌을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천사론의 중심적 가치는 순수한 정신성이었다. 디오니시오에 의하면, 천사는 세라핌, 게루핌, 좌품, 주품, 역품, 능품, 권품, 대천사, 천사 이렇게 9품의 위계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천사에 대해 신학자들이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바늘 끝에 천사가 몇명 앉을 수 있느냐 하는 것까지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아무튼 라톄란 공의회는 이원론자들을 반대해서 언급한 것에 불과하며,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도 천사에 대해서 “창조 되었으며,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 이외에 다른 언급이 없다.
4.3.1.2 악마에 관하여
교회 전승에 의하면, 악마의 우두머리는 타락한 천사 루치펠이라고 한다. 신구약성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demon의 개념은 희랍어 daimon에서 유래한다. 엣 그리이스 시인들은 인간에 호의를 가지고 있는 보호신이나 인간 내면의 소리를 이단어로 표현했다. 그런데 마귀에 관한 생각은 그리이스나 성서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옛날부터 있어 온 것이다. 다만 성질이 다르고 발휘하는 능력이 다르고 마귀의 위치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뿐이지. 귀신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동서 고금에 있어서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악령이라는 말은 좁은 의미에 있어서 대부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영’들을 일컫는다. 구약성서도 이런 의미에서 실재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이런 생각은 신약성서에도 이어지고 있다. 악령들은 왕국을 형성하여 하느님 나라에 대항하고 있는 세력으로 나타난다. 4차 라떼란 공의회는 ‘악’이 시초에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악은 유한하고 시간에 제약을 받는 것으로, 피조물의 자유와 결정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이와 연관해서 말하기를 , 마귀와 여러 악령들은 하느님께서 처음에 본성상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자기 자신이 악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와같은 공의회의 표현들은 악령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악마란 악의 세력의 인격화일 뿐이다.
4.4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는 창조에 관하여 신학재전 제 44문에서 제 49문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창 조
1. 만물의 산출
1.1 만물의 첫 원인(제 44문)
1.2 산출의 방식 (제 45문)
1.3 만물의 지속성의 시작 (제 46문)
2. 사물의 다양성
복수성
2.1 일반성 (제 47문)
2.2 특수성
2.2.1 선과 악의 구별
ㄱ.악 (제 48문)
ㄴ.악의 원인
2.2.2 영적 존재와 육체적 창조물과 영,육의 혼합 창조물들간의 구별
제 44문 모든 존재의 첫 원인이신 하느님으로 부터 조물들의 유래
1항. 모든 존재는 반드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어야 하는가? 하느님만이 본질과 존재가 동일하므로 하느님은 존재이고, 스스로 존재하며, 하나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사물들은 존재를 ’소유‘할 수 밖에 없다. 즉 참존재에 참여함으로써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존재한다.
2항. 제일질료가 사물의구성요소로 들어오고 사물들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제일 질료도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
3항. 기술자는 자기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본(本)을 따라 재료에 어떤 형상을 준다. 그처럼 하느님의 창조적 지혜 속에 사물들의 원형적 형상들이 있다. 이 형상들은 사물들의 종류만큼이나 많이 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 있어서는 이것들은 하느님의 유일 본질 그 자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제일 원형(primum exemplar)이다.
4항. 하느님은 창조할 때 어떤 목적에 따라 작업하셨다. 이 목적이란 선이다. 그러나 무한한 하느님에게 있어서 선은 어떤 취득해야 할 선이 아니라 나누어 줄 선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선성이 바로 우주의 목적‘이다.
제 45문 첫원인으로부터 유래하는 창조물의 방식
1항. 생성되는 것은 그 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모든 사물의 실재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그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creatio란 ’무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이다.
2항. 하느님은 창조할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물들의 기원이 창조 활동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 필요했다. 실상 기술자들은 자연으로부터 재료를 취해 거기에 형상을 주고, 또 자연도 기존하는 재료로 작용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떤 것도 그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에, 사물들을 창조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질료를 창조해야 했다.
