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신교
2.1 역사적 배경
Martin Luther(1483-1546)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종교분열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교황권과 교계제도에 대한 저항, 그리고 오랫동안 교회내부에 계속되었던 폐해의 부산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정치와 종교의 혼합은 교황과 황제와의 대결, 교황과 주교들간의 대결이라는 길다란 통로를 거치면서 더욱 강력한 교황권을 확립시키는 한편, 로마 가톨릭 교회를 하나의 교황국가가 되게 하였다. R.Bellarmin(1542-1621)추기경 말대로 교회는 베네치아 왕국이나 프랑크 왕국과 같은 하나의 왕국이었다. 고대 순수한 영적 의미로 출발했던 교회와 교황은 정교의 혼합 속에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요소가 뒤섞이면서 더 이상 종교적 순수성을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 교황은 교황 국가의 황제, 주교는 영주, 사제는 기사, 평신도는 평민 또는 농노로 구성된 교황국가가 그 당시 교회의 모습이었다.(실제로 많은 지역 영주는 주교였다. 예, Salzburuk)
한편 이러한 복합적 요소로 얽힌 교회 내에 한 국가가 의례 그러하듯 수많은 폐해가 드러나게 된다. 사실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폐해는 있다.
그 당시 종교생활에 있어서의 폐해는 종종 불건전한 성인공경 신심, 외형적 기도형식 등에 있었고, 교회 행정상의 폐해는 성급한 제도화, 파문의 남용, 성직매매와 성직록 등.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부도덕한 생활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는데 그 중에 최악의 것은 수도회 공동체 거의 전체가 타락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수도자들은 특권층, 귀족의 전유물, 부와 출세의 상징, 종을 부리면서 수도 생활했다.) 교황직이 불건전했고 그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좋지 않은 추기경들이 좋지 않은 교황들을 선거하였고, 좋지 않은 교황들이 다시 좋지 않은 추기경들을 임명했다. 주교직은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귀족정신으로 지배되었고 영적이질 못했다. 하급성직자들은 가난과 비참 가운데서 하루살이 생활을 하던 프롤레타리아였다. 이러한 교회의 실상은 비단 로마 가톨릭 교회만의 탓이 아니라, 게르만족이 지배하던 서유럽이 걸어온 역사 안에서 형성된 정치, 사회구조의 과정과 결과였다.(종교개혁자들은 정교혼합 사회구조를 무시하고 가톨릭 교회만 따로 타락한 것처럼 비난하는데 당시 정치. 종교는 서로 맞물려 있었다.)
