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종말론 계통의 이설(異說)과 전통(가톨릭)교회의 종말론-(나)

4)여호와의 증인의 왕국설
창설자는 Charles Tage Russell 임(1852 출생). Pensiglvania 주 Allegheny 지방에서 태어났고, 학생때부터 웅변에 능했고 조직 생활에 능했다. 20세때 당시 안식교 지도자의 하나인 J.H 페이트의 저서를 탐독하다가 예수의 재림시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후일 자신과동일한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성경연구 모임을 가졌다.
여호와의 증인의 핵심적 원리는 ‘여호와의 왕국’이다. 이것은 그들의 원리의 출발점이며 종점이다. 그들은 1914년 예수께서 영적으로 재림하여 새로운 정부인 여호와의 왕국을 시작하셨다고 하며, 지금은 사탄의 영향을 받는 인간정부들의 마지막 때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머지않아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의 마지막 날이 도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한 세대동안 불법(마태24,12 참조)과 정치적 혼란과 민족국가들간의 전쟁, 기근과 지진(마태24,7 참조)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으며, 여호와의 왕국에 대한 징조의 성취에 관하여 1914년 이후 세계사적인 사건(제1차 세계대전)에서 그 예증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그후의 전세계에서 일어난 3백번의 혁명 쿠테타, 반란, 봉기 및 폭동들이 마지막 날의 종지부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을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의 “여호와 왕국” 에 대한 최종적 도전으로 보았다.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의 왕국을 1천년으로 생각하였다. 그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천국 정부가 세워지고 왕국의 시민은 여호와의 증인들로 된 14만 4천명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왕이 되고, 모든 백성을 위해 여호와의 제사장들로서 봉사함(묵시20,6 참조).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의 왕국 천년이 되면, 최고 재판자이신 여호와의 최종심판을 받으며, 이땅은 낙원으로 회복되고 영원한 여호와의 왕국이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

5)모르몬교(Mormonism): 미래에 새예루살렘 건설 주장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 Day saints)란 명칭을 가진 모르몬교는 미국에서 발생한 신흥종교로서 세계 각처로 뻗어가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 예수그리스도, 성령등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사뭇 이질적임<예)예수는 하느님과 마리아간의 성적관계로 태어남>
몰몬교의 시초는 Joseph Smith 2세로부터 시작됐다. 19세기 초 미국 개척시대의 New York에서 였다. 기독교의 교권과 분열에 회의를 느낀 요셉 스미스 2세는 독자적으로 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려 골몰했다. 깊은 산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신(神)의 계시를 받았고,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은 채, 광산촌에서 일하던 중 인디언들의 고적을 발견하고(미국 인디언 연구 자료집), 그것을 기초로하여 몰몬경을 만들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새로운 예루살렘이 미대륙 땅에 세워지고,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는 미 대륙에 건립되는데, 이것은 예수의 재림을 말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오셔서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천년을 통치하며 모든 적을 물리치고 죽음까지 복종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첫째 부활이다(묵시20,4-6참조). 최후의 심판은 천년왕국이 지난 다음, 즉 사탄이 잠시동안 풀려 이 지상에 거하는 백성을 마지막으로 유혹할 기회가 끝난 다음에 온다(묵시20,7-10 참조).
세 종류의 왕국(Kingdom)을 말한다.
ㄱ)천상적 왕국(Celestial Kingdom):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충성된 자들이 갈 곳(지상에서 회복될 천국임).
ㄴ)지상의 왕국(Terrestrial Kingdom): 율법없이 죽은 이들과 그들이 육체로 있을 때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않았으나 후에 받아들인 이들이 갈 곳(이것은 지상의 다른 영역에 있음)
ㄷ)별의 왕국(Telestial Kingdom):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자들과 , 지옥에 던져진 자드이 있는 곳.

