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로고스 찬가는 ‘태초에’라는 말마디에서 창세기 1,1 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 찬가는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요한에게서 육화된 인격적 로고스는 마로 하느님이 그를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다. 여기서 말씀과 하느님의 관계는 ‘로고스는 하느님이셨다’라는 귀절로서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여기서 태초에 라는 말마디는 시간적으로 이해 되기보다는, 로고스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분임을 시사하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말씀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미 하느님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고스는 창조와 모든 시간에 앞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로고스의 선재가 명백하게 시사되고 있다. 요한 복음 8,28에 그리스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라는 말마디를 확인해 주고 있다.
16절에서 즉시 구원자는 인격적이며 하느님에게서 존재하며 또한 하느님이신 로고스로서 모든 창조에 앞서 수위를 차지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 수위성은 시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원인적으로도 정의 됨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로고스는 단지 시간적으로 앞설 뿐만 아니라, 세계와 시간의 창조자이기도 한다. “만물은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다”. 다시말해서 모든 창조물의 기반이 되고 있다. παντα δι αυτου εγενετο 모든 것이 만물을 통해서 생겨났다. 다시한번 ’통하여‘ 라는 전치사가 관건이 되고 있다. 로고스는 단지 하느님의 도구로서 사용되었는가? 하느님으로부터 유출된 능력일 뿐인가? 아니면 로고스 자신이 세계 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 했는가? 그런데 여기서 로고스는 하느님이셨다라는 인격성이 단순한 도구 이거나 단순한 유출적 활동으로서의 창조 역할을 배제하고 있다. 요한 복음 저자가 상당히 헬레니즘적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당시에 유행하던 표상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로고스는 적극적으로 창조에참여하고 있다. 그는 성부와 마찬가지로 창조주이다. dia 라는 전치사가 성부와 로고스의 동일화를 간단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조를 통하여 성부와 로고스와의 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이 로고스의 적극적 활동이 “이 로고스를 통하지 않고서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진술로써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로고스 찬가는 보편적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보편적인 창조주와 동일시하고 있다. 창조신학이 인간을 창조의 정점으로 보는 것처럼, 요한 저자는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의 직접적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을 연결시키고 있다. 창조에 대한 로고스의 사랑은 육화에서 계시된다. 인류의 구원은 로고스가 인류와 맺는 완전한 유대성에서 고찰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이 구원행위의 일차적 대상이긴 하지만, 인간이 이렇게 일차적인 대상이 되는 것은 그가 모든 피조물의 수렴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구원은 전체 우주와 관련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하여 창조되었다면, 이들은 자신의 본질에 의해 그 자체로 말씀의 증인이거나 표징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말씀을 자체 안에 지니고 다닌다.“ 이렇게 해서 우주는 말씀으로부터 해석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구원이란 단순히 죄악으로 말미암아 필요하게 된 이차적 보완 조치가 아니라, 하느님이 애시당초 구원결의에 내포된 가장 깊은 지향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말하자면 육화는 아담과 에와의 원죄 없이도 이루어져야 했는가 하는 질문에 원죄 없이도 육화는 가능했으리라는 답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창조의 목표는 만물이 구원되는 것이다. 로고스가 인간이 되는 가운데, 창조의 이 차원은 더 이상 능가할 수 없는 절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로고스 찬가는 그리스도 사건의 교회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차원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구원을 새로운 창조,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서 제 2의 아담, 또는 마지막 아담으로 이해하는 로마서 5,12-21, 예수의 가르침을 새로운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마르1,27, “보아라,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는 묵시21,5, 구원의 목표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야기하는 묵시 21,18,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인간이 된다는 바오로의 서간들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에 적극적 역활을 담당하고 있다는 진술들을 만난다.
이상에서 그리스도의 창조 역할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신약성서를 보았다. 신약성서의 창조를 이야기 하는 이런 자료들은 범죄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가볍게 다루면서, 죄라고 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훨씬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원의 중보성에 촛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당시에 교회가 처하고 있던 암담한 처지가 간과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한 현실의 상황을 능가하는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에 신뢰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