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근본성사-성체 교회론(최근 학자의 견해)

 

5)최근 학자의 견해


오늘날의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이전 교회론의 토대를 이루어주는 원리가 바로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친교다.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우리는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먼저 교회를 식탁공동체로 생각할 수 있다. 교회는 부활하신 분이 성찬을 거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식탁공동체이다. 이와함께 최후의 만찬은 교회 창립의 원천적인 장소로 이해 된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의 의식과 함께 삶을 보여 주셨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친교 공동체가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고 이 공동체안에서 예수는 자신의 살과 피를 온전히 내어놓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완전한 일치가 가능하게 되는 준거점이 된다. 이와함께 교회의 근본적인 형성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런 공동체가 가끔 작고 가난하고 혹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도 그안에 그리스도 현존하시며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가 조직되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약성서에서의 성찬을 세가지 차원으로 언급하고 있다. :


첫째로 이미 지나간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기념의표지 , 둘째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하여 우리안에 효력을 주는 은총의 표지 , 셋째 미래의 영광을 미리 앞당겨 보여 주는 예고의 표지“ 이러게 주님은 성체안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현존하고 있다. 신앙안에서 식탁공동체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주님 자신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성찬은본질적으로 공동체이고 친교이다. 성찬안에서 교회는 완전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항상 새롭게 거듭난다.


이러한 성찬을 통해 하나의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 난다. 이 변화는 우리를 더 높은 질서로 나아가게 하는데 이것을 회개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성찬안에서 또 하나의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데 성찬에의 참여는 바로 형제공동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교 형제성의 원천인 성찬은 형제성의 성사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빵과 포도주는 우리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으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현존은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한다.


교회는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고 빵을 나누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스스로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구체적인 일상생활속에서 완전히 교회의 모습을 드러 내는 것이며 이러한 교회의 실재적 모습은 하나의 추상적인 이념이나 교의적인 주제 또는 사회적인 조직보다 훨씬더 참되고 분명해지며 파악할수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


성찬은 교회의 모습이며 일치와 다양성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각각의 성찬안에 주님께서 완전히 함께 계시며 각각의 성찬을 거행하는 공동체는 이미 완전한 교회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는 성찬을 거행하는 공동체에 교회가 완전히 현존한다고 단순하게 말하지않고 있다. :오히려 “그리스도틔 이 교회는 신자들의 모든 합법적 지역교회에 존재하며, 각기 자기 목자들과 결합된 이집단들을…..교회라고 부른다. …….주교의 거룩한 관할 밑에서 제단의 공동체를 이룰 때 마다 거기에는 구원의 필수조건인 그리스도신비체의 사랑과 일치의 상징이 표현된다. 1)여기에는 몇가지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있다. 공동체는 분명히 목자들과 결합되어 있을 때 합법적으로 조직되는 것이다. 이 제단 공동체는 주교와 함께 비로소 공동체로 규정된다.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들로서 전체 교회의 일치의 바탕이다. 제단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위계적으로 형성되는 그리스도공동체의 일치안에서 보증하고 실현한다. 따라서 교회의 보편성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본질과 분리 될 수 없다.


공동체가 목자들과 결합되어 있을 때 합법적으로 조직된다는 또 다른 의미는 아무도 자신을 교회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의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모인곳에주님이 계시다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어떤 집단이 함께 모여 단순히 신약성서를 읽는다해서 우리는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양여”와 “수락”이라는 두 요소는 본질적으로 교회에 속한다. 신앙이란 이 두요소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만남을 수락하도록 하는 구조를 일컬어 성사라고 한다.


아무도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수 없으며 아무도 스스로를 사제로 서품할 수 없고 또한 아무도 스스로 죄를 사할 수 없다. 교회는 만들어 질 수 없으며 성사적 공동체로부터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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