2. 시한부 말세론(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공통점
1)자신들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어떤 사적 계시나 기적 등을 주장함.
2)성서의 구절들을 왜곡하고 또한 과학의 발전을 악이용하면서 사람들을 공포속으로 몰아 넣고자 한다.
3)그들은 엄격한 윤리 내지 자신들만의 행동원리를 제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와 안받아들이는 자를 구별하고, 그것을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할자로 구별하는 근거로 삼음. 때론 이원론에 빠져 영계와 물질계를 구분하기도 함. 그들의 윤리내지 행동원리만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기성종교나 전통교회의 권위라든지 합리적 생각들을 거부함.
4)묵시록의 여러 구절들을 이용하여 종말의 날을 계산하지만 그것은 가설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계산은 벌써 번번히 틀려왔다.
5)그들은 ‘새하늘과 새땅’을 구현하는 어떤 장소를 지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장소에 모여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이성(理性)도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신앙을 이성으로만 알아들으려 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불합리한 것을 신앙으로 착각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것을 토대로 하는 계시진리와 인간이 이성을 갖고 추구하여온 진리 사이에는 모순이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이성도 하느님께로부터 온것이고, 계시도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3. 사이비 종말론을 주장하는 종교의 출현과 군중 현혹의 원인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지적될 수 있다. 하나는 사회의 혼관과 모순성, 다른 하나는 기성종교의 문제점이다.

1)사회적인 문제점: 급격한 사회변동과 사회구조의 불안정을 들 수 있다(6.25 후의혼란, 근래 30여년 사이 전근대사회에서 근대화 – 외적 모습 급변에 내적.정신적 뒷받침이 못이루어짐. 전통가치의 전도, 혼란, 물질제일주의로 경쟁. 냉혹성등).
안정된 사회에선 신흥종교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정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내부의 혼란, 긴장이나 모순성 또는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기존사회 질서가 깨지면, 삶에 대한 방향과 방법을 찾기 어렵게 된다(3S 문화의 지배 및 중독화: 도덕적.문화적으로 빈약, 윤리 황폐됨 – 각종 범죄, 사회 병리현상이 나타남)
요즈음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금전만능주의, 물량주의, 쾌락주의, 정치인들과 경제인드의 부패, 개인주의 등의 ‘병든 사회’에서 종말론자들은 고개를 든다. 군중을 현혹시킬 수 있는 좋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러한 불안한 상황을 악이용하여 성서구절을 왜곡선전하면서 사람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2)기성종교의 문제점: 기성종교들이 외적.양적으로 성장하고 팽창하면서 내실화하지 못하고, 급변하는 상황에 절적히 대응하지 못함. 조직이 경직되며 점점 친교가 약해진다.
또한 급변하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목회. 사목의 낙후성이 지적될 수 있다(종전에 교회의 사목자.목회자를 찾아가던 사람들이 근대엔 심리학.사회학 그리고 운명철학분야 종사자들에게 점점 더 호감을 가지고 몰려감). 또한 기성종교가 중산층화 되면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리는 하류계층의 사람들은 그런 종교에 친밀감 갖기 어려우며, 찾아왔다가도 곧 떠나게 된다.
실제로 살펴보고 분석해보면, 신흥종교 신자들 대부분이 현실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흔히 기성종교 여러 곳을 전전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 기성종교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무속적 배경의 기복신앙(현세구복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정화 및 의 교육 및 본연의 신앙성숙을 위한 배려를 기성 교회에서 못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성종교가 그들의 상처치유를 못해주고 가려운 곳을 못 긁어준다고 여기는 것이다.

