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시 (Revalation)

묵 시 (Revalation)
1) 특 징
① 묵시는 공통적으로 꿈이나 현시, 천사를 통해 드러난다. 계시는 초자연적 실재를 내용으로 한다. 즉 하느님의 신비계획을 드러내는 것이다.
② 풍부한 상징들(여인.동물.괴물.나팔.숫자 등)을 사용한다.
③ 어려운 상황을 배경으로 하기에 곧 도래할 하느님이 중심이 되고, 선과 악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악의 붕괴와 새로운 세계에서의 선의 승리를 희망하는 내용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사고 방식 안에서 묵시는 상당히 강력한 양상으로 보인다. 세상의 종말을 해와 달이 빛을 잃고 … 무덤이 열려 죽은 자들이 일어나 심판을 준비하고… 등으로 표현한다. 이는 상당한 영향력 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지닌다. 그 상징들은 작가들에 의해서 수용된 것이고, 일부만이 교회에서 받아들여졌다. 어쨌든 아직까지 지대한 영향을 준 것 만큼은 사실이다. 즉 상징적 표현 때문에 거기에서 역사적 정보를 제공받으려는 경향이 강했고, 이는 배척되어야 하는 것이다. B.C 200- A.D 100 에 성행하였고, 이민족(그리스.로마)의 지배하에서 독립이 불가하게 되자 많은 유대인들이 떠난다. 특히 다니엘서는 그리스의 지배의 상황하에서 바빌론 지배의 상황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묵시는 희망이 전혀 부질없는 것으로 보일때, 이제 전혀 다른 형태의 희망을 갖는 것이다. 즉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에 의해 역사는 이끌어지고(종말을 향하고), 그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이 알려진다. 묵시는 과거의 기록역사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고, 그것을 현재화시켜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묵시자들은 역사가 곧 끝날 것 처럼 이야기 한다. 따라서 악의 세력을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 (낙원.새로운 생명에의 기대). 이들은 마지막 시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과거의 재앙들을 인용하여 묘사한다. 따라서 그 당시 인간들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하나의 희망으로 보여진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절망으로 보여진다. 이런 의미에서 묵시문학은 또 하나의 희망론이었다.

2) 묵시문학과 계약의 대조적 차원 (희망의 관점에서)
예언자의 약속은 역사안에서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역사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이 실현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는 이스라엘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약속은 행동에의 초대를 동반한다. 반면에 묵시문학은 역사의 종말 이후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예정론자이므로 비관적이고, 그리고 하느님은 이 악한 세대의 저 건너편에 계시는 분으로 새 세상을 위해 이 악한 세대를 파멸시킨다. 따라서 하느님의 자비는 재앙을 통해 옛 세대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의로운 자와 악한 자가 대조된다.
3) 묵시운동의 성서적 수용
성서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만 차지한다 (다니 2장,7-12장). 하느님에 의해서만 변화가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다니엘서의 묵시적 특징은
①저술연대를 앞당기며 가명으로 하고, 현재를 바빌론 시대에 이미 예언한 것으로 하였다.
②역사에 대해 비관적이다.
③현재의 사건을 마지막의 사건으로 확대시킨다.
④사라질 세대와 도래할 세대의 대조가 나타난다.
⑤옛 세대의 파멸은 새로운 은총으로 이해된다.
이런 대전환은 하느님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런 전환이 곧 다가올 급박한 것으로 묘사한다 (일부 학자는 다니엘서가 일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 하느님 나라와 지상세계를 이원론적으로 보지 않고, 하느님 나라는 하나의 지상세계, 역사의 세계로 간주된다. 어떤 실재를 묵시적 관점에서 유연하게 다룬다.
마르코 복음의 묵시적 표현은 다니엘서와 비슷하다. 이런 재난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 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또 앞으로도 다시 없을 것이다 ; Mk 13,19b ; 다니 11,31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거든”(Mk 13,14a; 다니 9,27),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으로부터 뽑힌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Mk 13,27; 다니 7,13;11,31). 다니엘서는 이것이 안티오쿠스 4세가 성전을 세속화 한 것을 말하고 마르코 복음은 로마에 의해 그것이 다시 이루어짐을 묘사한다. 人子에 대해서 묘사하는 부분도 상통한다 (Mk 13,26-27; 다니 7,14). 마르코 13장 역시 공포와 위험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격려하기 위해 쓰여졌다. 다시말해 고통의 상황은 하느님이 가까이 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르코 13장이 묵시와 다른점도 있다.
①마지막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②선포의 목적은 재앙이 아니라, 바로 깨어 있는데 초점이 있다.
③역사의 내면을 관찰하도록 요구한다 (모든 민족에의 복음전파,성령의 파견).
이런 관점에서 마르코는 묵시문학의 기본적 입장을 배제하고, 하느님의 능력은 바로 고난받는 상황안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2테살에서도 마지막 시기의 도래가 상당히 완화되어 있다 (2데살 2,2-3 ; 2베드 3,10-). 이들의 근거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였다.

요한묵시록 ☞ 그리스도교가 박해받는 상황에서 쓰여졌다. 따라서 기존의 묵시의 상징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독자들은 이 묵시록에서 그 상징들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편 상징들은 독자들이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다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묵시는 정보제공이 아니고, 보다 깊은 것과 관련되어 있다.즉 독자들이 박해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 분은 희망을 주는 어린 양으로서 마지막 승리는 이미 십자가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즉 자신의 생명을 봉헌하고 희생함에서 이루어진다.
성서가 묵시적 요소들을 인용하면서 표현한 그리스도적 희망은
①세상의 모든 능력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다.
②세상을 뒤엎는 재앙에서마저 그리스도가 절대적 희망이고, 이는 죽음을 넘어서도 가능한, 부활과 연결된 희망이다.
③이스라엘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
묵시문학을 이용해서 새롭게 신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점은
①종말을 시간적으로 계산하지 말라.
②세상을 자꾸 경시하지 말라.
③상징과 정보제공을 혼동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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