3항. 피조물 세계에 있어서의 창조란 엄밀한 의미에서의 창조가 못된다. 거기에 실제적 출발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 존재의 원리인 창조주 하느님을 향햔 그들의 실제적 관계를 의미한다.
4항. 창조란 어떤 존재자에게 ’존재(esse)‘를 주는 것이다. 그 자체로 실존하는 유들은 ’실체들‘(substantia)이다. 실체엔 단순실체와 복합실체가 있다. 이 실체들에 대해서는 ’창조되었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우유와 형상들에 대해서는 ’더불어 창조되었다”(con-creati)고 말해야 한다.
5항. 가장 보편적인 결과는 가장 보편적인 원인의 고유한 결실이다. 그러나 ‘존재’는 가장 보편적인 결과다. 따라서 창조는 가장 보편적인 원인, 즉 하느님에게만 해당된다.
6항. 창조는 하느님인 한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일이다.그러므로 창조는 바로 삼위일체의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의지 속에 있는 것을 지성을 통해서 행한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를 통해서 성령안에서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해야 한다.
7항. 이성이 없는 피조물들은 하느님에 대해 다만 ‘원인성’만을 표상한다. 따라서 자체 안에 삼위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즉 모든 피조물들은 일정한 ‘존재’, 일정한 ‘형상’, 일정한 ‘경향’을 가지고 있는 한에 있어서 삼위일체를 표상한다. 그러나 지성과 의지를 갖춘 피조물들은 그 자체 안에 ‘흔적’ 뿐 아니라 삼위일체의 ‘모상’도 가지고 있다.
8항. 물질 속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형상들이 ‘가능상태’로 있다. 따라서 자연과 기술의 경우 진정한 의미의 ‘창조’라고 말할 수 없다.
제 46문 시간 속에서 창조물의 시작
1항. 오직 하나의 유만이 영원히 존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하느님이다. 세상은 ‘원인’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의지’가 그 원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기 자신만을 원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느님이 필연적으로 영원한 세상을 원했다고는 증명할 수 없고, 따라서 세상을 영원하다고 결론 지을 수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증명적 방식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방식으로서이다.
2항. ‘세상은 시작점이 있고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은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만일 그것을 증명하려면 두가지 원리(내면 원리인 본질들과 외부원리인 원인)를 차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상 본질들은 보편적이다. 따라서 언제나 어디서나 실존할 수 있다. 그리고 원인은 하느님의 의지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하느님은 다만 필연적으로 자기자신을 원한다는 것만 입증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하느님이 ‘계시’한대로만 어떤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아는 것은 오직 신앙을 통해서이다.
3항.정확하게 말해서 우리는 성서를 통해 ‘하느님이 태초에 사물들을 창조했다’는 것을 안다. 이말로써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있는 사물들의 원리 즉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또 물질적 사물들은 영적 사물들을 통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사물 자체의 원리도 알아듣게 되고, 또 ‘시간의 시작’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제 47문 사물들의 공통적(일반적) 구별
1항. 사물의 다수성과 구별은 하느님의 의도에서 나온다. 하느님은 당신의 선성을 나누어주기 위해 세상을 창조했고, 이 하느님의 선성은 어느 한가지만을 통해서는 넉넉히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2항. 그리고 사물들의 차이들은 하느님의 지혜로부터 나온다. 이 차이는 우주의 완전성의 정도차에 따른 사물들간의 형상적 또는 종적 구별에 필수적이다.
3항. 세상의 질서는 통일성을 형성한다. 모든 사물들이 그들 상호간에 그리고 하느님에 관련되어 질서를 가지고 있으므로, 오직 하나의 하느님이 있는 것처럼 오직 하나의 세상이 있을 뿐이다.
제 48문 사물들의 종적(특별한) 구별
1항. 악이 무엇인지는 그 대립물 선을 통해 알려진다. 선이란 그것을 추구하는 자의 존재를 완성하는 한에 있어서 ’원욕될 만한’것이다. 선은 그러므로 ‘존재성’을 지닌다. 그 대립자인 악은 ‘선의 결핍’(privatio boni), ‘존재성의 결핍’이다.