4.전통적(가톨릭) 교회의 종말론
1)종말론(escatologia)은 무엇인가? : 종말론의 정의
인류의 역사는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시발점.천지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그분이 정하신 계획에 따라 진행되며 또한 그 계획에 따라 언젠가는 마감될 것이다. 이러한 마감인 역사의 종말은 멸망이 아니고 완성이다. 비록 우리의 오관으로 접하는 세계는 사라진다해도, 그것이 끝장이 아니고 새로운 세상의 시작인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이 세상에 왔다가, 부르시면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이 개인으로 가든, 세상이 끝날 때 가든, 하느님께 되돌아 갈 때 생기는 사건 및 그 이후의 삶이 오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종말론이다. – 하느님께 되돌아갈 때 생기는 사건이란 – 죽음, 심판,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이 세계의 끝, 새로운 창조등이고 새로운 삶이란 천국, 지옥의 삶이다.
이에대한 교회의 기본 가르침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①종말은 파괴나 멸망이 아니고 완성임.
②교회와 인류 그리고 우주는 이러한 완성을 향하고 있음
③이러한 완성을 향한 행진은 이미 시작됐음. 그러나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이러한 전진은 우리 각자의 삶, 인간의 삶과 별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완성을 통해 개인이나 공동체의 완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언급은 두가지 양상을 띠고 있다. 하나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지상에 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나라가 역사의 종말에 실현된다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양면성 중 어느 한쪽면을 극대화하여 다른 한쪽을 약화시킬 필요는 없다. 하느님 나라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도래하였고, 한편으로는 아직 오지 않았다. 즉 이 세상에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이미’와 ‘아직 아니’라는 양면성은 어쩌면 모순 같지만, 두가지 긍정이 동시에 옳은 것이다. 여기에 종말론이 성립된다. 즉 우리가 ‘종말의 날’,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고 할 때, 이 말은 세상의 종말이 곧 올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의 완성, 역사의 마지막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날이 언제 올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우리가 미리 참여하고 있는 종말의 최종 완성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다.

2)교회의 종말론적 초대
교회헌장(LG) 48항은 우주의 갱신이 이루어지는 종말에 교회는 완성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의 완성을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공동체 안에서 인간과 밀접히 결합하시고, 교회를 통한 인간구원의 달성은 그 인간과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우주의 창조 목적과도 직결되는 것이므로 인간의 구원을 통하여 全우주도 완성되는 것이다.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recapitulatio)”(에페1,10).
우주완성에 대한 묵시문학적 표현은(예컨데 2베드3,10-13) 우주의 소멸을 이야기하는 것 같으나, 그 참뜻은 ‘새하늘과 새땅’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즉 죽은 것이 새것으로 변모됨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3)지상의 교회에 현존하고 있는 미래
교회헌장 48항의 두 번째 주제는 더욱 본격적인 종말론으로 ‘이미’와 ‘아직 아니’, 즉 ‘현재’와 ‘미래’의 관계를 다루는 것인데, 현재는 미래와 외형상으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하나의 전주곡으로 또는 완성의 시작으로 나타난다.
①과거의 사건이 현존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행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을 믿는다. 그분은 미리 약속하신 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원의 보편적 도구를 이루시도록 하셨고, 그분이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그분의 구원사업을 종말까지 계속하신다. 그분의 행적은 인류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회성의 과거지사에 속하지만, 교회를 통하여 오늘의 역사에도 현존하는 것이다.
②세계의 종말
이렇게 그리스도의 과거의 사건이 우리 시대에 현존하고 있고, 이 현재는 이미 미래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단순하게 ‘세계의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1고린10,11 참조). 그리고 인간과 함께 완성될 세상의 쇄신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4)약속의 성취
교회헌장 48항은(세번째 주제를 시작하면서) ‘상속의 담보(보증)’ (에페1,14참조)의 말씀을 인용하여 약속의 성취와 이에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해 취급한다.
(에페1,13-14 :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십니다.”)

