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도자
수도자들이 본당 사도직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특수성이다. 그러나 수도회 고유의 카리스마와 본당 사도직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있어 보인다. 존재론적인 삶의 증거에서 일 중심의 역할 분담으로 구분되어 감으로서 본당 사도직의 역할이 교리교육, 제의방, 단체지도로 획일화되고 제한된 행정적이고 단순화된 직무로 변화됨으로서 봉헌된 삶의 자유를 제한 받는 사도직의 위기로 진단한다. 가장 크게 문제되는 것이 사목자와 수도자들의 관계로서 일방적인 지시와 대화의 부족을 들고 있다(본당 사도직에서의 역할과 위치, 사목 97, 5).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현교회 체제상 어쩔 수 없는 사도직 참여의 한계(여성사제?)에서 오는 열등감이 아니라면 하느님 나라의 증거라는 복음삼덕의 종말론적인 삶을 언제고 어디서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 수 있다는 투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취향이나 가치판단이나 일의 성과나 현실적인 세속화에 가세하기보다는 헌식적으로 자신을 투신한다면 고유의 카리스마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한국교회의 성장에 수도자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지만 수도자들로 말미암아(개인적인 차원이 아님) 평신도들의 사도직 참여를 위축시키고 그들의 몫을 침식한 면도 솔직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존재론적 삶의 증거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일의 능력과 효율성을 무시하거나 수도자 양성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많은 본당에 나가서 사도직에 임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목적은 본당사도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기개발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마도 다른 나라들처럼 수도회가 본당에 진출하지 않고 고유의 카리스마를 살리는 일에 종사한다면 몰라도 본당사도직에 참여하는 한, 또 그 자체가 한국 교회의 상황에 맞는 카리스마라고 한다면 사목자와 수도자는 경쟁적인 관계가 아니라 대화. 협력, 연대와 공동체의 원형인 삼위일체적인 親交, 通交, 通功의 관계의 문제가 아닐까? Communio의 삶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구심점(동작인; agent, animator)이 필요하고 그 구심점이 아무래도 사제와 수도자라면 우리의 의식과 생활양식이 Communio(복음적 삶)적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공의회의 수도자 교령은, 수도회의 존재 형식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으로 옛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현대에 적응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수도자들이 서약한 복음적 권고를 상기시키지만, 아울러 새로운 상황에 적합한 생활규칙과 구조 및 생활양식을 선택할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수도회 가족들은 창립자의 정신을 재발견하고 오늘날 그들의 사명을 실천할 수 있도록 삶의 양식을 적응해야 할 힘을 갖게 되었다. 또 수도회에 맞는 특수한 성격과 임무를 갖는 동시에 전반적인 교회의 쇄신에도 자신의 몫을 담당하도록 요청 받고 있다. 또 개인적인 부르심과 응답, 계속적인 양성교육, 전문적인 훈련, 기본적인 수도성소의 영성적 특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도직은 이미 문제시되고 있는 반면에, 자신들의 사도직과 영성을 평신도들과 함께 나누는 협동 사도직에 눈을 뜬 수도회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수도회들은 자신들의 사명이나 기원에 대해서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공의회가 평신도들의 사명과 성소에 대해서 새롭게 강조함으로써 아무래도 수도생활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