2항. 사물들간의 비동일성은 우주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불멸의 사물들도 있고 멸망할 사물들도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 멸망할 것들은 멸망 또는 결함에 지배를 받지않는다면 ‘가멸적’이 아닐 것이다. 이 가멸성은 상대적 선의 결핍, 즉 악과 더불어 일어난다. 그러므로 ‘악은 우주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3항. 상대적 선의 결핍은 어떤 주체 속에서 발견된다. 그 주체는 어떤 ‘존재성’을 지니고 있는 한 ‘선’이다. 그러므로 악은 선 속에서 발견된다.
4항. 악은 모든 상응하는 선들의 결핍이다. 그러나 악이 발견되는 주체 자체의 총제적 멸망은 아니다.그렇게 되면 악조차 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5항. 제일 현실은 존재이고 제2 현실은 작용이다. 그러므로 악은 이중적이다. 즉 제일 현실의 결핍이거나 제 2현실의 결핍이다. 이성적 피조물에 있어서는 하나는 ‘형벌의 악’, 또 하나는 의지에 해당되는 ‘죄로서의 악’이라 불리운다.
6항. ‘죄악’(이것은 우리의 의지에서 전개되어 우리를 악하게 만든다)은 의지자체의 무질서에 성립되기에, 다만 의지의 대상인 어떤 것의 결핍일 뿐인 ‘형벌의 악’보다 더 크다.
제 49문 악의 원인
1항. 악은 그 원인을 갖는다. 악에 형상도 목적 질서도 결핍되어 있기에 형상인도 목적인도 아니고 오직 질료인과 작용인을 갖는다. 이런의미에서 악의 원인은 선이다.
2항. ‘하느님이 그의 행위의 결함 때문에 악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상대적인 선(여기서부터 사물들의 비동일성이 연원된다)의 결핍이 하느님에 의존하는 한에 있어서는, 그리고 또 죄를 벌하기 위한 형벌의 악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점에서 하느님은 악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3항.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악 또는 악의 원리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상 ㄱ) 최고선, 본질적 선은 있지만, 악은 다만 선의 ‘상대적 결핍’일 뿐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악이란 없다. ㄴ) 악은 그것이 발견되는 주체 자체의 왅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악은 실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제적인 악이란 없다. ㄷ) 악의 기원은 선이다. 그러므로 원리가 아니라 원리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 만일 악이 어떤 원인인 경우 그것은 ‘우연적으로‘ 그러하다. 따라서 악은 제일 원인일 수 없다. 우연적 원인은 원인 그 자체보다 후발생적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창조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전해져 오는 신 플라토니즘의 사상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조화시켰다. 신 플라톤주의는 참여의 사상을 제공했다. 피보물은 무한한 완전성에 참여하는 제한된 완전성이다. 따라서 피조물은 자신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된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태와 가능태의 사고방식으로 피조물이 우연적인 존재라는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모든 운동은 자체로서 움직이지 않는 동인에 의해 이루어지면, 운동은 변화요, 봉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운동은 그것이 가능태 안에 있는 한 가능태에서의 사물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사물은 그가 항상 가능성 안에 있는 한 더 완전한 실태에 이르려 한다. 따라서 어떤 존재가 이루어 놓은 현실태는 가능태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토마스는 이런 사상에서 출발해서 더 깊은 사색을 전개한다. 사물의 운동은 변화와 변천만을 일으킬 뿐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와 시론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준다. 어떤 사물이 이루어질 때에 그는 다만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변화가 이루어지느 그러한 존재이며, 자기 스스로의 본질로서 이런한 변화가 성립되지 않을 때에는 자기존재를 스스로 가지지 못하고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변화하는 데서 자기 존재를 찿는다면 자기의 본질과 존재는 동일한 것이 아니며 존재와 본질은 실재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토마스에 이르러 비로서 사물들이 자기 본질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우유적 존재(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할 수 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창조된 것은 근본적으로 우유적 존재라는 것이 그리스도교적 사고방식이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있어서 그리스도의 창조의 중보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제 45문 6항에서 ’성부는 성자를 통해서 성령안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토마스를 비롯한 중세 스콜라 학파는 세가지 입장을 창조신학안에 정초한다.