①하느님의 자녀됨
상속의 담보(보증)는 어떤 다른 선(善)을 획득하기 위한 보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후에 완전히 변화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의 부분을 이미 벌써 찾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증서를 따냈다는 것이 아니고, 지금은 베일에 싸여 아직 그 영광이 드러나지 않지만, 이미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받은 은총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첫 열매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갈라4,4이하 참조).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나, 그렇더라도 아직 완성은 아닌 것이다.
② 깨어 있음과 혼신의 투쟁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으로 하느님의 자녀다운 길을 걸어야 하는데, 종말에 가서 주님과 함께 영광의 화관을 쓰기 위해선 ‘긴장’이 있게 된다(2고린5,9 참조).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갑옷을 입고 무장하여 죄악과 투쟁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 받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에페6,11-13참조).
예수님은 늘 깨어 있으라 하심: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그때가 언제 올른지 모르니 조심해서 항상 깨어 있어라”(마르13,32-33)
③심판과 부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자녀다운 길을 가는 것은 험난하고 힘들지만, 부활을 통한(필립3,21 참조) 하느님과의 일치를 바라는 희망으로 용기를 갖고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행위를 그분께 심판받아야 한다. 마태오 복음 25장에 의하면, 악인들은 저주받으며 “내게서 멀리 떠나라”는 판정을 받게되고, 선인들은 축복받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일치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종말론적 희망이 현세의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는 열쇠이다.

5. 묵시록의 해석법
옛부터 묵시록을 해석하는데는 여러 가지 설(設)이 있었는데, 대체로 다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세말사적(世末史的) 해석법
묵시록이 세상 종말의 역사에 대해 쓰였다고 생각하면서 주석하는 방법이다. 이런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이 지상에 실제적으로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천년왕국에 대해선 환시의 상징적인 면과 실제적인면이 뒤섞여 있어 그 한계 규정이 어렵다. 천년왕국을 자의적(字意的)으로 해석해선 안되며, 세상 마칠때까지 계속될 인류 역사에 미치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뜻하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2)교회사와 세계사적 해석법
묵시록에 교회사와 세계사의 연대, 사건, 인물 등이 세상 마칠때까지 예언되었다고 함. 즉 모든 시대의 사건들이 신기하게도 다 적혀있다는 것이다(1.2차 세계대전, 전차, 폭격기 등도).- 이것은 주로 광신자들이 하는 해석법이다.

3)시대사적 해석법
묵시록의 저자는 상징 표현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란 해석법이다. 물론 당시 시대상이 드러난다(2,11-3,22;13,1-8; 17,1-18,24 참조). 그러나 묵시록 전체를 단지 당시 시대상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 묵시록 자체가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한정된 시대상을 포함하여 닥쳐올 세상 종말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4)전승사적해석법
이상 야릇한 갖가지 상징은 묵시록 저자의 창작품이 아니고 물려받은 전승요소인데, 그 출처는 유다인의 묵시문학, 희랍의 천문학, 옛 바빌론과 소아시아 지방의 종교와 신화이다. 묵시록 저자는 옛 자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낸 것이다. 그런데 옛자료를 사용했지만 그 사용 이유가 옛 자료에 나오는 신화들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고, 때로는 그것이 신화에서 나오는 표상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일반화 내지 상식적 표상으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일요일이 태양의 날(日)이고 월요일이 달의 날(月)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같이, 그냥 전승에 따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상의 네가지 방법론은 각기 장점과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오늘 묵시록을 주석하는데 있어, 네가지 방법이 장접을 선택하여 종합하려 한다.
①전승사적 해석법에 따라서, 묵시록에 사용된표상들의 출처를 밝히고 저자의 의도를 알아볼 필요가 있음.
②시대사적 해석법에 따라 당시의 시대상과 견주어 보아야 할 것이다.
③교회사 및 세계사적 해석법은 약간은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④세말사적 해석법은 올바로 적용한다면, 종말이 먼 장래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벌써 세말의 시작이고, 세말은 현실의 완성이라는 본래의 그리스도교 종말론에 입각하여 해석한다면 항상 대결하고 있는 악의 세계와 하느님 나라 사이의 긴장을 여러면에서 기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교훈적 측면에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중세에 그리스도교는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마치 과학 교과서로 여김), 새로 인식된 자연과학의 진리들을 제대로 표현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주장한 사람들을 박해하기까지 하였다. 예를들면, 갈릴레이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이 그런 것이다.
오늘 또다시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억지주장을 펼치면서 휴거니, 천년왕국이니, bar code 사용금지니 하는 혼란야기는 그와 같은 오류를 거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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