ㄱ) ’완전히 없는 상태에서 사물이 만들어져 나왔다‘. 즉 창조는 어떠한 재료도 미리 전제하지 않았음을 뜻하며, 창조주가 창조에 있어서 순수하게 창조하는 것으로서 어떠한 중간 존재의 개입도 없었음을 말한다.
ㄴ) ’전 실체가 만들어져 나왔다‘.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하느니의 실체와 창조물의 실체가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범신론과 구별
ㄷ) 그 본질이 만들어져 나왔다. 토마스의 개념. 하느님의 본질만이 존재와 동일 한 것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이요, 그 이외의 모든 본질은 존재를 소유하게 된것 즉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의 창조 이론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는 창조에 대한 카톨릭의 전통교리를 스콜라적 언어로 종합하고 있다. 1870년에 반포된 “Dei Filius”에서 모든 사물의 창조주 하느님이심을 천명하고 있다.
1. 세상은 창조주 하느님과 본질상 구분된다. ”그분은 한분이요, 도특하시며, 완벽하게 단순하시며, 불변하는 영적 실체이신 까닭에 그분의 실체와 본질에있어서 마땅히 세상과 구별이 되는 분으로 선언된다“(DS 3001).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명확한 구분을 창조론의 기본 명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 명제에서 범신론이 배척되고 있다. 범신론은 이 세상이 어떤 원리에서 유출되었기 때문에 그 원리와 유출된 세상을 본질상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은 발전하고 변화하지만 하느님은 불변이시다. 하느님은 변화나 발전의 대상이 아니고 더 나은 것을 필요로 하는 결핍의 대상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스스로 자신 안에 충족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창조주와 피조물은 구별된다고 선언한다.
2. 창조는 하느님의 온전한 자유의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완전함을 피조물에게 베푸시고자 창조하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자유로운 계획에 의한 것이다“(DS 3002). “하느님이 당신의 자유의지로써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사랑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필요에 따라 필연적으로 창조하였다 고 주장하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지어다”(DS 3025). 1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러한 하느님의 자유의사를 강조하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적 요청 때문이었다. 당시에 창조의 필연성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품위로 보아서 최선의 세계를 필연적으로 마땅히 창조했어야 했다“. 공의회는 이러한 필연성이 아니라 순수한 자유의사대로 당신의 사랑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밝혀야 했다.
3. 창조의 동기와 목적은 하느님의 영광, 즉 하느님의 선성을 드러내는데 있다. ”하느님은 그의 선성과 권능의 힘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더 증가시키려는 의도를 지니지 않으시고,오히려 당신의 완전함을 당신의 선성으로 말미아암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에게 베풀고자 하신다“(DS 3002)라고 그 동기를 밝히고 있다. 또 ”세상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지어다“(DS 3025).라고 그 목적을 말해주고 있다. 하느님은 더 이상 당신의 행복을 증진 시킬 필요가 없는 분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창조의 동기와 목적은 창조물에게 분배하실 선을 통하여당신의 완전성이 외적으로 현양받기 위함이다. (하느님의 영광은 인간의 선, 행복, 구원과 직결되어 있다. 루터나 칼빈에게 하느님의 권능, 전능이 인간을 파멸하게 버려두는데서, 인간을 벌하는데서 드러난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4. 창조주는 모든 피조물과 피조물의 자유행위로 빚어지는 것까지도 당신의 섭리로 보존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이다(DS 3003). 하느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창조의 목적, causa finalis로 이해되는 한 당연한 귀결이다. 하느님이 각 피조물을 알맞게 보살피시고 다스리시며 완성을 이루신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앙이다.
5. 마지막 명제는 하느님이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무로부터의 창조에 관한 사상을 사도교부 헤르마스, 이레네오, 오리게네스에게서 보았다. 라떼란 4차공의회에서도 역시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1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표현을 통하여 창조주 하느님 이외의 어떤 창조 원리도 부정하는 것이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서 창조 되었고, 창조물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한 신앙을 표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